< 예수님의 화 >
종종 우리는 자신의 욕구나, 자신이 믿는 정의, 가치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등등 그럴만한 다양한 이유로 화를 내지만,
자칫 잘못 화내는 습관을 들이면 분노 조절 장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제대로 화를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오복음에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며 강하게 화를 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먼 인도자’, ‘윗자리를 좋아하는 자’, ‘겉과 속이 다른 자’ 등
위선자라고 꾸짖으시고, ‘회칠한 무덤’, ‘독사의 족속’이라고까지 하시며 열불을 토하십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선택받았고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며 거룩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왜 그들에게 그토록 화를 내셨을까요?
복음은 다른 구절에서도 예수님을 연민의 정으로 가득찬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니신 동시에, 종종 분노하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그분은 성전에서 환전상을 내쫓으실 때 하느님의 진노를 보여 주셨습니다.(요한 2,13-15 참조)
또한 안식일에 누군가를 치유하신 것에 대해 적대자들이 시비를 걸자,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루카 13,16) 하시며 화를 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화를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지 당신을 지켜보는 이들을
‘노기 띤 얼굴로 둘러보시고’(마르 3,5 참조)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잘못된 행위에 대항해 화를 내셨기에
그분께서 내신 화는 올바르고 정당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화를 올바로 사용하라고 하셨지, 금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마태 5,22)라고 말씀하신 것도,
적개심에서 비롯되어 살인까지 유발하는 화를 멀리하고 정당하게 내야 할 화와
그렇지 않은 화를 구분하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화를 내셨습니다.
일종의 ‘친근감 있는 화’입니다.
가령, 그분은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시며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자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태 16,23)고 하시며 화를 내셨습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유혹을 물리치고 고통스러운 결정을 따르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화를 풀어 악마에게 발붙일 기회(틈)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에페 4,26 참조)
될 수 있는 한 빨리 논쟁과 싸움을 해결하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죄가 되는 행동이나 적개심을 품은 화를 내버려 두어 뿌리를 내리게 한다면
인간관계를 망치기 쉽습니다.
화를 표현할 때는 늘 인내와 자제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화가 선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성령께 도우심을 청해야 합니다.
문종원 베드로 신부 | 주교좌 기도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