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비는 부드러운 봄비 같기도 하고 새색시 걸음 같기도 하다.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있는 나는 뒤뜰 자두나무 가지마다에 조롱조롱 매달린 빗방울들을 바라보고 있다. 가끔은 참새들이 그 위를 종종종 걸어 다니는데 그 때마다 물방울들이 일제히 떨어져 내린다. 후두둑 공중을 낙하하는 빗방울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빈둥빈둥 대는 시간은 얼마나 위대한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뿐만 아니라 소소한 것들까지 보이고 들리게 하는 힘이 있다. 복잡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던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도화지만한 빈 터를 만들어 준다. 도화지만한 하얀 여백. 소리든 빛깔이든 생각이든 무엇이든지 선명한 무늬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지금 내 여백으로 그의 목소리가 걸어오고 있다. 나에게 신문을 읽어주는 유일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낮은 발자국 소리를 내며 걸어오고 있다.
주말 산골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일차적으로 노동의 기쁨을 선사하지만, 조금 한가한 날에는 이처럼 또 다른 별개의 특별한 기쁨을 준다. 도시에는 소리가 너무나 다양하고 많아서 사실 그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들을 수가 없다. 특별히 그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시간도 없다. 한적한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그의 음성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글을 읽어주는 그 남자의 목소리는 가을날 풍성한 들판처럼 윤기가 흐르고 따뜻해서 특히 쌀쌀한 겨울날 이불속에서 들으면 어미의 자궁 안이 이러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처음부터 그가 책이나 신문을 읽어준 것은 아니다. 오십이 가까워지면서 눈이 어둑해지기 시작한 나는 돋보기를 필요로 했다. 반면에 그는 여전히 훌륭한 시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글을 읽을 때마다 돋보기를 집어 들어야 하는 불편함으로 책을 읽는 횟수가 줄어들어가던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그가 스스로 읽어주거나 내가 읽어달라고 주문하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그 전에도 가끔은 좋은 글이나 일상 생활에 필요한 상식이 담긴 글을 보면 아이들이나 나에게 큰소리로 읽어주는 습성이 그에게 있기는 했다.
글을 읽는 그의 목소리는 내 귀로 들어와서는 머리 속에 잠시 머물렀다가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겨울날 새벽 어머니가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면 서서히 온기를 더해오던 아랫목처럼 내 가슴이 훈훈해졌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여긴다. 책을 읽어주는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사랑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도 그런 사랑이 무르익었던 날들이 있었다. 밤낮으로 열심히 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내는 소리였다고 생각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이듯 어미의 따뜻한 마음을 먹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어미의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쉽게 잠이 드는 것은 어미의 사랑에 푹 젖어들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도 그가 책이나 신문을 읽어주는 동안에는 어린아이로 잠시 되돌아가고는 한다. 어리광스럽게 아빠를 올려다보는, 눈이 맑고 호기심이 가득했던 딸아이가 되어보는 것이다.
내 어머니는 직접 책을 읽어주신 적은 드물었다. 대신 잠자리에서 귀신이 등장하는 옛날 이야기를 조금씩 바꿔가며 우리를 무섭게 하거나 놀라게 하셨다. 그 연세의 시골 아주머니들이 글을 전혀 모르셨던데 비해서, 서당 선생이셨던 외할아버지 덕분에 천자문을 줄줄이 읊으시고 한글을 깨우쳤던 어머니는, 손에 닿는 책이나 신문에서 큰 글자들을 짚어가며 큰소리로 읽고는 하셨다. 그 내용을 잘 이해하거나 파악하지는 못하셨던 듯 한데,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들려주고 싶었던 어미의 본능적인 사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대망이나 수호지 삼국지 등 장편들을 즐겨 읽으셨다. 안마당이나 바깥마당에서 우리가 놀고 있으면 사랑방에서 흘러나오는 아버지의 구수하면서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일정하게 높아졌다 낮아지며 이야기하듯 시조를 읊듯 읽어가셨는데, 집안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우리를 내내 따라다녔다. 엄하고 불같은 성미로 어린 우리에게 멀게만 여겨졌던 아버지와의 간격이 그래도 꽤 가깝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산골의 겨울이야말로 농부의 빈 공터가 아닌가. 마음 놓고 빈둥거려도 좋은 시간이었다. 동네 어른들은 당연하다는 듯 우리 사랑방으로 모여들었다. 새끼를 꼬거나 마작을 하는 날도 있었다. 눈이 내리거나 찬바람이 문풍지를 흔드는 밤이면 아버지의 글 읽는 소리를 한참 동안 듣다 가는 사람도 있었다. 거기에다 가끔은 어머니의 비빔국수까지 밤참으로 대령되었다. 돌아갈 수 있다면, 두런거리는 그 방문 밖에 발이 꽁꽁 얼도록 오래도록 서 있어보리라.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근원적인 결핍을 지니고서도 사람이 사랑과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것은, 사람 옆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어느 여류 작가의 수필 한 대목을 읽어준다. 어찌 가슴으로 와 닿지 않겠는가. 내 옆에 그가 있는데 말이다.
나는 노동이 끝난 뒤 휴식 시간이 좋다.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시간도 좋다. 땡볕이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는 여름날을 좋아한다. 봄비나 겨울비가 그리고 눈이 내리는 날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슴에 너른 빈 터가 생기는 그 시간을, 그 여백으로 정이 가득한 그 남자의 목소리가 걸어오는 그 날을 기다린다.
내게는 옆에 있어주는 남자가 있다. 책을 읽어주는 남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