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해 한용운 기념관(萬海 韓龍雲 記念館)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의 건봉사 입구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 기념관』은 독립운동가이자 불교사상가인 만해 한용운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전시관으로, 조선 선조 임진왜란 때 승장으로 활약했던 사명대사를 기념관인 사명당 의승병 기념관과 함께 있다. 만해 한용운의 영정과 일대기를 알 수 있는 연보 및 사용했던 물건이나 도구 등의 유물, 건봉사와 부속말사에 대하여 기록한 「건봉사급건봉사본말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寺事蹟)」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홀로그램을 통한 시낭송 및 입체영상 프로그램도 선보이고 있다. 만해 한용운은 1907년 건봉사에서 만해라는 당호를 받았고, 이학암 강백으로부터 화엄경과 반야경을 배움으로써 건봉사와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건봉사 입구 기념관 앞에는 만해당 대선사 시비 「사랑하는 까닭」, 「오도송」이 자리하고 있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의 불교인이자 저항 시인이다. 1894년의 동학혁명에 가담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만주 간도성 등을 다니며 광복 운동을 하다가, 1905년에 인제의 백담사(百潭寺)에서 승려가 되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인사동의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 33인을 대표하여 그가 인사말을 함으로써 독립선언식을 끝내고 만세삼창을 외친 뒤,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여 저항문학에 힘썼고, 1927년에는 신간회에 가입하여, 중앙집행위원으로 경성지회장을 겸임했다.
◆ 사명당의 승병기념관(四溟堂義僧兵記念館)
사명당 의승병기념관은 건봉사내 문화유적 안보관광지 개발사업으로 지난 1996년부터 2000년까지 6억2,000만원을 들여 불이문 앞에 건평 200㎡ 규모로 건립됐다.
또 2002년에 2억원을 들여 기념관 내부장식과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 등의 영정을 비롯해 관련 고서사본 6점, 유물 복제류 11점, 건봉사 모형도 2점 등 전시물을 마련해 지난 2003년 9월에 문을 열었다.
기념관이 건봉사에 세워진 까닭은 임진왜란 때에 사명대사가 이 곳에서 승병을 모집하여 금강산 일대를 평정하고 평양성전투에 참여한 호국사찰임을 알린다.
● 관람일자 : 2026년 3월 21일
● 건봉사에서 점심 공양을 마치고 건봉사 사찰을 세세히 둘러본후 건봉사 주차장 옆에 자리하고 있는 만해 한용운 기념관&사명당의 승병기념관도 관람하면서 기념관 관리자의 허락하에 기념관 내부 모습을 담아보았다. 건물 내부 우측은 '만해 한용운 기념관'이며, 좌측은 '사명당의 승병기념관'으로 구분해 놓았다. 기념관 앞에 현판도 별도로 부착되어있다.
《 만해당대선사시비 》
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루어 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조영출 시와 노래비》
칡넝쿨
하늘도 하도 높아 땅으로만 기는
강안두 칡넝쿨이
절간 종소리 숙성히도 잘아났다.
맷뚝이 뱃쨍이 들이 처삿집
문지방 처럼 자조넘는 칡넝쿨
넝쿨진 속에 季節이 무릎을 꿇고 있다
여름의 한나절 꿈이 향그럽다
줄줄이 벋어간 끝엔
뽀족 뽀족 연한 순이 돋고
어린 소녀의 사랑처럼 온 칡
물의게 물으게 茂盛해 간다.
袈娑를 수한 젊은 女僧이
혼자 단이는 호젓한 길몫에도
살금살금 기어가는 칡넝쿨이언만
해마두 오는 가을을 넘지 못해
목을 움츠리고 뒷걸음을 치는 植物
칡넝쿨이 안보히면
먼뎃절엔 燈불이 한개 두개 열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