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것들
중국 조광명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면 슬퍼진다.
어둠속에 가파로운 돌층계 올라 등반한 태산 정상에서 맞이한 일출의 장엄한 아름다움이 나를 슬프게 했고,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채구의 투명하고 칠색영롱한 물빛들이 나를 슬프게 했다. 꽃봉오리 한가운데 떨어질 듯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새벽이슬방울의 곧 사라질 운명이 나를 슬프게 했고, 밤하늘 달빛 한가운데를 날아 지나는 기러기떼의 끼룩대는 울음소리가 나를 슬프게 했다.
만년설 덮인 티벳 쵸몰랑마 여신의 산봉우리가 노을빛에 물들어 하나의 뾰족한 홰불로 타오를 때 나는 너무 숙연해져 눈물을 쏟을번했고, 일망무제하게 뻗은 고원의 노란 유채꽃밭 속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트래킹해 걸으며 한가슴 미어지게 밀고 들어오는 꽃향기에 영혼이 어지러워져 헉헉 소리내 흐느끼며 한바탕 눈물을 쏟았었다.
용트림치듯 와와와 함성을 지르며 바닷가 수면위로 솟구쳐 오르는 안개들의 반란이 내 가슴을 떨리게 했고, 비온 뒤 젖은 각질옷을 등에 업고 나무를 기어오르는 달팽이의 끈질긴 몸놀림이 나를 울먹이게 했다.
그렇게 자연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움만큼이나 슬픔도 함께 선사하며 시도 때도 없이 내 눈물샘을 자극하고 내 가슴에 감동의 물결을 만들어주군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 감동의 파도에 실려 흔들리는 일엽편주였고, 그럴 때 나에겐 삿대도 노도 필요없었다. 그냥 자연의 아름다움이 흔드는대로 흔들리면 되는 슬프게 아름다운 시인이면 되었다. 아니, 꼭 시인이 아니어도 좋은, 아름다운 자연앞의 왜소한 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자연의 아름다움뿐이 아니다.
북경에 있을 때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성수난 사물놀이 공연을 극장 가장 앞자리 바로 무대 앞 가까이에서 보면서,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지는 그 성수난 장단에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져 우리 예술의 한(恨)의 미학에 대해 글로 썼던 적이 있다.
무대 위를 너무 우아하게 날아예는 발레리나의 신들린듯한 모습들이 괜히 내 가슴 신경줄을 팽팽히 잡아당겨 코등이 시큰거렸던 적이 있고, 한 맹인 피아니스트가 연주해내는 아름다운 선율이 기어코 내 눈물을 뽑아내고야 말았던 적도 있다.
모래그림의 대가 쟝 폴로가 유리위에 모래를 뿌려 만들어내는 그림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탄성이 터졌고, 그 환상적인 그림들이 화가의 손바닥에 의해 순식간에 헝클어지고 사라지는게 아쉬워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아아, 아름다운 것들은 그렇게 영원한 것이 못되고, 아름다운 것들은 그렇게 이내 사라지고 마는 것들이어서 더욱 슬펐다.
아름답게 생겨나고 태어나서 아름답게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들...그런 아름다움은 내 오감을 자극하고 내 영혼의 현을 뜯어 오한같은 떨림을 선사하고 급기야는 내 눈물샘을 자극해 슬픔처럼 나를 울게 만든다. 그 격동은 걷잡을 수 없는 것이고, 그 눈물은 우쏴 소리치며 달려오는 밀물같은 것이어서 나는 그 파도앞에 휘청이다 넘어지는 물젖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 아니다. 그 파도에 그대로 무너지는 모래성일 수밖에 없다.
그 아름다움이 내 소유로 만들수 있고 내 곁에 오래 오래 두고 날 마다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렇게 슬프지 않았을 것이다. 피고 시드는 꽃의 아름다움이 태어남과 떠나감의 자연법칙을 알려주는 슬픈 아름다움이라면, 그렸다 지우는 모래그림의 황홀한 아름다움은 꿈같이 허무한 우리네 삶의 순간순간들을 설명해 주는 듯 모든 아름다운 것을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려는 예술의 허무함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세상에 영원한 시간과 영원한 변화는 있을 지언정 영원한 아름다움의 순간은 없듯, 그 아름다움앞의 전율도 잠깐이면 충분해서 우리는 그 아름다움앞에 오르가즘같은 흐느낌의 엑스터시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내 다시 웃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에 감사하며, 사라진 아름다움 대신 또 다른 아름다움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믿어, 그 새로운 아름다움을 삶의 어느 골목 어느 굽이에서 또 조우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
그때 우리는 또 몸에 소름돋는 흥분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 흥분을 주체못해 눈물을 흘리게 될 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아름다운 것을 만나 그 아름다운 것에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너무 행복한 아름다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면서 추한 것도 많이 만나게 된다. 분노할 정도로 더러운 것도 많이 만나게 된다.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의 장난같은 좌절과도 만나게 되고, 헤어나기 힘든 수렁에도 빠지게 된다. 너무 억울하고 너무 힘들어서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고, 통실의 한으로 너무 아프고 슬퍼서 이 세상을 저주하고 운명을 한탄하면서 꺼이꺼이 울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슬픔들을 이기고, 그런 아픔들을 이기고, 그래도 세상은 한 번쯤 살아볼만 하다는 믿음으로 우리 몸을 치켜세워주고 우리 의지를 북돋아주고 우리 의욕의 심지에 다시 불을 붙여주는 건, 역시 세상이 자연의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아름다움으로 우리 슬픔의 눈물을 닦아주고 인간창조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예술의 황홀함으로 우리 심혼의 엔돌핀들을 자극해 주기 때문이다.
부단히 새로운 것을 찾아 그 새로움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고, 그 아름다움에서 삶의 새로운 흥분점들을 찾는 일. 그것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따분하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의 처방전일 때 우리는 굳이 변화없는 삶이라고 따분한 삶이라고 매일매일 그날이 그날같이 이어지는 우리네 삶을 원망할 필요가 없다.
아, 새로이 눈뜬 아침 사랑하는 이의 헝클어진 잠자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런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내 옆에 온 밤의 어둠을 함께 해주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코등 한 번 찡한 감동을 받아볼 일이다.
하루 세끼 식사 메뉴 거의 거기서 거기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질리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어서 배를 불릴 수 있고, 그걸 먹어 힘을 내어 씩씩하게 이 세상을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에 새로이 감사해 하며,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친 어느 아이의 눈빛이 너무 투명하게 맑아서 그 눈빛과 마주칠 수 있은 행운에 감사해하며, 아 산다는 건 역시 아름다운 것이구나, 아름다운 것들을 수시로 만날 수 있는 세상은 역시 살만한 것이구나 하고 작은 감동을 스스로 만들어 한 번 씨익 웃어볼 일이다.
큰 감동이 아닌 잔잔한 감동, 작은 것일지언정 감동에는 메마름이 없다. 메마른 것이 아니고 축축한 것이어서 굳이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이미 가슴안에서 우리는 우리 영혼을 적시는 작은 감동의 의식을 거행한 것이다.
요즘 하루 한 번씩이라도 활짝 입 벌어지게 소리내어 웃어보기가 최고의 건강찾기 비법으로 건강센터의 필수 프로그램으로 각광받고 있단다. 그 프로그램을 강력 추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한 마디 더 권장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눈물이 날 때까지 웃으십시오. 라고. 마른 웃음만 웃지 말고, 눈물이 날 정도로 젖은 웃음을 웃으라고. 우리 몸에서 수분이 차지하는 비례가 80퍼센트가 넘어야지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면, 우리 영혼의 심처 역시 항상 메말라 있지 말고 80퍼센트, 아니 100퍼센트 젖어있고 물기가 찰랑찰랑 넘쳐야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에 항시 생기가 넘치고 삶에 활기가 넘치리라.
눈물, 그건 아름다운 것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것들을 굳이 만나지 않아도 충분히 촉촉히 젖어서 탱탱한 탄력이 넘치는 매일매일의 일상을 살아간다면, 그 일상 자체가 눈물나게 고마운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는가.
아침, 습관처럼 펼쳐든 핸드폰 카카오스토리에서 어느 후배가 새로 올린 목련꽃 사진이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촉촉히 젖어드는 감상의 시간을 침대위에서 잠깐 가졌다. 아, 이곳의 목련은 훨훨훨 가지를 떠나간지 오랜데, 그곳은 지금 한창 목련의 계절이구나. 사진으로나마 또 한 번 아름다운 목련의 계절을 만나게 해준 후배에게 감사하며, 그 목련들이 질 때 너무 슬퍼져서 울먹일 후배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는 것도 미리 가슴 짠한 감동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