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정법으로 가는 원력 세워라
<35> 이참정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답장 ①-2
[본문] 나는 평소에 큰 서원을 세웠습니다. “차라리 이 몸으로 일체중생들을 대신해서 지옥의 고통을 받을지언정 마침내 이 입으로 불법을 가지고 인정을 써서 모든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지는 않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대가 이미 이러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이 일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잘 알 것입니다. 다만 옛날 그대로 살아갈지언정(仍舊) 더이상 큰 법을 밝히고 밝히지 못함과 기틀을 응할 때에 걸리고 걸리지 않음을 묻지 마십시오. 만약 이러한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옛날 그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강설] 진리를 깨달은 선지식으로서 부처님의 법을 전파하겠다는 원력을 세운 사람이라면 당연히 법에 대한 확고한 자신의 소신과 원력이 있어야 하리라. 자신이 공부하여 깨달은 불교가 정법인지 아닌지를 먼저 검토하여야 하고, 진정으로 정법이라면 자신이 믿는 정법으로 포교하여야 한다.
대혜선사는 “차라리 이 몸으로 일체중생들을 대신해서 지옥의 고통을 받을지언정 마침내 이 입으로 불법을 가지고 인정을 써서 모든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지는 않겠다”라고 하였다.
내가 공부하는 불교, 정법인가 자문
부처님의 고귀한 법 등불로 삼아야
이 얼마나 정법에 대한 애정과 결의에 넘치는 원력인가. 근기에 따른 방편이라는 미명하에 부처님의 그 고귀한 바른 법을 제쳐두고 무당이나 하는 소리를 전하면서 불교라고 해서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다만 옛날 그대로만 살아갈지언정(仍舊) 더이상의 새로운 법은 없다”라는 말씀으로 불교를 통해서 오히려 삿된 길로 들어서지는 않게 하였다. 왕왕 있는 일이지만 자칫 불교를 믿음으로 해서 믿지 않는 것보다도 못한 미신적인 길로 가는 것을 경계하였다.
[본문] 편지를 받아보니 여름을 지난 후에 다시 나오겠다고 하니 나의 뜻에 잘 맞습니다. 만약 흥분하고 거칠게 달려서 구하는 일을 쉬지 않는다면 이치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날 그대가 너무 기뻐하기에 감히 설파하지 아니한 것은 말을 상할까 염려되어서 였습니다. 지금은 안정이 되었으므로 비로소 감히 가리켜 보입니다. 이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모름지기 부끄러운 마음을 내야 됩니다.
[강설]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 제자가 심히 보고 싶을 것이다. 대혜선사의 이와 같은 인간적인 속내가 나타난 글이다. 그리고 만고에 만나기 어려운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참정도 흥분하였을 것이다.
그 때는 대혜선사가 아무리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귀에 잘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선사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참고하지 않았다. “말을 상할까 염려되었다”라는 말은 이런 뜻이다. 말이란 그 말을 할 때와 해줄 사람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본문] 왕왕 근기가 영리하고 지혜가 많은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데 힘을 쓰지 않았으므로 드디어 쉽다는 생각을 내어서 곧 수행하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흔히 눈앞의 경계에 빼앗김을 당하여 주제를 짓지 못하고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지면 다시 미혹하여 돌아오지 못합니다.
도의 힘이 업의 힘을 이기지 못하여 마군이가 그 편의를 얻어서 끝내는 마군에게 포섭을 당합니다. 목숨을 마칠 때에 또한 힘을 얻지 못하리니 부디 기억하십시오.
[강설] 대개 총명한 사람들은 불법을 쉽게 이해하고는 더 이상 수행하려고 하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견성성불을 위해서 참선공부를 하다가도 닭 벼슬보다도 못한 주지나 종정자리를 차지하려고 모든 체면도 돌아보지 않고 진흙탕 싸움에 빠져든다.
그렇다면 그동안은 무슨 마음으로 선방에 앉아 있었으며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쳤다는 말인가. 미혹에 빠져서 다시는 처음 불법을 알았노라고 기고만장하던 그 때로 돌아오지 못한다. 진정으로 도력이 업력을 이기지 못한 사례들이다.
[출처 : 불교신문 201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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