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스탕 "박제된 역사의 길을 걷다." #9_거친 땅에 보석같은 마을 _가미-닥마르-차랑
기분 좋게 잠에서 깼다.
방을 나와 롯지를 둘러보니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잠겨있는 현관문을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열고 새벽 마을 산책을 나선다.
여행 중 새벽 시간은 온전하게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매우 소중하다.
보통 길어야 한 시간 가량이지만 어둠이 가시고 세상이 밝아지면서 살아나는 사물의 생동감이 좋고
하루를 시작하는 현지인들과 다정하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것도 좋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는 나쁜 사람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가미 마을.
좀솜을 출발해 까끄베니를 거처 츄상에서 로만탕으로 향하는 길은 갈라진다.
서쪽 사면을 이용하는 길과 동쪽 사면을 이용하는 길.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아도 로만탕이 종착점이다.
서쪽 사면은 차마고도에서 이어지는 교역로로 오래전부터 이용되어 왔던 터라
하루 걸리는 거리에 크고 작은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들은 모두 각기 다르게 척박한 무스탕의 환경에서도 점점이 박혀서
굳건히 그들의 문화와 생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즉, 서쪽 사면은 오래된 역사, 문화, 종교, 생활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고 오래된 길이 이어져 있다.
반면에 동쪽 사면은 대자연의 놀라운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다.
깊은 협곡에 까마득한 다리가 걸려 있기도 하고 길고 긴 개활지를 통과해야 하는가 하면
돌고 넘어도 끝없이 나타나는 구릉 지대를 통과하기도 하며
머리 위로 낙석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위험도 있고
빙하가 녹아 흐르는 강을 맨발로 건너기도 하고
강바닥을 걷다가 운이 좋으면 바다가 융기한 흔적인 암모나이트도 발견할 수 있다.
길은 거칠고 험해 체력 소모가 만만치 않지만 걷는 재미가 있다.
서쪽 사면을 이용해서 로만탕으로 향하는 이 길 중간쯤에 풍족하고 평화롭고 편안한 느낌의 가미마을이 있다.
가미는 무스탕 지역에서 로만탕-차랑 다음으로 세 번째로 큰 마을이다.
공동수도 옆에 커다란 나무와 일찍이 먹이 활동을 위해 이동하는 염소들
이 댁은 주인이 좀 게으른가? 염소들이 아직 우리에 있다.
바람 한 점 없어 얌전히 걸려 있는 타르초 대신 "옴마니밧메훔"을 외친다.
멀리 설산에는 지나던 구름이 아침햇살을 머금기 시작한다.
초르텐 통로에 오토바이. 긴 마니월 그리고 돌로 쌓은 축대 위에 검은 소는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이방인을 살핀다.
아침 일찍부터 락시를 내리는지 나무 태우는 연기가 달콤하다.
가미는 중국과 네팔군에 용맹하게 항쟁했던 캄파게릴라의 마지막 캠프가 있었던 마을이다.
그들의 캠프에서도 아침이면 밥 짓는 연기가 이렇게 피어올랐겠지.
자존을 위해 험한 무스탕을 누비며 혹은 쫓기면서, 피를 뿌리며 목숨을 걸고 항쟁을 했던 그들은
힘의 논리와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달라이라마의 항복 권유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지키지 못한 자존을 한스러워하며 연기처럼 산화했을 것이다.
아침나절의 마을 골목들은 여행자에게 영감을 준다.
골목은 많은 이런저런 사연들은 가진 사람들이 다니면서 다져지고 넓혀져 왔기 때문이다.
무스탕 지역은 근대사에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사건들이 많은 곳이다.
티베트, 캄파, 중국, 네팔, 미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여러 나라의 이익과 흥망성쇠.
갈등으로 무력충돌 등 총체적 결과물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 중국이라는 큰 나라의 탐욕에서
작은 나라들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과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으로 소멸하기도 하고 살아남는지.
13대 달라이라마인 둡텐걈초는 1950년부터 거의 십 년간 중국에 무력대항을 하다가
59년 인도 다람살라로 망명을 하고 나서는 갑자기 비폭력운동으로 노선을 바꿔야 했을까?
59년 망명지를 선택할 때 왜 역사, 문화, 종교적으로 동질성이 많아 객관적으로
다람살라보다는 좋은 조건이었을 로만탕으로 오지 않고 다람살라를 택했는지?
짧은 역사 지식으로는 답을 구할 수는 없지만, 천천히 깊게 생각해 볼 주제다.
저 골목 끝에서 또랑또랑 말목에 매단 종소리를 울리며
캄파에서 먼 길을 온 검게 그을린 얼굴의 마방이 나타날 듯 하다.
"따시텔레"
손때묻어 반짝거리는 굳게 걸린 문고리와 오래된 나무통
이른 아침에 주인장은 어디 멀리 가셨을까?
아침 산책을 마치고 식당에 들어서니 주방 팀이 아침 식사 준비에 분주하다.
밥 짓는 냄새가 구수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고 정갈하게 음식을 조리한다.
수시로 불시에 주방에 들이닥치는 나를 주방장은 달갑지 않겠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에 확인이 꼭 필요하다.
끼니마다 정성을 다해 따뜻하고 입에 맞는 음식을 준비해 주는 그들에게 아침 인사 겸 고마움을 전한다.
이들이 있어 우리 팀이 건강하게 여행을 할 수 있다.
주방 순례를 마치고 롯지에 들어서니 아래층 독일 부부팀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팀도 인원이 꽤 많다.
가이드 비루와 오늘 일정을 정리한다.
가미-닥마르-차랑 일정인데 닥마르를 거쳐서 가면 길도 험하고 오늘 일정이 길어지니까
길도 편하고 거리도 짧게 닥마르를 빼고 차랑으로 바로 가자는 의견이다.
안될 말이다.
서쪽 사면에서 중요한 핵심인 닥마르를 뺀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더욱기 사진찍는 분들에게는 이도 안 들어갈 제안이다.
무스탕 사진들을 찾아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닥마르 사진인데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
아침을 먹으며 미팅.
오전에 닥마르까지 이동 점심 후에 차랑까지 이동.
오늘 이동은 고도차는 적지만 거리나 난이도로 판단할 때 쉽지 않으니 서로서로 도와가며 힘내서 가자고 마무리.
가미-닥마르 5km
닥마르-차랑 10.5km
고도차 -40m
날씨 참 좋다.
꽃과 나무가 있는 길을 걸으면 새로운 기운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계곡으로 내려서면서 홀로 풀을 뜯는 염소를 보더니, 화제가 염소 한 마리 잡아먹어야 한다는 거로 바뀐다.
아침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시장하신가?
염소를 잡으면 어느 부위는 생으로 먹어야 맛있고
어느 부위는 푹 삶아서 손으로 뜯어 먹어야 맛있고 한동안 말 성찬이 이어진다.
걸으면서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체력이 왕성하다는 방증이니 다행이다.
어제 숨골들이 터졌는지 걷는 상태가 가볍다.
계곡 물가로 숲이 우거지다.
황량함과 풍요함이 길 건너인 것이 무스탕의 매력이라고 느껴진다.
담을 길게 쳐 놓았는데 농경지, 숲, 짐승들을 가두는 곳에 무시무시한 바람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팀이 걷기여행을 시작한 후로는 험한 바람을 만나지 못했는데
알려지기로는 오후가 되면 바람이 심하게 분다고 한다.
숲을 가로 질러 나무다리를 건넌다.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
꽤 튼튼하고 매근하게 만들어진 다리다.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물이 거칠다.
물관리만 잘한다면 거칠고 황량한 땅을 옥토로 바꿀 수 있겠다 싶다.
숲을 빠져나와 긴 오르막길을 오른 다음 달콤한 휴식
풍요롭고 예쁜 가미마을이 발아래 보이고 멀리 설산에 구름이 걸려 있는 멋진 풍경을 보며 땀을 식힌다.
아직도 염소 얘기를 하시나?
이제 닥마르를 향해 능선을 따라 긴 내리막을 가야 한다. 공사 중인 곳이 없이 좋다.
자그마한 언덕을 넘어서면 아름다운 닥마르의 전경이 펼쳐진다.
초르텐이 있는 저 아랫쪽은 닥마르에서 차랑으로 가는 신작로를 따라가다 들어오면 만나는 곳이다.
오르고 내림이 큰 능선길보다 산아래로 돌아 거리와 시간이 더 걸리기는 하지만 편하긴 하겠다.
그런데 저 길은 도로 공사에 포함된 길이라 지금 온 옛 도보 길이 경치도 좋고 힘은 들어도 걷기는 좋다.
이 초르텐은 로만탕 왕국 초기에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다.
점점 가까워 지며 전체를 드러내는 닥마르를 보면서 산허리를 돌아간다.
팀원들도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어 힘든 기색 없이 신나게 걷는다.
산허리를 돌아서니 무스탕의 거친 바람이 만든 붉은 절벽이 거대한 조각작품처럼 서 있고
붉은 메밀꽃이 멋진 모자이크처럼 모양을 낸 것처럼 박혀있고 보리가 푸르게 넘실대는
풍요로운 마을이 펼쳐진다.
이 마을은 초르텐도 예쁘다.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하어 예쁜 목소리로
"옴마니밧메훔"
설산에 구름만 거쳐주면...
평화롭고 풍요롭다.
거대한 붉은 성채로 향해 걸어가면 가까이 갈수록 절벽은 높아지고
붉은색이 진해지면서 내 존재는 점점 작게 느껴진다.
절벽 곳곳에 사람이 살았던 동굴이 많다.
아주 오래전 혈거인들이 살았을 것이고 티베트에서 넘어 온 장족들이 살았을 것이고,
자존을 위해 투쟁하던 캄파 게릴라들이 숨어들었을 것이다.
장엄함.
무스탕 지역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사진이 로만탕이 아니고 닥마르인 것은 당연하다.
붉은 절벽의 기이한 모습은 사방에 병풍처럼 펼쳐진 설산과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과 띄엄띄엄
서 있는 자작나무, 바람을 막기 위한 돌담과 붉은 유채꽃과 푸른 보리밭이 어우러진 숨이 막히는 풍광이다.
세월이 급한 보리는 벌써 노랗게 익어 파란 하늘을 더 파랗게 만들고 구름은 설산 꼭대기를 받치고 있다.
무스탕 지역은 비도 거의 오지 않고 거친 바람과 흙먼지가 끊이지 않아
사람이 살기에는 매우 척박하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 크고 작은 마을들은 그곳에 물이 있기에 적은 양이지만 식물들이 뿌리를 내려 염소, 양, 소 등
가축을 기를 수 있고 적은 땅이나마 농사를 지어 소출을 얻을 수 있기에, 얻어지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땅이다.
여기도 마을 가운데 공동수도와 초르텐이 있다.
티베트에 초청받아 온 빠드마삼바바가 수도 라싸에 티베트 최초의 절 삼예 사원을 지을 때,
사람들이 낮에 힘들여 지은 건물을 밤에 악마들이 다 부숴 버려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빠드마삼바바는 이 악마들이 무스탕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스탕으로 온 빠드마삼바바는 대장 악마를 잡아 몸을 해체했다.
그는 악마의 심장과 허파를 깊은 골짜기에 던졌다. 허파가 떨어진 곳은 붉은 절벽으로 변했다.
닥마르의 붉은 절벽은 그래서 허파꽈리를 닮았다.
<허파 모양으로 봐서는 닥마르가 아니고 사마르 못 미쳐 있던 두 개의 붉은 산이 아닐
까?>
악마의 심장은 로게까르에 떨어졌는데 나중에 그곳에 가르 곰빠가 세워졌다.
창자가 던져진 땅에는 창자처럼 긴 마니월이 세워졌다.
이후 삼예 사원은 순조롭게 건설되었고 악마들의 소굴이었던 무스탕은 성스러운 땅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다.
닥마르 마을
먼저 도착해서 주방 팀이 점심을 준비해 놨다.
점심 먹고 한 시간 휴식.
마실정회동
첫댓글 아! 좋다.
창가에 부는 바람에 가을이 오고있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거기에다 여행기까지 보고 있으니 이보다 좋은 순간이 어디 있으리오!
어제는 라면얘기,
오늘은 염소얘기.
내 뱃속이 신호를 보냅니다.
나도 즐겁게 해달라고.
또한,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보다 되새김(여행)하는 지금은 ''못먹어도 고!''하는 기분으로 도취되어 있읍니다.
완전 즐겁고 행복합니다
휴대용 의자 완전 짱이었어요^^
온 몸을 감싸는 기을 느끼며, 아~~ 내도 가고 잡땅~~~
가고 싶으면 가시면 되지요..지금부터 팀구성해 볼까요?
아직은 올빼미형이지만 아침형 인간이 되어 새벽시간을 즐겨보고 싶구요
악마가 등장하는 닥마르의 전설~ 나름대로 상상해보니 재미있네요 ^^
올빼미형하고 아침형은 불과 5시간 정도의 차이입니다.^^
역시 한문한 형님은 준비성이 최고내요~~^ㅎㅎ
김사장님!
반갑습니다
언제 한번 멋지고 낯선 길에서 하염없이, 함께 걸어 봤으면 합니다
한문한 형님 잘다녀오셧죠 힐번 만나서 소주한잔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