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대지문학 겨울호 등단 시평 (윤주선)
ㅡ.시인의 감성이 낙엽처럼 바스락거린다.ㅡ
인묵 김형식
먼저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심사에 오른 윤주선 시인의 시 19 편중에서 용서, 세 겹의 옷, 기도, 빛과 소금, 365개의 기적, 다섯 편을 등단작으로 선정하고
시 [ 용서]을 들여다본다.
詩聖 괴테(Goethe)는 일찍이
'창작이란 자기를 해방시켜주는 것이라' 했다.
시인의 경험을 뜨겁게 가슴으로 녹여낸 시 '용서'는 낙엽과 자신, 자신과 낙엽을 환치해가며 자기를 해방시키고 있다.
마당을 쓸다 밟힌 낙엽은
아프지만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날마다 그렇게
무엇인가를 밟고 걷는다
지금까지 내가 살 수 있는 것은
저들의 용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용서는
가장 큰 배움이고
가장 큰 용기고
가장 큰 사랑이라 노래하고 있다
시인의 감성이 낙엽처럼
바스락거린다.
자신의 영감을 자기의 언어로 말하는 시인은 최고급 시인이다.
하늘과 통하는 길목에 영혼의 추상 걸어놓고 세상을 소유하는
부자 시인이 되길 소망하면
더욱 정진하시어 자랑스러운 대지 문학의 일원으로 우리 문단에 큰 족적 남겨 주시기 바란다.
ㅡ.별첨
등단 심사표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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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용서/ 윤주선
마당을 쓸다 밟힌 낙엽은
아프지만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날마다 그렇게
무엇인가를 밟고 걷습니다.
주로 낯익은 것들을 밟지만
그들은 낙엽처럼 묵묵히
나를 용서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없이
용서하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내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아~ 나의 어머니, 아버지가
내 형제들이
내 친구와 이웃들이
그렇게 나를 걸을 수 있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 수 있는 것은
저들의 용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도 내가 용서한 만큼만 자란 걸 보니
밟힌 낙엽과 같은 겸손한 마음이
나를 키웠나 봅니다.
더 많이 용서했다면
더 많이 컸을 겁니다.
용서!
가장 큰 배움입니다.
가장 큰 용기입니다.
가장 큰 사랑입니다.
2.세 겹의 옷/ 윤주선
오늘도 거울 앞에서 옷을 입는다
더우나 추우나 세 겹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말의 옷이다
입술로 지은 옷은 그의 가치를 말한다
진심의 위로, 자상한 칭찬은
언어를 넘어서는 천상의 아리아다
또 하나는 표정의 옷이다
미소진 얼굴은 어떤 명품보다 값지다
온화한 주름은 경륜의 깊이다
어느 보석이 그 보다 아름다우랴!
마무리는 기품있는 검소한 의상이다
화려함의 잘난 맛보다
수수함의 겸손이
그의 옷에 하늘 향기를 더 한다
3.기도/ 윤주선
힘들다
기도하라는 신호이다
행복하다
기도하라는 뜻이다
답이 없다
기도할 시간이 왔다
사람은 땅을 딛고
영혼은 언제나 하늘을 향한다
기도는 우주의 힘과 맞닿는 춤
기도는 천상의 노래를 듣는 귀
그리고
기도는 새로운 꿈을 보는 눈
4.빛과 소금/ 윤주선
하늘은 빛을 내고
바다는 소금을 품고
땅은 사람을 만든다
하늘과 바다와 땅이 하나듯
빛과 소금과 사람도 하나다
사람이 빛이며 사람이 소금이다
빛은 삶의 원천이며
소금은 생명의 근원이기에
빛처럼 밝고 소금처럼 짜야
곧 사람인 것이다
바다를 걷고
피로 땅을 적신 예수도
그래서 사람되어
하늘에서 오셨나보다
5.365개의 기적/ 윤주선
또 하나의 365일을 맞이 한다는 것은
또 다른 365개의 기적을 기대하는 것
인간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기적을 나타내는 무대라 했던가!
ㅡ
365일 약하고 겸손한 내가 되어
그분이 보여주실 365개의 기적과 마주하리라
눈을 뜨는 것도
걸어 다니는 것도
매일 할 일이 주어지는 것도
그리고
안전하게 귀가하는 것조차
•••
모두 기적이라네
내년 이맘때
그 기적을 또 세어보면
꼭 365개가 될거야
6.고백/ 윤주선
시를 쓸 때,
충만한 행복감은
글을 깎고 다듬는 순간순간
한 인간의 조각조각
파편처럼 깎아 버려진 인생 조각이
더 곱살시려 쳐다보고 또 보네
내가 깎는 줄만 알았는데
한 움큼 가을바람에
그분 손길 느끼네!
쓴 글을 얼마간 공개하지 못한 우울
차마 올릴 용기 없는 미안함
글이 사람을 향할 때는 더 주춤주춤
죄 많은 인간이 누굴 나무랄 수 있는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니
나의 용기 없음을 고백한 이 가을
작년보다 더 아름답구나!
아내와 낙엽을 밟으며
우리의 신을 향하여 웃음 짓자, 다짐하니
새파란 하늘이 손을 만들어 흔든다.
유난히 복된 발걸음의 오후
그분의 품에서 천국을 보는 인생은
만추의 낙엽 조각인가!
7.말/ 윤주선
말은 펜보다 투박해서
말에 데인 상처는 덧나기 일쑤다.
말은 칼보다 날카로워
말로 베인 영혼은 구천을 떠돈다.
말은 잘 하기도
잘 듣기도 어렵다.
말로 천지를 창조하신 야훼!
어찌 그토록 어려운 일을 하셨을까?
그 분 닮은 우리도 할 수 있겠지?
예수도 하셨으니까!
나, 말을 이쁘고 살갑게 하는 것도
은총이라지만
너의 말을 이쁘고 살갑게 듣는 게
더 큰 은총
깊어 가는 가을에 깨달은 복은
듣는 귀가 예수 닮기 원하네!
8.추수 감사/ 윤주선
가을이 바다 모냥 깊어진다.
그 깊이를 아는가?
천길만길, 구비구비
계절의 향기는 물안개처럼
영혼을 적시고
살며시 집어 든 낙엽은
눈시울을 붉게 물들인다.
겨울을 견디고
봄, 여름을 이겨 낸 의지도
가을에 와선 누구에게나
따뜻한 추억으로 반추한다.
오늘도 하늘에서 내려올
기쁜 소식은 추수 감사의 소망.
겨울, 봄, 여름을 하나로 엮은
저 산과 들의 찬란한 향연은
창조주의 속마음.
감사하라! 가을에게!
이 계절엔
겨울의 냉철도
봄의 욕망도
여름의 분노도
사랑에 담아 추수하라는
그분 뜻이니 우리 모두 감사하자!
9.정답/ 윤주선
착해라
지혜로우라
부지런하라
선인들의 말씀은 모두 맞아
그러나 어찌 다 그리살랴
누구나 하늘이 내린 본성 있거늘
이 본성 따르면 그게 자신의 삶
비교할 수 없는 그만의 무기
그것이 자기 가치를 높히고
공평 사회를 만들지
왜 비교하냐고?
왜 저들을 따르라고 하냐고?
하나님이 주신 복은 누구나 공평해
그게 선물이고! 성품이야!
그 본성을 갈고 닦아 예수 닮게 하신다고
그게 성공이야 바보들아
10.참회/ 윤주선
죄로 얼룩진 옷깃을 여미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바라 본 십자가에는
예수 대신 내가 달려있다
원죄를 깨닫는 순간,
모든 죄를 고백하는 통회의 시간,
십자가에 나를 매달고
예수와 함께 부활의 생명을 얻는다
예수 죽음이 내 죽음 되고
예수 부활이 내 부활 되어
거룩한 눈물 방울 떨구며
참 생명을 잉태하는 또 다른 창조
그의 영혼은 속세를 넘어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위에
힘차게 떠오르는 새로운 빛
날마다 순간마다
거듭나는 참회자에게
창조주가 하시는 말
예히 오르!*
빛이 되거라!
*예히 오르:'빛이 있으라'라는 히브리어
11.교회의 중심/ 윤주선
"우리가 중심이야!" 대제상이 말하자
"그래요! 지당합니다." 서기관이 받았고
"예! 합법적입니다." 바리새 학자가 옹호했지
어린이들이 하나님 나라니 금하지 말라며
인구수에도 없는 여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거지들과 죄인들을 늘 가까이하셨지
그는 내 백성이 교회의 중심이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주님이 다스리는 교회가 된다고 하셨네
그 때문에 십자가형을 당했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지금도 그 말씀을 하시고 있다네
내게 제사를 드리기 전에
내 백성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성도가 교회의 중심이 되어야
예수님이 머리가 되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다고
12.가시/ 윤주선
남의 병은 고치면서도
자신의 고질병은 못 고친
한 남자가 있었다네
은혜가 족하다고 하셨다는
그의 고백은 항복이 아니라
기쁨과 행운이었지
그 가시 때문에 그분을 만났고
세상을 이길 수 있었다네
내게도 네게도 우리 모두에게는
가시가 있어 무시로 찌르지만
그때마다 그분을 만난다면
가시는 너무 큰 축복이라 하겠지
우리에게 가시가 많을수록
우리에게 사랑도 많아질거야
그래서 축복인거야
13.구원의 계절/ 윤주선
아침 바람 찬 기운 마시며
붉고 노란 단풍들이
묵묵히 겨울을 준비하고
밤을 지키는 들짐승과
목마른 철새들이
어딘가로 향하는 계절
온 땅이 가을 언어로 물들고
인생도 이 계절엔 잠잠히
자기 자리를 돌아보지요
가을은 이제 다 잊자며
모든 것을 덮기 위해
낙엽을 떨구고 있건만
모든 것을 용서할 수도
모든 것을 잊을 수도 없는
인간은 그래서 불쌍해
이런 인간을 구원할 자는
이 세상에는 없기에
하늘에서 보낸 것이야
14.나는 언제나 살아 있다/ 윤주선
새벽, 눈 뜨면서
오늘 하루 할 일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래서 나는 살아난다
출근길, 걸어가면서
오늘 만날 이들을 사랑하자 다짐한다
그래서 나는 더 살아난다
일할 때, 가끔은 하늘 보면서
누구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 속삭인다
그래서 나는 또 살아난다
퇴근길, 땡볕에 지친 나를 향해
잘했다고 칭찬하며 위로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 살아있다
잠자리에 누우면서
내일을 향한 또 하나의 꿈을 가슴에 묻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살아있다
15.영혼의 건강/ 윤주선
새벽이 언제나 맑다
마음도 항상 기쁘다
뛰어도 힘이 안 든다
겉으로는 건강한데
속으로는 안 그렇다
혈관과 피는 그것을 알려준다
각종 첨단과학은 내게 경고한다
좋은 낯에 멀쩡한 모습도
인심 좋은 아저씨도 아줌마도
세상을 바꿀 듯한 설교자도
겉으로는 건강한데
속으로는 안 그렇다
행동은 그의 피를 증명하고
말꼬리에서는 냄새를 풍긴다
우리 인간은 그래서
매 순간 심판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 주가 문밖에 서 계시느니라
16.이별의 공식/ 윤주선
시간과 공간의 초월(超越)은
이별의 공식(公式)
익숙한 장소와 사람들은
평범한 미소에도 행복을 짓고
바람처럼 흘러가는 시간은
지문처럼 패인 나만의 공간을 만든다
곳곳 추억 새겨진 교정은
눈물로 지워진 화장처럼
온갖 탄식과 환희의 아우성으로 덪칠한
한 폭의 풍경화
꿈이 있기에 가슴 벅찼던 시간들
기적을 이루었기에 더없이 소중한 장소들
우린 언제나
꿈의 창문을 열고 내일을 바라보며
소망의 망원경으로 미래를 예측하지
그래서 그 시간 그 장소는
만남의 무대요 작별의 공연장이 되어
다시 볼 땐 너도나도 많이 변해 있겠지
수많은 꿈 꾸는 자들의 지워진 화장과
눈물 머금은 서글서글한 눈망울로
나를 반갑게 안아 줄
또 다른 화폭을 그려본다
아브람에서 요한에 이르기까지
나의 사랑하는 분은 언제나
익숙한 곳으로부터 떠나라 하신다
새로운 꿈은 또 거기서 이루어 줄테니까
17.긍정/ 윤주선
생명의 위협과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난 불안해하지 않을 거야
모든 것을 잃고 이웃의 비웃음에 시달려도
난 좌절하지 않을 거야
오늘 죽음의 그림자가 친구처럼 나를 둘러도
내 얼굴의 미소는 지울 수 없어
그럴수록
영혼은 더욱 빛나고
생명은 희망의 박동으로 점점 힘차지고
나의 가슴은 아주 뜨거워질 거야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일면식도 없던
청년들을 모으고 모아
순결한 세마포 위에 수를 놓듯
내 영혼을 풀어 놓았던 시간들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영원(永遠)을 만났거든
18.사랑/ 윤주선
울 엄마
이순을 넘어도 떠오르는 모습들
가슴 시리도록 갚지 못한 은혜가
시간 속 파장으로 뼈에 사무치네
울 아빠
거울 볼 때면 들리는 자상한 목소리
말 보다 행함으로 가르치신 은혜를
어찌 하나라도 잊을 수 있으랴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울 엄마! 울 아빠! 살가운 언어
우리 때는 그랬지
어머니! 아버지! 장손의 무게
한없는 그 사랑 깨달으나 갚을 길 없다더니
시간도 공간도 초월한 그 사랑의 힘은
공허한 우주와 모래 같은 군중 속에서
나를 지탱하는 탄탄한 바닥이며 견고한 기둥
오늘도 나는 그 사랑 때문에 존재하며
그 사랑 어디서 왔는지 알기에
묵묵히 하늘을 바라본다
공작 날개처럼 쏟아지는 유월의 아침햇살은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그분의 사랑을 나누라 말씀하시네
19.계절의 가치/ 윤주선
감이 열린 창가로 가을 냄새를 보니
문틈으로 불어온 가을 햇살도 먹음직
계절의 가치는 사계절 언제나 똑같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누구에게나 같아
계절이 반가운 건 사랑 품고 오거든
하늘이 맑은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계절은 누구라도 하늘 보게 하거든.
폭풍이 에워싸고 무지개 떠 올라도
사랑이 존재하는 내 마음의 풍요는
계절의 가치이고 계절의 품격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