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9:28-36, 영광의 예고편, 25.1.12, 박홍섭 목사
예수님은 황제의 도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받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십자가의 길을 가는 나를 따라야 한다고 십자가와 제자 도를 가르치시며 너희들 중에 살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후 팔일 쯤 되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 산의 변모 사건을 보여주십니다. 28-31을 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영화를 개봉하기 전에 관객들에게 기대감을 높이려고 맛보기로 보여주는 영상이나 드라마가 끝날 때 잠깐 다음 회를 요약해 보여주는 것을 ‘예고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변화 산에서 보여준 변형되는 모습과 그 얼굴과 옷의 영광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며 그분을 믿고 자기 부인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 주실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나라인지를 잠깐 보여주신 예고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는 제자도를 요구받을 때 두려움과 주저함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장차 우리가 받을 하늘의 영광을 예고편으로 보여줌으로 이 길을 용기 있게 잘 가도록 격려하십니다. 세상의 영광은 비가 오면 잠기는 영광이고 산이 무너지면 묻히는 영광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이 믿음으로 달려가 마침내 주 앞에서 누리는 영광은 썩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영광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이 영광을 보지 못하고 세상의 좋은 것만 보인다면 믿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죽음과 배신, 거짓과 사기와 강포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길을 걷는 성도의 삶에 주어지는 영광이 어떤 영광인지 보이지 않는다면 무슨 낙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길 마지막에 어떤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지, 이 길의 중간중간에 어떤 위로가 약속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며 가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의 헛된 영광에 속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 기억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변화 산의 이 놀라운 은혜가 기도하러 갔을 때 허락되었다는 사실입니다. 28절을 보면 예수님이 세 제자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을 때 이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왜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셨습니까? 건강을 위해서 산책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친목을 위한 등산도 아닙니다.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누가복음이 기도를 강조한다고 했죠. 누가는 이 엄청난 은혜가 기도 시간에 허락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주님이 기도하실 때 이 엄청난 은혜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기도할 때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할 때 예수님의 옷이 변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에 이런 특별한 은총이 부어졌습니다. 기도 시간에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하늘의 비밀이 부어지고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는 하늘의 영광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예수님이 기도할 때 제자들은 졸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32절을 보면 베드로와 제자들이 졸고 있다가 깨어서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그냥 졸지 않고 깊이 졸았습니다. 베드로가 졸다가 깨어서 그 영광스러운 광경을 목도하고 이런 말을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베드로는 이 말을 하면서 자기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습니다(33).
은혜의 자리에서 졸면 은혜의 본질을 보지 못합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는 체험의 순간에 졸면 체험의 본질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하면서 그 체험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이 보여주시는 이 놀라운 체험은 예수 더 잘 믿고 예수 더 잘 따라가라고 주신 체험인데 졸고 있었던 베드로는 그 본질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거기서 초막을 짓고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졸았던 제자들에게도 이런 특별한 은혜가 주어졌음은 우리의 위로이며 소망입니다. 제가 주무시는 여러분을 나무라지 않는 이유입니다. 저는 오늘 조는 사람에게도 이와 같은 변화 산의 특별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더 바라는 것은 졸지 않고 이 은혜에 동참해서 은혜의 본질을 바로 알고 베드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체험 자체는 본질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체험의 본질입니다. 잠시 후에 제자들이 눈을 들어 다시 볼 때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세도 사라지고 엘리야도 사라지고 신기한 광경도 사라졌습니다. 예수님만 남았습니다(36). 사라져야 마땅합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이고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을 대변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영광으로 변한 자신과 함께 있는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 구약 내내 그들이 선포하고 약속했던 오실 메시아가 이제 여기 와서 십자가를 지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졌습니다. 모세의 율법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 있었다면 그리스도가 나타난 다음에 그 율법의 수여자는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엘리야로 대표할 수 있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 예언했다면 예수님이 나타나신 다음에는 더 이상 선지자의 예언이 필요없습니다. 그들은 사라지고 체험도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만 남아야 합니다.
변화 산의 영광스러운 체험은 예수님만 남아야 하는 체험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신앙의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체험은 우리의 믿음에 힘과 감격을 더해 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체험을 높이고 자신의 체험을 절대화해서 그 체험 속에 빠져들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체험을 숭배하는 신비주의로 전락합니다. 왜 변화 산의 영광스러운 체험을 허락하셨습니까? 그 은혜와 체험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을 붙들고 잘 따라가라는 의미입니다. 체험 자체보다 그 체험이 증거 하는 영광의 주님을 붙들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주님이 가라고 하는 믿음의 길을 담대하게 걸어가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앙의 체험은 반드시 말씀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34-35을 보십시오.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에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가 이 체험의 결론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이 신비한 체험을 했다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비록 그분의 말씀을 듣고 가는 길이 고난의 길처럼 보이지만 영광으로 가는 길임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너의 생을 맡기라는 의미입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교회들에게 편지할 때 이때 변화 산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16-19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베드로는 자신과 요한과 야고보가 변화 산에서 경험하고 들었던 말씀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모든 성경 말씀입니다. 주님은 변화 산에서 제자들에게 경험시켜 주신 그때의 체험을 지금 우리에게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이 완성된 지금은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조명하심 아래서 하늘에서 들려오는 신비한 음성보다 더 확실한 예언, 곧 성경의 말씀, 이 기록된 말씀으로 영광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구체적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말씀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변화 산의 특별한 은총보다 더 확실한 말씀이 우리 심령 위에 성령의 은혜로 부어질 때까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오르듯이 우리의 마음에 말씀의 진리가 어둠을 비추는 등불처럼 밝혀지고 깨달음과 확신으로 떠오를 때까지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날마다 그리해야 합니다. 날마다 그 은혜가 있어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믿음의 길을 하늘 영광을 소망하면서 담대하게 갈 수 있습니다. 예배에 오실 때도 그냥 오시지 말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오늘 하나님께서 이 예배와 설교를 통하여 말씀을 주시지 않으면 나는 믿음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여주십시오.”라는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의 예배가 은혜와 영광으로 충만해지고, 말씀이 해석되고 주님의 음성이 들려서 예수님이 누구이며 우리가 왜 주님을 믿어야 하는지가 깨달아질 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은혜가 있을 때 좁고 험하여 가는 이가 적더라도 성도의 길을 주님 따라 담대하게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 가운데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