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하늘사람]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이것이 세번째 파멸입니다.
세존이시여,네 번째 것을 말씀학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10.[세존] "자기는 풍족하게 살면서도, 늙게 되어 젊음을 잃은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파멸의 문입니다.
...
풍족함 속에 잊힌 사람-
하늘사람이 다시 묻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파멸입니다.
세존이시여, 네 번째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십니다.
“자기는 풍족하게 살면서도, 늙어 젊음을 잃은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파멸의 문입니다.”
이번 가르침은 추상적인 덕목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 드러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세존께서는 가난해서 부모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
자신은 풍족하게 살면서도 늙은 부모를 외면하는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부모는 우리가 가장 약했던 시절에 자신의 시간과 힘을 내어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걷지 못할 때 손을 내밀었고, 스스로 살아갈 힘이 없을 때 곁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자식은 자기 삶을 꾸리고, 부모는 혼자서 하기 어려운 일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젊었던 손은 떨리고, 단단했던 걸음은 느려집니다.
그때 자식은 무엇을 합니까?
자신의 생활은 넉넉하게 꾸리면서도 부모의 어려움에는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바쁘다는 말, 다음에 가겠다는 말, 나도 힘들다는 말은 그럴듯합니다.
물론 누구나 부모를 직접 부양할 형편을 갖춘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가진 돈의 크기만이 아니라, 자신의 형편 안에서 안부를 묻고 필요한 도움을 살피며 외면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풍족함은 챙기면서 자신을 길러준 사람의 어려움에는 눈을 감는다면, 그 풍족함 속에서 무엇이 자라고 있는 것입니까.
은혜를 잊는 일은 대개 큰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전화 한 통을 미루고,
안부 한 번을 건너뛰고,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를 귀찮아하는 작은 일들이 쌓여 어느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우리는 누구나 늙어 갑니다.
오늘은 돌보는 사람일지라도 언젠가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됩니다.
부모의 늙음을 외면하면서 자신의 노년만 평안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가장 가까운 곳의 은혜를 돌아보지 못한 채 먼 곳의 도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내가 누리는 풍족함이 나를 길러준 이에게 얼마나 닿고 있는지, 조용히 헤아려 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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