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Big Brother) 시대 (No.4)
#4. 빅 브라더에게는 그만의 언어가 있다.
(1) 카드 대란의 원인;
먼저 금년 초 음력설을 앞두고 터진 금융계의 카드 대란의 원인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부터 살펴본다. 원인(原因)에는 원인(遠因)과 근인(近因)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멀리는 박정희 정권 때 생긴 주민등록번호제도가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대해서는 앞 회 글에서도 말미에 언급했다. 박통은 그의 영구집권을 노리고, 그 수단으로 우선 국민 전체의 동향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국민 한 사람마다 그의 고요번호를 부여하는 절묘한 방법을 고안했던 것이다. 그것이 주민등록번호라는 것이다. 국민은 태어나서 호적에 등록되면서부터 고유번호가 부여된다.
주민등록번호 13자리 숫자 중 앞자리 생년월일 6자를 뺀 뒷자리 7자 숫자 안에는 그 번회인의 성별, 탄생 지역 등이 기본적으로 들어있으며, 그것이 여러 방면에서 사용되면서 그 개인에 관한 갖가지 정보가 포함되게 되었다. 은행 거래, 취학, 취업, 병력, 병역, 전과 유무 등등 개인을 발가벗길 수 있는 온갖 정보가 그 7자리 숫자 속에 내장된다. 이것은 개인의 사사로운 생활을 보장받아야 할 프라이버시 지탱의 권리가 뭉개지고 만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부동산 매매나 사업 계약서, 상점에서 어떤 상품을 구매할 때에도 주민번호를 요구하기도 하여 개인의 정보를 도용하려고 한다. 특히 금번에 터진 금융권의 카드대란은 신용 거래가 생명인 은행 당사자가 작심하고서 고객의 개인정보를 팔고 돈을 번 악질 범죄행위인데, 그것을 이 주민번호가 있어서 가능했다. 내가 미국에서 경험한 것으로 미국에서도 은행거래나 그 밖의 생활상 편의를 위해 개인에게 고유번호를 주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 번호는 사회보장번호이지,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이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미국 내에서 시민이나 영주권자로서 합법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최초로 발상한 것이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 일당이 그들의 영구적인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선 국민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엄격히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의도에서 고안된 것이다. 그때는 그런대로 묵과할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명색이 선진국을 바라볼 만큼 경제가 발전하고, 그에 따라 민도가 높아졌음에도 이와 같은 악폐가 존속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 빅 브라더만의 독특한 언어 문법:
여기서 잠간 ‘빅 브라더’에 대해 설명을 하고 다음으로 가기로 하자. 혹 독자 가운데 빅 브러더가 무언지 모르는 분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노파심이다.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필명 조지 오웰(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은 1945년에 출판한,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의 스탈린 체제를 예리하게 희화한 작품 ‘동물농장’으로 베스트셀라 작가가 되었던 사람인데 상처를 당하고 자신은 폐결핵이 악화되는 등 불행한 처지에서입원 요양 중에 언어와 사고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생활이 전체주의에 지배되는 세계를 상상하여 미래소설 ‘1984년’을 집필하였다. 빅 브라더(Big Brother)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큰형’이랄까, 그 알맹이는 깡패 두목에 가까운 캐럭터이다. 조지 오웰이 묘사한 1984년은 전체주의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소설로서 그가 이 소설을 쓴 1949년보다 35년 후의 세상을 그린 것인데, 그의 예언적 소설은 오늘날에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가 이 미래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그가 전체주의적 사회나 국가를 혐오하면서 그에 대한 경종을 울리려 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보기에, 국가는 군인을 모으고 세금을 걷기 위해 국민들에 관한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었다. 출칸 당시 사람들은 소설 내용이 하다 돌발적이어서 놀랐다. 설마 그런 나라가 지상에 소련이나 독일 말고 또 생겨날까, 생겨선 안 된다는 생각을 품고 있을 때였으니, 오늘과 같이 여러 나라에서 전체주의가 국민을 옥제는 세상이 올 것은 상상하지 못 했다.
그가 그린 1984년의 소설 속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우리가 일상 상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들이 대부분 반대로 쓰이고 있다. 예를 들면 ‘무지는 힘’이고, ‘전쟁은 평화’라 했으며, ‘사랑은 증오’이고, ‘자유는 예속’이며, ‘둘 더하기 둘운 다섯’이며, ‘신은 권력’이라는 식으로 바뀌어 쓰이고 있다.
그리하여 이 나라에서는 국민의 행위는 물론, 의식까지도 통제하고 세뇌를 하였다. 국가를 손아귀에 검어 쥔 빅 브라더가 원하는 것은 국민의 복지나 행복 증진 따위가 아니고, 오직 권력과 지배이다. 피감시자인 국민이 어떻게 생활하며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취향을 갖는지를 알기 위해 온 나라에 감시망을 쳐 놓았다.
이나라 대한민국이 박통 시대와 그를 이어 일어난 군사정권시대는 물론, 현 정권과 직전 MB정권에서 민간인 불법사찰을 자행한 것이 바로 소설 ‘1984년’이 예견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저지른 죄가 누가 봐도 뻔 함에도 불구하고 무죄로 판결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소설 1984년의 첫머리에 묘사된, 건물의 온갖 벽 마다 큰형의 무서운 눈초리가 버덩이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이 감시당하고 있어서 생각의 힘조차 상실한 상태라면 지나친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