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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음은 대림목(大林木)이다.
그러나 백호에 괴강을 겸하고 있어 포용력있고 소소한 것보다 큰대의를 본다.
하원갑자(신금)
1988년 민주진영의 분열로 다시 기득세력의 승리로 시작된 88올림픽 열린다.
1월 1일 - 소비에트 연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주도 아래, 페레스트로이카에 착수 개시.2월 25일 - 노태우가 대한민국의 제1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8월 8일 - 미얀마에서 8888 항쟁 발생.
8월 20일 - 이란-이라크 전쟁, 정전협정 발효.8월 23일 - 미국, 포괄무역법안(슈퍼301조 포함) 서명.
60년전 주요 열강국가가 중심이 된 15개국이 모든 전쟁에 대해 반대하고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켈로그 브리앙 조약, 이른바 부전조약을 체결했다
중국에서 황고둔 사건이 일어나 군벌지도자 장쭤린이 기차에서 폭사했다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장제스가 중화민국 주석에 취임했다
1928년 4월, 중국 국민당이 장쭤린의 북양정부를 무너뜨리고 중국 대륙의 지배자가 된 군사작전을 말한다. 이 시점을 계기로 국민당에 합류하지 않았던 구 북양계 군벌들이 모두 몰락하였으며 마지막 남은 봉천군벌조차 봉천군벌의 2대 수장인 장쉐량이 국민정부에 합류하기로 결정하면서 중국 대륙은 국민당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된다.
조선공산당 3차당대회로 책임비서로 신간회(新幹會) 경서(京西)지회 설립을 주도하여 간사를 맡고있는 차금봉이 선출.그러나 이후 일제에 의해 152명이 체포되어 조선공산당 사실상 사라짐.
12월 테제가 채택되어 엘리트주의에서 노농투쟁으로 바뀜.
민족유일당운동결과 전민족유일당협의회(이후 혁신의회)와 전민족유일당촉성회(이후 국민부) 조직.정의부의 김동삼이 삼부통합운동전개하나 유일당운동 실패.
신민부 군정파가 사고를 쳐 북만주민대회에서 김좌진에 사형선언함.
50년전아시아에서는 중일전쟁이 격화되는 중이었으나 유럽은 평온했다. 오스트리아 위기와 체코슬로바키아 위기 등으로 몇 차례 전운이 감돌긴 했으나 각국의 다양한 외교적 중재 노력으로 평화롭게 해결하여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칠레강진
이병철이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였다. 이는 삼성그룹의 뿌리이기도 하다.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되었다.
중일전쟁이 장기화되자 일본 제국이 국가총동원법을 선포했다.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 연방국을 병합했다. 오스트리아 시민들 역시 열광적으로 합병에 찬성했다.(안슐루스)
폭스바겐 기공식.
김원봉이 조선의용대 창설
중국 국민당 장제스, 중국 내 16개 공산계 단체에 해산명령.
간도특설대 2개대대 이범익(기요하라)에 의해 조직되어 독립군 동북항일연군 토벌.
40년전 2.8일 북한 인민군창설.
이제 좌우합작은 궁지에 몰린다.미소공위무산.
1948년 4월 3일 - 제주 4·3 사건 발발
조병옥.장택상 맨얼굴 드러남.
4.4일 적산 농지유상분배14%시작.
남로당 단독선거반대 저항운동
5.5일 김구일행 귀환
5월 10일 - 남한에서, 제헌 국회 구성을 위한 첫 총선거가 실시되다.5월 14일 - 이스라엘 건국.
7월 17일 - 남한에서, 대한민국을 국호로 하는 대한민국 제헌 헌법(大韓民國制憲憲法)이 공포됨. 존 하지, 미군정 폐지 공식 선언.
7월 20일 간접선거로 이승만 당선.이시영부통령
9.9일 북한수립
10.20일 14연대 여순반란사건
아직 미군 떠나기전이다.
11월 제주도 계엄령선포.양민학살
30년전
6.25때 무너진 한강철교 재개통
실업률이 극에 달하는데 국군의 날 행사는 최대화한다.
아리랑담배 시판.
2월 25일 - 진보당이 소멸되다
더운 날씨와 수재발생.한국LP제작.
1628년에영국 의회 《권리청원》(Pattion of Right)를 당시 국왕 찰스 1세에게 제출하다..샤 자한, 무굴 제국의 왕위에 오르다.
30년전쟁의 원인 페르디난트2세는 1629년 개신교인들에게 빼앗겼던 가톨릭 교회 재산을 복구시킨다는 복구령(Edict of Restitution)을 내리며 개신교를 가혹하게 탄압했다.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의 침입 및 그에 대한 프랑스 프로테스탄트의 원조로 그의 기도는 좌절되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었다.
60년전 1568년 선조원년.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발발하였다
80년만에 쟁취함
50년전 모로코 vs 포르투갈의 크사르 엘케바르 전투에서 두 지휘관 군주들이 사망하였다.토정 이지함사망
40년전 프랜시스 드레이크, 해적당을 이끌고 카리브 연안의 스페인 상선 / 도시들을 습격하였고, 파나마 지협을 통과하는 금,은 수송대를 약탈하였으며 마젤란 햐협을 거쳐 산티아고까지 습격하였다.
칼레 해전에서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이끄는 잉글랜드 (영국) 함대가 이베리아 연합 (스페인) 아르마다를 화공으로 격파하였다
척계광사망.프레데리크 2세 :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국왕사망
30년전 절이도 해전.왜교성 전투.제2차 울산성 전투. 사천성 전투가 일어났다.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임진왜란이 끝났다.성혼 사망
20년전 - 조선에서 선조가 죽고 광해군 즉위.선혜청이 설립되었다.
퀘벡 (도시) 이 건설되었다
10년전 보헤미아 왕국의 프라하에서 제2차 프라하 창문투척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로써 30년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항복.허균사망.
10년후 일본에서 시마바라의 난이 진압되었다.
나가사키의 데지마에서 포르투갈 상인이 추방되고 네덜란드 상인이 일본과의 무역을 독점하게 된다
20년후 -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어 30년 전쟁이 막을 내렸다
크리스티안 4세 : 덴마크의 왕이자 노르웨이의 왕사망
30년후 덴마크-노르웨이와 스웨덴 사이에 로스킬레 조약이 맺어졌다.
네덜란드가 실론에 거점을 마련하여, 포르투갈과 대결하게 되었다.
40년후 봄베이에 영국령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다.
스톡홀름에 유럽의 첫 국영은행이 설립되었다
50년후 조선에서 상평통보를 주조하였다.
60년후 - 영국의 해적 윌리엄 댐피어가 서양인 중에선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했다
영국에서 명예 혁명이 시작되었다
61년후 126년간의 2차 백년전쟁 시작
1268년 몽골 제국군이 남송의 양양성을 포위하였다
카를로 1세에 의해 콘라딘이 처형되며 호엔슈타우펜 왕조가 몰락하였다
쿠빌라이 칸이 일본에 사절을 보내 조공을 요구하였고 조정에서는 답신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호조 도키무네에 의해 기각
60년전 칭기즈칸이 금나라 황제의 조서를 거부하였다
사미원이 금과의 화의를 이끈 공으로 남송의 재상으로 승진하였다
30년전 몽골의 침입으로 황룡사가 소실되었다.
- 아라곤 왕국의 하이메 1세가 발렌시아를 점령하였다. 무어인들은 그라나다로 후퇴하였다.
나스르 왕조의 초대 군주 모하메드 1세 이븐 나시르가 알함브라 궁전 건설을 시작하였다.
20년전 독일 쾰른의 원래의 성당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 생트 샤펠 성당이 건립되었다.
- 쾰른 대성당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11월 23일 -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난도 3세가 무어인들로부터 세비야를 정복하였다.
알 안달루스의 나스르 왕조가 알함브라 궁전 건설이 시작하였다.
잉글랜드의 수사 로저 베이컨이 화약을 제조하였다.
10년전 유경등이 최의를 죽이고 최씨정권이 몰락하다
1255년 훌라구가 세운 일 한국에 의해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아바스왕조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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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후 쩐흥다오가 이끄는 베트남 군이 2차 백등강 전투에서 원나라 군대를 대파하여 후퇴시켰다.
- 보린겐 전투에서 브라반트 공작 얀 1세와 쾰른 시민군이 헬데흘란트 백작과 쾰른 대주교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중세 영주 간의 전투 중 가장 큰 규모 중 하나인 이 대결로 쾰른이 자유시가 되었다
30년후 잘란드하르 전투에서 델리 술탄 알라 웃 딘이 파견한 울루그 칸이 몽골군을 대파하였다. 2만명의 몽골군이 전사했고 더 많은 수의 포로들이 델리에서 처형되었다.
괼하임 전투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알브레히트 1세가 독일의 왕인 나사우 가문의 아돌프를 전사시켰다.
- 폴커크 전투에서 에드워드 1세가 지휘한 잉글랜드 군이 윌리엄 월레스의 스코틀랜드 군에 승리하였다.
- 알브레히트 1세가 독일의 왕이 되었다
40년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가 프랑스의 왕녀 이사벨과 결혼하였다.
- 에드워드 2세가 대관식을 치렀다
독일의 왕 하인리히 7세가 신성로마제국황제로 선출되었다.
룸 셀주크 튀르크가 멸망하였다.
헝가리 왕국의 앙주 - 카페 왕조가 시작되었다
50년후 파우가르트 전투에서 노르만 - 잉글랜드 군대가 에드워드 브루스를 전사시키며 스코틀랜드 - 아일랜드 군을 격파하였다
유럽에 역병이 돌아 가축이 대거 폐사하였다
60년후 필리프 6세가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하며 발루아 왕조의 시작되었다. (백년전쟁의 단초)
천순제(원)를 지지하는 다울라트 샤의 상도파와 톡 테무르를 지지하는 엘 테무르의 킵차크 군단이 주축이 된 대도파 간의 양도 전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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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8년 중국 당나라말기 황소의 난에서 활약한 이극용사망, 최치원 실종
중국 885년에 황소의 난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당 황조는 멸망하고 이극용 같은 실력자가 당나라 조정의 귄위를 이용하여 패권을 다투는 시대가 되었다. 이극용의 최대의 적이자 라이벌이 있었으니 원래 황소군의 간부였다가 후에 황소를 배신하고 당나라측에 서서 공적을 세운 주온(주전충)이었다.
이극용은 전쟁에는 강했으나 정략에는 주전충에게 뒤졌고, 또한 그의 갈가마귀군도 그 용맹함이 시간이 지나면서 난폭함으로 변했기 때문에 조정의 평판은 좋지 못했다. 주전충과는 여러 번 격렬한 싸움을 되풀이하였으나, 901년 주전충이 하중(河中)을 손아귀에 넣자 중앙으로 진출이 어려워져서 태원에 갇혀지내는 신세가 되었다. 907년, 주전충에 의해 선양극이 벌어져 후량이 건국되었으나 이극용은 당연히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음해 1월에 주전충 타도를 아들 이존욱에게 부탁하고 병사했다. 향년 53세였다..아들은 후당건국.후량멸망시킴.
60년전 바이킹 습격자들이 아키텐의 수도인 보르도를 점령하였다.
사라센족이 라구사를 점령하였다
50년전 - 애설볼드가 웨식스의 왕이 되었다
40년전 포르투갈 왕국의 전신인 포르투갈 백작령이 성립되었다. (포르투 일대)
30년전 에딩턴에서 웨식스의 왕 알프레드 대왕이 이끄는 앵글로 색슨군이 데인족 바이킹군들을 성공적으로 격퇴하였다. 이후 식량 부족으로 항복을 선언한 데인족의 왕과 알프레드 대왕 사이에 웨드모어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으로 영국의 땅 일부를 바이킹에 할애하게 되었다.
20년전 외드가 서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독일왕 카를3세 사망
압달라 이븐 무함마드가 후우마이야 왕조의 에미르로 즉위하였다.
10년전 외드죽고 - 샤를 3세가 서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10년후 태봉의 시중인 왕건이 역성혁명을 일으켜서 태봉의 왕 궁예를 처단했다. 이튿날 국호를 태봉에서 고려로 이름을 다시 되돌리고 왕조국가로서의 고려의 초대 왕이 되었다
20년후 루트비히 3세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사망
30년후베트남의 응오꾸옌이 이끄는 베트남군이 오대십국중 하나인 남한의 군대를 격퇴하였다.
발해의 유민 열만화가 서경압록부에서 거란에 대항해 정안국을 건국했다.
거란이 현 베이징에 남경 석진부를 설치하였다
40년후 나이지리아의 은리 왕국이 세워졌다. (~1911년)
유지원 : 오대십국시대 후한의 초대 황제사망
50년후 고려 전기의 학자 쌍기의 건의에 따라 최초의 과거제가 실시되었다
60년후 고려의 대표적인 불상 중 하나인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완성되었다
실리스트라에서 키예프 대공국군이 제1차 불가리아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548년 중국 난징에서 후경의 난 일어남
후경은 본래 북위(北魏)의 수비병(守備兵)으로 북위 말의 대혼란 중 점차 출세하기 시작하여 동위(東魏)의 고환(高歡) 휘하에서 대장이 되었다. 고환이 죽자 소관 주군(州軍)을 이끌고 양(梁)나라 무제(武帝)에게 투항하였다.
후경이 이끄는 양나라군이 동위의 장군 모용소종이 이끄는 대군에게 대패하였다
이후 10만 대군을 만들어 양 도읍인 건강을 함락시키고 무제를 유폐하여 분사하게 하였다. 양나라는 이 난으로 멸망하고 건강은 황야로 변했으며 남조, 귀족문화는 큰 타격을 받았다.
비잔틴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세력경계차 이탈리아의 벨리사리우스를 다시 본국으로 불러들인다
60년전 테오도리쿠스 대왕이 이탈리아의 왕을 자칭한 오도아케르를 공격하라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제노의 명을 받고 동고트군을 이끌고 북부 이탈리아로 진군하였다
닌켄 천황이 일본 24대 천황이 되었다
일본서기의 천황은 507년전까진 미궁이다. 백제사와 은근히 겹친다.
신라사 또한 숨기는게 많다.
487년에 기생반숙녜의 반란으로 가야가 혼란속에 빠지자 이에 개입, 가야 연맹에 대한 세력을 강화를 시도하기도 했었다. 아마 기록상으로 보았을 때 가야가 백제에 도움을 요청한 듯 보인다.
북위가 백제의 대륙 영토를 침략하자 백제가 이를 물리쳤다.
50년전 부레츠 천황이 일본 25대 천황이 되었다. 26대천황부터 정사로 본다.출신부분은 빼고
소보권이 남제 6대 황제가 되었다
48년전 동성왕죽고 무령왕 등극.
40년전 클로비스 1세가 프랑크 왕국의 수도를 파리로 정하고 가톨릭교를 국교로 삼았다.
테오도리쿠스 대왕이 동고트 왕국군을 보내어 프로방스 지역의 프랑크족을 축출하고 서고트인들의 영토였던 셉티마니아를 탈환하였다
전해 오진천황후손인 케이타이 천황이 일본 제 26대 천황이 되었다
30년전 유스티누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25년전 무령왕 잠들다.목관 전축분으로
기존 양식이 아니고 중국 양나라양식이다.
20년전효명제 : 북위 제 9대 황제 사망
북주의 시대가 오고있다
효선제 : 진(육조)의 4대 황제사망
10년전 백제의 성왕이 도읍지를 웅진에서 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다.
불교가 일본 민간에 전래되다.
10념후 힐데베르트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프랑크 왕국의 영토가 그의 형제인 클로타르 1세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클로타르 1세가 프랑크 왕국을 재통일하게 된다.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이 발칸 반도의 판노니아 일대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발호로 인하여 기존에 이 지방을 차지하고 있었던 랑고바르드족이 북부 이탈리아로 점차 이동하게 된다
20년후 랑고바르드족이 북부 이탈리아에 랑고바르드 왕국을 세웠다.
황초령,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졌다
30년후 신라가 백제의 알야산성을 공격하였다.
신라의 진지왕이 중국의 진(육조)에 사신을 보내 수교하였다.
40년후바흐람 추빈이 이끄는 1만 2천명의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돌궐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랑고바르드족의 군대가 군트람이 이끄는 부르군트 왕국의 침략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50년후 고구려-수 전쟁 : 영양왕이 고구려군을 이끌고 수나라의 요서 지방을 공격하여 고구려-수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후 수문제가 수나라군 30만명을 동원하여 수륙양면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전염병과 장마, 태풍에 의한 피해 등에 의하여 고구려군에 대패한 뒤 퇴각하였다.
사산 제국이 예멘의 히미야르 왕국울 정복하였다
60년후 비잔티움 제국령 카르타고의 총독 헤라클리우스와 그의 아들이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포카스를 상대로 한 반란을 일으켰다.
호스로 2세가 이끄는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아나톨리아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보스포루스 해협까지 진출하였다
188년 백제 초고왕 신라의 서쪽 변경을 공격하였고,
음력 2월, 백제가 신라의 모산성(母山城)을 공격하니, 신라는 파진찬(波珍飡) 미추왕의 아버지 구도(仇道)에게 명하여 병사를 내어 이를 막았다.
음력 3월, 후한, 유우(劉虞)를 유주목(幽州牧)으로 삼고 반란을 진압하게 하였다.
60년전 개루왕이 백제 4대 국왕이 되었다.
하드리아누스 성벽이 완공되었다
50년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죽고- 안토니우스 피우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40년전 고구려의 차대왕이 태조왕의 맏아들 막근태자를 살해하였다.
30년전 양기는 환제가 상을 주어 남들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158년에 여름 5월 29일에 일식이 일어나 태사령 진수가 소황문 서황을 통해 일식이 일어난 변고의 허물이 양기에게 있다고 하자 양기는 낙양 현령에게 지시해 진수를 잡아다가 고문해 옥에서 죽게 만들었으며, 이 일로 환제가 양기에게 화를 냈다. 도요장군 진구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고 진구가 나라의 권위를 손상시키고 공적, 명예를 독차지해 호족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헐뜯어 소환되게 만들어 끝내 죽게 만들었다
20년전 전해 당고의 옥을 치룬 환제죽고 - 영제가 후한 12대 황제가 되었다.
- 후한의 현도태수 경림이 고구려를 공격하자 이에 고구려 신대왕이 스스로 항복하여 현도에 복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0년전 남흉노 선우 도특약시축취는 장민과 함께 안문으로 나아가면서 세 군대가 선비족을 공격했는데, 단석괴가 삼부의 대인에게 명해서 무리들을 거느리고 나아가서 싸우게 하자 맞서 싸웠지만 패했다. 178년에 사망해 호징이 뒤를 이어 선우가 되었다.
10년후 세베루스는 일찍이 198년에 카라칼라에게 '임페라토르 테스티나투스'와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주었다
고구려 환도성이 축조되었다.
하비성에서 조조군이 여포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조조는 이 전투의 승리로 서주를 탈환하고 여포, 고순, 진궁을 처형하였다
20년후 카라칼라 로마의 망조를 재촉
왜가 신라를 공격했으나 이음(利音)이 이를 막아내었다.
- 장판 전투 : 조조가 10만의 병사를 이끌고 장판파에서 유비를 공격하였으나 장비가 이를 막아내었다.
- 적벽 대전 : 조조가 중국 통일을 위한 남정에 나서 형주를 점령하였으나,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이 양쯔강 남안에 자리잡고 있는 적벽에서 조조의 대군을 격파하였다. 적벽의 대패로 조조는 형주를 떠났으며, 조인에게 남군을 맡겼다
30년후 전해 카라칼라 처형됨.
유비에 맞서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한중으로 향한다.- 유비가 한중으로 진격해 양평관에 주둔한다
백제군이 신라의 장산성을 공격하였으나 패하였다.
- 엘라가발루스가 할머니인 율리아 마이사에 의해 로마 제국의 황제로 추대되었다
40년후 가정 전투의 패배로 제갈량의 제 1차 북벌이 실패로 끝났고, 지휘관 마속은 처형당하였다.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이 위나라를 치는 제 2차 북벌을 전개하였다(진창성 공성전). 촉나라군은 진창성을 공격하였으나 학소의 진창성 수비에 가로막혀 북벌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자 철수하였다.
상용에서 일어난 위나라 맹달의 반란이 사마의에게 진압당하였다. 맹달은 사로잡혀 참수되었으며, 그 머리는 낙양으로 보내져 불태워졌다
사산 왕조의 아르다시르 1세가 이란 북부의 파르티아잔당을 일소하였다.
50년후 연왕 공손연이 위나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의가 이를 토벌하고 공손연을 처형하였다
푸피에누스, 발비누스가 원로원의 추대를 받아 로마의 공동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중천왕이 고구려 제12대 왕이 되었다
고이왕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다
창고를 풀어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다
188년
전대미문의 관원 폭력사태로 도피중인 안희현위 유비는 본디 관우, 장비와 함께 도원에서 나라의 은덕에 보답하며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자 결의를 맺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뜻있는 사람들이 동정을 사고 있다. [현위(縣尉);현을 담당하는 병사니깐 요즘으로 치면 동네 경찰관쯤으로 이해 바람]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 휘하에서 병졸 생활을 해온 탁현 출신의 장정들에 의하면 ‘황건의 난’을 토벌하는 의용군 모집 시에 함께 응했다가 세 사람이 인연을 맺게 된 것이라 한다.
당시 장비가 “우리가 큰일을 도모하려 함에 있어 이 자리는 마땅치 못한 것 같소. 이러지 말고 장소를 옮겨 보십시다. 마침 우리 집 별장에는 복숭아 동산이 있는데 지금 꽃이 만발하였소. 내일 거기 모여 세 사람이 생사를 같이 할 의(義)를 맺은 뒤 큰일을 시작해 봅시다!”
이튿날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은 전날 약속한 대로 연분홍 꽃이 흐드러지게 핀 복숭아밭에 모여 하늘과 땅에 형제가 되었음을 알리는 제사를 지냈다. 검은 소와 희 말의 피를 섞어 서로 나우어 마신 뒤 나란히 향을 사르며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bc173년 흉노 좌현왕이 전한 침입한 이듬해
60년전 한비자 사망. 이사의 활약
50년전
40년전
30년전
20년전
20년후
30년후
40년후
50년후
60년후 전한의 황제 무제가 수형도위(水衡都尉)라는 관서를 설치해 각 군국에서 화폐를 주조, 유통하는 것을 금지하고 중앙정부가 독점적으로 화폐를 주조하도록 했다
킴브리, 테우토네스, 암브로네스 등 유틀란트 반도에 살던 게르만족이 대규모 이주를 시작하여 갈리아, 이베리아를 침략하였다.
bc2333년 단군왕검즉위한다는 것이 정설임,
좀다른 하원갑자(인목)
하원갑자
1808년에 미국 의회, 미국 사법권이 미치는 지역으로 노예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다
60년전 - 엑스라샤펠 조약이 체결되면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이
몽테스키외가 저서 법의 정신을 출간.
유득공탄생
50년전 청나라가 유목제국 준가르를 멸망시켰다.
린네가 이명법을 고안하였다
40년전 항해사 제임스 쿡이 호주대륙을 탐사하였다
20년전
8월 8일 - 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가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부회를 다음년 5월에 개최하기로 결정. 1614년 이후 무려 165년만에 삼부회가 개최되게 된다.
10년전 프랑스 혁명전쟁: 프랑스군이 베른을 점령
- 나폴레옹이 카이로를 점령.
10년후
40년후 조선의 대학자 김정희의 제주도 유배가 풀려났다.
과달루페-이달고 조약 체결.: 마치니가 이끄는 혁명군이 로마 공화국 수립 선포.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발표. 1848년 혁명 시작?
50년후 프로이센 왕국의 빌헬름 왕세제가 중풍에 걸린 형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를 대신해 섭정을 실시하였다
다윈이 자연선택설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60년후 메이지 덴노의 왕정복고령으로 일본 제국이 탄생했다.일본에서 무진전쟁이 발발했다
대원군 서원철폐
1448년에 오스만 제국과 헝가리 왕국 사이에서 벌어진 코소보 전투(1448)가 오스만 제국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조선 신기전 개발
1년후 명정통제 에센족은 명군의 수급로를 차단하고 연승하였으나 환관 왕진은 이 와중에도 신하들의 충고를 무시하는 등 전횡을 일삼다가 피살당하였으며, 결국 에센군은 토목보를 포위하여 정통제를 잡아갔다. 중국 역사상 외적과의 전쟁 중 황제가 포로로 잡혀 간 것은 정통제가 처음이다. 이 사건을 토목의 변이라고 한다..
60년전 위화도 회군이 벌어졌다.최영, 이인임사망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간에 벌어진 전투인 네펠스 전투가 발발하였다.
1388년 원은 브이르 노르의 동북에서 명군에게 대패.
50년전 정도전, 남은 등이 요동 정벌을 주장하고, 조준은 이에 반대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삼국이 칼마르 동맹을 성립했다
40년전 지기스문트가 헝가리-폴란드 연합군을 이끌고 보스니아를 공격하였고, 도보스 전투에서 보스니아의 왕 트브르트코 2세가 지기스문트에게 대패를 당하였다
이성계사망, 덴마크가 고틀란트 섬을 점령하였다.
영락대전이 완성되었다.
정화가 조선의 처녀 3백명을 영락제에게 바쳤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지기스문트가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용 기사단을 창단하였다.
20년전 백년 전쟁 당시 잉글랜드군 사령관인 솔즈베리 백작 4세 토머스 몬터큐트가 오를레앙 공격 도중 심각한 부상을 당하였다.
이츠코아틀이 아즈텍 제국의 초대 황제에 즉위하여 테노치티틀란 건설을 시작하였다
10년전 페루에서 잉카 제국이 건국된다.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이 자동 물시계 옥루를 만들었다
40년후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폭풍의 곶 / 카포 다 보아 에스페라나)에 도달하였다
50년후 무오사화
다 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였다.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가 캘커타에 도착하며 인로 항로를 개척하였다
60년후 포르투갈과 이슬람 함대 간의 디우 해전이 벌어졌고, 포르투갈이 승리하여 인도 무역권을 확립하였다
명의 유육유칠의 난도 유근의 부하가 유근을 믿고 가혹하게 농민들을 쥐어짜다 발생
1088년 최초의 대학 볼로냐 대학교 개교...
송나라의 심괄이 당대 과학기술을 집대성한 몽계필담 저술을 완료하였다. (활판 인쇄에 대한 첫 언급)바르셀로나 백작이 타라고나를 점령하였다
60년전 크누트 대왕이 노르웨이의 왕이 되었다
독일왕 하인리히 3세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 로마누스 3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베트남 리왕조의 태종이 즉위하였다
50년전사라고사 토후국을 통치하던 투지비 가문이 쫓겨나고 후드 왕조가 세워졌다.
비잔틴 제국군이 일시적으로 시칠리아 동부 (메시나 ~ 시라쿠사) 일대를 회복하였다. (~ 1043년)
40년전 잉글랜드를 침략한 바이킹 군대가 격퇴당하였고, 생존자들은 플랑드르로 달아났다. (잉글랜드에 대한 최후의 바이킹 침공)
- 동 아나톨리아 고원에서의 카페트로우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과 조지아 왕국의 연합군이 셀주크 제국군에게 패하였다
20년전 비잔틴 제국의 로마누스 4세로 즉위하였다.
- 시리아에서 진도 9.0의 대지진이 발생하여 안티오크가 심하게 파괴되었다
10년전 멜리히슈타트 전투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대립왕 루돌프를 패배시켰다
키에티가 노르만족에게 점령당하였다.
송나라의 철강산업이 연간 12만 5천 톤을 생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영국은 19세기에 달성)
40년후 금나라에게 수도 카이펑이 함락된 이후 송나라가 양저우에 임시 정부를 설립하였다
포르투갈이 실질적인 독립을 얻었다.
대월 리 왕조의 신종이 즉위하였다.
참파가 베트남을 공격하였다.
50년후 대월 리 왕조의 영종이 즉위하였다.
금나라와 남송 당국이 일단 화의에 합의하였다.
독일의 왕 콘라트 3세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60년후 2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다다른 후 아크레 회의가 열려 다마스쿠스를 공격하기로 결정한다
가즈니 전투에서 사이프 알 딘이 이끈 구르 왕조 군대가 바흐람 샤의 가즈나 왕조군을 격파, 도시를 함락하였다. 술탄은 라호르로 도피하였다.
728년 신라성덕왕728년에는 성덕왕은 상대등 배부(裵賦)의 퇴임을 허가해, 신라에 있어서의 상대등의 최초의 해임 예가 되었다
60년전 - 나당연합군이 평양성을 점령하면서 고구려가 28대 705년 만에 멸망하고 여당전쟁이 마무리되었다.
콘스탄티누스 4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50년전 신라의 승려 의상이 범어사. 운암사, 한천사를 창건하였다
30년전천문령 전투에서 대조영이 이끄는 고구려유민과 말갈족들이 이해고가 이끄는 당나라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걸사비우와 걸걸중상이 전사하였다. 전투 이후 발해를 건국할 기반을 닦게 된 대조영은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였다
20년전 일본 최초의 유통화폐인 화동개진이 주조되었다.
흑해 부근에서 불가리아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10년전 .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의 종전)
펠라기우스가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총독이던 무누자의 군대를 몰아내고 기독교 왕국인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우면서 아스투리아스의 초대 왕이 되었다. (코바동가 전투)
10년후 롬바르드 인들이 동로마의 이탈리아 총독부가 위치한 라벤나를 점령하였으나 동로마-교황 군에게 쫓겨났다.
세바르가 불가리아의 칸이 되었다
20년후
30년후당나라에 귀순했던 사사명이 13만 병력을 모아 범양에서 당나라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당나라의 하남 절도사 최광의 휘하의 병력이 사사명이 이끄는 반란군에게 격파당하였다.
아랍인 해적과 페르시아인 해적들이 당나라의 광저우를 약탈하고 파괴했다.
40년후 프랑크 왕국의 왕 피핀 3세가 죽은 이후 그의 두 아들인 카롤루스와 샤를이 왕국의 영토를 분할 상속하였다.
- 카롤루스 대제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아우렐리우스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50년후 코르도바 토후국을 공격하기 위한 원정에서 돌아오던 프랑크 왕국군이 바스크족의 기습에 당하였고 이 전쟁 도중 군사지도자 롤랑이 전사하였다. (론소보 전투, 후에 롤랑의 노래의 배경이 됨)
60년후 독서삼품과가 시행되었다
카롤루스 대제가 바이에른 지방을 점령하고 프랑크 왕국에 병합하였다. 아바스 왕조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
368년에 숙적 전연의 모용각이 전년도 죽자 모용평(慕容評)이 실권을 잡고 부패한 정치를 하면서 전연의 국력은 쇠퇴하였다.
근초고왕은 신라와의 외교도 중시하여,년 368 명마 두필을 신라에 보내기도 했다(근초고왕 23년).
60년전 유연이 전조의 황제로 즉위하고 연호를 영봉으로 개원하였다
로마 제국의 황제 갈레리우스는 전,현직 황제들을 소집한 후, 그의 주도로 막센티우스의 무단 쿠데타와 발레리우스 세베루스에 대한 임의적 처형을 단죄, 그 아버지 전 황제 막시미아누스의 재퇴임, 리키니우스의 서방 정제 취임 등을 결정하여 공포했다. 그 결과로 11월 11일 리키니우스가 취임했다
50년전전조 제 3대 황제인 유총이 사망하고 유찬이 제위를 이어받았으나, 주색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였다가 외척인 근준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유요가 전조 제 5대 황제가 된다. 유요는 석륵을 조공으로 임명하여 근준을 공격하게 하였다. 근준은 패배한 뒤 얼마 안 가 내분으로 인해 살해당하였다.
동진 사마예 건국,왕씨들 실권
40년전 석호가 후조군을 이끌고 전조를 공격하였고, 전조 제5대 황제 유요가 이에 반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유요는 이 여세를 몰라 낙양을 포위하였으나 곧 석륵의 군대에 반격을 당해 크게 패배하여 포로가 된 뒤 처형당하였다. 이후 유희가 전조 6대 황제가 된다
석륵은 후조건국
30년전338년에 모용황이 영지 이북의 여러 성을 공략하자 단란이 이를 추격했다가 매복당해 크게 패해 수천 명이 죽으면서 단부선비는 크게 몰락하게 된다.
20년전 황이 죽고모용준이 전연 제 2대 황제가 되었다
10년후 -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 하드리아노폴리스 근처에서 고트족 군대가 황제 발렌스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발렌스는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20년후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테오도시우스 1세의 부하들에 의해 처형당했다.
걸복건귀가 서진 제2대 군주가 되었다.
바흐람 4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30년후난한이 후연의 황제 모용보를 살해하고 후연 3대 황제가 되었다.
- 난한이 모용성을 따르는 군대에게 살해당하였고 이후 모용성이 후연 제4대 황제가 되었다.
모용덕이 남연을 세우고 남연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40년후 로마의 스틸리코장군이 음모로 살해되어 서로마멸망의 길이 열림
60년후 가이세리크가 반달족의 족장이 되었다.
아르메니아의 아르사케스 왕조가 끝나고 아르메니아가 사산조 페르시아에 병합되었다
8년 - 로마의 티베리우스 장군이 달마티아에서 일리리아인들을 격퇴하였다.
왕망 신나라로 인해 전한 멸망.
10월 - 백제, 마한 침공. 그 국읍을 병합
.
60년전 카르헤 전투 : 장군 수레나스가 이끄는 파르티아군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가 이끄는 로마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 도중 지휘관 크라수스는 살해되었고, 그의 아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도 전사하였다. 또한 4만에 달하던 로마군 중 약 2만 명이 전사 혹은 실종되었으며, 약 1만 명이 포로로 사로잡혔다. 반면에 파르티아의 피해규모는 매우 미미했다.
크라수스가 이끄는 3만의 로마군은 절반도 안 되는 파르티아군에게 무참히 패했다. 파르티아의 명장인 수레나스는 낙타 1000마리에 화살을 가득 싣고 나가 경기병들에게 화살을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공급해 주었고, 파르티아의 경기병들은 멀리서 안전하게 화살을 퍼부으며 로마군을 일방적으로 학살했다.
카레 전투의 여파로 로마의 동방 정복은 사실상 저지당했다
50년전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가 제 2차 삼두정치 체제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즉시 원로원파 척결 명령을 내렸다.
-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안토니우스의 부하에게 살해당하였다.
40년전성제(전한)가 전한 13대 황제가 되었다.
「흉노전」에 따르면 이 해에 흉노의 호한야 선우가 전한에 입조하여 전한의 사위가 되어 친분을 쌓는 것을 원해 황제 원제가 왕소군을 호한야에게 시집을 보냈다고 한다.
20년전트라키아인 들이 반란을 일으켜 마케도니아를 침공하고 다키아인들이 도나우 강을 건너 대대적인 약탈을 저지르다.
20년후다루왕이 백제 2대 왕이 되었다
30년후알렉산드리아에서 반유대 폭동이 일어났다
40년후모본왕이 고구려 제 5대 왕이 되었다.
허황옥이 배를 타고 금관국으로 도착하여 왕비가 되었다
60년후 - 로마 황제 네로가 자살하고 갈바가 로마 제국의 새 황제가 됨.
갈사국의 도두가 나라를 들어 고구려에 투항해 멸망하였다
기원전 353년 마케도니아 필리포스2세는 테살리아로 진격해 그곳 일대를 점령했으며 테살리아 동맹의 맹주가 되었다,이후 코린토스 동맹주가 됨.
기원전 353
제나라가 조를 구원하기 위해 위를 공격. 군사(軍師) 손빈(孫臏)의 전도팔문진(顚倒八門陣) 계책을 이용해 방연(龐涓)이 이끈 위나라 군사를 계릉(桂陵)에서 대패시킴(계릉 전투). 이어 송, 위(衛)나라와 연합하여 양릉(襄陵)을 포위. 한나라가 '동주(東周)'(동주 왕실이 분열되어 2개의 소국으로 된 것 중의 하나인 동주를 의미)를 공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