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십 여 년 전 모 신문사에서 판촉행사로 주는 자전거를 한 대 얻었다. 요새 말하는 라이딩용이 아닌 예전의 일반 자전거다. 그래도 그 옛날 명성이 높았던 3000리호였던 만큼 포부를 낮추면 그런대로 쓸만하다. 비록 '구닥다리'라지만 쓸모가 많아서 아직껏 이용하고 있다.
우선 소소한 집안 일을 하는데 내 맘대로 부릴 수 있어서 그만이다. 그 중에서도 재래시장 장보기에는 제격이다. 비좁은 시장바닥을 여기저기 들리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 더더욱 좋은 점은 짐칸이 따로 있어서 물건을 사서 실어 오는데 간편하다. 설령 짐이 많을 때는 핸들 죄우쪽에 메달면 균형을 잡기에도 좋고 중력감도 적당히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가끔은 동네병원이나 약국에 갈 때도 그냥 끌고 가기에 손쉽다.
그런다고 이 녀석을 일하는 데만 써먹는게 아니고 가끔은 라이딩용으로도 탄다. 비록 싸이클은 못되지만 녀석을 타고 전용도로를 타면 나름 스피드감도 느낄 수 있어서 먼 길 나들이도 했었다. 언젠가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갔다가 달리는 맛에 끌려서 한을 따라서 힌강 하구로 내려가 본다는 것이 너무나 멀리 가버려서 되돌아오는데 애를 먹기도 했었다. 때는 늦가을이라서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어두워지는데 다리는 아프고 배는 고파서 죽는 줄 알았다.
또 어느 해 이른 봄에는 '동쪽으로 가서 봄맞이 하겠다'고 양평쪽으로 향했다. 한참 신나게 달리다가 눈이 덜 녹은 산모퉁이에서 미끄러져 혼쭐이 났었다. 'Black Ice'라고 겉보기에는 괜찮았는데 자전거와 항께 미끄러져서 길가 웅덩이에 쳐박혔었다. 지나는 사람들 몰래 얼른 털고 일어나서는 내 몸이랑 자전거를 대충 살펴보았다. 나는 괜찮았고 자전거는 핸들이 좀 돌아갔었다. 핸들을 바로 잡고는 팔당댐까지 갔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돌아왔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한강자전거 전용도로로 자주 나가는 일이 더러 껄쭘하기도 했다. 깔끔하게 정비된 전용도로를 달리다보면 대부분의 날씬한 라이더들은 날렵한 유니폼에 얄쌍한 싸이클을 타고 질주하는데 나는 평상복에 짐발이를 타고 느릿느릿 달리기에 ‘사람들 눈에 어찌 보일까?’해서였다. 나는 좋은데 라이더들 눈에 나이 든 놈이 '물버린 꼴'이 되는가 싶어서였다. 그래도 자긍심은 있어서 속으로 '내가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자위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자전거 타는 것이 전립선에 이롭지 못하다'는 설을 전해듣고는 점차 타는 횟수도 줄이고 장거리는 가능한 삼갔다. 그리고 자외선이 심한 날, 황사가 심한 날을 피하다보니 점점 타는 일이 드물어졌다. 그러다가 작년부터는 코로나19가 번지면서 거리두기를 해야한다는 소시민의 생각에서 자전거를 거의 타지 않았다. 그래서 녀석을 아파트 출입문 옆에 세워두게 되었고 그 기간이 오래되었다.
녀석을 세워두다보니 손이 덜가기 마련이어서 먼지가 쌓이기도 했다. 가끙은 먼지를 털어낸다고는 했지만 옛모습을 잃어갔다. 더 아쉬운 것은 옆집의 전용싸이클과 비교되어 내 것은 너무 초라해보였다. 오래동안 세워두다보니 타이어의 바람도 점차 빠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중간에 두 차례나 바람빠진 자전거를 이끌고 구청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서비스센터를 찾아갔었다. 그런데 철문에는 '코로나로 무기 후업'이리는 안내문만 달랑 붙어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아파트관리사무소 근처를 지나다가 공기주입기가 있는 것을 알게되었다. 기쁜 마음에. 바로 집으로 와서 녀석을 끌고 그곳으로 갔다. 마침 아는 경비로부터 공기주입방법을 전수받고 타이어에 공기를 빵빵하게 채웠다. 그런데 타이어의 주입구에서 바람이 새어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주입구에 검은 뚜껑을 틀어막아도 여전히 새어나왔다. 그 순간 어렸을 때 들었던 단어 '무시고무'에 탈이 났는가...‘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공기주입구를 끄집어내어 살펴보니 아닌게아니라 무시고무가 망가져있었다. 마치 무엇이 찢어져서 테두리만 남은 것처럼 볼쌍사나웠다. 그래서 ‘미스고무만 갈아끼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틈이 나면 자전거포에 들려서 미스고무를 사다가 끼우기로 했다..그리고는 바람빠진 자전거를 다시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속으로 '세상 일이 그렇게 만만치 않는구나'고 넉두리했다
그런데 돌아가던 중에 순간 good idea가 떠올랐다. 다름 아니라 단지 어느 구석진 곳에 버려진 자전거들이 생각났다. 그곳으로 가서 무시고무를 빼어서 재활용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으로 가서 버려진 것들 중에서 일단 상태가 왠만한 골라내어 공기주입구 주변 흙먼지를 털어내었다. 그리고 공기주입구를 기어이 끄집어내어 무시고무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본 놈마다 무시고무가 없어나 망가져있었다. 그래서 '쓰레기통에서 장미찾기'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내친김에 근처에 있는 3000리호 자전거점포로 향했다. 뜨거운 날씨 속에서 걸어서 그곳에 도착하니 젊은 주인장이 마침 점심을 먹고있었다. 내가 머뭇거리니 그 분이 먼저 묻기에 어렵사리 사정을 말했다. 그 분은 잠깐 식사를 멈추고는 깡통에서 어린 지렁이 같은 고무 3개를 꺼내주면서 '씌우는 법은 아시지요?"했다. 내가 대금을 묻자 그분은 "그냥, 가세요"했다. 반갑고 고마운 나머지 엉겹결에 "예, 알고 있고 말고요"했다.
다음 날 이른 이침 바람빠진 자전거를 끌고 공기주입기 있는 곳으로 다시 찾아갔다. 타이어어 흡입구를 해체해서 심보에서 망가진 지렁이고무를 뜯어내고 점포에서 얻어온 새 것으로 어렵사리 밀어서 입혔다. 그리고 원위치해서는 공기를 불어넣었더니 타이어가 금새 부풀어옭랐다. 팽팽하게 바람을 넣으니 마치 배고픈 터에 밥을 배불리 먹은 것 같았다. 자전거의 바퀴가 탱탱해지니 내 다리에도 힘이 전해졌다.
그 길로 바람이 빵빵해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모처럼 타다보니 처음에는 조금 뒤뚱거리기도 했지만 이내 이전처럼 안정감을 되찾았다. 녀석을 엘리베터에 모시고 와서 출입문 앞에 거치해두었다. 하마터면 잊을법했던 비밀번호를 확인하고는 잠금장치를 걸어두었다. 그리고 마른걸래로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었다. 바람도 넣고 손질도 해서 세워두니 마치 출전을 앞둔 경주마 같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5윌 마지막 토요일 아침 점검차 다시 타보았다. 모처럼 맑은 아침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녀석을 타고 동네 구의공원으로 향했다. 갈 때는 조금 언덕져서 다리에 힘이 다소 들어갔지만 되돌아오는 길은 경사가 져서 페달을 밟지 않았어도 바람을 가르며 스스로 잘 나갔다. 셀프로 리페어한 내 자전거를 다시 타니 기분이 엄청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