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www.everyday01.com 제로원(0,1)복음방송
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이혼의 진짜 이유, 행복한 결혼!>의 줄거리:
가정법원에 형식적으로 제시되는 이유말고 실제 부부가 이혼에 이르게 되는 이유를 케이스별로 말하자면 참으로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다양해 보이는 이유들의 뿌리는 단 하나입니다. 행복한 결혼이라는 캐치프레이즈이지요. 사탄의 탁월한 광고문구입니다. 행복한 결혼! 이 말 한 마디 때문에 지구상의 수천 수만의 부부가 오늘도 파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혼의 진짜 이유, 행복한 결혼!
(막10:1-12)
1.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4.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6.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10.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11.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12.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이혼의 진짜 이유, 행복한 결혼!>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가정법원에 제출되는 이혼의 이유가 많이 있겠지요.
대표적인 게 성격차이라고 합니다.
또 남편의 폭력도 있을 수 있고, 예를 들어 알콜이나 도박 같은 중독에 빠진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고, 아내의 방만한 생활태도 이런 모든 것이 다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다양하겠습니까?
그리고 남에게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사소한 계기가 이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너무 많다는 것이죠.
그런데 정말 이혼하는 당사자도, 이혼을 결정하고 승인하는 판사님도 모르는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행복한 결혼’이라고 하는 이 캐치프레이즈, 이게 바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혼의 이유가 된다는 겁니다.
‘행복한 결혼!’ 이 캐치프레이즈를 마음속에 외치고 있는 한, 이혼 안 할 수가 없고 결혼이 불행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에요.
행복한 부부관계를 위한 조언을 담고 있는 책들의 내용을 대충 훑어보면 대동소이 합니다.
늘 반복되는 얘기가 뭐냐 하면 배우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대화, 남편에게는 칭찬을 해주자, 아내에게는 애정을 표현하자, 뭐 이런 얘기들.
잘못을 지적하면서 부부관계는 깨지기 시작한다, 잘못을 지적하는 대신에 차이를 인정하자!
이런 얘기들을 보고 있노라 보면 답답합니다.
당신들은 그렇게 하고 계신지 모르겠어요.
어느 목사님이 결혼주례를 하시면서 부부관계를 위한 십계명을 말씀하시는 것을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들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십계명도 버거운데 거기다가 부부십계명까지 도합 이십 계명을 지키라는 얘깁니까?
쉽지 않아요.
여러분, 이 세상을 지배하는 공중권세 잡은 사탄이 아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카피라이터일 거예요.
카피라이터, 광고 문구를 써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탄처럼 대단한 카피라이터가 없다는 거예요.
이 사탄이 카피라이터로서 지어낸 광고 문구 중에서 가장 탁월한 것들 중에 하나가 ‘비전’이라는 것, 또 ‘행복한 결혼’이라는 것일 겁니다.
행복한 결혼이라는 말은 사탄이 만들어낸 말임이 분명합니다.
이 사탄이 만들어낸 말에 감동받아서 ‘행복한 결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마음이 외치고 있는 한, 그러면서 결혼을 하고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한, 결혼은 불행이 될 수밖에 없고 이혼이라는 파경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행복한 결혼은 창세 이래 없습니다.
행복한 결혼이라는 말 자체가 사탄이 만들어낸 말이라는 거예요.
단지 행복한 사람들이 하는 참 결혼이 있을 뿐입니다.
행복한 결혼은 없어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존재하지 않는 행복한 결혼이라는 말을 사탄이 만들어낸 것이에요.
결혼이라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결혼 이전에 이미 행복한 남녀가 만나는 참 연합이 있을 뿐이라는 거예요.
결혼을 통해서 행복하려 하고 있고,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미려 하고 있기 때문에, 배우자를 통하여 내 마음이 행복해지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결코 결혼생활이 행복해질 수 없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결혼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이혼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질문을 합니다.
이들이 예수께 나와 시험하여 물어보기는 한 것이지만 사실상 바리새인들 안에서 이혼의 문제는 항상 뜨거운 논쟁거리였습니다.
끊이지 않는 핫이슈였다는 것이에요.
바리새인들 중 가장 유명한 학파가 힐렐 학파와 삼마이 학파였다고 합니다.
이 두 학파가 가장 대표적인 학파로서 늘 둘이서 논쟁을 벌이게 되는데, 가장 치열한 논쟁거리 중의 하나가 이혼문제였다는 거예요.
삼마이 학파는 신명기 24장에 나오는 이혼에 관한 가르침 ‘너희가 아내를 맞이해서 살 때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이 발견되면 이혼증서를 주고 이혼을 해라’
이때 아내에게 나타나는 수치스러운 일이 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삼마이 학파와 힐렐 학파가 싸움을 합니다.
삼마이 학파는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간음으로 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힐렐 학파는 좀 더 자유분방하게 간음뿐만이 아니라 아내가 남편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언제든지 이혼증서를 써서 아내를 내보낼 수 있도록 허락을 했던 것이에요.
그래서 삼마이 학파와 힐렐 학파가 늘 다툼을 벌이고 논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어떤 식으로 대답을 하든지 간에 이 두 학파 중 어느 학파와는 갈등을 빚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원초적으로 예수님은 짚고 넘어가십니다.
어떻게 짚고 넘어가시느냐?
이혼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남녀의 문제로 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짚고 가기 전에, 이렇게 예수님께서 갖고 계신 남녀의 생각으로 이끌어 들이기 위해서 먼저 대질문을 하십니다.
‘모세는 뭐라고 하였느냐?’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서 아내를 버리라고 그랬습니다’
‘너희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이다’
이 완악하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완악하기 때문에 이혼증서를 써주라고 했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안에서 일단 남편들이 어떤 면에서든 아내를 마음에 안 들어 합니다.
그렇게 좋아하고 날뛰어서 결혼을 시켜놓았더니 어느 순간에 마음에 안 들어 하는데, 일단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하면 모든 게 다 미워집니다.
그 가부장적 가정의 분위기 안에서 일단 남편의 마음에 나버리게 되면 남편이 아내를 학대합니다.
그러니까 이혼의 가능성이 없으면 한번 미운털이 박힌 여인은 남편에게 엄청난 학대와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서 평생을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혼증서를 써주라는 것은 오히려 남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 안에서 여자들이 학대당하는 상황으로부터 구출해내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에요.
그런데 이것이 악용됩니다.
조금만 남편의 마음에 안 들게 돼도 이혼증서를 써서 아내를 버립니다.
그래서 이게 문제가 된 것이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제시하십니다.
‘이것은 여자를 버리고, 남편이 아내를 마음에 안 들어 하고, 이런 부부관계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를 봐야 될 제3의 관점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원래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셨다’ 이 말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내가 저 여자를 보고 뜨거운 사랑이 끓어올라서 도저히 저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기에 결혼을 했다’ 이런 게 아니라는 얘깁니다.
내가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짝지어주셨기 때문에 결혼이 되었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이 식었다고 이혼한다는 것은 이유가 아니라는 거예요.
사랑이 뜨거웠기 때문에 결혼이 된 게 아닌 것처럼 사랑이 식었다고 해서 이혼의 이유가 안 된다 이겁니다.
내가 저 여자를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에, 저 남자를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 결혼의 이유였기 때문에 지금 내가 배우자가 내 맘에 안 든다는 것이 이혼의 이유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간접적으로 이 문자 이면에 무엇을 말씀하시느냐 하면, ‘너희들이 스스로 이혼의 이유를 찾아낸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과 이혼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네 아내와 네 남편과 이혼하겠다고 결심을 하느냐? 그러면 너희는 먼저 하나님과 등진 것이고 하나님과 이혼을 했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남녀가 짝이 이루어질 때 그 전에 이미 짝이 이루어졌다 이겁니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하나님과 짝이 이루어져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남자를 지으시고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둘을 데려오십니다.
데려오신다는 말 자체가 하나님이 이미 남자와 관계하고 있고 여자와 관계하고 있다는 얘기이고 남자도 하나님과, 여자도 하나님과 각자 관계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가 짝이 되기 전에 이미 남자도 하나님과 짝이 되어 있고, 여자도 하나님과 짝이 되어 있다는 것이에요.
행복은 어디서 결정됩니까?
남녀가 만나면서부터 행복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남녀가 만나기 이전에 하나님과 남녀가 각각 짝이 된 상태에서 행복은 결정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짝이 된 상태에서 행복한 마음이 되어가지고 남자를 만나고 여자를 만나는 거예요.
그러므로 행복한 결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사탄이 만들어낸 캐치프레이즈이고, 하나님과 짝을 이루어야만 되는 이 인간의 관계를 완전히 갈라놓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내가 결혼하면서 행복을 여자에게서 남자에게서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과 결별한 상태인 것을 확고하게 못 박아 버리는 것이라는 얘기에요.
그러므로 ‘결혼하면서 행복해야지! 행복한 결혼, 행복한 부부관계를 이루어야지!’라는 생각 자체가 사탄의 설교에 감화되어 있고 사로잡힌 거라는 얘깁니다.
왜 결혼함으로 행복하려고 합니까?
하나님에 대한 배반이고 불신앙이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짝을 이루어야 될 관계가 이미 깨져나갔다는 겁니다.
이혼이라는 얘기, 그리고 결혼해서 행복하겠다는 얘기, 이게 다 하나님과 등지고 하나님과 짝 됨이 이미 깨어져나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얘기들을 그렇게 함부로 떠들어대고 있다는 거예요.
모든 이혼의 이유가 뭡니까?
여자, 남자 만나서 행복하겠다는 데에 이혼의 이유가 있고 부부관계가 불행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별의별 이유를 가정법원에 제출하더라도 진짜 이유는 이거 하나라는 겁니다.
왜 남자에게서 행복하기를 원합니까?
왜 여자를 통해서 행복하기를 원합니까?
불가사의한 거예요.
이런 얘기들 많이 하죠.
‘당신 사랑이 식었고, 처음과 같지 않다’ 이런 얘기들.
사랑이 식어야지 결혼하기 전과 같은 뜨거운 사랑이 계속되면 되겠습니까?
조금만 냉정을 되찾고 생각을 한번 해보세요.
그리고 거울을 한번 들여다보세요, 나를 한번 보라는 얘깁니다.
결혼한 지 10년 되고 20년 되었는데도 나를 결혼하기 전과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그 남편이 제정신입니까?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을 그렇게 마음을 다해서 사랑해도 괜찮겠어요, 진짜로?
그렇게 자신 있어요?
큰일 날 소리입니다.
그러면 부부관계는 뭐냐,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이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다 행복해버리고 부부관계는 그냥 냉랭한 상태에서 만나느냐?
하나님하고 관계에서 행복해져본 적이 없으면 말하지 마세요.
하나님하고 관계에서 행복해지면 그래서 아내를 만나기 전, 남편을 만나기 전에 이미 행복한 마음이 되어서 아내를 만나면 다른 차원으로 그 아내가 그 남편이 소중하고 감사한 거예요.
하나님 때문에 행복한 자들이 느끼는 감사와 소중함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부부관계가 안 좋을 때 서점에 가서 ‘행복한 부부관계를 위한 조언’, ‘행복한 부부관계를 위한 세 가지 키’ ‘열다섯 가지의 열쇠’, 이런 것 읽지 마세요.
부부관계가 잘 안 될 때 자꾸 얘기합니다, ‘배려해라, 차이점을 인정해라’
이런 것 하지 마세요, 배려도 하지 말고 이벤트도 하지 말고, 대화하려고도 하지 말아요.
대화로 푼다, 이건 사기예요.
무슨 대화로 풀어요? 풀고 나면 하루 지나면 또 싸우는데?
대화로 풀려고 하지 말아요, 십자가 붙잡고 각자 방에 따로 들어가서 기도하세요.
그래서 마치 내가 언제 저런 사람과 결혼했느냐는 듯이 마음에서 상대자를 다 지워버려요.
그 사람을 배려하려고 하지도 말고 차이점을 인정하려고 하지도 말고 내 마음에서 내가 저런 사람과 결혼했다는 생각조차 다 없애버리세요.
십자가에서 배우자에 대해서 죽어버려요.
그리고 오직 마음은 하나님에게만 집중하세요.
하나님과 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부부관계가 지금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짝 됨을 올바르게 회복하기 위하여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아내와 남편에 대해서 완전히 죽어버리세요.
그러면 하나님과의 짝이 온전하게 이루어질 겁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붙잡고 ‘하나님, 내가 남편에 대해서 일단 마음이 죽게 해주세요! 결혼 안 한 사람처럼 내 마음에서 남편을 빼주세요, 그 대신 내 마음에 하나님으로 가득 차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할 때 성령의 약속대로 성령이 주어지십니다.
성령이 주어지시면서 그동안 내 눈앞에서 알짱거렸던 내 남편과 아내보다 천국과 하나님이 더 앞선 현실로 마음에 느껴지기 시작할 거예요.
그러면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십자가 붙잡고 기도하는 동안에 약속을 따라서 주어지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천국이 현실이 되고 하나님이 현실이 되어 하나님이 내 첫 번째 짝이 되었을 때 행복해지고, 그 행복한 마음으로 마음에 안 들었던 아내를 남편을 바라보면 그 상대방이 왜 소중한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 때문에 행복하고 하나님이 소중한 자만이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아내와 남편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소중하지 않고 하나님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자들은 별의별 책을 다 읽고 별의별 부부간의 십계명 이십 계명을 다 지켜도 그 부부관계는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짝, 하나님이 짝지어주셨습니다.
이 말의 포인트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과 나의 짝 됨을 항상 먼저 살펴보라는 얘기.
아내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걸 풀려고 하지 말고…
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거니까.
아내의 장점 때문에 결혼한 것도 아니고, 남편의 용기 때문에 결혼한 것도 아니고, 언젠가 뜨겁게 사랑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과 짝을 이룬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이에요.
그 하나님의 짝 됨을 회복하면서라야 부부관계는 참 부부관계가 될 수 있고, 참 부부관계라는 것은 기쁨이 생산되는 부부관계, 왜냐하면 내 속에 기쁨이 있고 내 속에 이미 행복이 있으니까.
가장 촌스러운 남편과 아내가 누굽니까?
남편에게서 아내에게서 내 마음의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것, 이게 가장 촌스럽고 가장 미련스럽고 가장 불신앙적이고 가장 사탄에게 충성스러운 마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결혼!’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이것이 바로 모든 이혼의 이유가 되는 공통된 뿌리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결혼해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이 마음을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해주시고, 하나님과 먼저 짝이 됨을 통하여 온전히 행복해지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서 이루어지는 참 결혼생활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해복한다 할지라도 마귀에게 저작권료로 행복을 지불한다면
남는게 있어야 지요 주님 십자가로 하나되어 행북 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