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핑크돌핀스의 해양동물 이야기 28] 새빨간 피로 물든 바다, 북대서양 페로제도의 고래사냥
덴마크령 페로제도에서 바다가 고래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든 장면이 공개되어 다시 한 번 세계인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매년 여름 무렵이면 남녀노소 모두 참가하는 집단적 고래잡이 축제가 개최되고, 이내 바닷가에 몰려든 사람들은 커다란 들쇠고래 사냥에 여념이 없다. 수십 마리에서 때로는 수백 마리의 고래가 처참하게 해변에 널브러져 있고, 칼을 든 사람들은 핏빛 살육을 이어간다. 북대서양의 고립된 섬나라 페로제도에서는 왜 매년 이렇게 잔혹한 고래 학살을 벌이는 것일까?
2017년 7월 5일 페로제도에서는 들쇠고래 70마리가 희생되었다. 출처 시셰퍼드 홈페이지
북극에서 가까운 페로제도에서는 예전부터 먹거리가 귀했다.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환경 때문에 페로인들은 자연히 농사보다는 목축과 사냥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양과 소 등 가축을 길러 먹거나 바다로 나가 물고기와 바닷새 등을 잡아 생활해왔다. 그래서인지 고래 사냥은 천년전부터 이뤄져 왔으며 자연히 페로제도의 문화 및 전통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1298년에 만들어진 페로법령에도 고래사냥이 언급되어 있고, 들쇠고래 배몰이 사냥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1584년에 나온다고 하니 돈벌이 목적의 상업포경과는 분명히 다른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다.
주민들의 기본적인 식생활이란 측면에서 페로제도의 고래잡이는 대형 고래를 제외하고 중소형 고래류에 대해서 국제적으로도 허용되고 있다. 페로인들은 고래고기를 저장해두고 겨울 양식으로 먹기도 하고, 고래의 풍부한 지방은 식품이나 기름으로 요긴하게 사용하며, 이밖에 고래의 여러 부위를 화장품, 약용, 기타 도구 등으로 이용한다. 그래서 페로제도의 자치정부 역시 자체적으로 주민들의 고래사냥을 허가하고 있으며, 인근 바다의 고래 개체수를 고려하여 매년 포획량을 조절하는 등 나름 지속가능한 방식을 유지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과거의 고래잡이와 현대의 고래잡이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사정이 있다. 즉 급격한 산업화 이후 기계를 이용해 대규모로 고래들을 잡아들이면서 과거에 많았던 고래 개체수가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지구온난화, 플라스틱 쓰레기 증가, 과도한 어업활동에 의한 고래류 혼획, 광범위한 해양오염 등에 의해 고래류의 서식처가 줄어들거나 파괴되면서 고래들이 멸종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인간이 직접 고래를 사냥하는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이에 비례해서 고래 개체수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페로제도에서는 사냥방식과 사냥도구 지정 그리고 면허제도 도입 등의 규제를 통해 지속가능한 고래잡이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지만 세계적으로 더 이상 고래잡이가 지속가능해지지 않고 있어서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페로제도에서 고래사냥은 어떻게 이뤄질까? 페로인들은 고래무리가 섬 가까이 접근할 경우 언제든 사냥을 시작한 준비를 하고 기다린다. 그리고 인근에서 고래들이 발견되면 즉각 포경선들이 출동해 반원 형태로 모여들어 고래들을 포위한다. 특히 사회성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긴지느러미들쇠고래(참거두고래, 둥근머리고래, 파일럿고래 등의 여러 이름으로 언론에 나오는데 고래연구센터가 정한 한국어 공식 명칭은 들쇠고래이다)들은 많은 무리를 지어 바다를 여행하다가 페로제도 인근에 다다르게 되면 사냥의 주요 대상이 되는 것이다. 포경선들은 돌을 던지며 고래를 쫓으면서, 정부에 의해 허가된 해변이나 피오르드 안쪽으로 이들을 몰아간다. 해변에서는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학살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칼로 고래의 척추를 찔러 죽인다. 척추가 끊어진 들쇠고래는 바로 죽기 때문에 이는 잔인한 학살이 아니라 인도적인 방식의 도살이라는 것이 페로인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고래 학살을 모니터해온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은 고래들이 찔린 뒤 즉시 죽지 않고 짧게는 수 분, 길게는 15분가량 살아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비판을 피해가기 위해 페로 정부는 고래 학살에 대한 세부 규정을 마련해 놓았지만, 그렇다고 학살이 인도적인 처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페로제도에서는 고래를 사냥할 때 작살이나 창, 총포류 등은 사용할 수 없다. 대신 밧줄에 매단 갈고리가 허용되는데, 이 도구는 연안에 포위된 고래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찌르거나 또는 죽은 고래의 숨구멍에 갈고리를 찔러 넣고 걸어당기면서 해변으로 끌고 올 때도 사용된다.
페로제도 고래학살의 또 다른 쟁점은 고래가 흘린 피로 바다가 붉게 물든다는 점이다. 등지느러미 부위에서부터 척추가 끊어져 죽은 들쇠고래는 엄청난 피를 흘리며 해변에서 죽어간다. 페로인들은 고래가 죽으면 바로 목을 갈라서 피를 모두 빼내면서 그대로 얼마간 놓아두는데, 그 이유는 고래의 사체에 피가 남아 있으면 혈액이 산화하면서 고기가 빨리 부패하게 되고, 이 때문에 고기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의 울산, 부산, 포항 지역에서 유통되는 고래고기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고래고기 중에서 신선하고 냄새가 안 나는 고래고기가 있다면 이는 불법으로 포획된 고래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 이유는 불법으로 포획된 고래의 경우 업자들이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고래를 사냥한 뒤 그 즉시 바다 한복판에서 바로 피를 빼내고 해체해 물 속에 보관해두기 때문이다. 반면 시중에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고래고기는 고래가 그물에 걸린 채로 죽어서 하루 또는 며칠 후에 발견되어 경매가 진행되고 나중에 해체되는 경우인데, 이 때문에 혈액의 산화가 시작되어 고기에서 특유의 이상한 냄새가 나고 맛도 떨어지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시중 고래고기 식당에서는 특별히 단골손님들에게만 ‘냄새도 안 나고 신선한 고래고기가 입고되었습니다’는 안내 문자를 보내기도 하는데, 이는 죽은 뒤 바로 해체된, 즉 불법으로 포획된 고래고기라는 뜻이다. 신선한 고래고기를 먹으려면 피를 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페로제도에서는 들쇠고래 이외에도 큰돌고래, 낫돌고래, 쇠돌고래 등이 학살되며, 매년 그 숫자는 약 1천 마리 가량이다. 페로제도는 역사적으로 노르웨이와 덴마크에 복속되었는데, 잡힌 고래 한 마리마다 본국에 세금을 내야 했으므로 수백 년 전부터 매년 몇 마리의 고래가 잡혔는지 매우 자세하고 정확한 통계가 남아 있다. 최근 1900년부터 1999년까지 백년간 매년 1,225마리의 고래류가 페로제도에서 학살되었고, 1980년에서 1999년 사이에는 매년 평균 1,500마리 고래가 포획되었다. 21세기 이후 숫자는 약간 줄어들었지만 악명 높은 ‘배몰이’ 방식의 사냥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매년 배몰이 방식의 잔인한 돌고래 학살로 세계적 지탄을 받는 일본의 다이지 마을과 페로제도의 클락스빅(Klaksvik)시가 2017년 8월 자매결연을 맺었다는 소식도 충격을 준다. 서로 비슷한 관습을 가진 도시끼리 결연을 맺는다는 것인데, 동서양의 고래류 학살자들이 손을 잡은 섬뜩한 동맹처럼 보인다. 이 두 도시는 협약문 초안에서 “고래류를 포함한 수산자원을 지속가능하게 이용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히고, 앞으로 공동으로 교육과 관광 등을 진행하겠다고 하는데, 독일 나치와 일본 천황제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온지구를 파멸로 몰고 간 광기가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고래고기의 중금속 오염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되어 왔으나 2008년에 페로제도 자치정부의 보건국장과 과학자들이 다시 한 번 들쇠고래 고기에 수은과 폴리염화비페닐(PCB) 그리고 맹독성 살충제 성분인 DDT가 고농도로 농축되어 있어 식용으로는 부적합하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페로정부는 고래 사냥을 금지시키지는 않았고, 대신 식품안전국장은 한 달에 한 끼 정도의 고래고기와 지방 섭취로 제한할 것과 특히 젋은 여성과 임산부 그리고 모유수유 중인 여성의 고래고기 섭취 중단을 권고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핫핑크돌핀스는 페로제도의 고래학살에 항의하면서 2015년부터 성명서를 발표하고, 주한덴마크대사관에 여러 차례 고래 사냥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주한덴마크대사관에서는 페로제도가 덴마크에 소속되어 있지만 자치령이라 덴마크정부에 관할권이 없다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한국와 일본, 그리고 페로제도에서도 야만적인 학살을 전통으로 포장해 옹호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바다가 위기에 처한 지금 이제 고래학살은 그만 해야 하지 않을까.
원문 보기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660964&memberNo=38419283&navigationType=pu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