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 김주원 교무의 정전 강의 44--- 팔조(八條) 3 사연사조(四捐四條)
원광 원기96년(2011년) 8월호
버려야 사는 길
사연사조(四捐四條)는 불신·탐욕·나·우(不信·貪慾·懶·愚)이다.
믿지 않는 마음, 과한 욕심, 나태, 어리석음이다.
이는 수행에 있어서 반드시 버려야 할 조목이다.
불신(不信)
<정전>에 보면 ‘불신이라 함은 신의 반대로 믿지 아니함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결정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불신이 있고 보면 어떠한 일도 이룰 수 없다.
종교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이라면
반대로 종교가에서 가장 기피해야 할 대상은 마(魔)이다. 마(魔)는 불신이다.
마(魔) 중에 계문을 범하는 것도 마(魔)라 하긴 하지만,
그것은 참회할 기회가 있고 나아갈 기연이라도 있다.
우린 보통 잘못을 하면 천벌 받는다고 한다.
천벌 하면 하늘에서 벼락을 치는 것쯤으로 생각하겠지만 천벌 가운데도 가장 큰 천벌이 있다.
그것은 마음 가운데에서 신(信)을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불신(不信)이 싹트게 되면 마음은 퇴색될 뿐만 아니라
진리·회상·법·스승을 등지며 살게 된다.
우리들이 법과 진리를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 업력을 녹이고, 인격을 향상시키며, 진급의 길로 가기 위함이 아닌가.
불신은 진리가 주는 병이다.
처음엔 무슨 병인지 모르나 시간이 흐를수록 내 업장들은 어느 순간부터 두꺼워지고,
죄고는 쌓여 점점 고(苦)의 세계로 빠지게 된다.
영생을 놓고 볼 때, 진리가 준 이 불신이야말로
종교가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병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공부하는 중 가장 큰 마장(魔障)은 여우와 같은 의심을 내는 것”이라 했다.
일을 할 때 누구나 처음엔 시키는 대로 잘 따라서 한다.
그러나 시일이 지날수록 일에 대한 자신의 주견이 생기면서부터
스승·법·동지는 안중에 없고 이리저리 재며 의심을 한다.
의심은 제도(濟度)의 문을 막는다.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의심 없이 믿어야 한다.
혹 믿어야 할 자리에서 믿지 않는 마음이 나오면 크게 경계하고 자신을 다시 살펴야한다.
탐욕(貪慾)
<정전>에 ‘탐욕이라 함은 모든 일을 상도에 벗어나서 과히 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상도란 떳떳한 도, 평상의 도, 상식적인 것을 말한다.
탐욕은 비유하자면 오늘 벼를 심어놓고 내일 수확을 바라는 마음이다.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고 했다.
이는 일을 빨리 하려고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는 말이다.
인과의 이치를 생각해 볼 때, 공(功)을 들여야 모든 일들이 이치대로 잘 되는 것이지,
공은 열이나 들여 놓고, 천이나 만을 바라면 과연 그것이 원만하게 구해지겠는가.
어떤 일을 하든지 탐심으로 이루려 하지 말자.
항상 바른 서원을 세우고, 정당한 분심을 발하여 차서(次序)있고 합리적으로 공들여 가자.
나(懶)
<정전>에 ‘나(懶)라 함은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하기 싫어하는 것’이라 했다.
나는 편안하게 있고 싶어 하는 마음, 즉 나태이다.
이것이 한번 발동되면 모든 일 자체가 귀찮아진다.
우리는 알고 있다. 어느 것 하나라도 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룰 수 없음을.
우리들은 천부적으로 진리에게 받은 무한한 영성과 능력이 있다.
그러나 나태는 이런 모든 것을 사장(死藏)시켜 버린다.
아무리 좋은 시설과 모든 여건을 다 갖추었다 하더라도
본인이 하기 싫어서 안 하면 그만인 것이다.
나태의 원인은 몸을 편안하게 하려는 데 있다.
대처하는 방법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몸을 아무리 편안하게 건사하더라도 결국은 땅 속으로 들어가면 모두 썩어 없어진다.
일생토록 공대한들, 몸이 들어 나를 좋게 해주겠는가.”라고 말이다.
나태에 몸과 마음이 휩쓸리거나 지배 당하지 말자.
정당한 일에는 분발심을 내어 복과 혜를 장만하는 데 힘을 쏟자.
우(愚)
<정전>에 ‘우(愚)라 함은 대소 유무와 시비 이해를 전연 알지 못하고 자행 자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공장에서 기계 부품을 조립한다고 할 때,
그 공정에 맞는 방식으로 만들어야 완성된 제품이 생산된다.
그러나 무턱대고 자신의 방식대로 조립을 하면 과연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올 수 있을까.
이것은 어리석음이다.
이렇듯 자신이 어리석은 줄 모르고 고집을 내세우는 것도 병이다.
그나마 자신이 어리석음이 있음을 알고 대처하면 다행이다.
우를 대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스승에게 정당한 지도를 받으면 된다.
자신에 대한 모든 집착과 고집된 마음을 내려놓고 스승의 지도를 통해 지혜를 밝혀 가면 된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빨리 인정하는 사람은 더 이상 어리석지 않다.
팔조(八條)를 공부했다.
사연사조(불신·탐욕·나·우)는 조그만 싹이 나오자마자 즉시 뽑아야 하고,
진행사조(신·분·의·성)는 아주 작은 싹일지라도 자꾸 북돋아서 강하게 키워야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도가의 성공은 재능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분·의·성으로 정진하고 못하는 데 있다.”고 했다.
단순하게 팔조의 뜻만 아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신·분·의·성을 챙겨서 마음 가운데에 불신·탐욕·나·우를 바로바로 제거하자.
이렇게 실질적인 공부의 표준을 삼고 나가면 우리의 공부는 반드시 일취월장할 것이다.
< 교정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