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5C6tQV05YU
아일랜드 민요 ‘아 목동아’는 웬만한 음악팬이면 다 좋아하는 곡입니다. 북아일랜드 민요인 이 곡의 원제목은 가사가 붙기 전에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데리의 노래(Derry air)와 런던데리의 노래(Lodonderry air)입니다. 데리의 노래는 가톨릭계(아일랜드공화국) 제목이고, 런던데리의 노래는 신교계(북아일랜드)가 부르는 제목입니다.
제목에서부터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를 짐작케 합니다. 20세기 초 ‘대니 보이’라는 가사가 붙게 되지만 작곡가 현제명이 ‘아 목동아’로 제목과 가사를 바꿔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즐겨하는 아일랜드민요 '아 목동아'는 세계 민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곡입니다. 클래식과 팝을 막론하고 세계의 유명 가수 수백 명이 불렀으며, 수많은 악단과 독주악기가 이 곡을 연주하였죠.
아일랜드민요로 알려진 아목동아는 엄밀히 말해서 아일랜드민요가 아니고 무늬만 아일랜드일 뿐입니다. 멜로디만 아일랜드, 그것도 북아일랜드의 런던데리에서 탄생했습니다. 가사 역시 잉글랜드에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이민 온 아일랜드계와 캐나다인들 사이에 널리 불려 알려졌습니다.
Londonderry Air (Danny Boy)//우리말 가사 번역-오마이마이
Oh Danny boy, the pipes, the pipes are calling From glen to glen, and down the mountain side,
The summer's gone, and all the roses are falling, It's you, it's you must go and I must bide.
But come you back when summer's in the meadow, Or when the valley's hushed and white with snow,
And('Tis) I'll be here in sunshine or in shadow, Oh Danny boy, oh Danny boy, I love you so!
But when you come, and all the flowers are dying If I am dead, as dead I well may be
You'll come and find the place where I am lying And kneel and say an "Ave" there for me.
And I shall hear, though soft, your tread above me And all my grave will warmer, sweeter be
For you will bend and tell me that you love me And I shall sleep in peace until you come to me! | 오, 사랑하는 대니보이, 목동들의 피리 소리가 계곡에서 계곡으로, 산비탈 아래로 울려 퍼지는구나.. 여름은 가고 모든 장미 꽃은 떨어지는데.. 너는 가고.. 나는 여기 남아야 하지.. 하지만 네가 돌아올 때면 초원은 여름이거나 아니면 계곡은 고요하고 하얀 눈이 덮였겠지.. 나는 여기서 널 기다릴거야.. 해가 뜨거나 어둠이 오거나.. 오 대니보이.. 내 아들아.. 사랑한다.. 하지만 네가 돌아올 때면 모든 꽃들은 지고 설사 내가 죽었다해도 슬퍼하지 말아라..
꼭 돌아와서 내가 누워있는 곳을 찾아오거라.. 무릎을 꿇고 내게 "아베 마리아"를 불러다오
네 노래와 함께 나를 가볍게 어루만져 다오 내 무덤이 조금 더 따뜻하고 부드러워지겠지..
허리를 굽혀 내게 사랑한다 말해주겠지? 네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평화롭게 잠들어 있으련다.. |
'아목동아'는 마치 우리의 아리랑곡조에 일본어가사를 붙인 격입니다. 아일랜드가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이죠.
현재의 영국은 잉글랜드와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가 정치적으로 연합하여 이루어진 섬나라입니다. 19세기 초 조지 3세 때 아일랜드가 병합되어 대 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되었습니다. 현재의 국기인 유니언 잭도 그 때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영국은 세계 곳곳에 넓은 땅을 갖고 있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정도였습니다.
1922년 아일랜드가 에이레로 독립했지만 북아일랜드는 예외였습니다. 1969년부터 30여 년간 신구교도 간 유혈충돌로 3700명이 목숨을 잃었죠. 그 북아일랜드 제2의 도시 런던데리에서 태어난 곡이 오늘날의 '대니 보이'입니다. 아일랜드의 민요수집가 제인 로스(1810년-1879년)가 창밖에서 들려오는 집시 바이올린의 선율을 듣고 채보해 처음에 피아노로 연주한 게 최초의 '런던데리 에어'입니다. 1855년 조지 페트리가 더블린에서 펴낸 아일랜드 고가 집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것이 1913년 대니 보이(Danny Boy)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영국의 변호사 겸 작곡가, 라디오 진행자인 프레데릭 에드워드 웨덜리(1848년-1929년)가 이미 작사해 놓은 대니 보이를 이 곡에 붙였습니다.
그는 한 친척이 전달해준 '런던데리에어'를 듣고 전쟁터로 어린 아들을 보내야하는 부모들의 비통한 처지를 가사에 담아 '대니 보이'를 탄생시켰습니다. 대니는 다니엘의 애칭이죠. 20세기 최대 히트곡으로 현재 유튜브 성악과 기악 버전이 수백곡이나 올라 있습니다.
불후의 명곡 '대니 보이'는 마디마디에 절절한 비애가 서려 있고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와 함께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배어 있습니다. 고이 기른 아들을 전장으로 보내며 그 아들을 기다리겠다는 부모의 정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현제명(玄濟明)이 번역한 ‘아 목동아’의 우리 말 가사는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로 시작해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로 끝납니다. ‘대니 보이’보다 우리 정서에 더 맞는지도 모르죠. 대니 보이 외에 ‘데리계곡에서’라는 가사도 있습니다. 런던데리의 골짜기를 떠나 멀리 바다를 건너간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입니다.
이 노래가 태어난 런던데리는 높지 않은 지형의 구릉과 계곡이 있는 목가적인 소도시입니다. 짧은 여름과 한랭기후는 작물재배에 적합지 않은 땅이지요. 하지만 이곳에서 소출된 모든 곡식을 잉글랜드에 강탈당하고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은 19세기 중엽
감자마름병이 번져 240만 명이 죽자 미국,캐나다로 이민 길에 오릅니다.
북아일랜드의 주요 항구인 런던데리는 1846년 아일랜드를 휩쓴 대기근 이후 신대륙을 향해 매일 이민선을 띄우던 곳입니다. 이 부두를 떠난 배들이 대니 보이를 함께 실어갔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지금 아일랜드에서는 이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 간 아일랜드 인들이 주로 장례식에서 부른다니 애처롭기 그지없습니다.
죽어가는 남편, 아내, 자식, 친구들을 땅에 묻으며 가족 친지들이 주로 부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중고교 교과서에 실리고 많은 국민들이 즐기는 것은 이 노래가 고되고 힘든 식민통치를 겪은 우리 정서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노래의 배경에 깔린 정서가 우리에게 공감을 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노래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아일랜드출신 명 테너 존 매코맥(1884년-1945년)이 부르면서부터입니다. 1920-30년대에 주로 불렀고, 1940년대는 빙 크로스비, 1960년대에는 해리 벨라폰테가 불러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니 보이를 부른 가수는 이밖에도 수 없이 많은데, 앞서 말한 가수 외에 테너 마리오 란자, 플라시도 도밍고, 소프라노 키리테 카나와 짐 리브스, 앤디 윌리암스, 등이 불렀고, 스토코프스키와 아더 피들러 등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습니다.
클라리넷의 리처드 스톨츠만, 첼로의 오프라 하노이 등도 연주했습니다. 하지만 세인의 인기를 독차지한 것은 실 오스틴(1929년-2002년)의 테너 섹소폰 연주입니다. 그는 16세 때 이 곡으로 섹소폰 대회 우승을 차지한바 있습니다.
하모니카 연주자 윤광준님의 곡 소개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멋지네요 ~
하모로 언제 제대로 연주해 볼려는지~
즐감하고 갑니다
언젠가 도전해보려고요.. 내용을 알고나니 더 어려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