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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위의 파란색 유튜브 글자를 클릭하시면 동영상으로 신부님 강의 함께 보실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찬미 받으소서' 의 두 번째 강의입니다. 지난 강의 말미에 동방 정교회 수장이신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님의 말씀을 찬미받으소서가 인용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님의 말씀이 첨가된 찬미받으소서의 9항이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왔다고 하셨습니다.
9항
º 소비 대신 희생을
º 탐욕 대신 관용을
º 낭비 대신 나눔을
9항의 내용을 사순시기에 생태적 관점에서 자신들이 행하는 절제의 생활과 연결시켜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개인적으로 단식을, 전례적으로 대영광송을 생략하는 것 .성금요일에 십자가를 가리는 것,등의 절제와 금욕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삶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하나의 모토가 될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입니다(소비 대신 희생을, 탐욕 대신 관용을, 낭비 대신 나눔을)
그리고 9항에 "이는 공포와 욕망과 충동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닿는다 하셨습니다. 예전 본당에 계실때 "사순시기는 참고 내리 누르고, 절제하는 시기죠?" 물어보는 신자에게 신부님은 9항의 내용 처럼 "저는 다른 생각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이끌려 살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기입니다. 욕망을 쫓아가지 못하면 두렵고 소유에 대한 중압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하느님께서 그런것들로부터 해방시켜주고 하느님을 만나게 될 수 있는 시간인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10-12항
º 프란치스코 성인
º 통합 생태론(Integral Ecology)
º 자연보호,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 사회적인 헌신, 내적 평화...
º 12항 : "놀라운 책"
지혜 13,5 ; 로마 1,20
프란치스코의 영성이 '찬미받으소서'가 이야기하게 될 많은 것들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영성적이고 내적인 중심으로부터 우리는 세상에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을 통합하는 '통합 생태론(Integral Ecology)'으로 전개하고 싶고, 그러한 통합적인 모습은 성인의 삶안에서 드러났는데, "찬미받으소서'"라는 노래안에 들어있는 성인의 영성으로부터 성인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자연보호,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 사회적 헌신. 내적평화..) 서로 다른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출발점이 있는데 그것은 카톨릭교회에서의 "영성(Spirituality)" 그 영성으로부터 모든것이 출발합니다.
또한 회칙 10-12항에 의도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개하고 있는 생태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에 대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것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 하는 중심에도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12항에 나오는 특별한 한 구절인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당신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선함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주는 놀라운 책으로 자연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하십니다" 는 '찬미받으소서'의 초판에서는 놀라운 책으로 성경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하시...라고 나왔는데요. 원문의 의도에 따라 재판부터는 성경 →자연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책'이라는 표현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첫 번째 책인 성경이고 그 성경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알려주시는 하느님의 계시를 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책은 바로 우리가 매일 접하고 있는 우리들의 생태계, 자연을 이야기합니다(12항의 말씀을 기억) 성경뿐만 아니라 온세상,자연의 모습 또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계시입니다.
앞선 10항에서는
10항
신비주의자 + 순례자
자연보호;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
사회적 헌신;
내적 평화...
프란치스코 성인을 위와 같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반면에 11항에서는
11항
º 지배자
º 소비자
º 착취자
성인이 가졌던 모습과는 조금 대치되는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지배자, 소비자, 착취자)이 나옵니다. 그것이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11항에서 만나보게 됩니다.
지혜 13,5
º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
반면에 성경의 말씀은 11항에서 지배자, 소비자, 착취자가 아니라 지혜서 13,5절에서(신부님이 초등학교 때 속리산위에서 바라보며 세상은 하느님이 만드신것이 분명한 것 같아..그렇지 않고 어떻게 이리 아름다울 수 있어?!..했던 것처럼)피조물을 통해 하느님을 이야기 합니다.
또는,
로마 1,20
º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힘과 신성, 권능을 우리는 가장 쉽게 창조하신 피조물의 모습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12항
세상은 해결해야 할 문제 이상의 것으로,
감사와 찬미로 관상해야 하는 기쁜 신비입니다.
미소와 위로를 주는 12항의 내용입니다. 생태적 문제를 부정적이고 걱정어린 시선으로만 바라보며 생각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세상은 해결해야 할 문제 이상의 것과 지배와 소비와 착취만이 아니라, 감사와 찬미의 마음으로 관상해야 하는 기쁜 신비입니다. 라는 깊이 있고 오래오래 생각해 보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13-16항
º 다양한 생태 운동
º 대화와 참여- 보편적 연대
º 새로운 생태론 : 근본적 원인에 대한 반성
º 구체적 접근법들
13-16항에서는 다양한 이세상에 다양한 생태운동에 있다는 것을 되짚고 그중에는 종교적인 운동도 있고, 비종교적인 운동도 있고, 반 종교적인 운동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 생태운동가들 중에서도 그리스도 생태운동에 기본적인 논리를 적용하면서도 유교나 도교나 불교나 쪽의 가르침을 가지고 그리스도 생태운동의 출발점을 제시하는 생태신학자들, 운동가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비판은, 우리가 무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가 세상안에서 지금의 세상으로 되어버린데에 방관 혹은 함께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들을 귀담아 들어야합니다.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생태운동가들은 오늘날 이런 생태문제를 야기한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에는 자본주의가 있고 그런 자본주의가 형성되는데 있어서 프로테스탄트신학(Calvinism)이 중요한 역활을 했었기에,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생태적인 문제에 있어서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은 카톨릭 신학자로서 전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그들의 반성과 노력처럼 카톨릭 신앙을 지닌 우리들도 어떤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지에 관해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신학안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없다면, 불교나 유교나 혹은 도교의 가르침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생태적 이론을 만들어야 하는것이 아닌지,
아니면 전통신학(근본적인 신학)안에서도 생태계에 이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갖게되는데, '찬미받으소서'는 우리들의 갖고있는 하느님의 체험, 또는 교회가 갖고 있는 전통적인 신앙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보고, 듣고자하는 카톨릭 신학안에서도 생태계의 위험으로부터 지켜나갈 수 있는 하나의 신학적 큰 흐름을, 출발점을 찾아 볼 수 있다는 마음으로 강의에 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카톨릭 교회안에서 중세, 근세, 현세에 이르기까지 카톨릭신학에 큰 문제점이라면, 하느님과 인간과 세상이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우리 교회가 하느님과 세상과 관계맺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폭넒은 질문을 하는것에 늦은 출발을 하였습니다. 단순히 하느님과 인간, 하느님과 교회의 관계에만 집중했었고,
과연 세상은 우리에게 어떤 곳인지,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주의기울이지 않았던 우리들임을 기본적인 성찰의 출발점으로 가져야 합니다.
카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동방 정교회와 같은 타교파, 불교, 도교등의 타종교 그외의 다른 생태운동들과 어떻게 대화해야하는지, 그들과 함께 우리는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에 대해서 '찬미받으소서'는 보편적 연대라는 용어로서 하나로 묶어 놓았습니다. 이 보편적인 연대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해서,
특히나 동방 정교회에서 9월1일을 환경의 날로 지정한 일과 더불어 교황님께서도 우리 카톨릭도 이러한 날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9월1일에 동참하는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연대와 생태적 문제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적 출발점을 만나게 됩니다. 다양한 생태론과 생태운동을 묶기 위해서 근본적 원인에 대한 반성과 거기에서 출발한 구체적 접근법에 대한 길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 13-16항까지의 내용입니다.
13항
창조주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인류는 여전히
우리의 공동의 집을 건설하는 데에
협력할 능력이 있습니다.
13항의 내용에서 "창조주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라는 말씀이 성서를 공부하시는 분들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오는 부분입니다. 창세기6장에서 노아사건때, 하느님께서 인간의 타락과 폭력이 너무 심해지자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셨다는 내용과 노아의 히브리적 이름인 '노아흐'에는 어원적으로 풀었을 때 '후회한다'와 '위로한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홍수사건의 이유가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셔서,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세상안에서 의롭게 살아갔던 노아흐와 같은 의인들을 통해서 세상을 위로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13항에서는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혹자의 신학자들은 '후회하셨다는데요?'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신부님은 창세기에서 인간의 죄와 벌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창세기가 말하는 죄는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라 하십니다(유혹하는 뱀과, 광야의 40일동안 계신 예수님을 유혹하는 사탄의 존재, 유혹하는 존재들에 꾐에 빠져버려 하느님께 멀어지게 되는 우리들의 생각과 말과 행위들)
반면에 벌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그 상태(빛으로부터 멀어져 어둠에서 살아가는 것)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현대신학 안에서 심판과 벌은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태의 우리들에게 빛으로 찾아오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런 표현은 성서안에서 죄와 벌에대해 신화,설화적으로 표현된 부분을 오늘날 현대신학에 맞추어 상승되어 표현된 부분의 예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신부님이 자주하시는 말씀중에 "하느님은 우리를 용서하시는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시는 데, 우리는 자꾸 찾아오시는 그 빛에서 숨는 것 같습니다" 부분과 13항의 내용이 일맥상통하는 듯 합니다. 이를 시편의 저자는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라는 문장으로 이 비슷한 내용을 문학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13항에서 울림을 받으신 부분은 "인류는 여전히 우리의 공동의 집을 건설하는 데에 협력할 능력이 있습니다"라는 한 문장에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가 담겨 있다고 하셨습니다." 입니다.
오래된 담론들 중에 하나인 "인간이 변해? 한 번 나쁜이는 영원히 나쁜사람이야!" 라는 말이 우리 그리스도신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시고, 특히나 사순의 시기인 회개의 시기를 교회가 지금까지 지켜나가고 있다는 것은 교회가 모든 인간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다고 하셨습니다. 방송매체에서 만나게 되는 '저런 나쁜 사람들'의 존재들에게도 하느님께서는 그 한사람 한사람들에게 불어넣어 주신 영(숨길)은 있기에 회개하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이 열려있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변할 수 있다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희망을 잃지 않아야합니다( 장발장에서 형사가 갖은 가장 무서운 범죄는 "인간은 변하지 않아!"라는 생각은 그리스도적인 사고, 생각이 아닙니다)
인류는 생태계에 위험을 초래한 탐욕스러운 지배자이고 착취자, 소비자이지만 인류는 여전히 회개하고 영적인 전환을 통해서 우리안에 새로운 생태계인 공동의 집을 건설하는데에 협력할 능력이 있는 존재입니다. 라는 인간존재에 대한 깊은 신뢰가 나타난 13항입니다.
14항
보편적 연대
16항에서는 그런 보편적인 연대를 바탕으로 '찬미받으소서'가 말하고 싶어하는 구체적인 대응에 대한 다양한 주제들을 제목만 언급해 놓으셨습니다(가난한 이들과 지구의 취약함의 긴밀한 관계,....버리는 문화와 새로운 생활 양식의 제안).
16항까지의 내용을 통해 서론적인 밑그림이 1항부터 16항안에서 그렸습니다.
이제부터 제 1장을 살펴봅니다.
제 1장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Our common home, 안에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대해, 집이라는 틀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기후변화나 탄소배출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가정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나와 아버지는? 나와 어머니?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복음적 관계를 맺고 있나?에 대한)
나와 제 주위의 사람들, 나와 이웃 생명체, 이웃 존재들...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하는 여러가지 선택들이 지구라는 별과 가정안에서 관계를 잘 맺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입니다.
17-19항
º 신학적 - 철학적 성찰 (reflection)
º 성찰을 위한 현실 인식:
변화의 방향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신학적 성찰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해온 우리 신앙의 체험들과 그 체험을 통해서 우리가 만들어온 하느님에 대한 여러가지 담론들이고, 철학적 성찰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사유하는 능력을 인간의 이성을 사용해서 제자리에 있는가에 대해 사유하는 인간의 철학적 경향들과 함께 하는 성찰을 의미하고 이것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을 사용하는 성찰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 성찰을 위한 현실 인식에 기본적인 질문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변화의 방향은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나는 과연 행복한가? 나는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았는가?의 질문입니다) 신부님이 자주드는 예로,
사람들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한달 쯤 걸리는데), 단축시켜 여유있는 시간을 확보하려면 교통수단을 만들어야겠다.라고해서 (말, 고속철도등의 이동수단)들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더 바빠졌습니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데에 오해가 생기고 문제가 생길까?라는 생각에 여러가지 도구들을 개발하여(편지, 전보,전화,삐삐., 휴대폰, 스마트폰을 통한 카톡,문자,등..) 소통의 수단이 발달하였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와 선입관을 극복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이 문명이 발달할 수록 더 외로워지는 인간의 모습을 체험하게 됩니다.
변화의 방향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변화의 흐름속에 우리는 행복할까?라는 1장에서 첫 번째 내용은 오염과 기후변화의 이야기입니다.
I. 오염과 기후 변화
º 20- 22항 : 오염, 쓰레기, 버리는 문화
- 미세 먼지, 플라스틱, 쓰레기
º 23- 26항 : 공공재(Common good)인 기후
- 지구 온난화, 해수면 상승, 생물 다양성, 열대림
º 파리 기후 협약 Paris Agreement(2015년)
흔히 생활하고 있는 미세플라스틱에 관해서 중국은 전면 금지를 하였고, 서방의 여러나라에서도 점차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흐름입니다.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 있어 사회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입니다.
코로나와 함께 전세계적으로 쓰레기 문제가 심각합니다.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처리할 수 있는 문제(오세아니아 남태평양의 플라스틱 섬에 관한 이야기)도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공공재(common good)란? 개인이 사유화 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공공재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개인이 지구의 모든 산소를 큰 기계를 사용해 저장해서 판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땅의 소유주가 그 땅에 자연적인 변화가 일어나 물이 흐르게 되었을 때, 그 땅은 사유화 할 수 없게됩니다(나라에서 관리하게되는 공공재, 우리나라 국법)
공공재인 기후을 개인이나 국가 소유할 수 없다. 공공재인 기후를 공공재로서 다루지 않는 인간의 문화로 지구 온난화가 생기고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게 되고, 다양한 생물들이 멸종하게 되는, 줄어드는 현상, 그리고 열대림들이 사라지는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찬미받으소서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지역에서의 사막화 현상들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고자 인류는 파리 기후 협약,(2015년)을 최종적인 기후관련 협약이었습니다. 그 주된 내용중에 하나는 각 나라의 정상들이 기후문제들 일으키고 있는 탄소배출을 정해서 줄여나가는 목표들을 국가별로 자발적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이 협약에는 우리나라도 참여하였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 탄소배출이 낮은 목표라서 실망하였다는 외국언론들의 기사도 있었습니다.
'찬미받으소서'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경제면에서 주로 볼수 있는 Esg라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유럽사회의 나라들이 각자들이 할 수 있는 Esg라는 기준을 정해서 그 기업에 부합한 물건들만 수입하고, 그런 나라들과만 교류하겠다는 경제적인 측도입니다.
E는 environment의 약자, S는 Social의 약자, G는 Governance의 약자입니다. 즉 한 기업의 친환경적이고, 사회적으로 기여하며, 투명성이 있는 지배제도를 갖고 있는지에 관한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물건을 만들시, 화력발전을 이용해 만들었다면 유럽의 나라들에 수출할 수 없게됩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그린에너지 정책(풍력, 태양에너지..)등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 제조하여 수출하려는데 신부님이 볼때 아쉬운 부분은 그 변화의 생태의식이 자발적이고, 주도적 윤리적인 변화의식에서 시작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경제적이고 이익중심적인 사고로 구조적 상황에 맞춰서 급박하게 변화를 하는 모습에 대해서 깊이 성찰해 보았으면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온난화 문제가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적인 문제(트럼프 대통령의 탄소배출에 관해 의식하지 않고 경제 발전위주로 가자.)라 생각하는이도 있습니다.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를 봅니다.
이 표는 수만년 전부터 기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표입니다. 파란부부은 -1,-2,-3, -4, -5도까지 해서 -5도까지를 내려갔을 때를 파란색으로, 붉은색으로 넘어가는 곳은 우리 기후가 점점 더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기후표에서 -4도가 넘어가면 빙하기가 됩니다. 이미 표상에서는 주후1000년 부터 2000년까지 오면서 0도에서 - 0.23도의 라인을 유지하다가 산업혁명 이후부터 그 곡선이 오른쪽으로 커브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러면서 세개의 점선이 등장하는데 세개의 점선중에 제일 아랫쪽으로 휘어져있는 점선이 best case(전세계가 약속한 탄소배출, 탄소제로)의 곡선입니다. 그리고 가운데에 있는 점선은 그런대로 낙관적인 탄소배출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 오른쪽에 일직선으로 되어진 점선은 세계적으로 위험한 상황의 점선입니다.
비관적인 사람들은 '여기에서부터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혹은 지구 온난화라는 재난을 막기위한 선을 우리들이 이미 지났쳐버렸다고 생각합니다(damage control 해야하는 시기에 왔다)'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우리에게 아직 희망과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의 기회가 있고 지구온난화로부터 구할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남아있다고 생각하신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두 번째로는 물의 문제로서,
II. 물의 문제
º 27-31항
º 세계 물의 날 (3월 22일)
º World Water Council - Forum
º 공공재와 민영화(privatize)
세계의 물의 날이 3월 22일에 있습니다. 이런 물의 문제에 관한 세계 물의 협의회(World water council) 와 포럼(World water Forum)이 있습니다. 물은 가장 중요한 공공재임에도 불구하고 요즘에와서 민영화화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음이 가장 중대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물은 상품화 될수 없다.라는 국민의 공감과 나라에서도 허용하지 않은 부분이었는데, 1988년 올림픽을 이후로 서방인들의 물을 사먹는 문화로 인해, 1987년에 정도 무렵부터 물을 판매하게 되었고, 제주도의 경우 제주호텔 시설들이 지하의 물을 너무많이 뽑아서 사용하게 되어 제주에 거주하는 도민들의 식수가 고갈되기 시작되었다는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별한 기업과 사람들이 공공재인 물을 독점하여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윤리적문제를 제기하는 기사가 보도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공공재인 물이 몇몇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상품화되고 있다는 현실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물의 상품화와 그에 극단적인 형태인 물의 민영화(기업이 상수도, 하수도의 문제를 민영화하는 문제)를 다국적 기업들이 제3세계에 들어가 권력들에게 일부 재원을 제공하고 국민들에게는 깨끗한 물에 관해서 접근을 불편하게 하고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찬미받으소서' 가 제기하고 있는 물의 문제의 모습입니다.
- 감사합니다 -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유튜브에서 <성경과 생태신학>으로 검색하시면 최신부님 강의를 매주 금욜 8시에 실시간으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지중해 네.
감사합니다!
@빗방울 빗방울님, 조금 조심스럽긴 하지만 (^^;;) 최신부님 <소식란>-공지사항이 아닌-에 유튜브, 검색어 <성경과 생태신학>으로 백주간 식구들에게 알려주셔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3월16일 백주간 강의와 겹치는 주제이기도 하니까요...
@빗방울 유튜브에서 비대면 무료 특강이 진행 중인데 성서백주간 식구들 중에는 알고 계신 분이 많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지중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빗방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