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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글에 이어서 두번째 글입니다. 기도와 인사와 책의 표지와 목차는 동일합니다. 이미 1에서 읽으신 분은 그냥 건너 가시면 됩니다.
Construction of the Kingdom of God and Paul's Epistles <Justifying faith and the framework law that form the foundation of the Kingdom>
할렐루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놀랍고 놀라운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게 하심을 감사 찬양드립니다. 속히 바울 서신의 올바른 뜻이 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약 37년 전에 하나님께서 제게 오셨을 때 도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실상 도구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하나님께서 크신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뜻이 저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망극하신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으로 흉악한 죄인이 이 일을 감당하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성령님의 감동과 감화로 무지한 인생이 온 세상에 오랫동안 논쟁의 핵심에 있던 로마서의 이해의 부분 즉 이신칭의에 대해서 그리고 이를 통한 율법의 의미에 대해서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온 교회가 하나가 되고 모든 미몽에게 깨어나 진리의 세계로 함께 나아가게 하소서! 온 세상이 3000년 평화를 추구한 이 민족을 통해서 전쟁도 다툼도 없이 주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샬롬! 오천만의 로마서 애독자 여러분! 모든 분께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정말로 놀랍고 놀라운 일이 오늘 일어납니다. 제가 이미 전했지만 조금 더 정리를 해서 영문으로도 전하는데 제 글을 보시는 모든 분이 신학적으로 논쟁이 된 이신칭의에 대해서 진실로 새롭게 접근하고 큰 문제가 해결이 될 줄로 믿는데 500년의 천주교 개신교의 논쟁입니다. 모든 이 세상의 예수를 믿는 성도와 그리고 목자는 신학에 의존하는 바가 큽니다. 이와는 달리 성경을 전문으로 연구하시는 분들도 또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학생으로 배워서 목자도 되고 성경 연구가도 되니 신학교의 가르침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비록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된 제가 전문적인 신학 연구의 과정이 없이 이 오랫동안 논쟁을 해 온 부분에 대해서 감히 큰 해결이 될 것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이 글을 올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올바른 이신칭의에 대한 이해와 그리고 율법에 대한 이해로 가셔서 부디 이 땅에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나라에 대해서 우리 함께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영문 번역도 아직은 온전치 않지만 그대로 올립니다. 아직은 책으로 내기에 많이 다듬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참고하시고 그 큰 의미에 대해서 이해를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께 미천한 인생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를 함께 나누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올렸던 글이고 조금 긴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 보시고 그리고 영문으로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의혹이 일시에 풀어지는 복되고 기쁜 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런 일에 사용이 되는 도구가 되었음이 놀랍기도 하고 영광스럽고 그리고 잘 믿기지가 않습니다. 글이 길어서 셋으로 나누어서 올립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바울의 서신서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는 칭의 되는 믿음과 뼈대가 되는 율법>
목차≫≫
제 Ⅰ 편 비밀이 밝혀지는 데 2000년이 걸린 이유
1. 복음이 속히 전해져야 하는 하나님의 뜻
2. 바울과 초대 교인의 모습
3. 설명이 가능한 현대 기기의 등장(압축 파일, 빙산)
제 Ⅱ 편 바울의 심정에 대한 이해
1. 당시의 이스라엘과 로마의 상황
2. 바울의 외침
3. 온 세상을 품은 로마서와 바울(첫번째 글은 여기까지 올립니다.)
제 Ⅲ 편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는 믿음과 뼈대가 되는 율법에 대한 이해
1. 서론
2.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는 믿음(여기까지 두번째 글입니다.
3. 하나님 나라 뼈대가 되는 율법
4. 논의의 요약
제 Ⅲ 편 이신 칭의의 믿음과 율법에 대한 이해
1. 서론
2. 하나님 나라 기초가 되는 믿음에
대한 이해
3. 하나님 나라 뼈대가 되는 율법에
대한 이해
4. 논의의 요약
1. 서론
전도자 Evangelist ・ 2021. 6. 26. 5:35
할렐루야!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늘 함께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고 올바른 길로 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모이기를 힘쓰면서 서로 교제하며 하나님을 함께 찬양해야 하는 우리 믿음의 형제들은 속히 다시 모이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비도 많고, 하늘이 맑은 날도 많고, 유월이 끝나가는데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합니다. 코로나로 세상의 기후도 영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변이종이 또 생겨서 끝날 조짐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시기를 기도로 그리고 준비로 인내하며 잘 보내어 다시 모일 때 더욱더 하나님을 잘 찬양하게 하소서! 부패와 불의가 오직 성경의 기준으로 분별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 시대를 율법이 없이 세상의 법과 각자의 소견으로 이기려고 합니다.
부디 오천만 국민과 일천만 성도가 하나님께서 주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법인 율법을 잘 배우고 잘 지키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오랜만에 이곳에 다시 옵니다. 최근에 오천만의 성경 정리를 위해서 이미 올린 글들을 모아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의 서문으로 위의 제목의 글을 썼고 이를 올립니다.
이신칭의에 대한 믿음은, 처음 우리가 배우는 ‘모든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라고 교회에서 배운 배움으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제가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은 후에 성령을 선물을 받았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전도를 계속하면서 나중에 칭의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다고 '전도자에게 보여주신 이신칭의'란 간증문을 통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 주된 내용을 아래의 그림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의 이해를 중심으로 위와 같이 그렸습니다. 그리고 칭의 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선물을 받기에 합당한 죄의 용서가 있으면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로마서 공부의 워밍업 부분, 갈라디아서와 하박국서를 정리하면서 아래와 같이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이해입니다.
이런 이해에 도달하기까지는 저는 위의 과정과 같이 칭의를 이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로마서의 이해의 선행단계인 하박국서의 이해를 통해서 성도에게 칭의가 일어나는 시기를 성령을 선물을 받고 믿음으로 사는 어느 때로 조정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글은 그러한 내용을 설명한 것입니다.
모든 글이 오천만의 로마서 블로그와 다음 카페에 있으니 참고하시면 될 것이고 혹시 자료가 필요하신 분은 제가 책으로 정리한 자료를 보내 드릴 테니 받을 주소를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자료는 다 블로그와 카페에 있으니 참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연락처와 주소는 오천만의 로마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나라 기초가 되는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이해
로마서 1장 17절의 믿음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 믿음이다. 동시에 두 사람의 믿음과 관련된 설명이다. 단순한 믿음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첫째, 두 가지 의미는 먼저 시간적인 연속성을 지닌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 의롭다고 함을 얻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일시적이고, 순간적이고, 혹은 이제 갓 시작한 믿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지속해서 변치 않고 믿는 믿음이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서 로마서 4장 17~22절로 설명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또 한 가지의 칭의가 되기 위한 믿음은 고난 중이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정의롭게 사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다.
칭의 되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렇게 시간이 가도 변치 않는 한결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이와 아울러서 나라가 망하고, 모든 동족이 불의를 행하는 중이라도 언제나 의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고, 또 온 세상이 다 불의를 행한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정의롭게 사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칭의 되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 가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변치 않을 뿐만 아니라, 고난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을 믿으며, 반드시 정의롭게 하루하루 삶을 사는 믿음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로마서에서 신자가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는 믿음임을 성경은 분명하게 단호하게 그리고 타협 없이 증거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논거에 대해 로마서에 인용이 된 믿음의 표본이 되는 두 인물의 삶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살펴봄으로써 믿음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도록 하자.
먼저 창세기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창조주가 되시며, 전능하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시간이 가도 변치 않고 굳게 믿었다. 인간으로서 실현도 생각도 불가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실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다.
이 믿음은 나이가 들고 세월이 가도 흔들림이 없었으며, 결국 100세가 되어서 약속의 아들을 받았고 하늘의 별과 같이 수많은 믿는 이들의 조상이 됨은 물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다. 로마서 4장 17~22절의 말씀이 이를 증거한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즉, 순간 혹은 일시적, 혹은 처음 시작하는 믿음이 아니라 시간이 가도 불가능한 약속을 그리고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변치 않고 믿는 믿음이었다. 이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은 것이다. 반드시 믿음이라는 단어 이면에 있는 이런 의미와 배경을 절대로 우리는 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성경의 내용을 보자.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17. 성서에 "내가 너를 만민의 조상으로 삼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어서 마침내 "네 자손은 저렇게 번성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만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그의 나이가 백 세에 가까워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또 그의 아내 사라의 몸에서도 이제는 아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끝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1.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어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17. As it is written: "I have made you a father of many nations." He is our father in the sight of God, in whom he believed -- the God who gives life to the dead and calls things that are not as though they were.
18. Against all hope, Abraham in hope believed and so became the father of many nations, just as it had been said to him, "So shall your offspring be."
19. Without weakening in his faith, he faced the fact that his body was as good as dead -- since he was about a hundred years old -- and that Sarah's womb was also dead.
20. Yet he did not waver through unbelief regarding the promise of God, but was strengthened in his faith and gave glory to God,
21. being fully persuaded that God had power to do what he had promised.
22. This is why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개역 개정, 공동 번역, NIV 순)
그다음에 하박국서의 하박국의 믿음에 대해서 알아보자.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 개역 개정에 번역이 되어 있어 의인은 믿음이 있기에 생존한다, 혹은 산다로 되어 있는 것같이 보인다. 이 로마서의 구절은 구약의 하박국서 2장 4절에서 인용이 되었다. 그래서 하박국서를 로마서 1장 17절을 이해하기 위해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의 말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하박국서 2장 4절에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 하박국에게 이 말씀을 하셨는지 우리가 2장의 앞과 뒤의 상황을 알아야만 이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로마서를 정확하게 그리고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는 반드시 하박국서를 펴놓고 찬찬히 본문을 전부 읽어보아야 한다. 다행히 하박국서는 단지 3장으로 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가 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기원전 약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난 후 홀로 남은 남 유다마저 많은 선지자의 경고를 외면하고 불의한 길로 행하여 곧 멸망이 임박한 가운데 남 유다의 멸망을 예언한 예언자이다. 그는 기원전 약 609년부터 605년까지 예언했다. 남 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지만 이미 605년과 598년에 바벨론의 1.2차 침입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남 유다의 마지막 예언자라 할 수가 있다.
하박국 선지자 당시 남 유다의 타락상(부패성)은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더 이상 살 수가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율법은 사라졌고, 제사장과 고관과 온 백성이 불의를 행하고 있었다. 이럴 때 이런 불의와 맞서서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하박국과 같은 의인들은 더 이상 올바른 생활이 불가하여지자 이 불의의 사람들이 자신의 동족임에도 이 불의한 참상을 하나님께 고발하였다. 하박국은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타락한 백성을 심판하시지 않고 보고만 계십니까? 하고 하나님께 묻는다. 이는 마치 구한말 천주교의 탄압시 황사영이 백서로 로마교황의 군대의 파견을 요청한 사정과 같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결코 보시고만 계시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당시에 온 세상을 정복하던 악한 나라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남 유다를 심판하시겠다고 대답하신다. 이에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남 유다가 악하다 할지라도 바벨론만큼은 악하지는 않은데 어떻게 더 흉악한 바벨론을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가 있으십니까?" 하고 다시 하나님께 질문한다.
이 하박국의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답이 우리가 아는 너무나 유명한 로마서 1장 17절에서 인용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으로 하박국서 2장 4절에 있다. 이런 전후의 상황을 보면서 이제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올바로 이해해 보도록 하자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4.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개역 개정, 공동 번역, NIV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교만한 바벨론을 절대로 좋게 보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바벨론 역시 그 악행의 대가로 처참하게 멸망 당할 것을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역시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박국 선지자의 예언대로 멸망 당했다.
본 문장을 보면, 그러한 바벨론은 하나님의 인정도 사랑도 받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인정하시는 의인들은 믿음으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여기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며 약속을 성취하시는 전능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불의한 동족 남 유다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이 남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을 또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하박의 믿음은 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의인이 더 이상 살 수가 없는 불의한 세상을, 비록 그것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이라 해도 심판하시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정의롭게 사는 자를 언제나 어디서나 보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다. 또한 이렇게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종국에는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이다.
하박국 2장 4절과 로마서 1장 17절은 이 믿음으로 의인이 산다는 것이다. 산다는 의미는 개역 개정에서 번역된 바와 같이 그런 믿음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생존한다, 살아남는다고 하는 의미도 부분적으로 내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더 정확한 의미는 영문의 기록 will live와 같이 그들이 믿음의 삶을 하루하루 살게 된다는 것이다.
하박국 당시는 참으로 정직하고 정의로운 자가 자신의 순결을 유지하며 올바로 사는 것이 힘든 세상이 되었다. 동족의 불의는 만연하고, 나라는 멸망하게 되고, 강대국 바벨론의 침략과 수탈과 그리고 죽음과 포로가 되는 삶이 연속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합 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6. 그 소리를 듣고 나의 뱃속이 뒤틀립니다. 입술이 떨리고 뼛속이 녹아내리며 아랫도리가 후들거립니다. 우리를 덮쳐오던 백성에게 재앙이 떨어지는 날만 나는 기다리고 있습니다.(개역개정, 공동 번역)
하박국의 표현대로 정말로 정상적으로 평안하게 살 수가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이런 환란, 고난 가운데서도 언제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눈동자같이 보호해 주시는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을 굳게 믿는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이와 함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절대로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정의롭게, 순결하게 하루하루를 잘 견디며, 믿음의 삶을 반드시 살 것이다. (믿음을 가진 자의 타당한 삶)
이런 믿음을 가지고 정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의인으로 인정하신 다는 말씀이 바로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이다.
믿는 이, 믿지 않는 이 누구나 본문을 영문과 다른 한글로 된 여러 번역으로 보면 이렇게 쉽게 본래의 이 문장의 의미를 알 수가 있게 된다. 이제 변명의 여지도 또 얕은 믿음의 의미도, 온전치 못한 이해로 갈 여유도 모든 이에게 허용이 되지 않는다.
오직 로마서 1장 17절의 칭의 되는 믿음의 의미는 시간의 연속성을 지닌 한결같은 변치 않는 믿음이라는 사실과, 또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으며, 정의롭게 삶을 사는 행동하는 믿음이라는 사실만이 존재한다. 이를 아브라함의 믿음과 하박국서의 내용이 증명하며 이런 믿음에 대한 의의 인정도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이다. 할렐루야!
이런 내용의 이해를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은 누구를 비판하거나 정죄하고자 함이 아니라 이 부분의 이해에 어떤 분이 잘못이 있다면 누구든지 바로잡기 위함임을 꼭 밝힌다.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원하시지 정죄와 처벌을 원하시지 않음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글을 읽다가 자신의 잘못이 보이면 바로 잡고 올바로 살면 될 일이다. 과거의 일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것이고 돌이키는 자를 하나님께서 더 이상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제 글을 항상 읽어주신 온 세계에 있는
모든 분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약 35만 명의 분들이 약 5년 동안 쉬지 않고 글을 쓸 수 있게 쉬지 않고 힘을 주셨습니다.
모든 분이 영적으로 대가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