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쯤 일어나 밖을 내다봅니다. 아직도 비가 내리네요. 아무래도 배드민턴을 치거나 자전거를 탈 수는 없나봅니다. 턴테이블에 LP음반을 갈아 끼웁니다. 베르디의 ‘리골레토’의 한 부분이 흘러나옵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 목소리에 까미가 깜짝 놀라 짖습니다. 아침부터 글을 쓰기가 뭐해서 책을 폈습니다. 김호경선생이 쓴 ‘예수가 하려던 말들’이라는 책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비유를 산문처럼 썼는데 철학적 사유가 곁들여서인지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1시간쯤 책을 읽는데 거실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딸과 아내가 깨었습니다. 얼른 거실로 나가 아침 인사를 건넵니다. 딸은 다시 시작된 월요일이 싫은가 봅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씻는 동안 부엌으로 나가서 아침을 준비합니다. 냉장고에서 모닝빵을 꺼내 데우고 계란으로 스크럼블을 만들었습니다. 햄도 몇 조각 굽고, 파프리카도 썰었습니다. 토마토는 다 떨어졌네요. 아내와 아들은 얼린 바나나에 우유를 넣고 갈아서 한 잔씩 따라줬습니다. 딸은 출근하면서 들고 갈 보온병에 커피를 네 잔쯤 내려서 담습니다.
식사 후 강아지 밥그릇에 사료를 담아줬습니다. 요즘에는 귀에 곰팡이가 생겨서 되도록 연어와 채소가 들어간 사료만 먹입니다. 8시 20분쯤 아내와 딸이 출근했습니다. 비오는 날이니 길이 막힐 것을 감안해서 10분쯤 일찍 나섰습니다. 방학 후 평택으로 올라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아들은 젖은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립니다. 아들은 지난 1월부터 머리를 길러서 뒤로 묶고 다닙니다. 머리를 말리는 시간도 많이 걸리지요. 어제 저녁에도 퇴근 후 머리를 감았는데 아침에 또 감았네요. ‘머리 말리는 것이 귀찮지 않냐’고 물었더니 10분이면 해결된다며 배시시 웃습니다.
모두 출근하고 난 뒤는 설거지와 청소꺼리만 남습니다. 사실 음식을 조리하는 것보다 설거지가 귀찮습니다. 빨래하는 것보다 말린 빨래를 개서 원 위치 시키는 것이 귀찮듯이 말입니다. 친환경 세제를 뭍혀 설거지를 합니다. 설거지는 밀어두면 나중에 하기가 더 힘들어 그때그때 해치웁니다. 청소기를 들고 간단히 청소도 합니다. 어제는 바닥을 닦았으니 오늘은 청소기로만 했습니다. 매일 빨래를 하는데도 빨랫감이 수북합니다. 여름이라서인지 하루만 입고 옷들을 갈아입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오늘도 옷을 뒤집어서 빨래통에 넣었습니다. 딸아이는 양말 뒤집는 선수입니다. 짜증 나지만 화풀이할 곳도 마땅치 않아서 궁시렁거리며 다시 빨래를 뒤집어 세탁기에 넣습니다.
아들까지 아르바이트하는 식당 앞에 태워다줬습니다. 오늘부터는 오전 9시 30분부터 저녁 9시까지 일한다고 합니다. 너무 무리한 것 아니냐며 쉬엄쉬엄하라고 했더니 한 달뿐이라며 씩 웃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시민신문 기고문 한 꼭지와 다음 주에 있을 강의안을 만들 생각입니다. 8월 초에 있을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강의는 준비할 것이 많아서 부담됩니다. 신문 기고문을 먼저 쓰려고 했는데 머리 속이 정리되지 않습니다. 가닥이 잡히지 않은 글은 써 놔도 맘에 들지 않습니다. 자료를 찾다가 몸풀기로 일상을 담은 글 한 꼭지를 썼습니다. 이제 시작해야지 생각했는데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시계를 봤더니 벌써 12시 40분이네요.
어제 저녁밥을 먹고 남긴 누룽지를 끊이고 어제 먹고 남긴 고기야채볶음을 다시 볶아 반찬으로 먹습니다. 혼자 먹을 때는 반찬을 새로 만들어 먹기가 부담됩니다. 그래서 남긴 밥과 찌개를 먹거나 좋아하는 상추쌈에 된장을 발라 먹는 일이 많습니다. 창밖에는 종일 비가 내립니다. 임지훈의 ‘하루종일 동네에 비가 내리면...’이 생각나는 월요일 정오입니다. 밥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동상이몽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배우 김민재 부부가 나왔습니다. 김민재씨는 공황장애로 죽을 것 같은 절망감에 결혼 1년 만에 제주도로 내려가서 연기를 그만두고 쪽방살이부터 시작했다고합니다. 노동일도 하고 농사일도 배우며 한동안 지냈는데 연기를 그만두기는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연기를 시작했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나아가다 보니 이제는 대체불가한 조연배우가 되었습니다. 김민재 부부의 제주 집은 환상이었습니다. 살림집도 멋졌지만 장인어른이 대출까지 받아서 지어줬다는 별채는 경이로웠습니다. 김민재씨 부부는 이곳에서 동네사람들과 만나고, 배우들과 모여 차도 마시고 연극공연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꿈을 실현한 모습이 부럽고 나누고 배려하며 세상에 희망을 주는 삶이 부럽습니다.
점심을 먹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천안에서 詩를 쓰는 신 시인입니다. ‘형님, 우시인하고 천안 오세요. 비도 내리는데 생선회에 소주한 잔해요.’ 참 고마운 전화입니다. 벗들을 그리워하고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 읽혔지만 하려던 일을 덮어 두고 나가려면 영 찝찝합니다. 마땅한 핑게꺼리가 없어 ‘우시인에게 전화해보고 연락할게’라며 끊었습니다. 우시인에게 ‘천안에 갈텨’라고 물었더니 의사선생님이 한두 달은 금주하라고 했다며 안된다고 말합니다. 우시인은 일주일 전쯤 경추(頸椎)부분을 수술했습니다. 잘됐다 싶어 얼른 신 시인에게 전화했습니다. ‘우시인이 수술을 받아 당분간 술마시기 힘들다네....’
비로소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습니다. 봉지커피를 뜯어서 뜨거운 물을 내려 마십니다. 창밖의 빗소리가 더욱 굵어졌습니다. 커피향이 코끝에 닿으니 이제 글을 쓸 만합니다. 다시 책상에 앉았습니다. 어제 인터뷰한 내용도 펴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써내려가는데 지금 이 느낌을 글로 써두고 싶어졌습니다. 부지런 떨면 오후에 글을 쓰고 저녁 설거지가 끝난 뒤에는 강의 준비를 시작할 수 있겠지만 안되면 내일 하면 되겠죠. (2024.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