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7:16-20)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20)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장에는 세 가지 나무가 나온다. 하나는 아름다운 열매만 맺는 좋은 나무요. 또 하나는 나쁜 열매만 맺는 나쁜 나무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또 다른 나무인 못된 나무입니다.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 그리고 못된 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만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와 여전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쁜 나무를 하나님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로 만들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고자 하시지만 좋은 나무가 되지 못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고 나쁜 열매를 맺는 못된 나무……즉 나쁜 나무만 있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하여 이 말씀보다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말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쁜 열매만 맺는 나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만 맺는 좋은 나무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만 적용하면 구원받은 자인지 구원받지 못한 자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그 나무가 왜 좋은 나무인지 그리고 그 열매가 왜 아름다운 열매인지부터 정의해 본다면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때문에 좋은 나무이고 좋은 나무가 맺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열매인 것입니다. 이 원리는 진리(참)입니다.
과연 아름다운 열매란 무엇일까요? “아름다운” 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칼로스”는 많은 의미를 가진 말이지만 저는 문맥상 “충족한” 것으로 적용하였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나무의 조건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열매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아름답게 여기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입니다.
제목으로 제시한 말씀대로 안 살아져요? 라는 질문을 다시 드립니다. 물론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인정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 안 살아지는 것일까요? 못된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 모두가 공감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원리라면 말씀대로 안 살아지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못된 나무라는 말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 받았다고 한다면 이는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14:4-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계22:15)이러한 저의 해석은 계14:4-5과 계22:15의 말씀을 보아 진리(참)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씀대로 안 살아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점은 분명 좋은 나무가 못된 나무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 받았다고 하는 자들은 거짓말하는 자들이며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면에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계14:1)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계21:15-17) 신천지가 그토록 중시하는 십사만 사천명……오역 중에 오역입니다. 왜냐하면 원문에는 십사만 사천 명이 아니라 “백사십사 천”라고 쓰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지파에서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고 하였으므로 “인 맞은 사람의 수” 라고 생각하여 “일만이천” 곱하기 십이 지파를 하니 십사만 사천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천지의 이만희 같은 이단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숫자가 아닌 영적인 의미의 말입니다. 계21:15-17에보면 새 예루살렘을 금 갈대 자로 측량(척량)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새 예루살렘을 측량하니 백사십사 규빗이라고……새 예루살렘이 된 자들이 “백사십사 규빗”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처음하늘과 처음 땅이 죽고(사십) 죽어서(사) 희게 되어서(백)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을 사는(천) 그들이 하나님이 인친 자이고 아름다운 열매인 것입니다. 이를 천사의 측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 ~! 계시록 7장에서 말하는 “일만이 천”도 해석해야 하겠지요? “십이 천”이라고 해야겠지요? 왕같이 자신을 다스려서 하늘의 삶을 사는 왕 같은 제사장들……그들이 모여서 “백사십사 천” 새 예루살렘 이라는 하나님의 집(교회)이 되는 것입니다. 시온산의 장자들의 모임 교회를 수로 말한다면 “백사십사 천”이라고 할 것입니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 갑니다. 말씀대로 안 살아진다는 질문……못된 나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불못에 간다고……그런데 왜 말씀대로 안 살아져요? 좋은 나무가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듭 나지 못한 것입니다. 말씀대로 안 살아지는 구체적인 이유와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다음 글에서 묵상하기로 합니다.
여러분은 마치 사람은 말씀대로 살 수 없는 것이 진리로 여기는 것은 아닙니까? 이에 대한 묵상을 다음 글에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