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스승,
심덕순 선생님 이야기
햇볕 따스한 가을날 오루 2시 이미자(40회) 후배와 교동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대문을 열고 반갑게 맞아주시는 선생님을 마주한 순간 선생님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보았다. 우리에게 각인된 선생님 모습은 그을린 건강미 넘치는 얼굴인데 어언 선생님 얼굴의 주름은 삶의 무늬가 되어 있었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선생님을 회상해 본다.
당당하고 강인하나 소박한 스승
50여년 전 우리들은 한번도 여성스런 복장을 하신 선생님을 본적이 없다. 컷트머리에 운동화, 선생님의 복장은 늘 바지와 자켓이나 잠마를 입으시고 남자 선생님도 잘 타지 않으시던 오토바이를 몰고 출.퇴근하셨다. 우리 눈엔 참 멋져 보였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생소한 모습으로 다가 왔다. 그러나 선생님한테는 그 모습이 너무도 어울렸고 강릉사람들은 오토바이 타는 '심덕순'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셨다. 선생님은 카리스마 넘치는 활동과 말투로 누구도 쉽게 대할 수 없는 위엄을 지니셨으나 그 속마음을 보면 참으로 소박하고 다정하셨다. 담백한 말투에 웃으실 때는 천진한 어린아이 모습이 선생님의 매력이기도 했다.
진심으로 제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스승
선생님은 호랑이선생님이라고 무서워 하기도 했지만, 속마음은 한없이 따뜻한 분이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위한 일이라면 거침없이 나서서 해결해 주시곤 했다.
선생님의 제자사랑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 당시의 강릉여고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건이다.
학창시절 우리 강릉여고생들은 남자고등학교 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아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당시 강릉농고(현 중앙고) 남학생 3명이 우리 강릉여고 여학생을 좋아해서 아침 등굣길과 하굣길에 월대산 입구 길목에 지켜서 기다리고 있었다. 당사자인 여학생은 겁을 먹고 두려워 고민하다 당시 학생과를 담당하고 계시던 심덕순 선생님을 찾아가 울면서 상담했다.
선생님은 곧바로 그 길목을 찾아가 지키다 남학생을 붙잡아 강릉여고로 끌고 와서 교무실 앞 복도에 무릎꿇고 두손들고 있는 벌을 세웠다. 두번다시 이런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과 각서를 받고서야 용서해 주셨다.
그 일 이후 소문이 퍼져 감히 강릉여고 학생에게는 어느 누구도 근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연약한 우리 여학생들이 버팀목이며 든든한 빽이셨다.
모교의 체육육성과 동문회를 위해 헌신하신 진정한 강릉여고인
선생님은 강릉여고 15회 졸업생으로 학창시절 배구선수로 활동하셨고, 아버님의 권유로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하시고 1961년 모교인 강릉여자중.고교에 체육 선생님으로 첫 발령을 받아 교사가 되셨다.
모교에 오랜기간 재직하시면서 후진 양성은 물론 모교 체육육성에 열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다. 배구선수, 배드민턴, 육상선수를 육성하시고 강원도는 물론 전국대회에서도 우승을 하여 모교의 명성을 높였다.
운동선수 중에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있으면 물심양면으로 소리없이 도와주셨고 그일 또한 스승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어진 스승이셨다. 나는 고등학교 때 배드민턴 선수였는데 집안형편이 어려워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이 방학기간 동안 중학생들에게 배드민턴을 지도하라고 하셨고 끝날 때 봉투를 주셨다. 집에 와 열어보니 5000원이 들어 있었다. 당시 오천원이면 학생인 내게 거금이였다. 지금도 나는 선생님의 깊은 마음을 잊지 못한다.
오늘 그 일을 애기하니 선생님은 기억이 없으시단다. 그때 그렇게 했다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 아니냐는 말씀에 나는 가슴이 울컥해졌다.
퇴임 하신 후 강릉여고 총동문회동창회장을 맡아 동문회를 진 일보 발전시키는 일에 혼신을 다하셨다. 강인하고 저돌적인 짐념의 성품으로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과감히 진행하고 반드시 결과를 이루어 놓으신 분이다.
동문회장 재임시 국고를 지원받아 모교 도서관을 건립하셨고, 모교 재직시 길러낸 제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하셔 도서기증을 독려하시는 일은 집념과 헌신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선생님의 전화는 참 담백하시다. 긴 말이 필요없다.
"경자냐. 요새 잘 지내냐. 도서기증 기금 좀 내라"면 끝이다. 누구도 거절 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녹아 있는 전화다.
그 외에도 동문체육대회 운영방식은 강릉지역의 타학교와는 비교가 안될만큼 멋지다. 또한 도서관을 건립하면서 동문사무실을 학교내에 만들어 놓으신 지혜는 후배들에게 큰 유산이 되고 있다.
옛날을 회상하며 사제의 정을 나누고 일어설 때 말씀하셨다.
"누가 내 안부를 묻거든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지낸다고 해라.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해보고 싶은 것들 마음껏 해라."
선생님은 참 스승이셨다. 뵙고 나오는 내 가슴에 따뜻한 감동과 자주 찾아 뵙지 못했다는 회한의 마음이 교차했다. 80을 넘으신 선생님은 이제 철의 여인도 아니시고 연약한 어린이 같은 존재로 우리 제자들이 자주 찾아 뵈어야 할 것 같다.
선생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드립니다.
심덕순 선생님 댁에서...
29회 박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