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픽션]
지하철 속의 하루
서울의 아침은 언제나 분주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도시는 이미 깨어나,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중에서도 지하철역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가르는 중요한 장소였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칸에 몸을 실은 젊은 직장인들은 한결같이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민은 오늘도 지하철 2호선에 몸을 싣는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6시 30분, 사람들은 대체로 무표정한 얼굴로 각자의 자리나 구석에 서 있었다. 정민은 급히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핸드폰을 켰다. 음악 소리에 정신이 살짝 들며 잠깐의 여유가 생겼지만, 곧 주변에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그의 마음속에 갑갑함이 다시 찾아왔다.
“오늘도 이렇게 시작이구나,” 정민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서울 지하철은 효율적이고 빠르다. 하지만 그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매일 아침마다 그 속에서 밀고 밀리는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정민은 매일 느끼는 이 압박감과 지치는 출근길이 점점 더 버거워지고 있었다.
정민의 회사는 강남에 위치해 있었다. 2호선은 그야말로 서울의 허리, 수도권을 잇는 중심선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고단한 표정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출근길 지하철은 그들의 일터로 향하는 전쟁터였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이 출퇴근은 그들의 에너지를 점점 앗아가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밀려오는 사람들은 정민을 더 깊이 밀어넣었다. 몸을 움직이는 건 고사하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는 가방을 가슴팍에 붙이고 다리를 최대한 벌려 중심을 잡았다. 고개를 들면 그와 같은 표정을 짓는 수십 명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 역시 지쳐 보였다.
정민의 옆에 서 있는 서희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역에서 이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늘 가득 찬 지하철 안에서, 자신이 어딘가에 갇힌 느낌이 들곤 했다.
서희는 광고판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오늘 하루의 일정을 정리했다. 상사의 질책, 끝없는 회의, 미처 끝내지 못한 프로젝트… 하루의 시작부터 부담이 밀려왔다. 그녀는 그저 이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라며 출근길을 견딜 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서희는 정민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둘 사이에는 짧은 동질감이 흘렀다. 피곤에 절어있는 그들의 표정은 어딘가 닮아 있었다. 지하철 안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가 같은 처지임을 알아본 듯한 느낌이었다.
지하철은 서서히 다음 역에 다다랐다.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와 더 이상 발 디딜 틈조차 없어졌다. 그 안에서 젊은 직장인들은 모두 같은 고통을 겪고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밀리고, 몸이 부딪히며, 누군가는 짜증을 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참아내려 애썼다. 모두가 하루를 견뎌낼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정민은 어느새 지하철 안의 모든 소리가 무뎌진 것처럼 느껴졌다. 회사에서 받을 스트레스와 상사의 압박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왜 매일 이래야만 할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몸짓은 그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저녁이 되자, 정민은 다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하루를 겨우 견디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아침과는 또 다른 피로가 그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지하철 안은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출근길에 봤던 얼굴들이 퇴근길에도 보였다. 그들은 여전히 같은 지하철 칸 안에서, 같은 피로에 절어 있었다.
서희도 마찬가지였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그녀는 정민의 모습을 다시 마주쳤다. 그 순간, 서희는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얼굴을 반복해서 본다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그녀는 정민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정민도 미소로 답했다.
서울의 지하철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일상의 교차점이 되었다. 그들은 매일같이 이곳에서 부딪히고, 밀리고, 다시 살아남으며 하루를 이어갔다. 지하철은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닌, 서울 직장인들의 고통과 희망, 그리고 작은 위로의 공간이었다.
정민은 지하철을 타고 가며 생각했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와 다르지 않구나. 다들 힘들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지." 서희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그녀는 오늘도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며, 또다시 새로운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하철은 오늘도 서울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피로와 고통,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작은 희망들을 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