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정(艸丁) 시조에 나타난 문학성과 일탈성 소고(小考)
이광녕(문학박사,시조시인)
1. 들어가며
초정(艸丁) 김상옥(金相沃,1920~2004)은 경상남도 통영시 출신으로서 1937년부터 김용호, 함윤수 등과 함께 <맥>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가람 이병기(李秉岐)의 추천으로 1939년 시조 「봉선화」를 《문장》지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한 시조시인이다. 그의 시조는 섬세하고 유연하며 영롱한 언어 구사가 특징이며, 시조 외에도 자유시, 동시, 수필 등 여러 분야에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였다.
그의 시조는 육당과 가람, 그리고 노산과 이호우로 이어지는 현대시조의 형성기에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보편성에서 벗어나 상당히 색다른 모습을 보이는 게 특징이다. 그가 보인 독특한 변화의 면모는 특히 내용면에서보다는 형식미의 측면에서 남다른 실험적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그의 시조는 초기에 유연성과 서정성을 바탕으로 시조의 정격형을 준수하였으나, 후기로 갈수록 시조의 보편적이며 전통적인 형식 개념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의 시조가 후기로 갈수록 실험성을 보이는 것은 시조의 현대화 추구라는 의미에서 바람직한 일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시조의 정통성 승계라는 측면에서는 그 정체성이 와해될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시 된다.
오늘날 초정의 시조를 면밀히 검토해 보지 않은 일부 시인들은 교과서에 실렸던 초정의 「봉선화」나 「백자부」만을 떠올리고, 시조의 기본 형식적 바탕 위에 한국적 서정성의 발현과 섬세한 언어 구사에 충실했던 작가로만 떠올리고 있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초정의 시조는 실험적 태도를 보이면서 때로는 자유시처럼 때로는 산문시처럼 일탈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초정의 습작 성향은 과연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초정의 후기 시조 「제기(祭器)」나 「방관자의 노래」등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뿌리문학의 전통성과 정통성을 외치면서 정격을 준수하자는 이들에게 과연 초정의 시조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
이를 위해 초정의 작품세계를 면밀히 분석해 보고 올바른 평가를 통해 앞으로의 작시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2. 초기 작품의 문학성과 전형성
초정의 초기 작품은 시조의 전통적 형식의 바탕 위에 섬세하고도 영롱한 시어 구사와 한국적 서정성이 어우러져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시조의 형식에 충실하여 전통적 형식미가 돋보이는 온전한 시조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본향의식과 토속적 성향을 드러내어 작품의 미적 가치를 제고하였다. 그의 첫시집 『초적(草笛』에 실려 있는 「봉선화」, 「백자부(白磁賦), 「사향(思鄕)」, 「다보탑」 등은 그 좋은 예이다.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보고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들이던 그날 생각 하시리.
양지에 마주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 가락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누나.
- 「봉선화」 전문
이 작품은 가람 이병기(李秉岐)의 추천을 받아 《문장》지에 실린 것으로 초정의 대표작처럼 많이 애송되고 있는 작품이다. 시집간 누나를 그리며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그린 글이다. 이 작품은 교과서에 실려 유명해졌다. 봉숭아꽃은 인도와 인도네시아 중국 등이 원산지이지만, 고려 때부터 이 땅의 민초들과 함께 한 꽃이다. 꽃 모양이 상서로워 봉황을 닮았다고 하여 ‘봉선화(鳳仙花)’라고 하며, 순수한 우리말로 변형되어 ‘봉숭아’라고도 한다. 여자들이 손톱에 꽃물을 들여 섬섬옥수(纖纖玉手)로 만들기에 더 친근감이 가는 꽃이며, 그러기에 ‘염지갑초(染指甲草)’나 ‘소도홍(小桃紅)’이라고도 부른다. 요즘 순수미가 사라진 매니큐어 손톱물들이기보다는 훨씬 정감이 가는 향토적인 정서이다.
이 작품은 그 내용에 있어서도 한국적 오누이의 정감이 오롯이 새겨져 있고, 또 그 형식을 살펴봐도 전반적으로 초·중장 3.4.4(3).4의 틀과 종장 3.5.4.3의 틀로 정격으로 이루어져 있어 형식미와 내용미가 어우러져 감칠맛을 드러내 준다. 형식에 있어서 단지 제3수의 중장만이 3.5.3.4.틀로 이루어져 1음수가 초과 되었으나, ‘하얀 손가락마다’라는 의미를 고심한 끝에 ‘하얀 손 / 가락가락이’의 3.5음수로 전환시킨 흔적이 엿보이며 전체적으로 전통적인 율격을 철저히 준수하여 낭송시에 한국적 맛과 멋이 느껴지기에 많이 애송되고 있다.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白鶴)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附椽) 끝에 풍경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님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틈에 불로초(不老草) 돋아나고
채운(彩雲) 비껴 날고 시냇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드노다.
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순박(純朴)하도다.
- 「백자부(白磁賦)」 전문, * 밑줄은 필자
이 작품도 시조 정격의 틀을 바탕으로 백자의 오묘한 내밀성을 잘 묘사해 내어 독자들에게 많은 감명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우선 그 형식을 고찰해 볼 때, 일찍이 조윤제가 제시한 시조의 기준형1) , 즉 초·중장 3.4.4(3).4, 종장 3.5.4.3의 기본 정격의 틀을 비교적 잘 준수하였다. 시조의 전통적 운율미를 바탕으로, 그윽하고 오묘한 소재 자체의 내면적 질감을 섬세한 시어들로 밀도 있게 구성하고 묘사해 낸 솜씨와 심미안이 놀랍기만 하다.
다만, 형식을 살펴볼 때, 밑줄 친 ㉠을 의미 단위로 끊어 볼 때, “이제 막 / 백학(白鶴) 한 쌍이 앉아 / 깃을 접는다.”로 분석될 수 있는데, 본문에서는 정격의 틀을 고려하여 “이제 막 / 백학(白鶴) 한 쌍이 / 앉아 깃을 / 접는다.”의 3.5.4.3음수로 파악되어 낭송시에 의미 체계 분할의 어색함이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밑줄 친 ㉡과 ㉢은 각각 2.5의 음수로 이어진 2어절이지만, 낭송시에 ㉡‘숲을 뛰어/드노다’ ㉢‘이리 순박(純朴)/하도다’의 식으로 4.3 형태로 끊어서 낭송하면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이 작품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을 때, 둘째 연(聯)에 ‘술’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끼칠까 우려하여 둘째 연은 빠져 있었는데, 4연 구성의 전체적 균제미를 고려할 때, 학생들은 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지 못한 셈이 된다.
이 작품도 형식과 내용이 비교적 잘 어우러져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초정이 객관적 상관물을 통하여 작가 내면의 깊숙한 곳으로부터 스며나온 스스로의 얼과 혼을 부어 만든 영혼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을 가만 감으면 구비 잦은 풀밭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백양 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 노을처럼 산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오.
-「思鄕」 전문
이 작품에는 고향상실의 애절함과 그리움이 향토적인 정서로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민족사의 어두운 현실과도 연관성이 있다. 일제 치하의 압제와 착취의 고통을 당하면서 고향에서는 생존이 어려워 고향을 등지는 유랑민이 많이 생겼기에 고향상실감을 노래한 것들이 많았다. 그것은 소외의식과 허무의식에서 오는 상실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초정은 전통적인 맥을 찾아 정통성과 민족정서를 지켜 가는 것이 곧 민족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시조작품에다 민족 정서와 민족혼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리라 생각된다. 전통미를 찾는 일은 곧 우리민족의 정신적인 고향을 찾아 주는 일이었고 그는 그것을 ‘시조’라는 그릇에 정성껏 담아 놓았다. 그러기에 더욱 정겨웠던 옛 고향마을의 정경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도 시조의 전통적 운율미에 입각하여 정격을 준수한 흔적이 엿보인다. 다만, 중장의 초구에 ‘저녁’. ’집집‘ 등의 2음수가 나타나 보이는데, 음보간의 등장성(等長性) 낭송 원리에 따라 율독하면 큰 무리는 없고, 대체적으로 정격을 준수한 작품이며 향수어린 고향의식으로 멋과 맛을 구가한 작품이다.
초정(艸丁) 김상옥(金相沃)의 첫시조시집 『초적(草笛)』이 발간된 것은 1947년이다.
시조집 『초적』에는 「봉선화」, 「백자부」와 「청자부」, 「십일면관음」, 「옥저」 등 뛰어난 작품성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이 알알이 결집되어 있어 시조학적 가치가 뛰어나다.
가람 이병기는 초정의 초기 작품집 『초적』에 엮어진 40편의 작품들을 보고서, 책의 서문에서, “이제 그 말 못하게 곡절 많던 지난 날 우리들의 서러운 정서를 도맡아 가지고 이러고 저러고 읊어낸 이것이 낱낱이 구슬처럼 고와라” 라고 감탄하였다.
초정의 초기 작품들은 하나하나 그 편편마다 정교하고도 섬세한 시어들이 시조의 형식에 따라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때로는 고고하고도 영롱하게 시적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3. 후기작품의 실험성과 일탈성
초정의 시조작품은 초기시조집 『초적』에서 「선죽교」와 같은 작품을 제외하곤 대체적으로 그 창작 형식이 평시조의 정격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올수록 개방적이며 실험적인 창작 성향을 보이고 있는데 그러한 성향은 어디서 연유된 것인가? 처음에 가람으로부터 추천되어 시작된 시조작법이, 후기로 갈수록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자유시 바람에 영향을 받은 것인가?
한국적 정서와 그 표현에 남다른 필력을 지닌 초정은 전통적 율격에 대한 단조로움과 닫힌 문학으로서의 틀에서 탈피하고자 고심을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굽 높은
祭器.
神前에
제물을 받들어
올리는―
굽 높은
祭器.
詩도 받들면
문자에
매이지 않는다.
굽 높은
祭器!
- 제기(祭器) 전문2)
위의 작품은 시조인가, 자유시인가? 아무리 분석을 해봐도 시조의 형식을 갖추었다고는 볼 수 없다. 이 글은 후기에 들어선 초정의 실험적 창작 의도를 간파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문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굽 높은 祭器’의 상징적 의미는 이 글의 창작 의도를 살피는데 주안점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상 전개는 상당히 의미심장하며 압축적이며 상징성을 띠고 있다. 우선 소재의 취재에서 ‘제기’는 일반적인 기물 개념에서 벗어난 신전(神殿)에서 쓰이는 신성한 기물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굽 높은 제기’라 했으니 대상의 신성적 가치를 한층 높인 셈이다.
이 글을 이해하는 데는 초정의 창작활동 초기 즉 등단시기의 정황을 떠올려야 한다. 초정은 가람의 추천을 받아 <문장>지로 등단하였다. 그렇기에 초정이 초기에 전통적 형식의 시조를 주로 습작하게 된 것은 가람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이 분명하며, 시조문학의 선배인 가람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처음에는 한국시의 원형을 전통시조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문력을 추론해 볼 때, 이 글에서의 “굽 높은 제기”는 바로 민족의 신성적 가치를 지닌 ‘전통시조’를 이른다고 봐야 한다.
“詩도 받들면 / 문자에 / 매이지 않는다.”에는 초정의 시 창작에 대한 실험정신을 여실히 드러내준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차원 높은 시의 문학적 가치는 어떤 단순성이나 형식 구조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열린 마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발상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글이 지니고 있는 절제성과 의미심장한 함축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글은 시조 시인이면서도 굳이 전통적 시조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초정의 창작상의 고민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상머리 / 돋아온 달무리 / 시정은 까마아득하다 //
어떤 기교 / 어떤 품위도 / 아예 가까이 오지 말라 //
저 적막 / 범할 수 없어 / 꽃도 차마 못 꽂는다.
- 「백자(白瓷)」 전문
3장 9행으로 이루어진 단시조이다. 작가는 각 장별로 전구는 2열로 후구는 1열로 독특하게 배치하였다. 이 글에서 '백자'의 이미지는 '상머리 돌아온 달무리'로 형상화되고 있으면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지고지순의 적막한 대상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거리감과 경외감으로까지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가면서 적막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배열은 각 장의 독립성을 동일한 구조를 통해 반복적, 점층적 시상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나 잦은 행갈이로 인한 시상 연결의 분열과 단절감으로 주제의 집약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다음에 사설시조형으로 습작된 초정의 작품을 보자.
슬퍼라 가을이여! 서릿발에 서걱일 잎새는커녕, 진구렁 뿌리마저 썩더란 말가. 해마다 이맘때면 살을 긁던 그날의 그 갈대숲, 한강(漢江)엔 인제 등뼈 굽은 피래미만 꼬리치나니.
슬퍼라 가을이여! 차라리 갈대처럼 살갗이라도 긁히고지고. 피가 배이도록 자해(自害)라도 저지르고지고. 사위(四圍)는 둘러 봐야 막막한 무인지경(無人之境). 쉬이 쉬이 손꾸락 입에 대고 하던 말 도로 멈출, 그런 눈짓이라도 만나고지고.
슬퍼라 가을이여! 이미 약물에 산천(山川)은 찌들었건만, 지금쯤 애가 탈 금수(錦繡)로운 마무리. 그러나 이런 걸 비로 울릴 한 가닥 심금(心琴)인들 없단 말이냐. 골수에 스민 방관자(傍觀者)의 뉘우침은 곪아 가나니.
- 방관자(傍觀者)의 노래3)
이 글은 산문시형에 가깝다. 초정의 이러한 유형의 글들은 「도장」, 「화창한 날」, 「어느 가을」, 「슬기로운 꽃나무」, 「갈증」, 「귀갑」 등 상당히 많이 있는데, 이러한 글들이 시조형으로 분류되었다고 하지만, 사설시조의 형태로도 분석하기 힘들다. 초․중․종장 3장이 다 늘어난 형태에다 어느 한 장이라도 시조의 전통 형식을 명확히 준수한 것이 없고 산문조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시조로서의 문학적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 초정이 이러한 글들을 시조에 분류해 넣은 것은 초정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초정이 생각한 시조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초정은 시조의 3장(章) 개념을 ‘장(章)’으로 부르는 것을 꺼리고 산술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도 꺼렸으며, 단지 3행시나 3단 개념의 시적 의미체계로 인식한 듯하다. 3장 개념이 아닌 3행시의 형태에서 각 행의 길이가 길어진 형식으로 3연을 이룬 모습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전통시조의 종장 특유의 음보 체계나 전체적인 음수율 체계는 무의미하게 되고 자유시와의 변별력도 약해진다. 그래서 초정의 후기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지켜져 온 보편적 시조 개념에서 멀어지게 되므로 작품의 시조사적 위치에서 동떨어져 문제시 된다.
여기서 초정 작품의 창작 형태를 동시대 여타 작가와의 그것과 비교 분석해 보자.
초정 시조의 창작 형태 비교 고찰
작가 형식 | 최남선 | 이병기 | 이은상 | 조 운 | 김상옥 | 이호우 | 이태극 |
3장 3행형 | 77 | 103 | 41 | 22 | 15 | 14 | |
3장 5행형 | 7 | ||||||
3장 6행형 | 48 | 37 | 3 | 68 | 53 | ||
3장 7행형 | 1 | 14 | 1 | ||||
8행~12행형,혼합형 | 3 | 17 | 32(40%) | ||||
사설시조 (사설형) | 3 | 1 | 19(24%) | ||||
탈격형 | 3 | 3 | 4 | ||||
계(작품수) | 48 | 83 | 110 | 117 | 80 | 74 | 67 |
* 이 통계표는 『현대시조 100인선』(태학사, 2001년)에 실려 있는 작품만을 대상으로 필자가 분석한 자료이며, 분석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위의 분석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초정 김상옥의 시조는 그 형식면에서 남다른 독특한 습작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특이한 현상은 3장을 8행~12행 등으로 분행한 혼합형이 많다는 것이며, 특별히 사설시조형과 탈격형이 많다는 것이다. 전체 작품 중 40%가 시조의 분행 형태로 보아 8행~12행 또는 혼합형군에 속하며, 사설시조형이 24%에 육박하고 탈격형도 가장 많이 나타났다. 혼합형은 그만두고 사설형과 탈격형만을 일탈군으로 분류해서 보더라도 약 29%가 정격에서 벗어난다.
이러한 자유분방한 실험성과 개방적 형태는 그의 후기 작품들에게서 많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점은 시조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켜나가려는 시인들의 입장에서는 초정의 작품세계를 돌아보고 그 습작 방향을 결정하는데 깊이 참고해야 될 부분이라고 본다.
사설시조를 시조의 영역에 넣을 수 없다는 지론4) 을 참조한다면 초정의 시조는 여타 시조시인들에 비해 그 일탈성과 변격성이 너무나 현저하다.
이러한 결과는 초정의 초기 작품 중 「봉선화」, 「백자부」 등이 그 작품성이 뛰어나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크게 공감대를 형성해온 것과는 상당히 큰 괴리감이 생기는 현상이다.
초정의 초기시조는 전통시조의 운율에 충실하고 적합한 시어의 선택과 섬세한 시어의 조합으로 작품성이 높아 교과서에 게재되고 애송시로 칭송 받는 등 그 문학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후기 작품까지 전반적으로 면밀히 살펴본 결과 그의 시조작품은 위와 같이 그 일탈성과 실험성이 너무나도 두드러진다.5)
이러한 현상을 통하여 우리는 초정작품의 탐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추출해 낼 수 있다.
첫째, 초정의 초기 작품들(시조집 『초적』)은 그 작품성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고 있는데, 그러한 성과는 우리민족의 성정에 알맞은 전통시조의 기본 율조를 잘 준수하면서 습작한 데 따른 결과이다.
둘째, 초정의 시조 작품은 후기에 들어올수록 많은 작품들이 자유시형으로 변형되어 실험성과 일탈적 면모를 보였는데, 이는 정격을 준수한 초기 작품들보다 작품성을 인정받거나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하였다.
셋째, 이러한 현상을 통하여 일탈적인 실험적 작품보다는 역시 전통 시조형식을 준수하면서 운율미와 내용미를 아우르는 창작을 하는 편이 훨씬 더 생명력이 길고 작품성도 높아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4. 맺음말
초정(艸丁)은 이호우(李鎬雨)와 함께 1940년대 전후부터 한국 현대시조계를 대표하는 시조시인으로서, 우리의 전통시조에 현대적 감각을 도입해 그 차원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자 노력하여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온 작가로 평가된다.
그는 시조시단에서 한국적 서정문학의 위치를 한 단계 올려놓았다. 육당과 가람과 노산이 현대시조의 뿌리를 전통의 토양 속에 그 토대를 확고히 이루어 놓았다면, 초정은 그 위에 현대적 감각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자 노력한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초정의 초기 시조는 여타 동시대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견주어볼 때 정점을 그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문학성을 드러내었다. 특히 초정이 처음 펴낸 시조집 『초적』의 안에는 수많은 현대시조의 꽃봉오리들이 다투어 피어났다. 이러한 꽃봉오리들은 언어의 섬세한 조탁과 소재의 출중한 묘사기법를 통하여 창작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러나 작가와 작품의 평가는 더불어 살펴야 된다는 관점 아래, 작품의 영속적 가치 평가에 주안점을 두고 초정의 전후기 전체적 작품을 살펴본 바, 후기로 갈수록 현대적 감각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더욱 확고히 드러나 개방적이며 일탈적 작품성향을 드러내었지만 후기 작품들은 초기 작품들에 비해 그 문학적 가치 면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현상들을 고찰해 볼 때, 바람직한 시조 습작의 방향은 역시 초기 작품들처럼 전통시조의 형식에 충실한 정격형이면서 내용적으로도 서정성이 짙은 창작물이어야 생명력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초정은 고정관념의 울타리를 벗어나 기존 창작경향의 탈피를 시도하여 변혁을 꾀하고자 하였으며, 현대시조 발전의 한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고에서 고찰해본 결과로는 그 시도가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판단되기에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며, 이러한 결과는 오늘날 현대 감각을 추구한다는 미명 아래, 함부로 탈격을 일삼고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일부 시조시인들에게 ‘정격 준수’라는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약력> 이광녕(李廣寧)
문학박사, 시조시인, 문예창작 지도교수, (사)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이사장),
강동문인협회(고문), 한국가곡작사가협회(명예회장), 세종문학회(고문) 등
1) 조윤제가 제시한 시조 기준형은 다음과 같다.
한 수의 자수를 44 혹은 45자에 중심을 두고, "41자에서 50자 범위 내에서,
3 4 4(3) 4, 3 4 4(3) 4, 3 5 4 3 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규정의 최단자수에서 최장자수 내에 신축할 것이다." - 조윤제, 「조선시가의 연구」, 을류문화사, 1948년.
2) 시집 『묵을 갈다가』, 창작과 비평사, 1980, p.74.
3) 『묵(墨)을 갈다가』, 창작과비평사, 1980.
4) 김준은 사설시조의 존립 가치에 대하여 “온전한 시조형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일축하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2010년 만해축전, 시조세미나).
또 박철희도 그의 저서(『한국시사 연구』, 일조각, 1991, 70면)를 통하여 “사설시조는 자유시다.”라고 단언하였으며, 그의 논문(「사설시조의 구조와 그 배경」,『고전시가론』, 새문사, 1995, 442면)을 통하여는 “엄격하게 따지고 보면 그것은 無型詩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설시조에 내재된 이러한 무형시를 확대한 것이 바로 자유시인 것이다.”라고 하여 사설시조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였다.
5) 이러한 초정의 자유시 경향은 1956년 산문시의 성향을 띤 자유시집 『목석의 노래』(청우출판사,1956)를 낸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이라 생각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