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하 22:1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체험한 다윗이 그 은혜를 감사하여 노래를 읊었다. 이 시는 시편 18편에도 소개되어 있다.
이 부분(1-51)과 시18편은 본문상 약간의 차이점들을 지니고 있으나 그것은 다윗 자신의 손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Hengstenberg). 어떤 비평가들은 이 시를 다윗의 작품으로 알지 않고 후대의 것이라고 한다(Duhm, Kittel, Eerdmans, Gunkel). 그러나 그들의 이론은 근거 없는 것이다.
삼하 22:2,3
다윗은 과거에 받은 하나님의 구원 체험에 의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말해준다. 이 부분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열 가지 이름이 중첩되어 있으니, 그것들은 신자의 안전과 구원을 보장하는 명칭들이다.
이것은 그가 과거의 구원 체험에 의하여 역설(力說)한 중복체이다.
"반석"이란 말(* )은 험한 암벽(岩壁)으로 둘러싸인 땅을 의미한다. 이런 땅은 피란하기에 적당하다.
"요새"(* )란 것은 높은 언덕, 혹은 산꼭대기를 방위된 처소처럼 생각하고 부른 이름이다.
건지시는 자. -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신자에게 안전한 요새가 되실 뿐 아니라 위급(危急)에 직면했을 때에 구원자가 되신다.
"하나님"(* )이란 성호(聖號)는 창조주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니(창 1:1), 모든 능력의 원천이요 공급자를 가리킨다.
"바위"(* )는 돌산의 험한 봉우리를 가리키는데 당시의 난공불락(難攻不落)의 땅이었다.
"방패"(* )란 것은 원수의 화살을 막는 것이니 몸에 지닐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앙 있는 자들에게 원수의 화살을 막는 무기와도 같다.
"뿔"(* )은 승리의 능력을 비유하고, "망대"(* )는 원수의 실정을 살피는 데 사용되는 군사 시설인 만큼 하나님의 깨어 지켜주심을 비유하고(시 121:3-8), "피란처"(* )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보호를 비유한다(시 27:5). 그리고 "구원자"(* )는 특별히 신자들을 구원하시는 참 하나님을 가리킨다. 시 68:20참조.
삼하 22:4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역경에서 구원 받은 과거의 체험을 근거로 하여 미래의 구원도 확신함이다. 그 과거의 체험이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는 다음 절부터 잘 보여준다.
삼하 22:5,6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 이 말씀은 다윗의 당했던 환난이 최악의 것이고 또 급박하였던 것임을 밝힌다. "불의"란 말(* )은 극악한 자의 행위인 바 그 세력의 팽창으로 인한 위협은 무섭다.
"사망", "창수", "음부" 등은 극도로 위험한 환난을 가리킨다. 다윗은 그것이 자기에게 불가피적으로 당면되었다는 의미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나를 에우고... 두렵게 하였으며... 두르고 ...이르렀도다"고 말한다.
여기 "두렵게" 한다는 말(* )은 '급히 임함', 혹은 '놀람'을 의미한다.
다윗은 이같은 절박한 위험에 직면하였을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그의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였던 것이다.
삼하 22:7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 하나님은 멀리 하늘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성도를 도와주시기 위하여 땅 위에 성전을 두신 것이다.
곧, 그가 그의 특수 계시의 행동으로 땅 위의 성도들 가운데 성전을 두시고 계신다. 고전 3:16, 6:19 참조.
삼하 22:8
이에 땅이 진동하고 떨며 하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렸으니 그의 진노를 인함이로다. - 신자가 하나님께 참되이 기도하면 부동(不動)의 땅이나 산도 진동하듯 하는 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시 50:15에 말하기를,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하였다. 사망의 골짜기와 같은 위험에서 구원을 체험한 다윗은 간증하기를,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고 하였다(시 68:19).
삼하 22:9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 "코"와 "입"은 비유적 표현이다.
"연기"와 "불"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다. 특별히 출 19:18에서 그렇게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심판자의 위용(威容)을 가리킨다. 그는 사람들의 죄악에 대하여 이렇게 분노를 나타내신다.
삼하 22:10
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 그 발 아래는 어둑캄캄하도다. -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을 드리워 덮어놓듯 그 대적에게 불가피의 압습적(壓襲的) 태세로 나타나심이다.
삼하 22:11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 위에 나타나셨도다. - "그룹"은 하나님을 근위(近衛) 시종하는 영물(靈物)들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임하심의 장엄성을 나타낸다.
삼하 22:12-15
여기서는 하나님의 진노하신 광경을 폭풍우로 비유해 말한다. 이것은 죄인을 싫어하시는 그의 무서운 태도를 보이심에 대한 비유이다.
"광채로 인하여"란 말(* )(13절)은 "광채로부터"라고 번역함이 더욱 좋을 듯하다.
"빽빽한 구름"(12절), "숯불"(13절), "번개"(15절)는 모두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한다. 하나님의 이같은 진노의 표현들은 그의 성도들을 그 원수에게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나타내신 심판적 행위를 상징한다.
삼하 22:17
저가 위에서 보내사 나를 취하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 다윗은 사방으로 문이 막혀 살 수 없게 된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때에도 위로 하늘문이 열려 있음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니, 그 문을 막을 자는 없었다.
"많은 물에서...건져내셨도다"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의 어찌할 수 없는 재앙과 환난에서 구원하셨다는 비유이다. 18-19 참조.
삼하 22:18,19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저희는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 저희가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 다윗은 하나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위협을 당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는 하나님을 의뢰하였으니만큼,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다. 신앙으로 전쟁에 승리한 사실은 다윗의 생애에서 제일 많이 발견된다. 여기 "의지"란 말(* )은 막대기를 의미하는데 몸을 지탱해주는 것이다(시 23:4).
삼하 22:20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 "넓은 곳"은 궁지(곤란한 처지)와 대조된다.
그런데 여기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는 "나를 넓게 하시고"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때에 우리의 지경이 넓어진다.
삼하 22:21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 다윗이 여기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죄 받는 원리에 관하여 말한 것이 아니라 상벌 문제에 관하여 말한다. 우리가 잘하고 잘못하는 데 따라서 하나님의 상벌 문제가 따름은 공의의 법칙이다.
다윗은 그것을 확실히 체험하였다. 그는 어떠한 방식으로 의롭게 살았는가? 그것은 이 아래 27절까지에 진술되었다.
삼하 22:22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하여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 의(義)의 길은 인간의 어두워진 양심에도 있지 않고, 세상의 어느 철인(哲人)에게도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인간은 누구나 부패하고 암매(暗昧)하기 때문이다. 어떤 철인의 말이 단편적으로는 혹시 유용한 듯 하나 그 사상체계(思想體系)는 거짓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유용한 듯한 단편적 사상도 뿌리와 열매에 있어서는 역시 그릇된 것임을 면치 못한다. 그러므로 의의 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하신 "도"(* ) 뿐이다.
"악을 행하여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다윗이 혹시 시험에 빠져 하나님을 떠난 일은 있으나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반역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삼하 22:23,24
그 모든 규례를 내 앞에 두고 그 율례를 버리이 아니하였음이로다(23절). -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여 힘써 지켰다는 뜻이다.
내가 또 그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24절). - "완전하여"란 말(* )은 하나님처럼 완전하다고 함이 아니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경외한다는 의미이다(Delitzsch).
"죄악"이란 말(* )은 꾸부러진 것, 혹은 패역(悖逆)함을 의미한다.
"스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라고 한 것을 보니, 그는 자기의 패역성을 늘 위험시 하여 자신을 쳐 복종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지혜 있는 사람은 먼저 자기를 위험시 하여 경계한다.
삼하 22:26,27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이다. - 사람이 그 행한 대로 하나님의 갚으심을 받는 것을 이 부분에서 밝힌다.
(1) 감사한 것은 인적(人的)으로 행하고 신적(神的)으로 받는 일이다. 그것은 돌을 주고 황금으로 갚음을 받는 격이다. 그 반면에 (2) 무서운 것은 인적으로 밉게 행하면(사람을 미워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미워하심을 받는 것이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이 말씀은 마 5:7과 같다. 자비를 행함으로 하나님에게서 자비를 받게 되는 교의(敎義)는 성경이 특별히 고조한다(마6:15). 약 2:13 참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여기 "완전"이란 말(* )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이다. 누구든지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은 그에게 능력을 주시며 또 그를 총애(寵愛)하신다.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함을 보이시며." 여기 "깨끗한 자"란 말은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자를 이름이다(요일 3:3). 자기를 깨끗하게 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하다(시 119:9).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신다"고 한 말씀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란 말씀(마 5:8)과 같다.
성결한 심령에는 성결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신다.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이다." "사특한 자"란 말(* )은 패역을 의미한다. 주님께서 "거스리심"으로 갚으신다고 함은 그런 자를 벌하심으로 보응하신다는 말씀이다. 나의 시편 주석 174페이지에 있는 설교("강한 원수를 이기는 비결")를 참조하라.
삼하 22:29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 "등불"로써 "흑암을 밝히신다" 함은 하나님께서 인생의 행사에 축복하셔서 번영케 하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번영케 하시는 사람은 그의 천직(天職)에 성공한다. 다윗은 그의 천직이 군인이니만큼 하나님의 은혜로 전쟁에 늘 승리하였던 것이다.
삼하 22:3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 - 다윗은 전쟁할 때에 가졌던 그의 용단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처럼 우리가 죄를 용단적으로 적대할 수 있으면 더욱 귀하다. 다윗이 그렇게 비상한 용단을 가질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 귀절들(31-33)이 잘 밝혀준다.
삼하 22: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무결하여 거짓이 없다.
그러므로 참으로 그 말씀을 의뢰하는 자는 그 말씀의 약속대로 하나님의 보호("방패")를 받는다.
삼하 22:32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바위뇨. - 히브리 원문에는 이 귀절 초두에 "왜 그런고 하면"이란 말(* )이 있어서 윗절의 이유(하나님이 방패와 같으신 이유)를 보여준다. 신 32:4, 사 44:8 참조.
삼하 22:33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온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 - "요새"는 적군의 공격을 당하지 않도록 방위의 시설을 갖춘 곳을 가리킨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그가 우리에게 요새 같이 되어주신다. "나를 온전한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문구(*
)는 "그가 나의 길을 완전케 하시도다"라고 번역해야 된다.
이 번역은 70인역(LXX)도 지지해 준다(* ). 이 말씀은 그가 실족하지 않도록 안전보장해 준신다는 뜻이다.
삼하 22:34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 하나님께서 다윗을 "암사슴"처럼 속히 달음질 하게 하심으로 그로 하여금 "높은 곳", 곧 하나님이 주신 안전 지대에 도달하게 하셨다.
삼하 22:35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활을 당기도다. - 하나님께서는 그를 신뢰하는 자에게 그 사람의 천직에 합당한 기술을 주신다. 곧, 상인이면 상업에, 농민이면 농업에, 문인이면 문필에, 군인이면 전쟁에 필요한 능력을 주신다.
삼하 22:36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시고 너그럽게 도와주신 결과 다윗이 크게 위대해졌다는 말이다. 하나의 목동으로서 일국의 왕이 된 것은 주님의 은조(恩助)로만 된 것이다.
삼하 22:37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로 실족지 않게 하셨나이다. - "넓게 하셨다"는 말(* )은 평탄케 해 주신 것을 가리킨다. 진정으로 평탄한 길은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는 길이다.
삼하 22:38-43
이 부분에는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한 형편을 진술한다. 곧, (1) 전쟁에 있어서 다윗은 전진(前進)이 있었을 뿐이고 후퇴가 없어서 늘 승리하였다고 함(38-40). 사실상 다윗은 군사 행동에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였다. (2)
원수들이 도망하게 됨(41-42). 원수들이 이상하게도 겁약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되어진다. 원수들이 궁지에 빠지게 됨은 그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혀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3)
전쟁에 쉽게 승리함(43절). 티끌을 부스러뜨림 같이 쉽게 승리를 거두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서만 되는 것이다.
삼하 22:44-50
다윗은 여기서 (1) 자기를 이스라엘의 내란 속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말하고(44절 상반), (2)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들을 자기에게 귀화하게 하신 사실에 대하여 감사한다(44 하반-50). 이렇게 이방인들이 그에게 순종한 점에서도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의 모형임을 볼 수 있다. 사 55:4-5 참조.
삼하 22:51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말하고, 겸하여 그 후손에게 대한 그의 축복이 영원할 것을 예언한다. 여기 이른 바 "영원토록"이란 말(* )은 다윗의 자손이신 그리스도의 나라를 내다본다. 세상 나라는 영원토록 서지 못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나라만이 영원하다(눅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