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권 제6강. 마음의 방 2: 공의의 수호자들 (The Lords of Justice)
사랑하는 진리의 파수꾼들이여, 이 엄위한 공의의 방에 발을 들여놓기 전, 우리 영혼의 뼈대를 곧게 세울 구약의 두 장엄한 선포를 가슴에 새기십시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잠언 21:3)
우리 내면의 왕국, '마음(The Heart)'의 두 번째 방에는 눈가리개를 하고 손에 저울과 칼을 든 위대한 군주들, 바로 '공의의 수호자들(The Lords of Justice)'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샬롯 메이슨은 이들을 정직(Honesty), 진실함(Truth), 공평(Fairness), 신의(Fidelity)라고 불렀습니다.
제1막. '내 권리'가 아닌 '타인의 권리'를 지켜주는 맹렬한 의무
이 시대가 외치는 '정의'와 성경이 말하는 '공의'는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은 정의를 "내가 부당하게 빼앗긴 내 권리와 이익을 되찾는 것"으로 가르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이건 불공평해!", "이건 내 권리야!"라고 핏대를 세우며 자기 방어적인 이기주의를 정의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샬롯 메이슨과 성경적 공의의 핵심은 철저히 방향이 반대입니다. 공의란 "타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와 존엄성을, 내가 침해하지 않고 지켜주는 맹렬한 의무"입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의 평판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진실), 내가 갚아야 할 빚(감사와 의무)을 정확히 갚는 것(정직), 내 기분과 상관없이 상대방을 편견 없이 대하는 것(공평). 이 위대한 공의의 수호자들이 깨어날 때, 아이의 영혼은 피해의식에 찌든 투덜이가 아니라, 타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숭고한 기사(Knight)로 각성하게 됩니다.
제2막.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 의무로서의 도덕률
여기서 우리는 서양 철학의 두 거성,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와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지혜를 소환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것(Suum cuique tribuere)'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물질의 분배가 아닙니다. 타인의 명예, 타인의 시간, 타인의 영혼에 대한 존중을 마땅히 갚아주는 거룩한 성품의 훈련입니다.
여기에 칸트의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을 더해 보십시오. 칸트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이 '모든 사람이 따를 수 있는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한 번쯤 거짓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 내면에서 이런 유혹이 속삭일 때, 공의의 수호자들은 칸트의 도덕률과 하나님의 율법을 들고 일어나 단호히 내리쳐야 합니다. "내 기분이나 상황(조건)이 진실을 굽힐 수 없다! 정직은 타협할 수 없는 절대 의무다!"
제3막. 공의의 세 가지 영역: 물질, 생각, 그리고 타인의 명예
이 공의의 수호자들은 우리 삶의 세 가지 구체적인 영역에서 맹렬히 활동해야 합니다.
물질의 공의 (정직):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 것은 기본입니다. 남에게 빌린 돈이나 물건을 잊지 않고 돌려주는 것,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않는 투명한 물질관입니다.
생각의 공의 (공평): 이것이 가장 치명적입니다. 우리는 종종 특정한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그들의 동기를 악의적으로 넘겨짚습니다. 생각 속에서 타인을 불공평하게 재판하는 것, 이것이 가장 교활한 불의입니다.
말의 공의 (진실): 타인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험담(가십)과 뒷담화는 살인과 같습니다. 반쪽짜리 진실로 타인을 기만하는 행위, 부풀려 말하는 과장도 영혼의 저울을 속이는 끔찍한 범죄입니다.
제4막. 십자가: 사랑과 공의가 입 맞추는 영광의 자리
마지막으로, 이 위대한 두 방, '사랑의 천사들'과 '공의의 수호자들'은 반드시 하나의 자리에서 만나 폭발해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사랑만 있다면 죄를 묵인하는 타락에 빠지고, 공의만 있다면 용서가 없는 잔인한 정죄에 빠집니다. 인간의 타락한 마음은 이 둘을 절대 하나로 묶어낼 수 없습니다. 오직 죄를 끝까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공의'와, 그 심판을 아들에게 대신 쏟아부으신 위대한 '사랑'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입 맞추었을 때(시 85:10), 우리의 내면 왕국도 비로소 완전한 평화(샬롬)를 얻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이 십자가의 신비를 끊임없이 가르치십시오! "공의의 칼로 너 자신을 엄격히 베어내고, 사랑의 피로 이웃의 허물을 덮어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