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물구나무서기
박경선
비장의 무기
마당 귀퉁이 붉은 철쭉꽃이 활짝 피었다. 엄마랑 꽃 앞에 서서 사진도 찍었는데.
“부처님이면 네 애미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실 게다.”
자비하신 부처님을 믿으면 복이 온다는 할매를 따라 산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면서 온갖 생각을 했다.
‘홍기네 엄마도 집 나갔는데 나만 할매 따라 절에 가서 빌어야 하다니.’
‘하긴 자비하신 부처님이라도 집에서 마음속으로 비는 홍기한테 복 주고 싶겠냐? 내가 부 처님이라 해도 성의를 보여야 복 주겠지!’
하는 마음에 부처님께 보여드릴 비장의 무기를 생각해내었다.
사리암에 닿았다. 법당에 부처님이 혼자 앉아 계셨다. ‘앗싸!’ 할매랑 들어가 부처님께 합장하며 꿇어앉았다.
“자비하신 부처님, 불쌍한 우리 며늘아기 어디 있든지 잘 보살펴주소서.”
할매가 정성껏 절을 올리고 밖으로 나서기 바쁘게 나는 ‘이때다’싶어 입고 있던 윗도리를 들추어 엄마 사진을 부처님께 내어 보이며
‘이 사람이 우리엄마에요. 꼭 찾아주세요.’
하고 물구나무서기를 해보였다. 다른 불자들은 부처님 앞에 와서 절하는 모습밖에 보여주지 않아 심심하던 차에 내가 물구나무서기를 보여드리며 부탁드린 것이다. 앉아있던 부처님이 얼른 걸어와 물구나무서느라 흘린 내 이마의 땀을 닦아주며 ‘그래, 기억하마!’하시는 것 같았다. 공손히 절을 한 번 더 올리고 기분 좋게 돌아서는데 댓돌 앞에 서있던 스님께 딱 걸렸다.
“꼬마가 불심이 대단하구나. 그래 부처님께 뭘 빌었니?”
‘스님이 어디까지 봤을까? 물기나무 서기 한 것을 봤다면 멱살 잡힐 텐데.’
덜덜 떨렸다.
“우리 엄마요. 우리 엄마 좀 찾아 달라고요.”
어물대며 운동화를 겨우 찾아 발을 쑤셔 넣자마자 후다닥 법당을 뛰어 내려갔다.
“야, 우리 명식이, 이 할매보다 더 오래 기도하다니. 이제 불자 다 됐네.”
할매가 기다리고 있다가 웃으며 대견해 하셨다. 할매의 오해는 착각이지만 자유다. 굳이 변명을 하고 싶지 않아 나도 그저 따라 웃으며 절을 내려왔다.
2. 쌀 한 봉지
더운데, 할매는 아침부터 또 절에 갈 차비를 챙겼다. 점심을 굶으며 쌀 한 톨도 아끼던 분이 쌀을 판에 여러 차례 부어놓고 싸라기는 다 가려내고 온전한 쌀만 봉지에 담았다.
“오늘이 네 애비 기일이여. 절에 가서 향 피우고 네 애미를 위한 기도도 올려 봐야제.”
아빠보다 엄마 기도를 올린다는 말에 들로 나가 노란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었다. 꽃다발을 할매에게 맡기고 쌀 봉지를 담은 베낭을 메고 앞장서서 꼬불꼬불 산길을 올랐다. 암자에 닿자 법당에 들어가 나는 부처님 앞에 꽃다발을 놓고 할매는 쌀 봉지를 풀어 헤쳐 놓았다. 쌀 봉지의 하얀 쌀알이 아빠의 웃는 이빨처럼 보였다. 나한테 ‘지 엄마 닮아서 뭐든지 지 멋대로야’하며 고함을 질러대고 엄마한테도 밥상을 둘러엎는 아빠였는데, 죽어서 부처님 앞에서 웃어주다니. 그러고 보니 내가 가져간 꽃은 아빠가 언젠가 결혼기념일이라며 꺾어와 엄마한테 내밀던 바로 그 달맞이꽃이었다. ‘아빠도 우리에게 다정했던 적이 있었네. 아빠!’
‘그래. 할매 모시고 잘 왔다.’
초와 향이 타는 냄새가 매캐해서 눈물이 났다. 삼배를 올리던 할매는 할매 대로 코를 풀었다.
“부처님, 명식이 애비, 저승에서는 배 안 골고 극락왕생하게 해주소서.”
산길을 걸어 내려오는 길에 할매는 또 아빠이야기를 꺼냈다.
“아유, 좀 쉬었다 가자. 전선 공사가 그리 쉽더냐? 네 애비는 사고 나는 날도 아침을 굶고 갔어. 그날이 생일이었는데…… . 밥 한 그릇 따스하게 못 먹여 보낸 게 한이여!”
나는 부처님께 쌀 봉지를 들고 온 할매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버릇없이 난폭한 짓만 해대던 아들이지만, 어디 있어도 배불리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 나도 1학년 때 운동회 날, 혼자 운동장 구석에 쳐박혀 점심시간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을 때 엄마가 도시락을 사들고 나타났던 것이 생각났다. 식당 설거지 일이 쳐 밀렸을 텐데 사장님께 어려운 소리를 하며 헐레벌떡 달려왔다가 갔다. 내게 점심을 먹이려고 …….
할매랑 절에 다녀온 뒤로 내가 변했다. 아빠에 대한 미움도 조금 가시고 할매한테 툴툴거리 던 버릇도 줄어들었다. 흙바닥에 아예 털썩 엉덩이를 깔고 앉아 채소밭의 풀을 뽑는 할매 옆에 나도 쪼그리고 앉아 머리에 햇볕이 따갑도록 풀을 뽑다니. 그러다가 일사병 걸리면 죽는다며 할매를 나무 그늘로 끌고 갔다. 할매가 정말 돌아가시면 나는 고아원에 가야 할까? 그 전에 엄마가 돌아올까?
3. 비닐하우스
쓸쓸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엄마가 좋아하던 치자나무가 얼어 죽자 할매랑 텃밭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다. 긴 대로 지주를 세워 구부린 뒤 채소밭에 남아있는 채소를 비닐로 덮었다. 비닐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큰돌을 뜨문뜨문 놓으니 한골짜리 비닐하우스가 되었다.
저녁을 먹으며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다.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이 보일러시설도 안 된 비닐하우스에서 자다가 얼어 죽었다는 기사가 났다. ‘한곱분’ 엄마 이름은 안 나왔지만 눈물이 났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할매 몰래 일어나 비닐하우스로 갔다. 비닐을 잡고 있던 돌멩이 두 개를 들치고 고개를 쑥 들이밀어 보니 조금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엄마가 이런 비닐하우스 속에서라도 살아있으면 좋을 텐데…… .’
“이것아, 자다 말고 와 여기 와 있노? 하여튼 별난 놈이여. 비닐 속은 따스해서 상추랑 이것들이 안 얼어 죽어. 들어가자. 얼릉!”
내가 뭘 걱정하는지도 모르는 할매를 따라 들어가면서 혼자 엄마생각을 했다. 엄마도 라오스의 외할매 병원비를 보내지 못해 걱정하면서 우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아빠랑 다투는 것도 돈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집을 나갔으니 엄마는 아빠가 사고 난 것도 모를 것이다. 까만 하늘의 별이 반짝였다. 나는 별을 쳐다보며 기도했다.
‘엄마, 엄마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내가 커서 돈 많이 벌어 엄마 다 드릴 때까지 엄마는 죽지 마. 알았지요?’
4. 봄날 차방에서
또 봄이 왔다. 엄마 소식을 기다리던 철쭉꽃이 시들어 떨어지는 날, 개미들이 ‘힘내!’ 하며 내 흙발을 간질였지만 나는 힘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할매는 또 절에 가자고 하셨다. 부처님은 자비하지도 않고 영험하지도 않은데 왜 가느냐며 짜증을 냈다.
“이것아, 오늘이 네 애미 생일이제. 멀리 시집와서 고생만 하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 르니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제발 살아있게 해달라고 빌어봐야지.”
허적허적 나서는 할매를 따라 나서며 나는 내 머리를 주먹으로 ‘쿵’ 쥐어박았다. 나는 나만 생각하고 서운한 것만 생각하는데, 할매는 늘 온 가족을 생각하고 사는 분이다. 엄마 이름도 곱분이라고 지어주며 살뜰히 정을 주었다.
절에 가자 우리는 마당에 서 계신 스님께 합장을 했다. 그런데 스님이 내게 걸어오시더니
“어, 물구나무서기! 저번에 부처님께 빌던 일은 잘 되었니?”
하셨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다리가 덜덜 떨리는데 할매가 무슨 말이냐며 끼여 들었다. 그러자 스님은 우리를 차방으로 데려가셨다. 거기서 할매는 차를 마시며, 엄마가 라오스에서 시집 왔고 우울증을 앓다가 돈 벌러 간다며 집을 나간 일을 다 말해버렸다.
“이것도 인연이구먼. 실은 내가 외국인 노동자들 돕는 일도 좀 하지요.”
하며 찾아보자는 말에 나는 품속에 넣어 다니던 엄마 사진을 꺼내어 뒷장에 ‘한곱분’ 엄마 이름을 적어 스님께 맡겼다. 스님은 그날, 세상은 내편이라며 마음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나는 그 말을 스님께 부터 써먹으며 돌아왔다.
‘스님도 내편!’
5. 자비하신 부처님
절에서 돌아와, 여름 가고 가을 가고 부처님에 대한 기대가 점점 옅어져가던 겨울날, 할매는 스님이 절에 다녀가라고 전화 했다며 나를 데리고 절로 갔다. 할매도 나랑 똑같이 신나 있었는데 절은 고요했고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스님을 찾자 스님은 차방에서 차를 우려내며 기다리고 계셨다. 따스한 차를 권하며 사진 두 장을 내놓으셨다. 한 장은 내가 맡겼던 사진이고 한 장은 스님이 가져온 사진이었다. 그런데 머리를 삭발한 엄마였다.
“한곱분 며느님이 폐기물 재생공장에서 일하고 있더군요. 외국인 노동자 복지센터 일을 하 는 친구를 만나 무심코 한곱분씨 이야기를 꺼냈다가 특이한 이름 때문에 쉽게 찾았지요.”
나는 그것이 스님이 말하던 ‘인연’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삭발은?”
내가 놀랐듯이 할매도 엄마의 삭발사진에 놀라서 스님께 물었다.
“나도 물어봤지요. 중도 아니면서 왜 삭발했냐고? 돈 벌어 라오스 홀어머니 병원비 보내고 있는데 중간에 집에 오고 싶을까봐 끊었데요. 집에 연락도 그래서 끊었고. 하지만 곧 모 친이 퇴원하면 휠체어 살 돈만 보내주고 집에 돌아올 거라네요.”
집에 오기 전에 내가 꼭 물어볼 게 있어서 스님 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스님, 저…… 혹시 우리 엄마도…… 비닐하우스에서 살아요? 텔레비전에서요. 외국 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자다가…… .”
‘얼어 죽었다’는 뒷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스님이 몸을 앞으로 기울여 말없이 내 머리에 두 손을 얹었다. 나는 와락 불안해졌다.
‘우리 엄마도 비닐하우스에서 살구나! 아니면 어저께 뉴스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살던 슬레이트집에 불이 났던데……. 설마 우리 엄마도? 차라리 비닐하우스에 살아도 안전하게 살아만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니 금새 내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고개를 숙였다. 스님이 내 머리를 두 손으로 따스하게 감싸며 말했다.
“걱정 놓아라. 네 엄마는 외국인 노동자 복지센터의 도움을 받아 공장 기숙사에서 살아. 직접 만나봤는데, 뭐 힘든 게 없냐 물었더니만. 글쎄, ‘명식, 명식’하며 울더라. 너 보고 싶은 것 참는 게 가장 힘들다는 말이었어.”
엄마가 자는 곳이 비닐하우스가 아니라는 말이 살아있다는 말로 들리자 또 눈물이 났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자비로운 부처님 은덕이시구만요. 불쌍한 며느리를 이리 지켜 주시니…….”
옷소매로 눈물을 찍어내는 할매를 못 본 척하며 나는 법당으로 슬슬 걸어갔다. 부처님이 진정, 정말로 고마워서 절을 올렸다.
“자비하신 부처님, 우리 엄마, 비닐하우스 아닌 데서 살아있게 해주셔서 고맙고요. 제가 엄 마 있는 아이가 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 홍기 엄마도 좀….”
‘홍기네 엄마도 얼른 찾아야 우리 엄마 찾았다는 자랑을 대놓고 하지. 다음번에는 홍기한 테도 물구나무서기를 연습시켜 데려 와야지.’
산길을 내려오는데 눈발이 하얀 찔레꽃 꽃잎처럼 크게 날리며 나를 따라왔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울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니까 엄마가 따라와 꼬옥 안아주는 것처럼 마음이 따스해졌다. 엄마만 안전하게 살아 있다면 어디에 계시든 힘이 난다.
21.2.7. 30
대구문학 2021년 3월호(162호) 박경선 동화 물구나무서기를 읽고
알레고리적 상상력과 동심의 결합- 김경흠 (아동문학 평론가)
박경선의 <물구나무서기>는 문장 자체가 주인물 명식이의 심정과 맞아떨어지도록 서술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문장의 자유분방함도 느껴지지만 주인물 명식의 행동이 천진하면서도 엉뚱한 면이 작품 곳곳에 묘사되어 있어서 웃음을 자아내개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루고 있는 스토리는 다문화 가정 아이의 엄마에 대한 절실한 소망이 담겨 있다.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명식이는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엄마를 찾아달라고 빌면서 부처님께 자신을 기억시키기 위해 절과 함께 물구나무서기를 곁들인다. 끝내 스님의 도움으로 엄마의 소식을 듣게 되면서 희망의 결말을 맞이한다. 이 동화는 안타까운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분망한 문체와 주인물의 엉뚱한 행동으로 보다 긍정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는 작품이었다. 모성지향의 특징은 아동문학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경향이기는 하지만 작가만의 독특한 필치와 문학적 독창성이 발휘되어 색다른 감동을 던져주었다. 동화에서의 작가가 보여주는 독특한 감동 방식과 필치를 통하여 읽는 즐거움을 느낀 3월이었다.
박경선
등단: 아동문학평론에 동화 당선, 새한신문에 수필, 아동문예에 동시 등단.
저서: 동화집 『너는 왜 큰소리로 말하지 않니 』 『바람새』 등 23권 출간
수상: 청구문학상, 영남아동문학상.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우수작품상,대구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