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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깍지와 함께 유업을 얻지 못한다.
65-04~29~b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GOOD TV 다번역 영어 킹 제임스(흠정) 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갈라디아서4:27절~31절에서 제가 여기 표시해 논 걸로 아는데, 저는 이 성경구절을 읽고 싶습니다.
27.기록된 바, 수태하지 못하는 자여, 너는 기뻐할지어다. 산고를 치르지 못하는 자여,
너는 소리 지르고 외칠지어다. 황폐한 자가 남편 있는 여자보다 더 많은 아이를 두느니라, 하였느니라.
28.형제들아, 이제 우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아이들이니라.
29.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태어난 자가 성령을 따라 태어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지금도 그러하도다.
30.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노예 여자와 그녀의 아들을 내쫓으라.
노예 여자의 아들이 자유로운 여자의 아들과 함께 상속자가 되지 못하니라.
31.그런즉, 형제들아, 이처럼 우리는 노예 여자의 아이가 아니요 자유로운 자의 아이니라.
*주님, 이제 주님의 귀중한 말씀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어젯밤에 몇 가지 적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전에는, 제가 어떤 곳에서,
일주일에 한 집회만을 가졌을 때는 저는 제 머리 속에서 아주 분명하게 그 구절들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25세가 지난 후에 저는 그 전처럼 기억을 할 수 없습니다.
이 늙은 차는 오래 달렸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한은, 저는 저의 모든 동작으로 저를 구원해 주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정말 이상한 제목입니다. 씨는 깍지와 함께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제가 여기 성경귀절에서 결론을 낸 것은, 갈라디아서4:27절에서, 세 절로, 물론 바울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의,
문자 그대로의 씨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것을 이용하고 싶은 이유는 여러분이 그것을 꼭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가 만약 시간을 넘기면, 저는 그것을 오늘밤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바로 주일 학교 공부처럼 가르치고 싶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제 생각엔,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여러분 남자 중에 어떤 사람은 저보다 이것을 더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절대로 신학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만약 여러분이 이것에 대해서 저와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어젯밤에 여기에 어떤 친절한 자매님이 제게 버찌파이를 구워서 가져 왔을 때 제가 했던 것처럼 하십시오.
오늘 아침 제 호텔 방에 앉아서, 저는 씨 하나를 씹었지만, 저는 계속 파이를 먹었습니다.
그냥 씨를 빼놓고, 아시겠죠, 네, 그리고 그냥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계속해서 드십시오.
바울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하나는 사라에게서 나왔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갈에게서 나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둘로 대표가 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셋으로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늘 셋으로, 하나님께서는 완전해 집니다.
성경의 수학은 늘 완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셋으로 완전해지시고, 일곱으로 예배를 받으십니다.
여기 아브라함의 두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아들 중의 하나 여야만 우리는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아브라함의 다른 아들 중의 하나여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약속으로 그와 함께 기업을 이을 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또 다른 아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의 첫째 아들을 하갈이 낳았고, 그의 둘째 아들을 사라가 낳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셋째 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그것은 아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알아보려고 하는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셋으로 항상 완전하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저는 모든 사람 앞에서 제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신학자들한테, 이 일들은 바로 제가 그것을 보는 식이라고, 그것이 제게 나타내어진 식이라고 말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혼자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영원하신 분이셨기 때문에, 아시겠죠, 그때 그분은 신도 아니셨습니다.
신은 하나의 “예배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로고스는, 우리가 그것을 부르는 것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말씀입니다.
누구나 그것은 주님의 천사였음을 알고, 아니면 주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광야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했던 언약의 천사, 그 로고스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로고스가 육신이 되셨고, 우리 가운데 사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1장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주님께서 그분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주심으로써, 그분의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처음부터 쭉,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고, 그분 자신이 다른 시대들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셋,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은, 세 속성들 안에서 일하시고 계시는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입니다. 교회 그 자체이자, 창세전에 교회를 갖고자 했던 하나님의 생각의 한 속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태초에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생각이었고, 그분의 생각은 그분의 속성들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셨고, 그러니까 그 언약은 조건부였습니다.
“만약 네가 이것을 하지 않으면, 만약 네가 이것을 한다면.”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을 때는 조건부가 아니고, “내가 그것을 이미 했느니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부로 아브라함한테 주셨습니다.
자, 그것으로,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았고,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어야만 합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뿐만 아니고, 아브라함 후에 자손에게도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자 만약 여러분이 주의해 보면, 그것은 아브라함 후의 자손에게도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자 만약 여러분이 주의해 보면, 그것은 그 후의 “자손들”이 아니고, 그 후의 “자손”이었습니다.
사라한테는 그 약속이, 좀 의심 되어졌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사라가 아브라함한테 하갈을, 이집트인 젊은 여자를 아내로 취하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 약속된 자손을 일으키시려는 방법일거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제가 어젯밤 말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원 계획에서 벗어난 어떠한 움직임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망쳐버립니다.
우리는 원 말씀에서 이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어제 저녁에 말했지만, 아니 그제 저녁이었습니다.
발람에 대해서, 그는 하나님의 대답을 받았었고, “가지마라.”라는 딱 부러지고 분명한 대답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허용된 뜻을 갖고 있었습니다. 만약 원한다면 당신은 그렇게 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해 주시지만, 그래도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의 허용된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한 뜻이 무엇인지 구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오늘날 이 땅에서, 허용된 뜻으로는 정당하게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뜻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한테 사라한테서 아이가 나오겠다고 말씀하신 후에, 그것은 세상을 축복할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의심은 절대로 아브라함이 한 것이 아니고 사라가 했다는 것입니다.
여자에 의해서 말입니다. 사라는 그것을 의심해서, “하갈을 취하소서”하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냥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했습니다. 좀 의심했습니다. 보십시오. 이삭은 약속한 사라에게서 난 자유 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의심으로 계집종에게서 난 이스마엘과 함께 기업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울이 여기서 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한 가지를 의심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의 어떤 일을 무너뜨립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 계획과 함께 유업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해하십니까? 그것은 유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로 제가 아주 강력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이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아주 강력하게 조직된 종교들을 공공연히 비난하고 있는 이유를 여러분한테 보여줄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시면 아마 저는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과 함께 기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조직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것입니다.
처음 조직되었던 첫 번째 교회는, 니케아에서 조직된 로마 천주교였습니다.
계시록17장에서, 말씀하시기를, “그 여자는 창기라, 그리고 그녀의 자녀들은 모두 음녀라.”
창기란 자기 남편한테 진실 되게 살지 않는 여자입니다.
음녀도 똑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튼 교회가 되었고, 조직된 체제로서, 형제우애를 갈라놓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교회를 합쳐서 조직하려고 애썼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불가능했습니다.
그것을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는(WCC)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중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거기 서 있는 친구, 당신이 뭘 압니까?”합니다.
교육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습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제 교육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여러분이 제 사역에서 보는 이 입증들은,
그것은 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여러분한테 그것은 진리라는 것을 알려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갖으시겠습니까?
거짓말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저는 절대로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축복하시는 것은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은 이삭과 함께 유업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좀 의심해서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조금 의심해서. 그 역시 아브라함의 씨였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마엘, 지금 제가 여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저는 성령께서 이것을 정당하게 진짜 뜻을 여러분에게 나타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만약 이스마엘과 이삭이 함께 기업을 받을 수 없었다면,
하나님의 원 계획이 하나님의 허용된 계획으로 바꿔졌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던 허용된 뜻으로. 오늘날 영적인 교회도 교파와 함께 유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교파들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축복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 영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유업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파 교회에서 나온(이름뿐인 교회, 육적인 교회에서 나온), 선택된 자들인 그리스도의 신부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저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가 이 모든 교파들이 이 안으로 소위 늦은 비라고 부르는 것 안으로,
아니면, 성령을 부어 주시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그 일이 이루어지면, 종말이 오리라”하고 말씀하신 것을 아십니까?
그때, 어리석은 처녀와 슬기로운 처녀가 함께 유업을 받지 않았습니다.
때가 되서...어리석은 처녀는, 처녀였지만, 단지 기름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기름을 사러 갔을 때,
바로 그때 신랑께서 오셨습니다. 그녀가 기름을 사러 간 동안 그녀는 버림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이해하십니까?
저는 정말 그것을 잘 소화하시기를 원하는데. 이제, 분명히 더 이상 그 주제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보십시오, 영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은 절대로 함께 유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휴거는, 신부는, 슬기로운 처녀는, 부름을 받은 자는, 이미 예정된 자, 선택된 자는!
정말, 여러분 사업가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을 아무렇게나 이행하신다고 생각하려는 사람들처럼
여러분의 사업을 운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누가 구원받고 누가 구원받지 못할 것인지를 아셨습니다.
예정으로, 선견(미리아심)으로, 그분의 모든 일원을 보셨고, 어린 양의 생명책에 모든 이름을 녹명하셨습니다.
세상이 있기도 전에, 예수님께서는 그 책에 녹명 된 사람들을 찾아서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구속의 책을 “자신의 피”로 사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속하셨고, 그 책에 녹명된 모든 이름들은 주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셨을 때 구속을 받았습니다.
제가 여러 번 말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오늘 아침 여기 있는 것이고, 여러분이 이 모든 조직들과 그런 것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당기고 있는 무엇이 있습니다. 독수리가 암탉 밑에서 알을 깨고 나왔다고 했던 제 생각처럼, 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교회는 여러분에게 뭔가를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어떤 것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고, 당신은 그것 때문에 태어났던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은 말씀의 한 부분입니다. 당신이 손에 낀 장갑처럼, 당신은, 그것에 꼭 맞아 들어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여기 함께 모인 것입니다. 모인 이유는, 남부출신인 제 엄마가 늘 “유유상종”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여러분은 공통되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똥가리와 비둘기는 공통된 것이 없습니다. 한 비둘기가 말똥가리 밑에서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다 할지라도
그들의 식성은 다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원래 무엇 이었느냐? 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해서 비록, 그 비둘기가 그 말똥가리 한테 얼마 동안 엄마라 하고 있어야 할지 모르지만,
결국 그는 그의 짝을 찾을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이시고 신랑이시며, 그 신부는 신랑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루어져야 하는 이 말씀은 예수님 시대에 이루어졌었던 말씀의 똑같은 부분이고,
그것은 똑같은 말씀이고 똑같은 체험, 똑같은 영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분리시키셨을 때, 그는 둘 다였습니다. 우리는 아담이 원래 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그리고 나서, 창세기2장에서 계속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영적인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육체로 되었을 때, 이 땅에서 동물 육체로,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신부를 묘사하고,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또 다른 한 인간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원 창조물인 아담의 부분을 가지시고, 그에게서 갈비뼈 하나를 빼내어, 아담에게서 여성 영을 빼내시고,
거기에 남성 영은 두시고, 그리고 여성 영을 여성부분에 집어 넣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영의 부분이고, 그의 몸의 부분입니다; 그의 살 중의 살이고, 그의 뼈 중의 뼈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말씀이고, 하나님 생명의 생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신부를 그렇게 여기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의 씨의 승천(휴거)이 먼저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흰 보좌 앞으로 심판을 받기 위해
나올 것입니다. 자 만약 당신이 요한복음5장24절을 보면, 이것을 들어보십시오,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자 그것은 어떻게 많은 우리의 신학 설과 그렇게 많이 다를 수 있습니까?
지금 제가 여기를 나가서 술꾼한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 믿습니까?” “물론이죠.!” 다른 사람의 부인하고 있는
한 남자한테, “믿습니까?” “물론입니다.! ” “그 말씀을 들으려고, 어젯밤 집회에 앉아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당신 그것을 믿습니까.?” “네, 믿습니다.!” 그는 그냥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원 해석은, “내 말을 이해하고, 나를 보내신 이를 믿으면.” “이해하는 자,”
그것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나니,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 올 것이요. 내 양, 내 비둘기는, 내 음성을 듣고 그들은 타인을 따르지 않으리라.”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그의 말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적인 씨는 운반체일 뿐이었습니다. 먼저 이스마엘로 해서, 둘째 이삭, 그리고 씨까지 내려왔습니다.
바로 옥수수의 줄기, 술, 그리고 껍데기처럼. 자, 여기, 씨의 세 단계가 우리한테 진짜 그림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오늘 아침 여러분이 저와 함께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보고 있습니다.
저는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보는 자연적인 것을 가지고 해야만 합니다.
제게 알게 해 주신 영적인 것의 예를 들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문법적인 것으로 이해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늘 영적인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예시하십니다.
만약 성경책이 없었다 해도, 그래도 저는 기독교가 옳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왜냐면 지구 전체가 죽음, 장사, 부활로 윤회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죽음, 장사, 부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나무의 수액을 보십시오. 어떻게 그것이 잎사귀를 내고, 과일이 떨어져서;
추운 겨울을 위하여 땅 속으로 돌아가고, 잔디 밑으로; 봄에 다시 올라오고, 새 생명으로 매년 증거 합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고, 죽음이 있고, 부활이 있음을. 태양은 아침에 뜨고, 바로 태어난 애기는, 매우 약합니다.
7시나 8시에, 학교를 갑니다. 10시나 11시에, 대학교를 나옵니다. 그것은 한 11시에서 3시까지,
그 활력으로 빛이 나고, 그리고 나면 그것은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저녁이 되어서 그것은 내려가고, 약해져서 늙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죽고, 그것이 그것의 끝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다음날 아침 다시 떠오릅니다. 아시겠습니까?
진짜 성경책인 모든 자연은 이 성경책과 함께 증거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오늘 아침 여러분한테 보여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연계를 통해서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만들어져 있는 자연계 왜냐하면 자연계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과학처럼, 그들은 자연의 법칙과 그 모든 과정을 알 수 있지만 그들은 그 자연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그들은 자연의 생명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동력 없는 기교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자, 줄기와, 술 그리고 깍지를 주의해 보십시오. 여기서 하갈은 줄기를 나타냈습니다.
그것은 약속으로 시작된 첫 번째 생명이었습니다.
사라는 술을 나타내거나, 화분을 나타내고, 술로 나왔습니다.
처녀 마리아는 진짜 영적인 씨를 낳았고 나타냈습니다. 정말 진짜 줄기를 나오게 하였습니다.
하갈과 사라는 둘 다 성 관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의 능력으로, 처녀 출산이었습니다. 그녀는 진짜 씨를 낳았습니다.
줄기인 하갈은 둘째 부인이고, 약속을 의심해서, 약간 의심해서 만들은 것입니다.
당신은 그것의 어느 것도 약간 의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바로 그 말씀대로 받아 들여야만 합니다.
그것은 해석이 필요 없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 말씀은 사사로이 풀 것아 아니니.”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해석하는 어떤 우리의 학교도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단지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것을 꼭 아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확증하시고 그것을 살게 만드실 때, 그것이 말씀의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거기에 빛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해석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처녀가 잉태하여,”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녀는 잉태했습니다. 그것은 해석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필요치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세요, 우리가 그 해석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해석을 갖고 있어요.”하는 신학교와 그런 것들이 필요치 않습니다.
하나님 그분 자신께서 그분 자신의 말씀을 해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서 해석하는 사람이 누구도 필요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이 있겠다,”고 말씀하시면, 그 일은 일어납니다.
그분께서, “마지막 날에,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저는 교파가 뭐라고 말하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하셨습니다. 어떻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해석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해석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보는 이 일들이, 지금 여러분한테 신비스럽게 보이는데, 만약 여러분이 기억한다면,
여러분 오순절교인들, 여러분의 복음은, 30년이나 40년 전에는, 감리교와 침례교 교회한테 그만큼 신비였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신비인 것처럼. 하지만 이제 그것을 말씀에서 찾으십시오.
오순절교가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처럼 저도 여러분한테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 위에 하나님께서 돌아보시고 말씀으로, 그것은 그렇다고 말씀하시면, 그때 그것은 그렇다하는 것을 확증하고,
그것이 하나님 자신의 해석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대신해서 해석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 하갈은, “약간”으로 인해!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거기에서 한 마디도 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록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책의 끝 부분에서, 그리고 그 책 맨 처음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르셨습니다. “누구라도 그 말씀에서 한 마디라도 떼어 없애버리면!”하셨습니다.
단 한마디를 잘못 해석해서 세상에 없었던 모든 질병과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만약, 이 모든 대 혼란을 가져온 것은 한 마디를 그냥 약간 잘못 해석해서,
그리고 이 가장 중요한 말씀을 반대하는 어느 조그만 것 때문에 이 모든 대 혼란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의 아들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써, 이 끔찍한 일을 하나님께 화해시
키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말씀을 지키지 않고서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겠습니까?
“글세”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 그것은 창세기에 있었던 일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느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여러분한테 말하겠습니다, 계시록, 그것은 성경책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 예언의 책에서 한 마디라도 빼거나, 그것에 한 마디라도 더한다면,
그의 부분도 생명책에서 제하여 버리리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책의 중간에서! 거기에 다시 세 증거가 있습니다.; 창세기, 신약, 그리고 오늘날에.
예수는 가라사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뜻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학자들, 대제사장들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이들 제사장들은, 그들의 대-대- 대-대-대 선조들께서도 제사장이어야 했습니다.
거기에서 한 마디를 잘못 해석하는 것은 그러니까, 그것은 무조건 죽는 형벌입니다. 한 마디 빼 버린 것 때문에,
그들은 돌로 쳐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말씀의 잘못된 해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씀 그 자신께서;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메시야가 오시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 포대기에 메시야를 싸서 보내셨지만, 그들은 그것을 쌀 수 없는 다른 포대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합시다.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교파주의나 지적인 포대기에 싸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권능과 부활의 포대기에 싸여 있고,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표명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 대로입니다.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의 포대기에 싸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 하갈은, 여자에 의해서, 하나 약간 틀림으로써. 자 아브라함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는...하나님께서 발람한테 가라고 하셨듯이 똑 같은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말씀과 약간 틀렸기 때문에,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은 것입니다.
그는 거친 사람이어서 절대로 정복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활로 살았습니다. 그는 거친 사람이었으며 오늘날도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사라는 술이나 꽃가루이고, 사라는, 약속의 진짜 부인입니다.
그녀는 온유한 사람을 낳았고, 약속한 나라를 세울 사람을 낳았습니다. 보세요,
그렇지만, 마리아는, 성 관계없이, 약속에 의해서,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을,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것처럼, 그렇지만 그 약속을 믿었던 것처럼. “주의 계집종이오니”했습니다.
보십시오, 줄기가 아닌, 원래의 씨를 낳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아브라함이 믿었던 그리고 마리아가 믿었던 말씀이셨기 때문입니다.
자, 마리아는 그 씨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껍데기였을 뿐입니다.
씨를 통한. 그 다른 둘은 생명의 운반체였고, 단지 자연적인 씨였을 뿐입니다.
마리아 자신은, 씨가 아니었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 같은 것으로, 말씀의 더욱 더 분명한 형상을 낳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말씀이셨기 때문입니다. 껍질처럼, 밀의 알곡은, 껍데기가 밀알을 안에 간직하고 밀알이
성숙해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때, 그것은 그 여자를 떠난 씨 그 자신이셨습니다.
바로, 그 여자의 태 속에 있었던 씨와 같습니다. 그녀는 씨가 아니었습니다.
여자는 씨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씨이십니다.
자, 피에 대해서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유태인의 피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아, 우리 이방인을 통해서도 권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생 라합과 모압 여인 룻, 그리고 등등, 그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합니다.
그런데 모두 그것에 대해서 권리가 없습니다. 둘 중에 어느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유태인도 이방인도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고, 로고스이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말씀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운행하시기 시작하시면서, 바다의 생명을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로고스께서, 말씀께서,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거기에 있으라,”그리고 거기에 말씀이신 로고스가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로고스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 안에, 모든 시대에 대한, 성경 말씀 전체에 그리고 로고스가 이 땅에 생기를 넣기 시작하면서,
바다의 생명을 내셨고; 나아가서, 새의 생명에서, 동물의 생명까지를 내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기에 그 형태로 어떤 것이 나왔고, 아니면 그것을 만들고 있었던,
그 위를 운행하셨던 것처럼 보이는 것, 하나님,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의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 사람은 타락했습니다. 씨가 떨어져야만 하는 것처럼.
그리고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서 감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을 보내셨고, 엘리야를 보내셨고, 그 분께서는 모세를 보내셨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계속해서 보내셨습니다.
그 형상을 다시 찾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 이 땅에 다시 하나님 그분 자신의 진짜 형상이 나왔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로고스가 육체로 되어서 우리 가운데 살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똑같은 로고스께서는 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신부를 갖고 계십니다.
그 똑같은 로고스, 이 말씀은 바꿔질 수 없으며, 오늘날 모든 교회 위를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 말씀을 말씀의 완전한 표명으로 회복하시려고. 그 선지자들은 그 씨의 운반체였습니다.
그리고 교파교회들이 지금 그 씨의 운반체입니다. 자 보십시오. 빨리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껍데기가 싸고 있는 것처럼, 씨를 갖고 있는데 이제, 다음은 씨가 그녀를 떠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의 아버지는 지극히 높으신 로고스 그 자신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모두 모세한테 부어 주실 수 없었습니다. 그는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늘 어김없이 꼭, 선지자한테 옵니다.
성경에서, 아니면 성경이 쓰여진 후로, 말씀의 옳은 해석이 신학자에게 온 적은 어느 곳 어느 때도 없었습니다.
성경에 없습니다. 절대로 바리새인한테 오지 않았고, 사두개인한테도 절대로 나타내지 않으셨고,
그리고 절대로 그들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세우시지도 않았습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도 절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부흥이 일어나자마자, 그들은 모두 같이 모여서 그것으로 한 조직을 만들고, 그것은 거기서 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던 것은 어떤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가 그것을 설명하도록 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지금 이 씨가, 교회가, 여자가 얼마나 같게 보이는지 보십시오. 씨 그 자체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지만 씨가 땅속에 묻힐 때, 그것은 원 씨입니다. 그것이 나올 때, 그것은 생명을 갖고 나옵니다.
하지만 밀의 씨에서 나온 생명은 무엇을 합니까?
그것은 그 당시의 똑같은 밀의 줄기나, 똑같은 밀 알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그것은 밀의 생명이지만, 그것은 운반 단계에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맨 처음 종교개혁이었습니다.
루터가 대 혼란의 암흑 속에서 나왔을 때, 그것은 죽어야 했습니다.
아주 흔히, 사람들은 동정합니다. 오, 저는 얼마 전에, 침묵의 하나님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근데 철학자들 중에 어떤 이들이 쓴 것입니다. 사람을 하나님께로부터 멀게 하려고 애쓰는 자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을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쉽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하나님의 계획과, 그분의 프로그램을 알면, 믿음으로 당신은 그것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을 증명하십니다. 바로 그분께서 다른 시대에 행동하시고, 증거 하셨던 것처럼 하십니다.
그것이 모세가 흔들릴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고 대화를 나눴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전에 아브라함과 함께 했던 자이며, 내가 이 약속을 만들은 자이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
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감히 그 사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옛 선지자가 말씀한 것같이, “사자가 우는데, 누가 두렵지 않을 수 있느냐?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느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약속하신 것, 그 나타내신 것을 보고, 그 일들을 볼 때,
당신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당신은 그대로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 일은 일어날 것입니다. 보십시오,
모든 신비스런 일들을. 하지만 그것은 바로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그 일이 있으시라고 말씀하셨던 그대로입니다.
여자는 난자를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만드십니다. 그 혈색소(헤모글로빈), 그 피는 남성 안에 있습니다.
암탉은 알을 낳을 수 있고, 또 새도 알을 낳을 수 있고, 봄에 자기 둥지를 만들고, 하지만, 만약 암컷과 수컷이 함께
있지 않았다면, 그 알은 부화가 되지 않습니다. 그 알은 죽습니다. 그것은 바로 둥지에서 썩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 번 말했듯이, 그것이 오늘날 교회에 있는 문제입니다. 그들은 바로 둥지에서 썩고 있습니다.
감리교다, 침례교, 오순절 교, 등등이라 부르면서. 만약 그들이 하나님 말씀, 그 자체와 연합을 맺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들의 조직에서, 바로 그 둥지에서 썩습니다.
자,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대체로 신교도들은 난자를 낳은 것은 마리아였다고 믿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보십시오.
그 난자는 감정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난자와 정자 둘 다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바로 하나님 그분 자신께서 육체로 되셔서 우리 가운데 사셨던, 임마누엘이셨습니다.
그냥 단지 좋은 사람이나, 선지자가 아니셨습니다. 뭔가 부족한 하나님도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좋은 분이시고 선지자이셨으며, 선생이나 신학자가 아니셨습니다.
오, 그분은 아마 그분은 그 모든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 중에 모든 것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하나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제 삼위나 제 이위가 아닌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분, 하나님 그분 자신께서,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께서, 마리아를
덮으셨습니다. 창조주께서 그 피 세포를 둘 다 창조하셨고, 그 생명을, 그리고 난자를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것을 유대인에게 보여 줄 수 있다면, 여러분, 그들은 메시야가 누군지 알 것입니다.
잔 라이언이 벤톤하버에서 고침을 받았을 때, 40년 동안이나 장님이었는데. 그 랍비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당신은 하나님을 세 토막으로 내서 유태인들한테 하나님을 줄 수 없습니다.” 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세 조각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은 선지자들을 믿습니까?”하고 물었고, 그는 “물론입니다. 나는 선지자들을 믿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사야9장6절에서,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서 났고” 한 말씀은, 이사야가 누구에 대해서 말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 그는 메시야 였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메시야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그는, “그분이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정확하게 맞습니다. ‘그의 이름은 모사라. 평강의 왕이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하고 말했습니다.
거기서 단일성 설이 오해한 곳입니다. 거기서 삼위일체가 오해한 곳입니다. 양쪽 다 오해한 것입니다.
하지만 중용은 바로 그 두 편 중간에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아버지일 수 있고,
만약 예수님께서 그분 자신의 아버지이셨다면,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주님께서 하나님 말고 또 다른 아버지가 있었다면, 그런데 성경은 이르시기를
“성령”이 주님의 아버지이셨다고 합니다. 만약 그들 둘이 다른 영이라면, 주님은 사생아 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것이 주님의 아버지였습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성령이십니까?
당신이 하나를 말하고 당신이 얼마나 난처하게 되겠는지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주님의 아버지이셨습니다. 맞습니까?
마태복음1장18절에서, 이르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자 누가 예수 님의 아버지이십니까? 보십시오, 제 말뜻을 이해하시죠? 자 보십시오.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저는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아버지이셨다.”고 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 신학자들, 당신들은 왜 이해할 수 없습니까? 자,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라!”
그 진짜 씨가 마리아한테서 나왔지만, 그것은 그 여자의 씨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녀가 이르기를, “주의 계집종이오니.”하고 말했습니다. 그 생명의 운반체는 여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자, 마리아로, 그 씨는 더욱 더 가깝게 된 것입니다.
하갈은 그것을 곡해된 길로 받아야 했습니다. 사라는 그 일을 의심해서, 그것을 그냥 자연적인 씨로,
성적인 욕망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전혀 어떤 성 관계없이, 말씀이 육체로 된 것입니다.
보세요. 마리아는 그 씨를 그녀의 태 속에 갖고 있어서, 그것은 그녀의 씨처럼 보였습니다.
오순절 교도 그렇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마태복음24장24절에서, “마지막 날에는, 그 두 영이...” 자 옛날들이 아닙니다. “끝 날에 입니다.
그 두 영은 너무 같아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순절 교 영, 아주 틀림없는 진짜 것 같아서, 너무 완벽해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할 것입니다.
자, 그것은 저의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 나중에, 여러분이 제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 깍지는 더욱 그 씨처럼 보였습니다. 꽃가루보다도 더욱, 그리고 줄기보다도 더욱 더, 원래의 씨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그 씨의 운반체일 뿐이었습니다. 보십시오, 루터가 조직을 만들었고, 그 줄기는 죽었습니다.
웨슬리가 조직을 만들었고, 그 꽃가루는 죽었습니다. 오순절 교가 조직을 만들었고, 그 생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씨가 나오고 있는데. 씨 다음은 더 이상 없습니다.
모든 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큰 운동이 일어나면, 그 뒤로 재빠르게 한 조직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부흥회의 기간은 길어야 한 3년인데, 그 다음은 그들은 그것을 조직하고, 한 조직을 만듭니다.
많은 것들이 거기에서 나와야만 합니다.
마치 루터에게서 나간 많은 것들처럼, 그 잎사귀들; 그리고 웨슬리, 꽃가루에서 나온 많은 것들;
그리고 그 오순절 교의 잎사귀들이 나오고, 단일성설, 이중성설, 삼중성설, 사중성설, 오중성설, 오 세상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이름으로 조직(교파들)을 만들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20년 동안이나 나타내셨지만! 한 조직도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조직은 모두 늦은 비 운동처럼,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들처럼 죽을 것입니다.
지금은 종말, 씨 시대인데, 그것은 껍질과 함께 기업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이삭과 함께 유업을 받지 못했던 것같이. 말입니다.
지금 여기서 그녀가 얼마나 닮았는지를 보십시오, 속일 수 있을 만큼 닮았습니다.
루터는 줄기입니다.; 웨슬리는 옥수수 수염이고; 그리고 마리아는 껍질입니다,
아니면 태내, 아니면 오순절 교입니다.
제가 여기 이 껍질에 대해서, 더 나아가서, 여러분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시대를 통해서 그것은 바로 지금 만큼 그렇게 유사하게 된 적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교회,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라고, 교회, 교회하지만, 보십시오. 그 “여자”를…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태초에 원 약속을 의심했던 사람은 “여자” 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어기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그분의 말씀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원래 말씀을 확증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사라는 말하기를, “아마, 불확실한 일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오늘날 사람들한테 있는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엇 안으로 들어가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거기에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눈을 가리고 걷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떤 것 안으로 들어가려 애씁니다.
그들은 넘어질 것입니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예수님께서 각 시대마다 교회들이 그러리라는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그 인용문을 만드신 것입니다.
잘 보십시오. 우리는 씨(알곡)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그 씨는 (무엇을?)갖겠습니까?
씨를 지탱하고, 협동 작업합니다,
씨를 가지고. 깍지는 그 목적 때문에, 씨를 가지고, 거기에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태양이 이른 봄날 떠올라서, 밀 위를 비취고, 그 계절을 통해서, 하루를 통해서 모든 것이 아주 완전하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모든 자연을 보십시오. 자, 따뜻한 햇볕이 그 씨 위를 비취기 시작할 때,
그것은 위로 나옵니다.
하지만 세상은 씨가 땅에서 올라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런 식으로 나와야 하고, 그리고 그 씨가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런 식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암흑시대에서...그것이 나오도록 하는 데에는,
어떤 이들은, 제가 말했듯이 침묵의 하나님이라는 책을 쓴 이 비평가, 그는 이르기를,
“모든 암흑 시대를 통해서, 그들 불쌍한 순교자들은 죽었습니다.
그들 성도들은 죽음으로 떨어졌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마치 그분은 상관하지도 않으셨던 것처럼 하늘나라에
앉아 계셨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고, 불쌍하고 무식한, 장님 된, 영적으로 장님 된 사람. 만일 그의 눈이 뜨일 수만 있다면!
씨가 다시 나올 수 있기 전에 씨는 죽고, 썩기 위해서 흙 속에 묻혀야 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초대 천주교를 통해서 오순절 교회는 죽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줄기 형태로 나왔지만 보십시오, 이제 얼마나 같은 모양으로 자라고 있습니까? 루터 시대, 웨슬리, 오순절 교 시대를 통해서 그 하나 하나를 여러분 이해하십니까?
자 그것은 주님께서 이 땅에 갖고 계셨던 원 사역으로 그대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부이고, 그들은 하나입니다.
자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어떻게 이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약속과 같이, 말라기4장, 누가복음17장30절, 그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오, 얼마나 더 많은 성경구절들이, 한도 없이!
계속해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자, 그 태 속인, 오순절 교 조직은, 아주 정확하게 진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계시록17장을 봤습니까?
거기서 첫 번째 조직인, 로마 천주교를, “음녀”라고 했습니다.
몇 분이나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아십니까?
몇 분이나 그녀가 창기들의 어미였다는 것을 압니까? 어떤 사람이 음란한 여자입니까?
자, 주님께서 이 여자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음녀가 무엇입니까?
그녀의 결혼 서약에 진실 되지 않은 여자입니다. 무엇이 창기입니까? 같은 것이고, 같은 말입니다.
자, 그녀가 출산을 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출산입니까?
말씀과 연합한 출산이 아닌, 조직과 연합한 출산입니다. 여기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교, 등등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들의 어미의 버릇을 물려 받았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한 못된 여자가 처녀 딸을 출산할 수 있는데;
그렇게 첫 번째 복음이 나왔지만, 성화에 대한 진리를 루터 시대에 보여 줬을 때,
그는 그것을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보내셨을 때, 감리교에 나타내셨고, 그들은 그것을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결실 때가 오순절 교에게 나타내어졌을 때, 그녀도 역시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조직됐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씨의 운반체 역할을 해 왔을 뿐입니다. 아시겠죠.
보십시오, 그것은 그냥 간단합니다. 바로 이것처럼, 바로 밀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처럼 단순합니다.
여러분 그것은 어떤 위대한 신학적인 해석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그것을 지켜보십시오. 주님은 항상, 바로 여러분 가까이에 계십니다.
보십시오, 자, 그 깍지, 줄기, 그리고 등등은 단지 말씀의 운반체들입니다. 그들은 말씀의 한 부분을 가졌습니다.
*깍지(교파 교회)로 부터 나와 이 시대 독수리의 기름부음을 받은 말씀의 빛으로 우리는 성숙하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름부음을 받은 말씀만이 신부들을 성숙시켜 휴거에 이르게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위로와 소망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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