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행위에 대한 시(詩),이제는 사리(舍利)로 남아/*문효치 시인
그를 잘 아는 평론가를비롯한 시인들은 그를 일컬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가 이제까지 쓴 모든 시는 삶의 행위의 결과로 빚은 사리나 마찬가지이다.사리란 오랜 고행을 통한 노스님의 다비의 결과일 텐데 그의 시속에서 사리가 나온다는 이야기란 바로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정신의 맑고 투명한 사리라는 말이 될 것이다.그의 시에서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관심사이기도 한 삶이란 무엇이고 이 삶을 어떻게 살아있는 동안 영위를 할 것인가,또한 삶이란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그의 삶의 경험을 통해서 조명하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많은 시인들이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하였겠지만 문효치 시인처럼 자신의 존재 의식과 존재조건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고 이를 시로 옮긴 시인은 드물것이다.
그는 여타 시인들이 이러한 삶의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 화려한 수식어와 관용어, 또는 현학적인 수사를 동원해서 표현하여 독자들에게 자신의 시에 접근하기를 바라고 있는 시인들과는 달리 평범한 자신만의 언어를 통해 삶의 근원적인 믄제에 도달하려하고 잇다. 그래서 드는 자연현상, 즉 새나 동물의 삶과 바람과 흙, 꽃 등의 존재의미를 자신의 존재에 연결시켜서 동화를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장자(莊子)의 자연주의와 일맥상통하는 그런 자유주의 사상을 일치감치 시에 결부시키고자 노력한 시인이라는 점이다.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자신과 동의어가 되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속에서 삶을 누리는 일체 만물에게 생명력을 부여해서 함께 노래하는 시인으로 남는 다는 점이다.
새는 어디론지 날아가/ 한줌 흙으로 잠자는데// 울음 소리는/ 아직도 가지에 빨갛게 달려서/ 더욱 큰 소리로 울고 있다.
―「감나무」에서
새가 날아다니는 것의 끝은 죽음이고 그 죽음은 곧 흙이 되고 살아있는 새의 울음이란 죽음을 예비하는 몸짓이다.우리의 삶도 이와 어긋나지 않는데 살아서 울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시간의 존재는 영원과 맞닿아있지만 인간의 삶의 한계는 그와 반대인 한시적이고 언제인가는 모두가 흙이 되어서 이 땅에서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 그 사라지는 동안에의 존재를 어떻게 인간다운 몸짓을 갖고 사느냐하는 것이 바로 문시인의 자문이고 그것이 화두이기도 한 것이다.
새가 날아가 감나무에 앉는 것은 감나무가 새의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마땅하기 때문이다. 감나무에 앉아서 어떤 이득을 바라고 희망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도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집을 찾는다.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인간은 호화스런 집에 값비싼 가구와 장식물을 늘어놓기를 좋아한다. 인간은 누구에게 과시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허망한 일이다. 인간도 새와같이 영원히 날아갈수도 없고 생명의 시한을 결코 벗어날 수가 없기에 그저 휴식의 장소로 마땅하다는 것, 이런 집에서 영우너을 꿈꾸고 영원하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가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새가 날아가다가 죽는 것과 같이 사람도 언젠가는 좋은 집이거나 허술한 집이거나를 막론하고 죽게 되어있다. 삶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고 이동안 시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한 시인 문효치, 이순(耳順)의 나이가 훌쩍 지나고 이제 살만큼 살았다고 여겨질 때 그제서야 아름다운 시어와 금강석보다 더 단단한 생각의 시가 저절로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그의 간단한 이력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943년 전북 옥구군 옥산면에서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
196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바람 앞에서」 196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산색」
시집: 제1시집『煙氣 속에 서서』 제2시집『武寧王의 나무새』 제3시집『백제의 달은 강물에 내려 출렁거리고』 제4시집『백제 가는 길』 제5시집『바다의 문』 제6시집『선유도를 바라보며』(문학아카데미) 제7시집『남내리 엽서』(문학아카데미)*2001년 문예진흥원 우수도서 시선집 『백제시집』(문학아카데미)*2004년 올해의 청소년도서
저서: 『시가 있는 길』(문학아카데미) 『문효치 시인의 기행시첩』(문학아카데미)
수상: 동국문학상 시문학상 평화문학상 시예술상 펜문학상
경력; 배재중학교 등에서 오래 교직생활 『신년대』동인 『진단시』 창립 동인 현대시인협회 부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장 역임 동국문학인회장 역임
현재 : 계간 [문학과 창작] 주간 계간 [문예운동] 주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심의위원장 <세월> 동인(문효치, 박제천, 홍신선, 하덕조, 이길원, 신용선, 홍희표, 이계홍, 이상문, 유재엽, 이원규, 김학철) < 세월> 회장 역임,강남문인회장 동국대, 동덕여대, 대전대 출강 주성대 겸임교수
문효치 시인을 가장 잘 나타나게 하는 시가 있다. 그것이 비천이다. 하늘을 나른다는 것인데 이 시는 그를 아는 독자들로부터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시이다.그래서 그를 일컬어 비천의 시인이라고 하는 독자들도 있다.
*비천(飛天)
문 효 치
어젯밤 내 꿈 속에 들어오신 그 여인이 아니신가요?
안개가 장막처럼 드리워 있는 내 꿈의 문을 살며시 열고서 황새의 날개 밑에 고여 있는 따뜻한 바람 같은 고운 옷을 입고
비어있는 방 같은 내 꿈 속에 스며들어 오신 그분이 아니신가요?
달빛 한 가닥 잘라 피리 만들고 하늘 한 자락 도려 현금을 만들던
그리하여 금빛 선율로 가득 채우면서 돌아보고 웃고 또 보고 웃고 하던 여인이 아니신가요?
그 여인은 꿈에 나타난 여인이다.꿈에 나타난 여인은 그가 평소에 생각하던 이상형의 여인이 될 수도 있고 흔히 볼수 있는 술집의 작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꿈에 나타난 이상 이미 작부가 아니고 그렇다고 이상형의 여인도 아니다.그저 그런 여인이지만 웬일인지 그여인을 만나고 싶어지는 것은 삶이 그를 괴롭히고 힘들게 만들어서일까.꿈에 나타난 여인치고 이름을 말하고 이름이 아니더라도 과거의 어떤 인연을 이야기하는 여인은 하나도 없다.그러나 그 여인을 만나면 무엇인가 반갑고 소원같은 것이 이루어질만하다는 데 어떤 가치를 둔다. 그렇다고 여인의 얼굴이 생각이 나는 것도 아니다.
잠에서 깨면 여인의 얼굴은 행방불명이 되지만 문득 그 여인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있는 것이다.그것은 살아있다는 데 대한 불확실하고 희망에 대한 절망같기도 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 아무런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없을 때 문득 꿈에 나타난 이름모를 그 여인의 존재, 그러나 생각해보니 그 여인의 얼굴을 기억할 수가 없다. 다만 아름답고 마음씨 착하고 지금의 마누라와는 비교가 도지 않는 그 꿈속의 여인에 대한 향수,그것은 이상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바다 어둠
바닷물에 젖은 어둠이 내 살 속에 들어와 있던 물새 한 마리 지우고 있다.
내 뇌 속에 고여 있던 종소리 한 떨기
내 피 속에 섞여 있던 햇빛 한 다발
내 뼈 속에 짓고 있던 절 한 채 지우고 있다
바닷물에 젖은 걸쭉한 어둠이 내 속을 걸어다니며
저기 아득한 시간 그 바깥의 머나먼 나라로 나를 밀어내고 있다.
바다의 어둠을 바라보면 자못 두려움과 뭔가 모를 공포감을 자아내게 한다. 그 어둠은 나를 함몰시키고 존재 자체를 아예 우습게 만들어버린다.그러나 그 어둠 속에 숨어버리고 싶은마음도 든다. 어쩐지 어둠은 그에게 삶의 마지막 도피처인지도 모른다. 바다는 그 어둠을 더욱 장엄하게 만들고 범접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그 어둠이 그리워진다는 것은 웬일일까. 태고로부터 이어진 무궁한 세월속에 나의 존재는 가치없이 스러져 버리고 그 어둠만이 존재할 때 나는 갈길을 잃은 방랑자가 되기도 한다.그는 이 어두운 바다의 끝에서 문득 삶의 허무와 무력함을 절실히 느끼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그 누군가가 절대자나 종교적인 어떤 대상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늙은 愛人에게
時間의 疾風속에 오히려 무거운 秋序가 드리운다.
古宮을 지키던 솔잎이 스스로 흙으로 돌아갈 때
이젠 늙어 주름진 손으로 단단한 동아줄을 비벼 꼬아
늙은 愛人이여, 바람 속에서 네 그네를 네가 구을러 닝닝한 푸르름의 彈力위에 한 편의 이야기 책을 써가듯 풀어가듯 그런 모양으로 感動케 해 다오.
가슴에 씹히는 저 아름답고 서러웠던 記憶들을 훨훨 날리며 성큼 건너가라 裟婆. 한없이 몰아가는 疾風끝에 더욱 찬란한 하늘은 열려오고 愛人이여, 그때는 다시 그윽한 사랑도 많겠다.
사랑이란 젊었을때하는 운동경기와 같다고 생각할때 나이가 얼추 든 지금 그 젊었을 때 사랑하던 여인을 다시 만난다면 그것은 늙은 애인이 될 것이고 오직 살아잇다는 그 자체만으로 반가운 존재,그것이 늙은 애인에게 갖는 기쁨이 아닐까.젊은 시절 가졌던 많은 대화가 이재는 행방불명이 되고 삶의 고단한 흔적만이 남아있는 현실의 냉혹함은 아련한 추억마저 짓밞아 버리고 만다. 그러나 늙은 애인과 함께 고궁을 거닐면서 나눴던 그 많은 대화들, 젊고 싱싱하고 희망에 넘쳤던 어쩌면 요즘의 젊은이들보다 더 진한 이야기가 오갓던 그 사어(死語)와 같던 언어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잇을때 늙은 애인은 그 자체로서 기쁨을 준다. 삶의 허망함 속에서 구원을 찾는 그 몸부림이 역력하게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혼자 앓는 病
病중에서도 몹쓸 病은 혼자 않는 사랑의 病이다.
온 몸의 구석구석을 뜨겁게 달구는 身熱은 드디어 메마른 영혼의 씨방을 불태워 버린다.
그 아픔은 奈落의 벼랑보다 깊고 그래서 건져낼 수 없고,
그 孤獨은 햇빛보다 우뚝하여 그래서 허물어낼 수 없다.
천 가지 색깔의 바람과 천가지 모양의 소리가 번개와 천둥으로 함께 몰아와 血戰을 벌인다.
마침내 靈肉을 한 줌의 재로 날려버리고 마는 남몰래 앓는 사랑의 病이다
사랑의 병은 다른말로 말해서 생명의 병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사랑이란 생명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무엇인가 딱 부러지게 이유를 말할 수 없지만 그 사랑의 병은 나를 암울하게 만들고 엔진이 꺼진 자동차처럼 꼼짝을 못하게 만든다.생명과 사랑,그것은 남을 진정으로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와닿지 않는 병명도 없는 병이다.
그 병을 앓는 사람은 마음이 심약하고 적극적이지 못한 마음이 착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다. 문효치 시인은 그가 살아온 과정에서 경험했던, 그리하여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생명과 같은 사랑을 나이가 든 지금 몸을 떨면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끝나고, 사랑이 끝난 뒤의 그 상실과 종말의 아픔을 겪은 뒤에, 다시 텅 빈 육신의 한 구석구석에서 소스라쳐 깨어나는 사랑을 볼 줄 안다. 그러기에,
텅 빈 육신의 한 구석/ 저 혼자 텅텅 내리치는 가슴의 고동에 소스라쳐 깨어나는/ 사랑아, 너를 잊고 있었구나. ―「煙氣 속에 서서」에서
이렇게 노래한 것이다. 고독한 병실의 방문을 거부하는 그는 중환에 부대끼면서도 그 중환이 무엇인가의 새로운 탄생의 모태가 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붉게 터져/ 죽음을 헤집고 솟아오르는 새 살을 지켜보는 것은/ 다만 혼자서 즐기는 부활일세. ―「병중(Ⅱ)」에서
우리는 「부활」의 밑바닥에 어떤 信仰이 버티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것이 기독교이든 불교이든 여기서 섣불리 단정하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가 復活의 信仰에 눈을 뜨기 시작했을 때, 그가 깨달은 것은 지난날 수없이 죽음을 되풀이해 왔다는 것이다. 그의 삶의 행위는 죽음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영원한 반복이지, 오직 일회의 종말이 아니다. 이제 그의 삶의 진상이, 삶의 근본적 구조가 어렴풋이 밝혀진 셈이다.
나는 죽었었을 것이다./ 천안열차 충돌 사고 현장에서/ 물렁물렁한 머리를 기관차에 부딪고/ 서울에의 여행길에서/ 벼란간 죽었었거나 ―「삶」에서
이같이 죽음을 되풀이하면서 그는 살고 있다. 그의 말대로 한 번이 아니고 몇 천 몇 만 번을 죽어서, 인구와 경제, 핵무기와 전쟁이 논의되는 몇 천 몇 만 번째의 저승에 와서 마치 한 번도 죽어본 일이 없는 것처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문효치는 이렇게 말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시는 삶이나 목숨과 뗄수 없는 관계에 있고 사교의 방편이나 오락, 기쁨,파한과같은 차원을 넘어선 곳에 시는 비로소 존재의 가치가 잇는 것이다.물론 사교나 파한과 같은 행위도 삶의 한 행위이긴 하지만 시와 삶이 공존하는 자리는 그런 안이한 차원을 넘어서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하는 근원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삶이 어려운 것과 같이 시를 쓴다는 것 자체도 어려운 것이다.
문효치시인은 시를 낭만의 대상으로 쓰는 것을 거부한다. 그에게 있어서 시는 생명과 같은 것이다.시를 통해서 그는 삶을 영위하고 시를 통해서 신앙에 접근하고 또 시를 통해서 철학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시를 인생의 가치 일순위로 올려놓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면서 그 삶을 시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접근을 한다.한국의 시인가운데 이렇게 시라는 무기를 통해서 삶을 조명하고 반성한 시인이 과연 몇이나 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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