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흑백 사진 속에서 기차를 보니 가슴 깊숙히 자리하고 있던 유년 시절 기차와의 추억이 아련히 되살아 났다
내가 자란 소도시는 교통의 요충지여서 기차로 환승이 가능한 사통팔달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버스보다 기차를 많이 이용했다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는기차역은
유럽풍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일제시대에 지은 서울역을 닮은 건물이었다
어렸을 적 엄마 마중 나가던 기차역 얼른 보고 싶어서 기차 시간표 보고 도착시간 보다 일찍 나가서 기다렸다
당일 새벽 기차로 가셨다 저녁에 오시는건데 오래동안 헤어졌다 만나는 이산 가족처럼 설레어 기다리는 시간은 1분이 10분 같아 마른 침만 꼴깍 삼키곤 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기차역은 언제나 활기차고 신나는 곳이었지만
제복 입은 역무원 아저씨가 말 안들으면 잡아간다는 순경아저씨인 줄 알던 나는
멀리서 봐도 겁이 나고 무서워서 오금이 저렸다 혹시 역무원 아저씨와 마주칠까봐 죄 지은것 처럼 슬금슬금 피해 다녔는데
어느 날 대합실에서 역무원 아저씨가 다가와 내게 말을 붙이는 바람에 기겁을 하고 울음을 터트렸던 기억이 선명하다
하얀 연기로 범벅인 기차가 세상에서 제일 큰소리를 지르며 플랫홈에 서면
드디어 개찰구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속에서 기다리던 엄마를 발견하고는
검표하는 역무원아저씨가 무섭다는것도 잊을만큼 엄마가 반가워 나는 깡총깡총 뛰고 뛰었다
내가 아홉살 무렵 어느 겨울 날 두 동생과 엄마를 따라 서울행 기차를 탔다
기차표 사는데도 한참 줄을 서야 했는데 기차 안에도 오고 가는 통로까지 입석표 가진 사람들이 바닥에 빈틈없이 앉아 있는 북새통이었다
고단함을 실은 서울행 야간 열차가 어둠 속을 달리는데 지루함을 깨고 마주 보는 앞자리 아저씨가 우리들에게 몇살이냐 부터 이것저것 말을 시키더니 노래해 보라고 자꾸만 부추겼다
엄마도 거들며 해보라고 하셔서 떨리는데 용기를 내어 부른 노래 '꽃밭에서' 수줍어 애꿎은 어두운 창밖만 바라보며 노래하는 내내 하늘나라 가신 아버지가 그리워 울먹이게 되는 노래를 선택한것이 후회되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메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나는 뒤퉁맞게 멀미를 해 차만 타면 고생을 했다 퀴퀴한 녹색 벨벳 의자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노랗게 되어 엎드렸다 일어났다 고역스러운 시간 어서 기차에서 내리기만을 간절히 고대했다
중학교 입시 상담시간에 명문 대전여중 진학을 권하는 담임 선생님에게 엄마가 기차 통학 해야 하는데 나는 차멀미 때문에 안된다고 하셔서 결국 성에 안차는 집 근처 중학교로 진학한것이 두고 두고 내게 한으로 남았다
늘 방안에 붙어 있던 기차 시간표
흔들리는 객실 사이에서 아코디언 주름 모양을 한 이음새
떠나 보내는 기차 길
출발을 알리는 기적소리
기차에서 내린 엄마 손에 서울에서 사 온 코코아색 원피스가 사랑스럽던
어린 시절 기차의 추억들이 가슴 깊이 아련함을 싣고 달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