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 눈물이 죽음을 돌이킴 / 요한복음 11:31-35
눈물은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죽음을 가져오는 강한 적은 총이나 대포는 두려워하지 않지만, 오직 눈물만은 보고 두려워서 물러갑니다. 당시 나사로의 집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을 먼저 보고 울었고, 마리아는 뒤이어 주님을 보고 울었으며, 함께 있던 모든 유대인들도 연민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세 식구가 살던 집에서 앞날이 촉망되던 젊은이 하나가 죽었으니 참으로 비통한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를 보고 분노와 슬픔을 느끼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는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다주는 악마의 행위를 슬퍼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님의 눈물이 세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나사로의 죽음에 관한 것(누가복음 11:35)
둘째는 예루살렘의 운명에 관한 것(누가복음 19:41)
셋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일(히브리서 5:7)
이는 각각 1) 개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 2) 조국의 멸망에 대한 비탄, 3) 인류의 멸망에 대한 슬픔을 나타냅니다.
그 눈물의 상징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 그 눈물로 온 인류의 구원을 허락하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때 주님은 자신의 눈물뿐만 아니라 나사로의 가정이 흘린 눈물에도 깊이 공감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보좌가 움직였고, 결국 무덤의 돌이 열리고 나사로가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도 진심 어린 눈물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눈물은 죽음의 운명도 바꿀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문제는 진정한 눈물 없이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 시대에 하만과 모르드개 사이의 갈등으로 유대인들이 몰살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에스더는 다른 방법을 찾지 않고 자기 민족에게 금식하며 기도하고 회개하라고 명령했고, 유대인들은 한마음으로 이를 따라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상황이 역전되어 오히려 하만이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습니까? 다른 무기는 없었고 오직 눈물뿐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통받을 때, 그들의 괴로워하는 소리가 하늘에 닿아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의 슬픈 소리를 들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은 것은 어떤 방법이었습니까? 역시 눈물을 통해서였습니다.
지금 한국인들의 처지는 이집트의 유대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어떻게 이 다가오는 죽음의 위기를 피할 수 있을까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눈물로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믿습니다. 38선이 막히고 무서운 공산당이 침입하는 것을 하나님 외에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