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거문도를 내어 놓음
영국의 거문도 점령이 진실로 영국의 불법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청국정부는 은근히 이것을 용인하였다. 또 동양에 가장 큰 근심되는 것은 노국의 극동경영이라 만일 그의 경영이 성취되면 동양은 없어진다는 의미로 청국을 충동한 모양이다.
노국도 이것을 알고 영국이 만일 거문도를 점령하면 영국의 세력이 동양을 지배할 터인 고로 이것을 막지 않으면 동양의 안전을 보장키 난하다는 것이다. 노국은 이 뜻을 조선과 청국 정부에 의견을 진술하여 영국이 만일 거문도에 철병하지 않으면 노국도 조선의 영토 일부분 점령하여야 되겠다고 조선과 청국에 통고하였다.
우리나라는 이것을 거절하지 않으면 영토를 보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장차 영노양국의 야심이 동양을 삼키려는 화근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위패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용암포(龍巖浦)의 조차(租借)를 청구하여 영국의 욕망과 같이 대상할 것을 의뢰함으로 우리 정부에서는 이것을 보류하던 중 한옆으로 원세개의 무리한 간섭이 도리어 조선으로 노국을 의뢰할 생각이 증장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이 거문도 문제로 노국은 적극적으로 간섭하여 결국은 영국이든 노국이든 조선 땅을 점령치 않겠다는 보증을 두고 24년 정해(丁亥)2월에 영국은 거문도를 내어 놓았다. 연제든 조선은 약소국이라 국방군도 없고 강국을 대항할 힘이 없으니 국제적 지위를 잘 보존하여 모든 문제를 잘 해결을 지을 것이다.
용암포 문제도 역시 국제상 중요 문제임으로 노국의 강경한 요구가 있었으나 흐지부지 중지가 되었다. 부령과 경흥 개시장 문제도 정지되었으나 민씨들의 정견은 이때 영국의 세력을 막으려면 불가불 노국의 힘을 빌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 후에 또 일본 세력을 막으려고 하여 또 이 방법을 쓴 것 같다.
민씨들의 정견이 주장이 없고 다만 권리에 치중하여 이것을 옹호하기 위하여 노국을 친근하고 또 영국과 청국을 막기 위하여 노국 세력을 끌어 들였다. 이것이 수단이요 야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