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자(受敎者)
상도 도전은 대두목일까요? 대두목과 수교자는 같은 걸까요 아님 별개의 존재일까요? 이는 모든 문제를 푸는 키워드에 해당합니다. 이 주제는 기존의 대순교단과 상도의 시각이 다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자신들의 상황에 대입해 풀어내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번 장에서는 이문제를 집중 조명합니다.
[1] 증산께서 어느날 종도들을 앉히고 대두목과 수교자에 대한 공사를 보신다.
① 「상제께서 동곡에 머물고 계실 때 교운을 펴시니라. 종도 아홉 사람을 벌여 앉히고 갑칠에게 푸른 대(竹)나무를 마음대로 잘라 오게 명하셨도다. 갑칠이 잘라 온 대가 모두 열 마디인지라. 그중 한 마디를 끊고 가라사대 “이 한 마디는 두목이니 두목은 마음먹은 대로 왕래하고 유력할 것이며 남은 아홉 마디는 수교자의 수이니라.” 그리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하늘에 별이 몇이나 나타났는가 보라”하셨도다. 갑칠이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나 복판이 열려서 그 사이에 별 아홉이 반짝입니다”고 아뢰니라. 상제께서 “그것은 수교자의 수에 응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
1. 증산 포함, 모두 10명이 모임
2. 김갑칠로 하여금 대나무를 잘라 오게 함
3. 김갑칠은 대나무 열(10) 마디를 잘라 옴
4. 증산께서 한(1) 마디를 끊고 두목이라 함
5. 남은 아홉(9) 마디는 수교자의 수(數)라 함
[2] 마디 한(1) 개는 두목이라 칭하신다.
② 「“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 도통하는 방법만 일러 주면 되려니와 도통될 때에는 유 불 선의 도통신들이 모두 모여 각자가 심신으로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어찌 내가 홀로 도통을 맡아 행하리오”라고 상제께서 말씀하셨도다.」
[3] 나머지 아홉(9) 마디는 수교자의 수(數)라고 하신다.
㉠ 기존 대순 종단의 견해 :
"아홉 마디는 수교자의 수라고 말씀하셨는데 9라는 숫자는 단순히 숫자 9의 뜻도 있지만 숫자 중에 끝수로서 ‘수효가 많다’든지 ‘모든’이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예를 들면 구산(九山)은 중국에서 각 지방의 명산 아홉 개를 뜻하기도 하지만 많은 산을 뜻하고, 구주(九州)ㆍ구야(九野)ㆍ구유(九有)는 모든 땅인 천하를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그렇다면 수교자를 단순히 종도 아홉으로만 보지 않고 이 세상 모든 사람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곧 상제님께서 가르침 혹은 덕화를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내리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해석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무위이화(無爲而化)로 가르침과 덕화를 내리시지만 도통줄은 특별한 존재인 두목(대두목)에게만 내리시겠다는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대두목 - 종통 계승자가 대두목이 되므로 세번째 종통을 이은 박우당이 대두목이라고 하는 것이다. 수교자 - 수교자의 9(九)라는 수는 '천하'를 뜻하므로 수교자는 도를 받아들인 모든 사람이라 해석
㉡ 상도의 견해 :
"줄이라는 것은 맥(脈)이다. 연원의 맥을 말함이다. 본도(本道)의 도통은 연원도통인데, 연원의 맥을 알아야 도를 통한다는 것이다. 상제께서 이 연원의 맥을 대두목에게 보낸다는 것이다. 본도(本道)의 도통은 대강식(大降式)에서 운수를 받는다. 그런데 도주 조정산은 “대강식은 후일에 있다”고 하셨고, 도전 박우당도 시학공부의 마지막 봉강식에서 공부자들에게 “대강식은 생략하옵고 후일을 기하오나” 라고 하도록 하신 데에서 대강식은 후일에 있음을 말씀하셨다. 즉 도통은 후일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두목은 도주 조정산이나 도전 박우당을 일컫는 것이 아닌 것이다. 삼신(三神)의 진리가 나오고 진법이 바르게 밝혀진 후에 이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진다고 하였으니, 대두목은 도전 박우당으로부터 천부의 종통을 계승한 상도 박성구 선감이다."
상도는, 대두목은 종맥으로, 수교자는 이름에 아홉 수(九 數)를 가진 것으로 판단할 때 박성구 도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경 자체가 말하듯, 대두목과 수교자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따라서 상도의 논리는 전경의 문맥에 맞지 않는다.
[4] 수교자(受敎者)의 의미
수교자는 가르침을 받는자다. 종통을 계승한 정산, 우당은 모두 증산의 가르침을 받아 들였다. 증산께서 종도들 아홉명과 보신 공사의 내용은 단순하게 가르침을 받아 들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증산의 핵심 사상을 마무리할 사람을 의미한다고 추론해야 한다.
③ 「또 상제께서 어느날 종도들과 함께 계실 때 "나의 일이 장차 초장봉기(楚將蜂起)와 같이 각색이 혼란스럽게 일어나되 다시 진법(眞法)이 나오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증산의 위 말씀은 수교자와 관련이 있다. 왜냐면 위 말씀은 대두목과 수교자에 대한 공사를 보실 때 이어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일(楚將蜂起之勢)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이다. 위 경구의 '장차'라는 단어가 그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두목과 수교자는 마지막 때에 나타나는 도수다.
그렇다면 대두목과 수교자는 누구일까? 증산께서 공사로써 보여주신 내용에 답이있다. 그것은 대나무의 마디와 관련이 있다.
한(1) 마디 - 대두목
아홉(9) 마디 - 수교자
상도인들은 박성구 도전이 수교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름에 아홉수(九)가 들었음을 주장한다. 맞다. 이름은 그냥 지어지는 게 아니다. 박성구(朴成九)라는 이름에는 수교자의 수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대두목은 누구일까? 이것 역시 첫번째로 이름에서 나타나야 한다. 이름 속에 일(一) 수를 가지고 있다고 추론해야 한다.
수교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수교자는 위의 경구에서 말한대로 '진법'이 나타나도록 교(敎)를 받잡는 사람이다. 그래야 대두목이 출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신(三神)은 증산과 대두목을 연결하는 징검다리다. 종통을 계승한 분들이 없었다면 증산의 정통맥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전달됐을까?
상도도전의 역할을 알기 쉽게 표현한다면,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와 요한의 관계로 파악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맡기 전에 미리 예비한 침례자 요한의 역할이다. 요한은 지구상의 "인간 중에 가장 큰자"로 예수께서 소개한다. 그의 역할은 기름부음받은 자가 나타나는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즉 판을 까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준비를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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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의 때입니다. 초장은 진시황의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봉기한 초패왕 항우 당시를 말합니다. 항우를 비롯해 수많은 세력들이 봉기했고, 당연히 각 세력은 야망을 갖고 있습니다. 증산 공사는 신명계 공사입니다. 신명들이 주인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시기가 있었고, 상도 도전께서 그것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힘겹게 맡아 왔고, 드디어 "성공했어"라는 외침 속에 자신의 역할을 완수하고 장렬하게 선화를 합니다. 그리고 도판에 투사돼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 수많은 후인들이 나타나 '초장봉기지세'를 이뤘습니다. 대두목(항우)과 일반 세력이 섞여 있습니다.
고수부를 추종하는 일부 종단에서는, 고수부에게 대두목이란 권세를 부여하기 위해 갑칠이 잘라온 대나무가 열한(11) 마디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대순 초판에는 분명하게 열(10) 마디로 적혀 있습니다. (참고)
④ 「갑칠을 명하시어 “푸른 대나무 한 가지를 마음대로 잘라오라” 하시어 그 마디수를 세니 모두 열 마디이거늘 그 중 한 마디를 끓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한 마디는 두목이라. 두목은 왕래와 순회를 마음대로 할 것이요. 남은 아홉 마디는 수교자(受敎者)의 수(數)와 서로 같으니라”하시고“하늘에 별이 몇 개나 나타났는가 올려보고 오라” 하시므로 갑칠이 밖으로 나가서 우러러 보니 검은 구름이 온 하늘에 가득찼는데 하늘 복판이 열려서 그 사이로 별 아홉 개가 반짝이거늘(대순전경 초판 번역본)」
다음 편은 후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