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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회님,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우리는 『법화경』 <제17 분별공덕품>에서 석가모니불의 영원불멸한 수명에 관한 말씀을 듣고, 여러 보살들과 대중들이 얻은 공덕에 대하여 알아보았지요.
또 『법화경』을 수행하며 남에게도 수행하도록 권하는 이의 공덕이 하도 커서, 탑과 절을 무수히 지어 부처님과 스님들께 보시한 공덕과 같다고 하는 내용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함께 공부할 <제18 수희공덕품>에서는 그 가운데 특히 『법화경』을 듣고 따라 기뻐하면 얼마나 많은 복덕을 얻게 되는가를 여쭙는 대목으로 시작하고 있는데요.
즉 <분별공덕품>에서 『법화경』을 수지독송하고 해설하며 사경하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하는 사람은 한량없는 공덕을 얻게 된다는 말씀을 듣자 미륵보살이 질문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복이 많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재물을 비롯한 부귀영화의 복을 떠올리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복은 단순히 물질적 소유의 복만을 거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세상 사는데 있어서 돈이 없어서도 안 되고 물질도 필요합니다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복은 바른 법을 들을 수 있는 복입니다.
이를 한자로 말하면 맑을 청(淸)자를 써서 ‘청복淸福’이라 하는데, 이 맑은 복이 있어야 도를 공부하고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수희隨喜란 따를 수(隨)자에 기쁠 희(喜)자를 쓰는데, 『법화경』 설하는 것을 듣고는 마음속에서부터 ‘저절로 우러나오는 환희심’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진심으로 믿고 기뻐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무한한 긍정의 에너지가 나옵니다. 그리하여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슬기가 샘솟게 되어, 설령 자신의 형편이 매우 고통스러울지라도 이렇게 법을 공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충만함을 느끼게 됩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마음은 무의식적으로 거부감과 반항심 그리고 공격적인 태도를 낳기 마련이지요.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많은 것을 다 소유하고도 늘 불만스럽고 남을 탓하게 됩니다.
우리가 속된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면, 영원히 굶주린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밖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사람은 평생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결국 비극적인 중생의 삶을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만일 어떤 보상을 바래서가 아니라 순박한 마음으로 법을 듣고 믿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하는 마음과 순응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게 됩니다.
이 공덕에너지가 우리 범부중생들을 크게 향상시키고 성숙시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긍정과 감사의 마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작게나마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이기적이었던 마음도 점차 헌신적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더욱이 남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가엾이 여기고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남의 허물보다는 스스로의 허물을 되돌아보는 보살의 지혜로운 삶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륵보살이 『법화경』을 듣고 수희하는 공덕에 대하여 부처님께 질문한 것은 후세 중생들이 기쁘게 믿는 마음을 내어 무량복을 얻고 도를 이루기를 바라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경에서는 수천만억에 달하는 아승기나 그 아승기의 만 배에 해당되는 나유타, 그 이상 되는 수량을 설명해야 될 때면 흔히 갠지스강가의 모래알수나 먼지티끌수에 빗대어 이해시키고 있다고 말씀드렸었지요.
『법화경』을 듣고 그 깊은 도리까지 확연히 깨우치지는 못하였더라도 그냥 하염없이 기뻐하기만 한 복덕조차도 매우 커서, 중생의 사유능력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예를 들어 은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가령 어떤 이가 『법화경』을 듣고서 마음으로 기뻐하며 자기가 아는 이에게 법문 내용을 몇 마디 일러주었다고 가정해보자는 거죠.
이런 식으로 하여 오십 번째 되는 사람에게까지 전해져서 그 사람이 환희심을 내어 기뻐한다면, 그 오십 번째 되는 사람이 얻는 공덕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요. 이를 테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이 작은 나라 안에 있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여섯 갈래 육도중생들만 헤아리더라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럼 해와 달을 중심으로 해서 지구와 같은 이런 행성들이 수도 없이 모여있는 소우주를 한 세계로 친다고 할 것 같으면, 이 한 세계 안의 육도 윤회중생들은 훨씬 더 많지 않겠어요.
이렇게 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 수만 계산해도 엄청날 텐데, 자그마치 사백만억 아승기 수의 세계들 안에 존재하는 중생들 수라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야말로 수도 없이 많은 세계들 속에 있는 무수한 중생들에게 어떤 사람이 복을 짓기 위해서 80년 동안이나 재물보시를 했다고 가정해보죠.
거기에다 그 수많은 중생들이 점차 죽을 때가 가까워진 것을 보고는 불법을 가르쳐주어서 소승사과를 얻게 하고 팔해탈까지 갖추게 했다면 그 사람의 공덕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여기에서 소승사과란 말은 소승에서 추구하는 네 가지 과위[四果]를 말하는 것인데요. 즉 성문의 수행단계에서 번뇌가 엷어짐에 따라 얻어지는 경지를 수다원과 ․ 사다함과 ․ 아나함과 ․ 아라한과의 4가지 과위로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4가지 사과四果 가운데 소승에서 최고로 치는 경지가 바로 모든 번뇌를 다한 ‘아라한과’입니다.
그리고 팔해탈이란 오욕락에 탐착하는 버릇을 고쳐서, 차츰차츰 욕심이 엷어져 집착에서 해탈되어가는 8가지의 해탈과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그 무수한 세계의 모든 중생들에게 원하는 물건과 재물들을 전부 보시하고 또 법문을 설해서 그 중생들로 하여금 아라한도와 팔해탈까지 성취하게 했더라도, 여기 『법화경』을 듣고 기뻐한 공덕에는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그 공덕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일깨워주신 것인데요.
다시 말해 자기가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전해지고 전해져서 이렇게 오십 번째로 전해들은 사람이 『법화경』의 한 게송만이라도 듣고서 따라 기뻐한 공덕에 저 시주자의 공덕을 비교하면 백분의 일이나 천분의 일, 아니 백천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어떤 숫자나 비유로도 감히 비교를 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하지요.
이렇게 오십 번째로 듣게 된 사람이 『법화경』 게송 한 마디를 듣고 기뻐한 공덕만 해도 이 정도인데, 그러면 맨처음에 듣고 일러준 사람의 공덕이야 두 말할 것도 없이 훨씬 더 많지 않겠어요.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을 듣고 기뻐한 사람의 공덕이 얼마나 큰가를 질문한 미륵보살의 물음에 이렇게 밝히고 계십니다. 그럼 여기에서 법화경CD에 담긴 부처님의 말씀을 다함께 들어보실까요.
소리경전자료실(CD법화경 <6권> 18. 수희공덕품 04:55 - 13:30 끝)
방금 들으신 바와 같이 『법화경』을 듣고 수희 찬탄하는 공덕은 매우 큽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법화경』 법문을 들으러 갔는데 자리가 없어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을 때,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자기 자리를 나누어서 같이 앉아 듣도록 배려를 해준다면 그는 그 공덕으로 다음 세상에는 제석천왕이나 범천왕 혹은 전륜성왕이 될 것이라 하지요.
또 『법화경』 공부하러 갈 때 옆집의 다른 사람에게 같이 가자고 권해서 함께 가서 듣는다면, 처음에 권유한 사람은 다음 세상에 다라니 얻은 뛰어난 보살들과 한 곳에 태어날 것이라 합니다.
더욱이 다른 이에게 좋은 법을 듣도록 권유한 공덕으로 인해서 백천만 번 태어나더라도 벙어리가 되지 않고, 입에 병이 없으며 이빨도 검게 변하거나 치아 사이가 벌어진다거나 하지 않는다고 해요.
입술이 너무 두껍다거나 언청이가 되지 않고 코도 길고 높으며, 눈썹과 이마도 반듯하게 잘 생겨서 얼굴 생김새가 원만하게 된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좋은 인상을 갖출 뿐만 아니라, 세세생생 태어날 적마다 부처님을 친견하여 법문을 직접 듣고 가르침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법륜을 굴리는 일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손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요. 즉 『법화경』 들으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식구들이나 다른 이웃에게 권하는 것이라든가, 소리경전공덕회 카페에 법화경 강설이 있으며, 요즘엔 모바일로도 『법화경』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남에게 알려주는 것 역시 모두 법의 인연을 맺게 해주는 소중한 불사라는 것이죠.
요즘에 우리 사회를 보면 지나치게 경제와 외모 지상주의로 치닫고 있는 것 같은데요. 진정으로 아름다워지려면 돈 들여가지고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듯한 성형수술의 고통을 치르지 않고도 수월하게 최고 미인이 될 수 있는 비법이 『법화경』에 있다 하겠습니다.
게다가 이런 외모나 부귀복덕만 갖춘 게 아니라, 지혜롭고 총명해서 내면적으로도 지성미 넘치는 훌륭한 인품을 구비하게 된다고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혹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외모만 위해서가 아니라, 관상학에 의거해서 복을 부르는 인상을 갖추기 위해 성형을 하는 것이라고도 하던데요. 그렇게 겉모습만 바꾼다고 해서 정말로 자신이 지은 복덕의 업까지 바꿀 수가 있을까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다들 복이 제각각인데, 이렇게 우리들 복이 다른 것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거든요.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가짐 곧 생각이나 잘못된 버릇을 바꾸고 복을 짓지 않은 채, 단순히 외모만 복스럽게 만든다고 해서 과연 복이 올 수 있겠는지 스스로 잘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법화경』을 듣고 마음으로부터 기뻐하며 남에게 같이 듣도록 권하게 된다면 한량없는 복덕을 짓는 것이라 하지요. 다시 말하면 모든 존재의 참모습, 영원한 생명의 실상을 깨닫도록 하는 큰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만큼 위력이 크다는 거예요.
마치 손톱만한 작은 돌멩이라도 그냥 물에 던지면 당연히 물속에 풍덩 가라앉지 않겠어요. 그런데 거대한 배에 싣게 되면 큰 바위덩어리라도 바다를 건너 실어 나르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것과 같은 셈이란 것이죠.
그와 같아서 설령 중생이 아주 나쁜 업을 지었을지라도, 진심으로 참회하며 『법화경』을 듣고는 믿고 따라 기뻐하면 크나큰 공덕을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즉 아무런 계산 없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순수한 기쁨과 감사함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불성의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것입니다.
흔히 칭찬을 통해 자신감을 불어넣은 것이 전혀 예기치 못한 성과를 이루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모든 존재의 참모습이 부처님임을 자각하게 하여 성불로 이끄는 일불승의 『법화경』 게송 한 구절만 듣고 기뻐하더라도 무한한 공덕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 예로부터 『법화경』을 지성으로 읽고 외운 가피로 인해 공덕을 입은 영험담이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요.
지옥에 있던 돌아가신 어머니가 한 번은 딸의 꿈속에 아주 고통스런 모습으로 나타나서 ‘내 대신에 『법화경』을 좀 읽어달라’고 통사정을 하더래요.
그래서 딸이 경전을 구해 몇 차례인가 정성껏 읽었더니,
하루는 꿈에 다시 어머니가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서
‘네가 나를 위해 『법화경』을 읽어주어 이제 지옥에서 천상으로 태어나게 되었다’며 고맙다고 하더랍니다.
또 어떤 이는 조상영가를 천도하기 위해 『법화경』을 사경하기로 맘먹고 그날 정성껏 『묘법연화경』 제목밖에 안 썼는데도, 무수한 조상들이 천도되는 꿈을 꾸었다고 하지요. 물론 나중에 『법화경』을 끝까지 다 사경을 하였겠지만서도, 그만큼 영가를 천도하는데 위신력이 크다는 거예요.
옛날에 어떤 스님은 산속에서 혼자 날마다 바위 위에서 『법화경』을 열심히 독송했는데, 어느 날 꿩이 한 마리 찾아와 독경이 끝날 때까지 도망도 안가고 가만히 앉아서 듣더래요.
그러기를 한 7년쯤인가 몇 년 그리 했는데, 하루는 꿩이 오지 않아서 웬일인가 혹시 산짐승이나 포수에게 잡히진 않았나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셨겠지요.
그런데 그날 밤 꿈에 꿩이 나타나서 ‘스님께서 읽으신 『법화경』을 들은 공덕으로 인하여, 숱한 생 동안 축생몸으로 태어나야 할 업보를 빨리 소멸하게 되었다’면서 ‘이제 바로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었다’고 말하더래요.
그러면서 아랫마을 아무개 집에 태어나게 되면 나중에 얼마 지나서 다시 찾아올텐데, 겨드랑이에 꿩털이 조금 남아있을 거라고 하더랍니다.
그리고는 몇 해인가 지나서 어린 미소년이 한 명 스님이 되겠다고 절에 찾아왔는데, 정말로 겨드랑이 밑에 꿩털이 쬐끔 남아있더라잖아요.
그러니 우리 공덕회님들께서도 기왕에 『법화경』 같이 큰 대승경전을 읽으시려면, 속으로 읽는 것보다는 가능한 목소리를 크게 해서 여러 축생이나 미물들도 혜택을 입게 하면 더욱 좋겠지요.
다른 경전들도 좋은 영험담이 있습니다만, 이렇게 조상천도는 물론 중생의 나쁜 업보를 바꾸는데는 『법화경』이 그렇게 영험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따라서 영원한 근본 성품을 깨닫게 하는 이 『법화경』은 그야말로 우리 마음의 공덕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성불의 지름길’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크나큰 가르침을 한 구절이라도 남에게 일러주거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직접 듣도록 한다면, 그 공덕이 무량한 것은 오히려 당연지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오늘은 『법화경』을 듣고 마음으로 잠시만 따라 기뻐해도 복이 한량없는 것을 살펴본 것으로 이만 마치고, 다음에는 이어서 <제19 법사공덕품>을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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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늦은시간에 올려 주셨음에,
헛된 수고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ㅎㅎ _()_
너무 환희로운 강의라서 단숨에 읽어내렸답니다.
복중에 가장 큰복은 바른법을 들을 수 있는 복... 이를 청복 ...맑은복이 있어야 공부하고 배울 수가
있다는 말씀에 ...우리 공덕회원님들과 전 정말 큰복을 타고 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집니다._()_ 나무아미타불
에궁 그러실쭐 알었꼬만
그대에게도 한량없는 복이 내려온다면
무얼하실껀가요 ?
[자실인의] 해야제요.
여래의 방이란 일체 중생들에 대하여 크게 자비한 마음이며
여래의 옷이란 부드럽고 온화한 인욕의 마음이죠. 자비와 인욕의 마음을 갖추어
상대방을 부처님으로 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_()_
그대는 이미 한량없는 복을 받았다고 봐야
하겟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용천님이 더 많은 복을 받으셨어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있어요.
남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가엾이 여기고 잘되기를 바라고...
남의 허물보다는 스스로의 허물을 되돌아보는 마음이 생겨서 .... 복을 받았다는것을 인정하지요._()_
시어머니 제사날이 닥아옴에 7일 기도기간을 정했습니다.. 법화경을 보시고 좋아하시던 분이시라
법화경 독송을 해드립니다.
매우 좋아하실것 같음에 매일 매일 독송합니다.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시어머니께서 대단하셨군요....
그래서 이렇게 훌륭한 며느님을 키우셨나보죠~~...
장마비에 ... 기도 열심히 잘하세요~~ 나무묘법연화경....
시어머니께서는 대단 하셨지만 저는 아직 멀었어요.
공부하시던 모습 떠올리면서 그모습 닮아가길 서원하면서 ......그래야 그마음 알것 같습니다.
법을 듣게한 공덕,남에게 해설해주는공덕,경전에서 설한데로 수행한 공덕,법화경을 듣고 수희 찬탄하는 공덕,
이모든 공덕은 매우 크다하심. 마하반야바라밀.마하반야바라밀.마하반야바라밀._()()()_
눈으로만 읽다가 축생이나 미물이 들릴만큼은 아니어도 소리내어 읽어보니 집중이되어 좋아요. 나무묘법연화경_()_
아무리 작은 죄를 짓더라도, 혹은 생각만 하더라도 전부 우리의 8식(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언젠가는 발현되는 것이 인과법의 원칙이나,...부처님의 지혜에 의지한다면, "마치 손톱만한 작은 돌멩이라도 그냥 물에 던지면 당연히 물속에 풍덩 가라앉지 않겠어요. 그런데 거대한 배에 싣게 되면 큰 바위덩어리라도 바다를 건너 실어 나르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것과 같은 셈"... 이것이 또한 불법이지요. 가슴에 와닿는 해설 감사합니다.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