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삼백쉰네 번째
술김에 낳은 아들 주몽
우리네 만남은 어떤 목적으로 만났든지 대개 술과 음식으로 마감합니다. 수천 년 전부터 술을 마셔왔고, 하늘에 제사하는 데도 술이 등장하니 술은 인류 역사와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탄생 설화에도 술이 등장합니다. 동국이상국집 동명왕 편에 “해모수가 물가에 있는 유화부인을 보고, 말채찍으로 땅을 한 번 그으니 구리집이 세워졌다. 비단 자리를 눈부시게 깔아놓고 금 술잔에 맛있는 술을 따라 서로 마시고 취했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후 유화부인이 낳은 알에서 태어난 인물이 바로 주몽입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술 취해 얻은 아들이 주몽이라는 말이지요. 어떤 술이기에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냈을까요? 이 글을 읽는 애주가들은 이미 군침을 삼킬 겁니다. 어떤 이는 이때 해모수와 유화부인이 마신 술이 하계명주夏鷄鳴酒라고 합니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허준의 ‘동의보감’에 따르면 여름날 저녁에 빚어 다음 날 닭이 울기 전에 완성되는 술이라고 합니다. 속성주지요. 옥수수와 수수, 엿기름으로 죽을 쑤고 여기에 누룩과 솔잎을 넣어 발효시킨 술인데 알코올의 농도가 낮고 단맛이 있는 술이라고 합니다. 가벼운 술인데 첫 만남에서 아이를 가질 정도로 황홀하게 만드는 술이었던가 봅니다. 그런데 이때 그 술을 마신 술잔이 금이라 했습니다. 금은 변하지 않는 속성으로 인해 예로부터 신전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해모수와 유화부인이 금잔으로 술을 나누어 마셨는데 그들의 사랑이 변하지 않았던가요? 2천 년도 훨씬 전인 고대 로마에서는 결혼식에 금반지가 등장합니다. 그들의 사랑은 변치 않았던가요? 술로 맺은 언약은 그렇게 허무한 것이라고 일러주는 걸까요? 그래도 주몽을 낳은 하계명주는 마셔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