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수술을 하고 집에 있으니 갑갑하기 짝이 없다. 하기야 한 눈은 무용지물 가까이에까지 이르렀었지만 왼쪽 눈을 막고 오른쪽 눈으로 이것저것 뒤적이니 집중이 될 듯 될 듯 아니 된다. 저번에 익다 둔 ‘제주작가’ 겨울호에서 계속해서 시를 몇 개 뽑아 겨울의 추위를 녹이며 아직도 달려 있는 죽절초 열매와 같이 올려본다.
죽절초(竹節草)는 홀아비꽃댓과에 속한 상록 활엽 관목으로 높이는 1m 내외이고, 잎은 마주나며 톱니가 있다. 6~7월에 꽃잎과 꽃받침이 없는 연한 황록색 꽃이 핀다. 열매는 둥글며 5~10개씩 모여 달리며 붉게 익는다. 우리나라의 제주도 남쪽,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 행복 - 김문택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주는 사랑이 아니라 나누는 사랑입니다.
김장김치 한 접시를 수줍게 건네던 이웃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그 기억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행복으로 남아 보세요
행복한 내가 되어 스스로 행복을 만들거예요. 꽃처럼 별처럼
♧ 바람은 못다 한 어머님의 말씀 - 김순선
바람 부는 날은 가끔, 어머니 생각을 합니다 바삐 길을 가다 문득, 일러주고 싶은 말이 있어 가던 길을 되돌아와 당부의 말씀 남기듯 창문을 흔듭니다
어떤 날은 슬며시 찾아와 놀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숨 가쁘게 달려와 헐떡이듯 세차게 흔듭니다 어떤 날은 야단치듯 노하셔서 덜컹덜컹 꾸짖기도 합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 스크루지를 찾아간 유령 같은 바람으로 어서,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애원하듯 나무들도 양팔 들어 온몸 흔듭니다
♧ 백악기 후기 - 현택훈
도마뱀 한 마리가 손바닥선인장 부근을 지나간다 도마뱀은 백악기 후기를 지나고 있다 크기가 작아서 그렇지 공룡을 닮았다 구름이 시집 위를 지나간다 티라노사우루스의 뜻은 폭군 도마뱀 공룡은 멸종되지 않았나 악어가 백악기 후기에 입을 벌린다 야구장이 시집 위를 지나간다 하도리 철새도래지에 가면 익룡들이 날아오른다 당신과 함께 앉아있던 외야수 뒤편 관중석에 시집 한 권 놓여 있다 바람이 시집을 넘긴다 당신이 형광등에 매달려 있다 서랍 속에서 툭 튀어나오는 트리케라톱스 그날 굿바이 홈런이 있었고 공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르고 있엇는데 그 공을 위미리 찻집 어리석은 물고기에서 주웠다 실밥이 해진 야구공은 나무 의자에 앉아 울고 있었다 이구아나가 한 쪽 다리를 들 듯 나는 한 쪽 손을 들어보았지만 찻집에 있던 사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 모과 - 오영호
쉼 없이 드나드는 골목길 밭담 너머 잎 없는 우듬지에 매달린 모과 두 개
비바람 땡볕으로 여문 향기 만추의 길을 내고 있다.
♧ 겨울산 - 한희정
아느냐 이별이 슬픔만은 아니더라
격정의 사연일랑 그냥 그리 묻어두고
맘 놓아 통곡하고 나니 정녕 내가 보 이 더 라
♧ 달밤 - 김영숙
무작정 쏟아지는 저 달빛을 어째요
슬레이트 지붕에 은지화 그리는 밤
골 따라 흐르는 빛이 뚝뚝 질 것 같아요
이런 밤엔 꽃들도 잠이 오지 않나 봐요
달빛 담뿍 한련화 처마 밑이 환한 날
슬리퍼 맨발이 자꾸 올레마중 가재요.
♧ 관심 - 홍경희
붉거나 푸르거나 미운 정도 정이 들면
너덜너덜 외로움도 따뜻한 집 찾아갈까
북받친 노을이 질 때 새떼들을 쫓는 눈
♧ 이별, 산지항 - 김영란
시퍼런 초사흘 달 쪽창에 걸려있다 생의 마지막 날 빈 젖 빠는 어린 것 어둔 밤 호명소리에 파르르 감전된다 명줄 고작 백일이냐 불쌍한 내 아가 어미 살점 떼어주랴 어미 피를 짜서 주랴 떠나는 마지막 길에 눈 온다, 함박눈
아가야 눈을 떠봐라 산지항에 눈 내린다 꽃상여 아니면 어때 처음 타보는 배로구나 널 그냥 풀섶에라도 두고 올 걸 그랬어 배 밑창에 짐짝처럼 포개 앉은 사람들 저승으로 가는 길 오장육부 비워내듯 서러운 오물덩어리 굽이굽이 열두 구비
저승인 듯 이승인 듯 서글픈 뱃고동 네아비 우릴 찾아 여기까지 찾아온 듯 산지항 뱃고동소릴 여기서 듣는구나 곰삭은 사투리처럼 비릿비릿 내리는 눈, 아가야 목포항이란다 저승은 아니란다, 아가야 눈을 떠봐라 아가야 아, 가, 야
슬픔의 정점에선 눈물 나지 않았네 홑포대기 덜렁 두른 어린 짐승 하나를 눈 녹아 질퍽거리는 목포항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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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김창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