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왜 예수님을 배신해요?
어느 날 새벽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저에게 유치원에 다니던 딸이 눈을 비비며 제 앞에서 서더니 한 말입니다.
그런데 아빠는 왜 예수님을 배신해요?
배신이란을 말을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예수님을 배신한다고
어린아이의 말이었지만 정말 어이가 없고 기가찼습니다.
그래서 더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아빠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아빠가 예수님을 배신한다고?
저는 말도 안되는 소리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이 애가 자다 일어나 꿈을 꾸고 있나!
잠꼬대를 하나!
예수님을 배신하다는 그 당치않는 말에 제가 펄쩍 뛸 수 밖에 없는 것은 제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까지 제 눈은 뜨거운 눈물로 충만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제 마음은 뜨거웠고 제 눈은 붉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을 자가 누구인가 말씀하신다면 저는 가장 먼저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순교자의 믿음을 주소서!
주님을 위해 죽겠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은 열정과 확신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감동과 여운이 여전히 뜨겁게 남아 있는 저에게 어린 딸이 눈을 비비고 일어나 제 앞에 떡 서더니 아빠는 왜 예수님을 배신하느냐는 겁니다.
따지듯 묻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배신이 아닙니까?
내가 주님을 배신해?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너무 기분이 나빠 따지듯 물었습니다.
아빠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왜 예수님을 배신하니?
제 추궁에 딸은 제가 왜 예수님을 배신하고 있는지 그 근거를 댑니다.
아빠는 왜 엄마에게 신경질을 내세요?
순간 정전이 된 것 같습니다.
간음하던 여인을 정죄하던 자들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요?
손에 들었던 돌을 조용히 내려놓고 부끄러워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 말입니다.
저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방에 들어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맥 없이 힘 없는 모습으로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좀 전에 교회에서 주님을 사랑한다던 그 열정과 확신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나는 과연 누구인가?
집에서 어린 딸의 눈에 비쳐진 나는 누구인가?
베드로가 생각났습니다.
주를 위해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주님과 함께 옥에도 갈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그 당찬 사랑의 고백과 확신은 곧 차디찬 부인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님을 모든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며 배신한 겁니다.
네가 오늘 밤 세 번 나를 모든다고 부인할 것이다!
그 말에 베드로는 얼마가 기가찼을까요?
내가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을 한다고 내가?
정말 말 같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었고 실상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되었을 때,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던 그 말씀처럼 되었을 때 닭이 울자 베드로는 통곡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비로소 알았습니다.
딸 아이의 그 말에 제 믿음의 모순과 민낮도 드러났습니다.
위선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들추어내셨습니다.
한 없는 부끄러움에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분명 그것은 자다가 일어나 하는 아이의 잠꼬대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처럼 결코 나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며 주님을 위해 죽을 것이라고 외치는 그 공허한 신념을 향해
그것을 이룰 수는 없는 (이루어질 수 없는)
십자가가 없는 그 믿음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십자가가 없는 믿음이 그렇습니다.
자기 확신과 신념에 빠져 자기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시험을 이기지 못합니다.
고난을 견지지 못합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큰 일은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자신의 삶에서 해야 될 작은 일은 업신여기고 맙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 일도 충성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 겁니다.
닭이 울 때 통곡한 베드로의 그 눈물을 저도 흘리게 됩니다.
주님은 어린 딸을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힘겹게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주님을 보며 우는 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라!
자신을 위해 그리고 내 이웃을 위해 울 때 주님을 위해 울 수 있습니다.
그때 그 눈물을 주님은 귀하게 보실 겁니다.
주님과 그 말씀은 먼데 있지 않고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내 마음과 내 삶에서 먼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 곳에서 내가 주님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
내가 있는 삶의 자리에서
그 일상에서
날마다 나를 십자가에 못을 박고 내 안에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또 다시 그날을 기억합니다.
그날 그자리에 나를 다시 세웁니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주님은 먼데 계시지 않고 아주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주님은 내 안에 계십니다.
그 주님을 내 안에 모셔야 합니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으로!
그 십자가가 진리의 믿음으로 날 이끌고 갈 것입니다.
바람을 잡는 헛된 종교가 아닌 내 마음에 계셔서 내 작은 삶에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고 나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나의 주님 사랑합니다.
나의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