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름, 머무름의 구리시 둘레길
1코스 걷기
일시: 2018년10월16일 화요일 맑음
동행: 나홀로
동선
1코스: 아차산-망우산길 도상거리 7.9㎞ 실제거리 8.47km
고구려대장간마을-대성암-산자락 옆구리-4보루(雉)-570계단-깔딱고개 쉼터 광장-관룡탑-우리굿당-한다리버스 정류장
구리시 둘레길은 처음에는 5코스로 조성되었다가 다시 4코스로 조정되었는데 5코스를 조성할 때 만들어진 유도 표식이 철거되지 않고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 있어서 혼동 할 수 있다 나도 관룡탑에서 탑 뒤로 동락정으로 올라야 했는데 5코스 때 만들어진 1코스 유도표식 따라 한다리 마을로 걸을 수 밖에 없었지만 개의치 않는 다-어찌했던 오늘 하루는 아차산 산속에 잠시 머물면서 한 나절을 걸었기 때문이다
들머리로 가려고.
전철5호선 광나루역 3번 출구에서 200여m 직진 하면 광나루 극동앞 버스정류장이 있고 1번 버스를 타고 워커힐 앞으로 두 정거장 가서 우미내검문소/고구려대장간마을 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광나루역 극동아파트 정류장)
1, 1-1, 1-2, 9, 9-1, 15, 91, 92, 93, 95, 96, 96-1, 97번
집에서 9시에 출가하여 고구려대장간마을 정류장에 도착하니 10시20분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두리번 거리니 고구려대장간마을 표식이 보였고 진입하니 장승들이 보였는데 장승이름이 재미있다 "평강, 온달, 혹부리영감, 천하, 지하대장군 장승들이 길손을 반겼다 곧 고구려대장간마을로 들어가니 “거물촌” “대장간” “고구려 다방” “광개토대왕비” 등이 보이면서 한 바퀴 돌았다
• 고구려대장간마을
고구려대장간마을은 아차산 4보루에서 발견된 간이 대장간을 보존하여 조성한 마을이다.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 시설과 소품들을 재현해 놓아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마을은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촬영장으로 더 유명하다. 태왕사신기는 한류 스타 배용준이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로, 고구려의 왕자 ‘담덕’이 광개토대왕으로 등극하기 전까지의 활약상을 그린 판타지 사극이다.
시대가 고구려이다 보니 가옥 등이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시대의 그것과는 사뭇 달라 낯설다. 칸막이가 아닌 장막으로 공간을 구분한 고구려 귀족들의 생활공간인 ‘연호개채’와 벽면에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나타나 있는 북방의 현무를 사방에 그려 넣은 ‘거믈촌’ 등은 이색적인 흥미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고구려대장간마을은 ‘태왕사신기’뿐만 아니라 배우 고현정의 열연으로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롯하여 드라마 ‘자명고’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우리에게 친숙하다(출처: 백과사전)
1코스 입구에는 방향지시가 많았고 둘레길은 한강전망대 방향으로 진행하여야 하고 잠시 후 갈림길이 나오면 우측으로등산로 표식도 볼 수 있는데 좌측으로 실 개천을 건너면 체육시설이 있는 생태체험장이다 아차산역사탐방로 따라 계단이 나오면 계단은 225개다 계단이 끝나면 안부쉼터가 나오는데 좌측은 아차산성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진행하여야 하는 데 서울둘레길 2코스다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이 길을 수락지맥 종주 때와 서울둘레길 걸을 때도 스쳤고 고구려대장간마을을 들머리로 오르기는 처음이다
아차산은 삼국사기에는 “阿且” “阿旦” 고려사에는 “哦嵯” 산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산의 Story Telling은-
옛날에 옛적에 유명한 점 쟁쟁이가 있었고 그의 소문이 널리 알려져 있어서 임금님 귀에도 들렸다 하여 임금이 얼마나 잘 맞추나 시험하려고 쥐 한 마리를 포장했다
임금님: “여기에 무엇이 있는고...”
점쟁이: “쥐가 있습니다”
임금님: “하~ 그래, 몇 마리나 있는 고”
점쟁이: “세 마리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니 쥐는 한 마리였기 때문에 임금은 점쟁이가 거짓말로 민초들을 속인 다고 생각하여 죽이라고 명령했다가 다시 곰곰이 생각하고 쥐를 해부하니 새끼 두 마리가 보였다 하여 즉시 사형을 중지하라고 했으나 한 발 늦어 점쟁이는 죽었기에 임금은 “앗차” 했다는 설화가 있다
아차산성에는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사랑이야기 스며있고 또 보루가 20개 명품소나무 팔각정(고구려정) 해맞이광장 낙타고개 그리고 연리목등을 볼 수 있다
해맞이광장 전에 옆구리로 사잇길이 있어서 나는 그 길을 선택하고 한 동안 옆구리(6~7부) 진행하니 바위길이며 한강이 시원하게 조망되었고 몇 일전 다녀온 구리 코스모스 밭에 붉은 빛이 감돌았다 아차산 동남쪽 숲길을 걸어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이 길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서 오며 가는 사람들을 자주 스쳤다
• 무정세월
한 때 나는 산행을 하거나 걷기를 할 때 되도록 추월당하지 않고 오히려 추월했었는데 지금은 추월만 당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탄식하지는 않는 다 자연적인 일일 뿐이다 다만 아직도 걷고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 다
오석의 “ 안동준거사대성암중건공덕기” 보여 계단 따라 대성암에 오르니 한강 조망이 시원하다
• 대성암 쌀바위 전설
대성암 안에는 쌀이 나왔다는 바위 구멍이 있다. 의상 대사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수도 자리 뒤의 바위 구멍에서 쌀이 나와 많은 사람에게 공양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하늘이 내려준 쌀을 더 많이 얻고자 하는 욕심에 바위의 구멍을 더 크게 뚫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쌀뜨물과 타버린 쌀이 수삼일 동안 나오다가 멎더니만,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대성암 말고도 부여, 가지산, 미암사에도 쌀바위 이야기가 있는데 모두 다가 인간의 욕심을 경고하고 있다
잠간 자리에 앉았다가 되 내려와 산길을 걷는데 여기부터 유도표식을 볼 수 없어 사람이 다닌 흔적을 유심히 살피면서 오르락내리락 걸었다 오늘은 가볍게 다녀오려고 배낭을 메지않고 스틱만 들고 나왔는데 물이 먹고 싶어도 준비를 하지 않았지만 샘물이 있고 컵도 하나 있어서 목을 추기려니 “어허라~ 물맛 좋군...”
다시 서울둘레길과 접속하니 막걸리 파는 곳이 보인 다 “ 어~ 산에서는 술 마시면 처벌 받는다는데 술을 팔아야~어찌 이런일이 있당 가” 곁에는 아차산 4보루 “치(雉)가 잘 복원 되어 있고 구리시1코스는 우측으로 서울둘레길 표시목은 좌측으로 돌아가라고 되어 있지만 곧 긴고랑입구에서 만날 것이다
• 雉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접근을 조기에 관찰하고 성벽에 접근한 적을 정면이나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
치에 올라 상봉동과 구리시를 조망하고 다시 내려와 안부(긴고랑입구)에서 다시 계단을 오른 다 용마산 갈림길에서 용마산으로 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친 다 하늘은 새파랗지만 구름들이 점점이 떠 있다 570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중에 “어허 힘들어”라는 신음 소리가 들린 다 570계단을 내려가면 깔닥고개로 직진하면 망우산으로 가는데 중량 둘레길과 곁친다 좌측으로 돌아가면 망우리고개 다 유도표식은 우측으로 가라고 하는데 내리막 길이다 길은 양호하지만 오늘은 산속에서 새 소리를 못 들어봤다 산에 오면 새들의 합창을 들어야 하는 데- 고대하던 관룡탑이 나왔다
• 관룡탑
'절고개 아래', '큰골', '큰절'이라 불리는 집터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의 막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만든 민간 신앙 차원의 돌탑이다. 밑면은 약 11m, 높이는 약 13m이다(네이버백과).
40여 년 전 보살부부가 절터의 중앙에 집을 짓고 살면서 기도처로 사용했다. 산에서 나오는 깬 돌을 치석하지 않고, 그대로 쌓아 올린 계단식으로 형태는 방추형이다. 하단부에 별도의 감실을 마련하여 불. 보살상을 봉안하고 있어 불탑이라고 한다.
관룡탑 옆에 세워진 이정표를 못 봐서 조정된 1코스의 사각정으로 가지 못하고 구리 옛 둘레길 1코스 유도표식을 따랐더니 한다리(1.14Km)로 가는 길이다 4거리 안부가 나왔다 직진은 시로봉(225m) 보루가는 길이고 우측은 이치울마을로 가는 길이고 나는 좌측길을 선택하였다 꽹가리 치는 소리가 들려 두리번 하니 우리굿당이다
마을버스 종점이 보였고 아낙네를 만나서 “저~ 마을버스 말고 일반 버스는 없나요” 하니 조금만 내려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다고 하여 한다리 정류장을 찾아가니 9번 버스가 왔기에 승차하고 광나루역극동아파트에서 하차하여 5호선 전철로 집으로 돌아왔다
관룡탑에서 새로 조성된 구리시 1코스 날머리 딸기원 입구까지 못 걸었지만 옛둘레길 한다리까지 걸어 봤습니다
아차산산자락에는 고려말 문신 趙云仡(1332-1404) 조선시대 호가 四佳亭 또는 亭亭亭인 徐居正 선생이 살았기에 오늘날 사가정공원도 있고 전철7호선 사가정역도 있지만 峨嵯山人 申潛(1491-1554 조선의 문신·문인)의 詩를 보자
아차산에 은거하며
紅脂己失白牌失: 홍지(紅紙)는 회수되고 백패(白牌)는 잃어 버렸으니
壯元進士摠虛名: 진사시의 장원 또한 헛이름일세
歸去峨嵯山下住: 돌아와 아차산(峨嵯山) 밑에 사니
山人二字孰能爭: 山人이란 두 글자야 누가 다투리
덧붙임
1. 구리 둘레길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 구리시에서 왕숙천, 장자못, 한강, 아차산, 동구릉을 연결하여 조성한 길이다. 100리 둘레길 을 가족과 이웃이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걸으면서 잔잔해진 자기 자신도 만나고, 자연도 감상하고, 사람 사는 냄새도 느끼고, 길동무의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어본다.(출처: 구리시 둘레길 자료)
2. 아차산 일대는 삼국시대 때 고구려·백제·신라가 국운을 걸고 싸움을 벌였 던 최대의 격전지로,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한성을 방위하던 제1 의 요새인 아차산성과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산꼭대기에 만든 군사 시설 보루군은 아차산의 아픈 과거를 보여준다. 또한 아차산은 온달장군 과 평강공주의 전설이 전해지는 산으로도 유명하다. 고구려의 장수인 온 달장군이 신라군과 싸우다가 화살을 맞아 전사한 곳이 바로 아차산성이 다(출처: 백과사전)
九里市 1
서울의 아침이 始作되는 莪嵯山에서 東北亞를 號令하던 高句麗의 氣像과 魂울 이어 받아 廣津區民이 꽃 피우리라
전체적인 지형은 지대가 낮고 평야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시의 남동쪽에 아차산(316m)과 龍馬峰(348m)이 있다. 아천동과 교문동 등 서쪽 지역은 높이 100m 이상의 비교적 높은 지역이며 나머지 지역은 50m 이하의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어 서쪽에서 동쪽으로 기운 듯한 지세를 보이고 있다.
• 구리아리랑-작사.편곡 김구영 노래 조진식
<후렴> 아리아리랑 구리아리랑 아라리요~
아리아리랑 구리아리랑 노다가세~
1절: 님의 발길 재워놓은 왕숙의 물은
굽이 굽이 흘러 흘러 한강을이루네
2절: 장자못에 휘늘어진 능수버들
맘씨고운 아낙네의 머릿결 같구나
3절: 조선왕조 얼이서린 동구릉의 숨결
우리고을 여기저기 두루살펴 주시네
4절: 온달장군 평강공주 애타는 사연
아차산에 올라서서 만나보리라
5절: 구경가세 구경가세 구리 구경을 가세
함께가세 함께가세 구리랑 아리랑(반복)
• 구리시 둘레길
1코스: 7.9Km
고구려대장간마을-범굴사-아차산보루군-관릉탑-망우산역사문화공원-딸기원입구
2코스: 7.8Km
딸기원입구-국군구리병원-구룡산갈매마을(갈매역)-별내역-사노나들목(퇴계원)
3코스: 7.8Km
사노나들목(퇴계원)-구리왕숙체육공원-동창보-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왕숙천생태습지-구리자원회수시설(구리타워)
4코스: 4.5Km
구리자원회수시설(구리타워)-강동대교-구리한강시민공원-구리암사대교-고구려대장간마을
무정세월
세월은
민초들의 애원성을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않으니
얄밉고
無情 스러운 것
깔닥고개에서
570개 계단 오르며
“어-허 힘들어 몇 개나 남았냐”
신음 소리들리는데
나도
한 때는 팔팔거렸지만
세월속에
산길에서 비실 거리지만
고려시대 문인
禹倬 선생처럼
嘆老歌는 부르지 않고
천명으로 받아드려
세월은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것
認知하며 산 다
고구려대장간마을에서
산 옆구리 돌면서
내 마음은
평온하고 자유스러웠습니다 2018년10월16일 화요일 맑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