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길
제2장 牧會者의 使役
제4절 說敎
1. 아버님의 설교
선생님은 설교를 위하여 준비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산 체험으로 사실을 말할 때는 모두 감동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날 뜻을 위해 고생한 것에 대하여 내가 왜 그랬던가 하고 생각하는 것은 주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민족을 위해서 고생했으면 민족이 남아 있는 한 그 고생의 기준도 살아 남습니다. (16-345)
선생님은 설교하기 전에 설교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보다 식구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 '아버지! 이들을 이끌어 올려야 되겠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것입니까, 저것입니까?' 하고 정성을 모은 다음 마음의 명령대로 설교한다. 심정을 떠나서는 생명이 없다. 심정의 골짜기 길은 고통스럽고 처참한 길이다. 스승을 요구하되 지식의 스승을 요구하지 말고 심정의 스승을 요구해야 한다. 심정의 골짜기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눈물이요, '자기'는 없어진다. (9-81)
선생님은 단에 나설 때는 특별히 기도를 하는 거예요. 어떤 때는 단에 나설 때까지 설교 제목도 없을 때가 있어요. 준비도 안 하고 성경을 읽고 나서 기도 가운데 제목을 잡을 때가 많다구요. 그건 뭘 보고? 사람을 보고. 척 벌써 사람을 보면 '아, 저건 무슨 타입이구나' 하고…. 자기하고 비교하는 거예요. '아, 내가 저럴 때는 어떤 사정이었다' 하고 마음이…. 자기를 두고 설교하는 것 같거든요. 자기 경로를 통해 가지고 하늘이 그때 동정한 은사를 중심삼고…. 그 사람이 감동을 받고 있으면 청중이 전부 돌아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청중과 나와는, 식구와 나와는 동체(同體)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못난 사람이 말을 해도 배울 게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만의 특성을 가진 진리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말을 흘러가는 말로 생각하지 않고 진지하게 듣게 되면 거기에 내가 설교 재료로 쓸 수 있는 것이 풍부하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해야 됩니다.
내가 한국에서 설교할 때는 이 등에 전부 다 땀이 뱄어요. 와이셔츠나 내복은 완전히 젖고, 이 머리에서는 땀방울이 다 떨어졌다구요. 요즈음 여기에서는 통역을 쓰니까 그렇지요. 통역을 쓰니까 그렇지.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그렇기 때문에 정성껏 들어 주고, 정성껏 말해 주라 이겁니다. 여러분들 그래요? 한사람의 할머니 말을 열두 시간에서 스무 시간까지 들어 주라는 거예요. 밤을 새우면서 들어 주는 거예요. 다 들어 주고 했으니 이젠 내 말을 들어라 이거예요. (96-323)
선생님은 옛날부터 자면서도 설교했다구요. 자면서 얘기하는 거예요. 주일학교에 다닐 때에도 말이예요, 자면서 설교하는 거예요. 대웅변으로…. 그러니까 혼자서 하는 그 설교 소리에 내가 깨는 거예요. 그때 벌써 많은 사람들을 하늘을 대표해서 지도할 것임을 내가 알았다구요. 내가 교회를 지나가게 되면 점심을 먹더라도 괜히 들어가 먹고 싶거든요. 제일 단상에 올라가서 먹고 싶다구요. 그렇다는 거예요. 벌써 사다리를 놓고 올라갈 줄 안다 이거예요. 마음이 벌써 다 안다는 것입니다. (120-325)
전부 다 복귀하는 거예요. 노동자에서부터 출발하는 거라구요. 노동자에서부터 복귀해 올라가는 거예요. 최고의 영광의 자리에서 그것을 잃어버렸으니 별수없다구요. 최하에 들어가서 다시 추어 올라와야 돼요. 옷을 입을 때, 이렇게 정장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정장을 할 수 가 없었어요. 노동자가 정장을 하나요? 설교할 때 양복을 입고서 설교한게 아마 1970년이 넘어서였을 것입니다. 그때는 양복도 안 입었다구요. 노동복을 입고 설교한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 식구들은 그런 거 처음 알지 모릅니다. 선생님이 식탁에 앉아 가지고 밥먹기 시작한 것이 아니예요. 주먹밥에서부터…. 복귀예요. 탕감복귀입니다. 무슨 스푼이니 포크니 그런 거 필요 없다구요. 그런 것 다 탕감복귀해야 돼요. (161-76)
손탁박사 질문 : 문목사님은 대중에게 하는 말과 추종자들에게 사적(私的)으로 가르치는 것이 다르다고 해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즉 사석(私席)에서는 제자들에게 좀더 다르고 강한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요?
나는 결코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역사상의 모든 예언자들은 대담하게 계시의 내용을 밝혔으며, 나도 그렇게 합니다. 사실 양키 스타디움 집회나 워싱턴 모뉴먼트 집회 뿐 아니라 신도들에게 하는 대중 설교에서 (당신처럼 누구라도 들으러올 수 있음) 나는 자주 허심탄회하게 말합니다. 때로는 강경한 어조로 설교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설교가 기억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외교관들처럼 원만하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또한 국민들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가들처럼 얘기하지도 않습니다. 역사가 나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점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합니다. 나는 현재의 인기를 쫓아다니지 않습니다. 내게는 오늘날 미국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느냐 못 얻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지시한대로 말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사람들의 필요성에 의해서나 또한 듣는 이의 수준에 맞춰 말하기도 하지만 거기에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때로 나는 어떤 일들을 신도들에게나 심지어 지도자들에게까지도 말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뭔가 비밀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통일원리를 이해하는 정도엔 차이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개종자들에게는 영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딱딱한 음식 대신에 우유를 먹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통일교회 운동은 비밀로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과거의 기록이 그러한 점을 훌륭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난 몇년간 무엇을 했으며, 통일교회가 한국, 미국, 일본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그것이 바로 증거입니다. 우리가 해온 일은 국가나 인류, 즉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첫번째 사명은 진리를 전파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심정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정부를 전복시킨다거나 은행을 털려고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91-129)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