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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아버지 집은 어디에 있는가?
궁극적인 면에서 ‘아버지 집’이란 완성된 천국,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가리킵니다. 눈물도 고통도 근심도 걱정도 아픔도 없는 처소입니다. 전쟁도 죽음도 없는 유토피아 세계입니다. 모든 사람이 가고 싶고 살고 싶은 집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승천하시고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시는 일련의 사역은 우리를 아버지 집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향이요 아버지의 집에 가려면 주님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만 바라보고, 그분만을 믿고, 그분만을 신뢰하고 가면 아버지 집에 이르게 됩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이 너무 귀중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 무책임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현실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가룟 유다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력으로 로마 세력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나라의 정치적 회복을 이루기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자 예수님께서는 현실에 집착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로부터 임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제자들을 훈련시키시면서 세상과 땅을 바라보던 그들의 눈을 높이 들어 하늘을 바라보도록 훈련시키셨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잠깐이고 하늘의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늘에서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들의 본향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집을 바라보며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올바른 신앙을 지닌 사람들은 하늘의 아버지와 하늘 집을 바라보고 그리워하면서 살았습니다. 이제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라고 가르치셨던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았던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아침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삶의 지혜와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이 땅에 안식할 집이 있듯이 분명 육체의 장막을 벗을 날 영원히 안식할 아버지 하나님의 집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는 누구나 사랑하는 이들과 죽음으로 이별을 경험해야 합니다. 너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대로 ‘내 아버지 집’이라 하신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또 아버지의 집이 있다는 건 인생이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영생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죽음의 이별로 근심하며 아파할 수밖에 없지만, 그 슬픔과 고통을 아버지 집에 대한 소망으로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에 대해 말씀하시고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라 하셨습니다. 천국이 공사 중이거나 불완전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게 아니었습니다. 죄인들이 영원한 아버지 집에 거할 수 있도록 예비하러 가시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을 가리킵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도마가 묻습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가시는 ‘어디’가 일차적으로 십자가라면,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아버지 집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제자들이 주와 함께 영원히 거할 처소를 예비하십니다. 죄인들이 아버지 집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 증거합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 구절은 주께서 택하신 성도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시면 반드시 다시 오실 날이 이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날은 주의 백성이 아버지 집에서 영원히 안식하는 날이며, 창조와 구원이 완성되는 날입니다. 그날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 되시길 축원합니다.
「정진옥 목사(서울 천성교회)」[출처] - 국민일보
크리스천투데이와 함께하는 사순절 QT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제자들 안에 근심이 있습니다. 유다는 떠나갔고 제자들은 스승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마치 대낮에 태양이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미래를 알지 못했습니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가운데 주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누구보다 근심하셔야 할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로하십니다. 자기 사정을 넘어서 다른 이를 염려하고 위로하는 것은 참으로 깊은 사랑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떻게 불안과 근심을 잠재우고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십니다. 이 ‘믿음’ 안에 일체의 평안이 있습니다.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는(마 26:31, 슥 13:7) 비참한 상황 속에서, 제자들을 안심시키시고 위로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삶 속에 환난과 어려움이 있다면, 주께서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진정한 평안을 누리기 원합니다.
주님께 죽음은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죽음은 상실이며 절망이며 슬픔인데, 그 모든 죽음의 어둠을 불살라 버리는 힘은 하늘나라에 대한 믿음입니다. 십자가라는 비극의 극치를 넘어서는 힘은 천국 소망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인생은 살아도 천국이고 죽어도 천국입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입니다.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것, 그 한 길뿐입니다.
또한 주님께 죽음은 ‘제자들의 거처를 예비하러 가는 것’입니다. 삶의 가치는 어떻게 죽느냐에서 결정됩니다. 주님께는 그 죽음까지도 제자들을 위해 예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죽음은 더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 먼저 가는 것’이라고, 자상한 어머니와 같이 제자들의 슬픔을 위로하십니다.
주님께서 들려 주시는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를 우리 삶의 순간순간 붙들기를 원합니다. 천국의 소망을 품고 천성을 향해 주께서 가신 길 한 걸음 한 걸음 좇아갑시다. 우리도 주님의 마음을 품고 천국에 누군가의 거처를 예비하길 원합니다.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1. ‘Heaven’을 장소로만 생각하는 기독교인들.
성경을 보면 ‘천국’이란 단어가 신·구약 성경에 총 36번이 나오는데 마태복음에 35번이 나오고 디모데후서4:18절에 한 번 나옵니다.
사람들은 ‘천국’을 영어로 ‘Heaven’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Heaven’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나올 때 단순하게 죽어서 가는 장소의 뜻이 아니라 상태를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한글 성경에 ‘하늘’이라는 단어를 영어 성경에는 ‘Heaven’으로 사용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Heaven = 천국 = 죽어서 가는 곳이란 공식이 확고부동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만 자세히 보면 이런 공식이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천국’이란 단어가 왜 구약성경에는 나오지 않는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천국’은 구약성경에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 아담부터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다윗왕, 엘리야, 엘리사 같은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과 교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러면 이 사람들이 육체가 죽어서 어디로 갔다는 것인가!
천국이 없다면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이 지금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이들이 천국에 있다면 구약 성경에 천국이라는 단어가 한 번은 나와야 되는데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을 찾아보면서 그 정답을 알아봅시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3:1-2)
천국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합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며 “천국이 가까왔다”라고 외칩니다. 가까이 왔다는 것은 아직 오지는 않고 곧 온다는 말인데 어떻게 장소의 천국이 오고 말고 할 수 있을까요.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마4:17)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처음 하신 말씀이 세례 요한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세례요한이 언급한 가까이 온 천국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까이 온 천국의 차이는 무었일까요.
세례요한이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장소의 어떤 것이 아니라 올 수 있는 어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천국 자체입니다.
올 수 있는 천국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언급했던 가까이 온 천국은 아직 구약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안 오셨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천국이 곧 나타나 사람들에게 보이게 될 것을 미리 말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사40:5)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함이 천국입니다. 특정 장소를 말함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골1:1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2:9)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상태가 천국을 의미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아버지의 모든 것으로 충만하신, 천국이신 분이 사람들에게 나타날 것을 세례 요한이 마3:1-2절을 통해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까이 온 천국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이미 사람들에게 오셨는데 왜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가까왔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사람들에게 가까이 온 천국은 사람들 안에 이루어질 천국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오셨지만 사람 밖에서 만나주시고 밖에서 일하시는 분으로 오셨고 이제 일을 이루시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각 사람 안에 들어오시어 그 사람 안을 천국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가까이 왔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이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라” (롬8:9-10)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천국’은 죽어서 가는 어떤 특정한 장소라 아니라 각 사람 안에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마태는 ‘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누가복음에서 누가는 천국을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천국과 하나님 나라는 다른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도 어떤 특정 장소를 말씀한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이루어지는 상태의 나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바리새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 안에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더 구체적으로 사람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구약성경에 ‘천국’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은 것은 첫째, 천국이신 예수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고 둘째, 또 사람 안에 이루지는 천국도 완성될 수 없었기 때문에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3. 성경에는 처음 하늘(first heaven)과 새 하늘(new heaven)이 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
heaven을 천국이라고 다들 알고 있는데 ‘처음 heaven’이 있고 ‘새 heaven’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heaven이라고 해서 같은 heaven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천국은 무조건 장소며 죽어서 가는 곳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heaven을 하나님이 계시는 heaven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heaven으로 나눠났습니다.
계21:1절에 처음 하늘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heaven이고 새 하늘은 하나님이 계시는 heaven입니다.
“하늘의 하나님(the God of heaven)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창24:7)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Our Father in heaven)”(마6:9)
이 두 구절에 나온 heaven은 하나님이 계신 하늘입니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reaches to the heavens)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11:4)
이 사건은 시날 평지에 탑을 높게 쌓아 더 이상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은 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 바벨탑을 쌓아 올리면서 대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정도의 높이로 쌓아 올리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높게 쌓아 올린들 하늘에 닿을 수 있겠습니까.
이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여기에 나온 하늘(heaven)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하늘입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fallen from heaven)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ascend to heaven)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14:12-14)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인 천사 중 한 존재가 반역을 했는데 그 존재가 바로 사단입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도고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계12:7-9)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며 봉사하는 일을 하는 존재들이 천사(시103:20-22)인데 이 천사가 자기가 가진 능력에 도취되어 하나님께 반역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 죄가 사14:13-14절에 나오는데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곧 지극히 높은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가 되어 보겠다는 것이고 이 말은 “피조물이 스스로 사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가장 큰 죄입니다.
“피조물이 하나님 없이 스스로 사는 것”.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믿지 않는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었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반역해서 쫓겨난 존재인 사단이 사람, 여자에게 유혹할 때 무슨 말을 했습니까.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3:5-6)
사단이 범했던 죄를 똑같이 여자에게 짓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
결국 “스스로 사는 존재인 하나님 된다”라는 사단의 유혹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고 하나님 없이 스스로 사는 존재, 하나님이 없는 하늘의 상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창11장 바벨탑 사건도 똑같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이 스스로 살기 위해서 탑을 쌓아 올리는 행위, 그것도 ‘하늘’에 까지 쌓아 올리려는 생각이 바로 사단에게서 나온 피조물이 스스로 사는 존재가 되는, 하나님이 안 계시는 ‘하늘’의 상태인 것입니다.
따라서 계21:1절에 나오는 처음 하늘, 사14:12-14절에 나오는 사단이 반역해서 올라가고자 하는 하늘, 홍수 사건을 보면서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하늘에 까지 쌓고자 하는 하늘, 모두 heaven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 heaven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heaven입니다.
4.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heaven)은 나의 보좌요 땅은(the earth)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행7:49)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거대한 모습으로 계시다고 하거나 하나님 형상이 없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하늘과 땅은 어디를 말씀하는 것일까요.
하늘은 저 위에 있는 죽어서 가는 천국을 말하고 땅은 사람들이 사는 지구라고 대부분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 알고 있는데 이 말씀을 보면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라고 말씀하시니 천국에 하나님이 안 계신다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늘이 사람입니다.
성경을 찾아보면서 하나님이 계신 보좌와 하나님 통치하시는 나라가 어디인지를 알아봅시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출25:8)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25:22)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이 거할 성소를 지으라고 명령하시고 이 성소는 ‘나’ 곧 하나님을 위하여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소를 짓고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거룩하고 구별된 지성소에 과연 하나님이 거하셨을까요.
분명히 출25:8절 말씀에는 ‘그들 중에 거할’ 장소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의 성막은 움직이는 성막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막을 중심으로 12지파가 진을 치고 성막위에 있는 구름이 움직이면 그때 같이 움직이고 구름이 멈추면 다시 성막을 먼저 치고 동서남북에 12지파의 장막을 쳤습니다.
이 성막이 고정된 성전이 된 것은 솔로몬을 통해서 만들어진 성전이며 7년 동안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왕상6:38) 그러면 이 성전에 하나님이 거하셨을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요2:19-20)
예수님 당시에 헤롯 성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계셨을 당시니까 이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셨을까요.
그런데 이 성전을 향해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요2:16)
‘내 아버지 집’이다.
이 번 글의 주제가 ‘내 아버지 집은 어디인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헤롯 성전이 아버지가 거하는 집일까요.
주후 70년에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이 성전은 돌 하나 돌 위에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아버지 집이 사람들에 의해서 없어져 버린 것이 됩니다.
모세시대에 성막이나 솔로몬 시대에 만들어진 성전이나 헤롯에 의해서 만들어진 성전도 결국 사람 손으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하나님은 사람 손으로 만들어진 곳에는 계시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행17:24)
사람 손으로 지은 곳에 안 계시지만 하나님 손으로 지은 곳에는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2:21)
사람 손으로 만든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그곳이 바로 아버지의 집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당신의 육체가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궁금한 것은 왜 예수님은 헤롯 성전을 보고 ‘내 아버지 집’이라 하셨을까?인데요 성전이 하늘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이나 성전은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설계도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치수 그대로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예표로 예수님은 성전을 향해 아버지 집이라 말씀하셨고 이제는 예표요, 그림자인 성전은 필요 없기 때문에 이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실제의 성전, 아버지가 거하시는 집인 예수님의 육체가 있기에 그림자는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이신 예수님 안이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늘이고 예수님의 육체가 땅인 발등상입니다.
5. 예수님 당시에 아버지 집은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heaven)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
주기도에 예수님은 아버지가 ‘하늘’에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는 ‘하늘’을 기독교인들은 죽어서 가는 어떤 장소로 알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늘’, ‘천국’을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이렇게 설교를 하니 교인들은 “지금 사는 것은 어렵고 힘들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죽어서 앞으로 좋은데 갈거야”라는 믿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집은 “여기가 아니고 저기다”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가 계신 ‘하늘’이 어디일까요.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14:10)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16:32)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 계신다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지금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는다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도 믿지 않습니다.
그 증거로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고 아버지는 저기 하늘에 계신다고 믿는 것, 이것이 현재 기독교인들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늘, 아버지가 계신 하늘은 예수님 안이고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직 아버지가 계시는 아버지 집은 예수님 안이고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신 것입니다.
6. 이제는 믿는 자 안이 아버지 집이고 천국이고 새 하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9)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아버지 집은 죽어서 가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는 자가 아버지 집이며 믿는 자가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전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 거하셨기 때문에 바로 예수님이 아버지 집이였던 것처럼 이제는 믿는 사람 각자가 아버지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6:16)
성막이나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것처럼 이제는 사람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며 그 곳에 하나님 집이 이루어집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2)
예수님은 잉태하실 때부터 하나님의 모든 것으로 충만하신 분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골1:1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2:9)
그러나 믿는 자들은 죄 중에 잉태하고 죄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그래서 거듭남이 필요하고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갈2:20) 하나님이 안에 들어오심으로 비로소 그 사람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처소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이 안에 들어 오신다고해서 바로 성전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어져 가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이 말씀에는 ‘안에’ 하나님이 들어오심으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갑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안이 먼저 성전이 되고 몸까지 하나님의 성전, 처소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엡2:22절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누가복음의 하나님의 나라와 마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는 천국은 같은 뜻입니다.
천국은 바로 믿는 자 안에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의 어떤 유명한 목사님이 일간 신문에 전면 광고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늘’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첫째 하늘은 대기권이고, 둘째 하늘은 우주고, 셋째 하늘은 천국이다”라는 글을 쓰면서 하나님은 우주 넘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죽으면 만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목사님 한 분만의 생각일까요. 아닙니다.
대부분의 목사, 평신도들의 천국관이라 볼 수 있습니다.
죽어서 가는 곳,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곳에 내 집이 있다! 성경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 목사들, 이들이 세상에서는 유명하다고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믿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천국이 이루어질 수 없고 이 세상에서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갈 곳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밖에 없습니다.
7. 아버지는 집은 가는 곳이 아니라 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14:2-3)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하늘에 가신 이유가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면 처소를, 믿는 자들의 처소를 짓기 위해 가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가신 지 벌써 2,000년이란 시간이 지나가는데 아직도 예수님은 안 오시고 계신 것은 아직 처소를 다 준비하지 못해서일까요. 얼마나 많은, 얼마나 대단한 처소를 짓길래 예수님의 능력으로도 감당이 안 돼서 아직도 오시지 않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의 의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 허상을 좇다가 죽어간 기독교인들이 불쌍합니다.
“왜 예수님은 먼저 아버지 집이란 말씀을 하셨을까?”
그리고 처소를 예비하시러 가신다고 하셨으니 아버지 집과 이 처소와 어떤 관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아버지 오른쪽으로 가신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부터 기독교인들이 잘못 알기 때문에 아버지 집을 죽어서 가는 곳이라 믿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버지 안으로 가셨습니다. 왜 아버지 안으로 가셔야 되는가.
아버지 안으로 가셔야만 믿는 자 안에 오셔서 믿는 자 안에 아버지 집, 처소를 준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오른쪽으로 가신 예수님은 믿는 자 안으로 오실 수 없습니다.
만일 오신다고해도 한 사람 안에만 들어오실 수 있겠지요.
그러면 그 한 사람만 아버지가 거하시는 처소가 되지 나머지 믿는 자 안에는 아버지가 거하시는 처소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다시 와서”라는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아니! 이미 오셨고, 지금도 오시고, 앞으로 계속 오실 것입니다.
바로 믿는 자 안으로 말입니다.
오신 이유가 처소가 예비되면 믿는 자들을 예수님에게로 영접하시기 위함이라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믿는 자들을 예수님에게로 영접하실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아직 안 오시고 지금 저 하늘에 계시니까 결국 믿는 자들을 예수님에게로 영접하게 하시려면 믿는 자들이 죽어서 가는 방법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내가 다시 오면‘이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이 믿는 자들을 예수님에게로 영접하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이 오셔서 계신 그 곳이 아버지 집이며 우리도 그 곳에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있는 그 곳에 우리도 함께 있는, 그 곳은 바로 믿는 자 안입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게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네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17:23-24)
아버지께서 예수 안에, 우리가 예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있는 이 상태가 예수님이 있는 곳에 믿는 자도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➁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➂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고후5“1-2)
땅에 있는 장막 집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 사람 아담이 가지고 있는 옛 사람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 옛 사람의 상태, 곧 이전 것이 지나가야 새 것이 오고, 옛 사람이 지나가야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으며 이 사람이 땅에서 육체를 가지고 살아갈 때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존재가 바뀌는 것을 말씀합니다.
8. 천국은 상태이므로 믿는 자들이 죽어서 가는 천국은 없다는 것인가.
오해하지 말 것은 천국이 상태로 살아 있을 때에 믿는 자 안에 이루어진다라고 하니까 그러면 “육체가 죽으면 어디에 간다는 말이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줄 압니다.
분명히 믿는 자들이 갈 장소의 낙원이 있습니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재 기독교의 내세관은 모든 것이 죽어서 이루어진다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영생도 죽어서 얻고, 천국도 죽어서 가는 곳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내세관 때문에 기독교 악인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았던지 예수 공로 의지해서 죽으면 천국간다는 설교가 기독교를 종교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이 만든 종교가 아니라 실재이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이 살아 있을 때 내 안에 들어 온 그 사람이 천국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무렇게 살다가 죽으면 가는 곳이라 성경에는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heaven)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heaven)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16:19)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먼저 언급하신 것은 ‘땅’입니다.
천국 열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말합니다.
그 조건이 땅에서, 다시 말하면 육체가 있을 때 믿음의 상태가 천국에 상태가 되지 못한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제 죽어서 가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 먼저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살며 믿는 내가 바로 아버지 집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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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현 목사님! 반갑습니다 😁 💛 ☀️
귀한 메시지 감동입니다.
천국에 대해서 잘 정랍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샬롬 감사합니다.
심재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