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딸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들..
 
 
 
카페 게시글
서원이야기 스크랩 부강서당 이야기
아라 추천 0 조회 90 14.09.07 16: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명 칭 :  부강서당(?江書堂)
소 재 지 :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상평리 213-1
문 화 재 :  향토문화유적

건축 배경
부강서당은 서당 앞 마을의 형상이 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오리 부’(鳧) 자를 써서 이름한 곳이다. 퇴계학파의 정맥인 이상정(李象靖), 김종덕(金宗德), 류치명(柳致明) 등의 신위를 봉안하고, 청송 지역 퇴계학 전파에 기여한 곳이다. 뿐만 아니라 구한말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열사 86인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기도 하다.

건축 특징
병암서원은 경사지에 외문·내문·사당을 잇는 중심축을 중심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는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서원 건축 구조라 할 수 있다.

내력과 기능

관련이야기
- 연혁
부강서당에는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열사 86인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청송의진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계기로 1896년 청송 유림을 중심으로 일어난 의병 부대이다. 그러나 4개월 후 고종황제의 칙령에 의해 해진하여 면군(面軍) 체제로 전환하였다.
청송의진의 실제 활동상은 『적원일기』(赤猿日記)가 발견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청송은 전국에서 의병 공훈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 되었으며 이러한 점이 인정되어 상평리 꽃밭 등 부근에 의병 기념공원이 조성될 것이다. 임시로 위패가 봉안된 부강서당(鳧江書堂)을 떠나 기념관에 전국의 의병 선열 1,800여위와 함께 봉안될 예정이다.

관련인물

관련인물
- 서석화(徐錫華, 1860~1924)
서석화는 자가 중온(仲蘊)이고 호가 청석(淸石)으로 김흥락(金興洛)의 문인이다. 학문이 깊고 성품이 온화하여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부친의 명에 따라 한성시(漢城試)에 뜻을 두었으나, 시대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 과거를 포기하였다. 그리고 자연을 벗하며 학문을 연구하고 시문을 지으며 일생을 보냈다.
- 김종덕(金宗德, 1724∼1797)
김종덕은 자가 도언(道彦)이고 호가 천사(川沙)이다. 일찍이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을 사사하여 퇴계의 학통을 계승한 영남학파의 학자로, 이후 사종(師宗)으로 추앙받았다. 30세인 1753년(영조 29)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오직 학업에만 열중하였다. 사마시에 합격한 통문이 왔을 때 마침 글을 쓰고 있어서 그 글을 다 마무리한 뒤에야 뜯어볼 정도로 주의력이 깊고 진중했다고 한다.
1789년(정조 13년)에 학행으로 천거되어 의금부 도사에 이르렀으나 취임하지 않았고, 유자정(孺子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학문을 강론하고 제자를 길렀다.
그는 또한 효성과 우애가 남달랐다고 한다. 어린 아이였을 때, 까마귀 소리가 들리면 악기(惡氣)가 서린다는 말을 듣고는 까마귀가 울 때마다 부모님께 해가 끼쳐질까 걱정했다고 한다. 한 번은 여러 동생과 공부하다 전염병이 창궐하여 감염되었지만, 억지로 먼저 일어나 몸져누운 동생들을 간호하였다. 부모님이 거처하는 방은 항상 본인이 직접 문을 바르거나 구들장을 고쳤다고 한다. 죽은 지 18년뒤에 사림에서는 그를 불천위(不遷位)로 모셨다.
그의 동생들도 모두 이상정을 사사하여 학문이 높았다. 둘째 김종경(金宗敬)은 호가 구제(苟齋)인데, 문과급제하여 성현찰방(省峴察訪)과 사헌부 지평을 역임했다. 이상정의 명에 따라 『심경강록』(心經講錄)을 찬술하고자 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세째 김종발(金宗發)은 호가 용연(容淵)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장릉별검(莊陵別檢)과 사헌부 장령을 역임했다. 천품이 영매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사훈을 독신했다. 정조(正祖)는 그의 행의가 특이하고 학문이 고명하다고 찬양한 일이 있다.
넷째 김종섭(金宗燮)은 호가 제암(濟庵)으로, 재질이 빼어나고 총명했으며, 문장력이 뛰어나 동문의 추종을 받았다. 생원시(生員誡)에 합격한 뒤 명재상 체제공(蔡濟恭)과 깊은 친교를 맺었다.

마을이야기

청송 > 청송권 > 부동면 상평리
- 부동면 지역을 마뜰,마평이라고도 한다. 당나라 주도라는 이가 임금으로 자처하며 내란을 일으켰다가 패퇴하고 신라 석병산에 숨었다. 이때 신라에서는 마일성 장군을 보내어 그를 잡게 하였다. 마일성 장군이 이곳에 진을 치고 말들을 메어놓았다고 하여 마들,마뜰이라고 했다.
리의 지형은 마치 오리가 물 위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마을 앞에 흐르는 강을 ‘부강’이라고도 부른다.
동쪽으로 보이는 마을은 산이 병풍처럼 바위 절벽으로 감싸있고 돌무더기가 많아 석골이라 불렸다. 그 후 마을길이 부동면으로 통하는 고개에 자리 잡으면서 근래에 와서는 석현 혹은 석고개라 불리어지고 있다.
북쪽마을 위에는 저수지가 있어 지리라고 하고 있다. 옛날 이 저수지 자리에 천지당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 천지당을 못으로 만들어 논에 물을 대었다. 그런데 못 둑이 자주 터져 물난리가 나서 마을 사람들에게 큰 걱정거리가 되었다. 이 때 한 스님이 지나가다가 “천지당을 훼손한 죄로 하늘이 벌을 내리는 것이니, 중을 항아리에 넣고 못 가운데 묻으면 천벌을 면하고 못 둑도 터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이 그 스님에게 달려들었으나, 스님은 반항도 하지 않고 태연히 붙잡혀 큰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다. 주민들이 그 항아리를 못 가운데 묻은 이후로 둑이 터지지 않았다고 한다.

암전이라는 마을은 마을 뒤에 큰 바위가 있어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이 바위에 소원을 빌면 모든 일이 잘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부수곡,부시골,부시게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 앞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많은 오리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오리들을 자식처럼 아끼고 보살폈다. 오리가 살던 곳이라 하여 부수곡 부시게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해 큰 홍수가 난 뒤 연못이 메워져 농경지로 바뀌게 되었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