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중국 고도 서안, 화산 태백산 트레킹 산 행 일 : 2011년 5월 5일(목) ~ 8일(일) (3박4일) 산행참가 : 15백두. 주관 여행사 : 헤초여행사
<5월 6일(금) 제2일차 화산(华山) 산행> - 호텔 조식 후 화산으로 이동. - 북봉(케이블카 이용 1,615m) 도착 후 산행시작. - 북봉케이블카 승강장 ~ 북봉(운대봉, 1,614m) ~ 창룡령 ~ 중봉(오운봉/옥녀봉) ~ 동봉(조양봉, 2,090m) ~ 하기정(下棋亭) ~ 장공잔도(长空栈道) ~ 남봉(낙안봉 2,155m) ~ 서봉(연화봉 2,082m) ~ 금쇄관 ~ 북봉케이블카 승강장 - 태백산 이동. (약 2시간 소요) - 호텔 도착 후 석식 및 휴식. (태백 도가촌 호텔)
<화산(华山) 지도>
<화산(华山, 2,160m)> 정상의 다섯 봉우리가 마치 다섯 송이의 꽃 같다는 뜻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화산은,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에서 동쪽으로 120km 떨어진 화음시(華陰市)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옛날에는 태화산(太華山)이라고 불렸으며, 서안과 정주(郑州)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중원의 서쪽 관문 역할을 했다. 한대(汉代) 이래 명산으로 받들어져 온 오악(五岳) 중 하나로 역사 깊은 산이며, 1982년에 중국 국가급 풍경 명승구(国家级风景名胜区)로 지정되었다. 중국의 오악(五岳)은 각각 동악(东岳)인 태산(泰山), 서악(西岳)인 화산(华山), 남악(南岳)인 헝산(衡山), 북악(北岳)인 항산(恒山)과 중악(中岳)인 숭산(嵩山)을 말하며, 전국시대 이래의 오행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바위가 많은 화산은 오악 중에서도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해 사람들 사이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곳이자 신비롭고 영험한 장소로 각인되었는데, 덕분에 고대의 수도였던 시안은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화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2,160m에 달하지만, 등산할 수 있는 최대 높이는 해발 1,641m 까지다. 아직 등산로가 정비되지 않고 안전시설이 설치되지 않아 무모한 등산을 감행했다가는 목숨을 잃을 위험도가 높기 때문이다. 허가된 등산 코스를 오른다고 해도 험준하기로 소문난 곳이라 반드시 앞뒤를 잘 살피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숙소인 연화산장에서 맞는 일출.
연화산장에서 아침식사.
짐은 꾸려서 버스에 실어두고,
화산 등산을 위해 화산관람객센터(华山游客中心) 도착.
일반적으로 화산 산행을 위해서는 매표소에서 미리 다섯 개의 표를 구매한다고 한다. 북봉케이블카 타고 올라서 서봉케이블카 타고 하산할 경우, 화산 입장료, 매표소에서 북봉케이블카까지 가는 버스 표, 북봉케이블카 표, 서봉 케이블카 표, 서봉 케이블카 입구에서 매표소까지 돌아오는 버스표로 1인당 총 400위안 남짓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산을 북봉케이블카로 내려와 원점회귀할 예정이고, 가이드가 알아서 매표를 해서 몇장을 얼마에 샀는지 알 길이 없다.
센터 벽의 화산 풍경도와 안내도.
화산과 태백산은 중국 중부의 감숙성(甘肅省)과 섬서성(陝西省)의 남부를 동서로 뻗은 진령산맥(秦嶺山脈)에 위치하는데, 진령산맥은 평균 해발 고도 2000m, 길이는 약 1500㎞에 이른다. 중국에서는 오악(五嶽)이라 하여 5개의 명산을 꼽고 있는데, 그것은 동쪽 산동성의 태산(泰山), 서쪽 섬서성의 화산(華山), 남쪽 호남성의 형산(衡山), 북쪽 산서성의 항산(恒山), 가운데는 하남성의 숭산(嵩山)을 말한다. 이런 오악의 특징을 문학적 비유와 과장법을 버무려서 ‘항산여행(恒山如行)하며 태산여좌(泰山如坐)하고, 화산이립(華山而立)이며 형산여비(衡山如飛)에 숭산여와(嵩山如臥)라’고 했다. 즉, 항산은 움직이는 것 같고, 태산은 앉았으며 화산은 섰고, 형산은 날아갈 듯하며 숭산은 누웠다는 말이다. 화산이 섰다(立)는 것은 기암절벽들로 험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화산의 화(華)는 예전에 화(花)와 같은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산의 형상이 꽃과 같다는 이름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화산은 험한 바위봉들이 꽃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특징이 도출된다.
셔틀버스 탑승장 지붕 너머로 화산의 암봉들이 보인다.
소형 셔틀버스에 탑승하여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향한다.
북봉 케이블카 하부 승강장에 도착하니,
화산의 거대한 화강암 절벽이 더욱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중국 역사에서 화산을 중심으로 주변 300리가 삼황오제(三皇五帝)의 거주지였다. 삼황오제는 중국 고대의 전설적 제왕을 말하며, 이들로부터 중국 역사가 시작됐다고 전한다. 3황은 복희씨, 신농씨, 여와씨를 말하며, 천황·지황·인황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삼황 가운데 여와씨는 여신이다. 복희씨는 사람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했으며, 신농씨는 농사법을, 여와씨는 인간을 창조했다고 한다. 5제는 황제헌원, 전욱고양, 제곡고신, 제요방훈, 제순중화를 말한다.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의 황제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 삼황오제가 모두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화산이 중화민족의 뿌리라는 말이 그래서 탄생한 것이다.
오악(五岳)은 고대 중국의 영토범위를 상징하지만 국경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고대 문명과 영토를 상정할 때, 오악과 마찬가지로 주요 고려대상이 된 건 4갈래의 강(江)이었다. 바로 황허(황하), 창장(장강이라 하며, 양자강의 다른 이름), 화이허(흑룡강 또는 헤이룽강, 러시아에서는 아무르강), 치수이(기수)이다. 이를 사독(四瀆)이라 한다. 오악사독(五岳四瀆)은 중국의 고대 산천강하를 대표하는 개념이다. 오악사독 가운데 화산이 고대 문명 발상지 황허강과 제일 가깝다. 뿐만 아니라 뤄허강(황하강의 지류인 洛河), 웨이허강(황하강의 지류인 渭河)이 황허강과 합류한다. 악과 독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 화산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중화라는 말도 화산에서 나왔다. 삼국지의 조조는 “중원을 지배하는 자, 천하를 얻는다(得中原者得天下)”고 했다. 그 중원의 중(中)과 화산의 화(華)가 합쳐져 지금의 ‘중화(中華)’가 된 것이다. 고대국가에서 화산은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중원 천하를 통일한 황제는 반드시 화산에 오르거나 화산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 고대 역사에서 56명의 황제가 화산을 순유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정상에 오른 황제는 한 명도 없었다. 화강암 덩어리인 통바위산으로 된 화산을 오른다는 건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단다.
걸어서 북봉으로 오를 수 있는 계단길 들머리를 지난다. 이곳에서 화산 능선으로 이어진 계단길을 지취화산길(智取華山路)이라 하는데, 옛날 국민당군으로부터 화산을 지켜낸 지취화산8용사(智取華山八勇士)가 다녔던 길이라 한다.
북봉케이블카 하부승강장으로 이동하여,
북봉으로 향하는 케이블카에 탑승한다.
돌아본 케이블카 탑승장. '삼대삭도', 뭔 뜻일까?
고도가 높아지니 화산 북봉케이블카 승강장 전경이 모두 내려다 보인다.
내려다본 북봉으로 이어지는 도보길인 지취화산길. 언젠가 시간이 많이 있으면..ㅉㅉ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화산의 모습이 점점 더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화강암 절벽 표면.
바위 절벽 사면으로 이어진 잔도의 모습이 아찔하게 다가온다.
북봉케이블카 상부 승강장에 도착하여,
다음 케이블카에 탑승한 분들을 기다렸다가,
북봉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화산 안내도에는 남봉까지의 거리가 2,600m로 가장 멀다고 표시해 놓았다. 물론 북봉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은 봉우리는 남봉!
좌측의 운대산장 뒤쪽 봉우리가 북봉이다. 바로 지척에 있지만 멀찍이서 보는 것 만으로 만족한다.
<북봉/운대봉(1,614m)
화산의 다른 봉우리에 비해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삼면이 모두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산세가 험하다. 위로는 구름에 덮여 있고, 아래로는 지맥을 통과해 홀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운대와 비슷하다고 해서 운대봉(雲臺峰)이라고도 한다. 북봉에서는 바로 아래 북봉 케이블카로 연결된다.
북봉 아래 케이블카 승강장을 뒤로하고, 국민당군으로부터 화산을 지켜낸 8용사가 다녔다는 지취화산길(智取华山路)을 거슬러 창룡령으로 향한다.
이정표.(한자와 한글 그리고 영어 표기가 제각각이다)
돌아본 북봉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길. 우리는 우측 아래의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올라왔다. (케이블카 탈 때는 능선으로 가야 한다)
도룡묘라는 자그마한 도교사원 앞에 도착하니,
우측으로 보이는 화강암 절벽의 위세가 대단하다.
도룡묘. '도룡'이란 글자가 옛날에 재미나게 읽은 '의천도룡기'라는 무협지를 떠올리게 한다.
도룡묘라는 도교사원은 창룡령 입구에 있다. 창룡령은 산서성의 풍수에 용맥이 있는 곳이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오르려고 한다. 화산의 신성한 기운도 이곳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룡묘에 와서 향을 피우며, 일이 잘 되고, 많은 재물이 들어오고, 미래가 발전하며 평안하기를 기원한다고 한다.
도룡묘에서 바라본 북봉 방향. 좌측의 운대산장이 있는 봉우리가 북봉이다.
창룡령으로 이어지는 돌계단. 오가는 탐방객들과 물품을 운반하는 짐꾼들이 뒤섞여서 좁은 돌계단을 꽉 매우고 있다. 용맥이 흐르는 창룡령의 매일 지나다니는 짐꾼들은 신성한 기운을 수없이 받았을 텐데..ㅉㅉ
우측으로 보이는 아찔한 화강암 절벽.
앞쪽으로 창룡령이 보인다.
돌아본 북봉 방향.
우측으로 보이는 절벽.
좌측의 암봉 모습.
창용령(蒼龍嶺) 도착.
창룡령은 많은 산봉우리들이 연결된 칼 모양의 산마루로, 530개의 돌계단을 만들어 등산객들이 오르내린다. 고개가 짙은 회색이고, 꿈틀거리는 용과 같아 창룡령(蒼龍)이라 부르게 됐다. 옛날에는 돌계단이 없어 기다시피 오르내렸다고 한다.
돌아본 북봉 방향.
우측 갈림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냥 오운봉(중봉) 방향의 돌계단길을 따른다.
난간에 자물쇠가 촘촘히 걸려있는 전망바위.
북봉 방향.
비어령 갈림길을 지난다.
남봉까지의 거리가 많이 줄어들었다.
오운봉을 향해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오운봉(五雲峯)이라 적힌 돌문이 나온다.
<오운봉(五雲峯)> 깊은 가을, 푸른 소나무와 붉은 단풍, 그리고 눈부시게 핀 산꽃들이 어우러져 마치 오색구름 같다 하여 오운봉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한때는 화산의 동,서,남.북봉의 중앙에 위치하여 중봉이라 불리기도 했으나, 현재의 중봉은 금쇄관을 지나서 있는 봉우리를 말한다. 오운봉에는 팔공감, 상마석, 장군면, 단인교, 오노송, 부처송, 와호송, 금계수옥함 등의 볼거리가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넉넉하면 두리두리 찾아보면서 지나면 좋으련만...
우측 전망대에서 본 절벽.
돌아본 북봉 방향.
다소 완만해진 돌계단 능선길을 따르니,
우전방으로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자리한 산장쯤으로 보이는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암릉 계단을 따라 오르면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궁금하여, 지친 다리를 재촉하여 오르면..
주변 암봉들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조망되고,
선장애(仙掌崖)라는 절벽 전망대가 나온다.
다른 절벽에 비해 보기에는 고만고만한 절벽인데, 선장애(仙掌崖)라고 하여 관중8경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절벽이라고 한다.
앞쪽으로 인절미를 닮은 바위가 눈길을 끌고,
글귀가 적힌 널따란 바위를 우회 돌계단으로 오르면,
돌아본 암릉 계단.
금쇄관(金鎖關)이라 적힌 성문이 나타난다.
금쇄관 우측으로 보이는 절벽이 점점 아찔하게 다가온다.
금쇄관(金鎖關)은 당 시대부터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하여 여러 번의 중수를 거처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며, 금쇄관을 지나면 동봉과 서봉으로 가는 길이 나누어진다.
돌아본 금쇄관 앞 전경.
금쇄관을 들어서자 좌측으로 자물쇠와 빨간색 천을 매달은 쇠줄이 겹겹이 처져 있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 빨간색이다. 이것도 화산에서 나왔다. 화산 가는 길에 ‘紫氣東來(자기동래)’라는 문구가 자주 눈에 띈다. ‘자줏빛 상서로운 기운이 동쪽에서 온다’는 의미다. 이 말의 유래는 중국 고대 주나라 관리(함곡관) 윤희에서 비롯된다. 그는 천문역법에 매우 밝았는데, 어느 날 그가 누각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니 동쪽에서 안개 같은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더니 서서히 서쪽으로 왔다. 그 모습이 마치 하늘을 나는 용과 같았다. 그는 동쪽에서 훌륭한 성인이 이쪽으로 올 것이라고 직감했다. 목욕재계하고 맞을 채비를 했다. 몇 달 뒤 과연 노자가 동쪽에서 푸른 소를 타고 왔다. 윤희가 마중 나가서 맞아 그의 가르침을 받들었다고 전한다. 옛날 천문 풍수학자들은 하늘의 구름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길흉의 징조를 예견했고, 후대 사람들은 이를 두고 ‘자기동래’라는 말로 상서로움을 나타냈다. 나아가 자주색이 상서로운 기운을 준다고 해서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로 굳어진 것이다. 지금도 어느 곳을 가든지 자줏빛은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중국인 나름대로 복(福)을 부르는 한 형태로 고착됐다고 한다.
매달린 자물쇠에는 '福(복), 平安(펑안), 健康(건강), 長壽(장수)'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금쇄관을 지나 오르면,
벤치가 놓여 있는 쉼터가 있다.
엽전을 양각한 황금색 자물쇠.
無上洞(무상동), '위에는 더 이상 없는 동굴'이란 말인데.. 뭘까?
쉼터 옆 바위에는 옥녀봉(玉女峯)이라 적혀 있는데, 그러면 이 위쪽이 동봉이란 말인데..
잠시 다리를 쉬게 하고는 다시금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돌길을 따르면,
동봉 갈림길에서 좌측의 동봉 방향으로 진행한다.
동봉 방향이라 표시된 좌측 길로 잠시 진행하면,
동봉으로 오르는 절벽 돌계단 좌측에,
퉁소를 불어 봉황을 불러들였다는 운치 있는 정자, 인봉정(引鳳亭)이 있다.
인봉정에서 건너다 보이는 암봉 조망.
인봉정 모습.
인봉정에서 본 서봉 방향. '華山論劍(화산논검)'은 무협소설 자주 나오는 천하제일을 결정하기 위한 무림대회를 말하는데..ㅉㅉ
다시 인봉정을 뒤로하고 동봉 오름길로 돌아 나오면,
동봉 오름길 운제(雲梯)가 나온다. 운제(雲梯)는 1984년에 만든 인봉정에서 동봉 양공탑으로 가는 험도(險道)다.
동봉으로 오르려는 집념으로!
운제(雲梯)를 올라서니 서봉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 보이고,
동봉 관일대 방향으로 오르면,
조양봉(朝陽峰) 혹은 조양대(朝陽臺)라고도 부르는 동봉(東峯, 2,090m) 정상에 도착한다.
<동봉(東峯, 2,090m> 남봉(2,155m)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일출이 유명하여 "아침의 태양"이라는 뜻의 조양봉(朝陽峰) 혹은 조양대(朝陽臺)라고도 불린다. 정상에는 萬象森羅(만상삼라)라 적인 양공탑(陽公塔)이 있는데, 서안사변의 한 주역인 양호성이 1991년에 세웠다고 한다. 우리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이라 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만상삼라(萬象森羅)라 하는가 보다.
동봉 정상에 도착한 백두들.
동봉 정상에서 본 조망.
선장애(仙掌崖) 절벽 위의 여인!
<선장애(仙掌崖)> 한자를 그대로 풀어보면 '신선의 다섯 손가락을 닮은 낭떠러지'로, 동봉의 동쪽 절벽이 다섯 손가락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쇄관 아래쪽에 전망대가 있고, 오운봉에서도 볼 수 있는데, 섬서지방의 관중팔경 중 제1경으로 부를 정도로 장엄하다고 한다.
화산 동봉 증명.
선장애(仙掌崖) 절벽 꼭대기 쇠사슬을 따라 남쪽으로 진행한다.
돌아본 동봉 양공탑.
이곳까지 날아 올라온 너도 무척이나 힘들었겠다!
선장애(仙掌崖) 꼭대기를 따라 남쪽으로 진행한다.
요자번신(鹞子翻身)과 하기정(下棋亭)도 조망된다.
<요자번신(鹞子翻身)과 하가정(下棋亭)> 요자번신(鹞子翻身)은 화산(華山)의 봉우리들 중의 하나로, 말 그대로 '매가 장대 위에서 곡예를 한다'는 말인데, '새가 몸을 뒤집듯이 해야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험도(險道)가 있는 봉우리'를 뜻한다. 화산(華山)에서 제일 험준한 곳 중 하나로 동봉(东峰)의 남동쪽에 있다. 요자번신의 험도를 올라 봉우리를 지나야 하기정(下棋亭)에 닿을 수 있다. 즉 하기정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 벼랑 위에 만들어져 있어서 관광객은 이곳에 설치된 철로 만든 줄을 잡고 발아래의 돌을 밟고 건너야 한다. 하기정(下棋亭)은 송 태조 조광윤이 개국 전, 이곳에서 도사 진단과 바둑 둔 것을 기념하여 정자를 짓고 하기정이라 이름했다고 한다. 저 하기정을 가기 위해서는 화산의 이름난 험로 중의 하나인 요자번신을 거쳐야 하며, 대한항공 CF에 나와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이다.
선장애 꼭대기를 따라 동봉을 내려서면,
건너편으로 남봉 아래의 장공잔도 들머리가 있는 남천문이 보이고,
좌측 아래로는 하기정(下棋亭)으로 이어지는 요자번신(鹞子翻身)이 내려다 보인다.
칼날 같은 암봉과 하기정 모습.
절벽 아래 동봉여관에 도착한 백두들이 어서오라 손짓하고 있다.
돌아본 동봉 방향.
이곳에서는 서봉도 보인다.
동봉여관에 도착하여 본 건너편 암봉 조망.
동봉여관 앞 전망대에서 조망을 즐기는 백두들.
동봉여관을 뒤로하고 바위 비탈을 내려서서 남봉으로 향한다.
동봉과 남봉의 안부쯤으로 멋진 조망처인 관경대가 있다.
가야 할 남봉 모습.
눈길 닿는 곳 모두가 장관이다.
이곳이 관경대.
안부 이정표.
현 위치 이선관에서 남천문으로.
하기정을 배경으로.
갈림길에서 직진의 금쇄관 방향을 두고, 좌측 남봉으로 향한다.
길가 쉼터에서 쉬고 있던 중국 학생들이 한국어로 인사를 건넨다. 방가방가!!
남천문(南天門)은 남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장공잔도로 이어지는 갈림길의 입구에 있다.
<남천문(南天門)과 장공잔도(長空棧道)> 장공잔도는 남봉 허리에 위치하는데, 동봉여관에서 큰 바위 비탈을 내려와 다시 남봉으로 오르다가 왼편으로 들어서서 남천문을 지나면 장공잔도 입구가 있고, 오른편으로 가면 남봉 정상에 이르게 된다.
남천문 앞 매점 쉼터에서 다리를 쉬게 한다.
일행들이 매점에서 쉼을 하는 틈을 타, 장공잔도를 보러 남천문으로 들어서면,
‘자줏빛 상서로운 기운이 동쪽에서 온다’는 의미의 ‘紫氣東來(자기동래)’라는 문구가 이곳에도 걸려있다.
남천문을 통과하여 나오면 이런 종루가 보인다. 붉은색 천이 매달린 청동 종인데, 뭔가 심오한 사연을 담고 있을 듯도 한데 알 길이 없고,
바로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길이라는 장공잔도(長空棧道) 입구가 나온다.
<장공잔도(長空棧道)> 이 길은 원 시대, 능서 출신의 도사 하원희(賀元希)가 40년에 걸쳐 만들었다고 한다. 하원희는 원래 화산 바깥의 전직관이라는 곳에 머물렀으나, 이곳이 번화가인 탓에 우화등선하기에는 적당치 않았다. 그래서 먼저 조원동(朝元洞)을 만들었으나 이곳 역시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에 하조동(贺祖洞)을 만들기 위해 길을 낸 것이 바로 장공잔도라고 한다. 화산의 등산길 중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길이 장공잔도(長空棧道)인데, 미국 CNN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길'로 선정됐을 정도다. 장공잔도(長空棧道)는 화산에서 가장 높은 해발 2,154m의 남봉(南峰) 절벽을 따라 폭 30cm가량의 나무판자를 덧대어 만들어졌다. 나무판자 밑은 천 길 낭떠러지로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다. 본래 이 길은 중국 9대 문파 중 하나인 화산파(華山派)의 창시자가 정신 수양을 위해 닦은 길이지만, 지금은 한 해에도 수천 명의 방문객이 몰려드는 인기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이 위험천만한 장공잔도를 걷기 위해서는 사전에 안전장치를 착용해야 한다. 본격적인 길이 시작되면 착용한 안전장치를 절벽에 설치된 로프에 연결한 후, 어깨 정도 높이에 있는 쇠사슬 난간을 잡고 나무판자 길을 건너면 된다.
실제 장공잔도는 이 길 끝부분에서 수직의 절벽 아래로 내려서야 시작된다고 한다. 지금이야 안전줄이 매여 있지만 10여년 전에는 그 조차도 없었다고 한다.
장공잔도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사진으로 봐도 아찔 그 자체다!
저 장공잔도를 따라가면 조원동(朝元洞)과 하조동(贺祖洞)에 닿을 수 있겠지만, 잔도가 수직으로 꺾인 지점까지만 가다가 돌아서 나온다.
쫄아가지고는..ㅉㅉ
지나온 동봉 방향.
잔공잔도를 끝까지 걸어보고 싶지만 뒤에서 기다리는 분들을 고려하여 다시 남천문 쉼터로 돌아나와,
수박 한조각씩을 나누고는 남봉으로 향한다.
남봉으로 향하는 등로를 따르다가,
돌아본 동봉 모습.
황제의 명을 피하기 위해 숨었다 해서 붙여진 피소애(避诏崖)로 오르는 백두들.
피소애(避诏崖)는 송 태조 조광윤과 하기정에서 바둑을 두었다는 도사 진단이 황제의 부름을 피해 숨었던 곳이라 한다.
돌아본 동봉 모습.
이제 좌측으로 굴령(屈岭), 혹은 소창룡령(小苍龙岭)이라는 300m 남짓의 암릉 끝에 자리한 서봉도 보인다.
석조건물 옆으로 이어진 등로를 따른다.
화산과 태백산을 안내를 맡고 있는 현지인 가이드.
남봉(南峯), 낙안봉(落雁峰) 정상 도착.
<남봉/낙안봉(南峯/落雁峰, 2,154.9m)> 남봉은 화산의 다섯개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화산극정'이라고도 하며, 기러기들이 남방으로 날아가면서 자주 쉬어간다고 해서 일명 낙안봉(落雁峰)이라고도 부른다. 정상에는 비가 와도 넘쳐 흐르지 않는다고 하여 화산 10대 미스터리 중 하나라고 하는 앙천지(仰天池)가 있다. 중국의 한 시인은 이곳에서 "하늘만 위에 있고 높이를 겨룰 수 있는 산이 없으며, 고개를 들면 태양이 가까이 있고, 고개를 숙이면 구름이 아래에 있다"라고 노래했다고 한다. 남봉은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인 낙안봉(落雁峰)을 가운데 두고 동쪽에는 송회봉(松檜峰) 서쪽에는 효자봉(孝子峰)이 있다. 또한 남봉에는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불리는 도교(道敎)의 창시자인 노자(老子)와 관련된 이야기와 명소가 많다.
남봉 안내판,
동쪽 송회정이 있는 송회봉에서부터 우측으로,
화산 남봉에서 본 조망.
남봉 정상에서는 서봉도 지척으로 보인다.
남봉 정상에서.
화산 남봉 증명.
서봉을 배경으로.
기러기가 쉬어갔다는 글귀가 써진 남봉을 내려서다가,
나도 기러기처럼 쉬어가고픈 마음에 ..ㅉㅉ
배공송(拜公松)
봉형수(風形樹)
봉황 모양이 이런가?
화산신에게 제례를 올리던 주묘로서 백제사(白帝司)라 불리기도 하는 금천궁(金天宮)을 지나니,
금천궁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조망.
가야 할 굴령(屈岭)/소창룡령(小苍龙岭) 끝에 우뚝한 서봉이 보인다.
굴령(屈岭)은 남봉과 서봉을 연결하는 암릉길로 길이가 300m, 너비가 1m 남짓으로 희푸른 빛을 띠고 있어서 용척(龍脊)과 흡사하여 굴령(屈岭이라 부른다고 한다.
소창룡령(小苍龙岭) 입구쯤에 서니,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아찔하게 다가온다.
금쇄관 갈림길을 지나 서봉으로 향한다.
금쇄관 갈림길 이정표.
소창룡령을 오르면 서봉반점이 나온다.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조망.
돌아본 소창룡령 모습.
서봉반점에서 돌아본 남봉 방향.
연화동(莲花洞)과 취운궁(翠云宫)이 나오고,
취운궁(翠雲宮)은 서봉에 위치하고 있고, 일명 서봉정전(西峯正殿)으로 불린다. 청나라 초기에 세워진 사찰인데 역사서에는 한동안 향화가 왕성하여 서봉각묘관을 능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취운궁 장경루에 보관하고 있는 도교진경은 화산 도교 연구의 소중한 재산이었으나, 1932년 화재로 모든 건물과 경서는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 위치 서봉반점,
서봉 안내판.
도끼로 잘린듯한 부벽석(斧劈石)을 지나게 되고,
도끼로 잘린듯한 부벽석(斧劈石)은 옥황대제(玉皇大帝)의 여식 삼성모가 서생 류언창과 서로 사랑하여 아들 침향(沈香을 낳았다. 이랑신(二郞神)이 이는 천상의 규칙을 어겼다 하여 삼성모를 서봉 바위 밑에 가두었고, 세월이 흘러 아들 침향이 장성하여 도끼(斧)로 이 바위를 깨뜨려 모자가 상봉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부벽석을 돌아 바위 계단을 오르면,
동봉 오름길에 들렀던 인봉정(引鳳亭)이 보이고,
돌아본 남봉이 두 개의 봉우리로 보인다. 아니 세 개인가!
서봉 정상으로 오르는 바위에 수신애(守身崖)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수신애는 서봉의 서북면 절벽을 말한다고 한다.
수신애(守身崖)란 글자가 새겨진 바위를 오르면, 연화봉(蓮花峰)이라고도 불리는 서봉 정상에 서게 된다.
<서봉/연화봉(西峯/蓮花峰, 2,082m)> 서봉은 정상 부분이 마치 연꽃잎이 내려앉은 것 같아 연화봉(莲花峰)이라 불린다. 5개의 봉우리 중 가장 수려하며,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어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곳이다.
서봉 정상에서 본 풍광.
서봉 정상에도 동봉과 같이 양호성이 세운 양공탑(陽公塔)이 있다.
화산 서봉 증명.
서봉에서 바라본 동봉/조양봉 모습.
서봉의 양공탑으로 향한다.
이제 서봉을 뒤로하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서봉을 오를 때 지났던 연화동을 지나고,
갈림길에서 직진의 남봉 방향을 두고, 좌측 '천하제일 신혼방'이라 표시된 금쇄관 방향으로 들어서면,
좌전방으로 오를 때 지났던 오운봉에서 금쇄관으로 이어진 능선이 보이고 건너 편 암봉이 한 폭의 산수화다!
금쇄관 방향으로 내려서는 백두들.
이정표의 '천하제일 신혼방'이 궁금하여 살펴보니,
거대한 암벽에 뚫어 놓은 동굴이다.
천하제일신혼방 앞에서.
다소 완만하고 널찍한 등로를 따라 내려서니,
현 위치 18폭포교 안내도를 지난다.
계곡에 보이는 폭포의 흔적이 18폭포 일까!
연화교를 건너고,
돌아본 서봉 방향.
삼봉로 입구(三峰路口) 갈림길에서 좌측 금쇄관 방향으로 진행한다.
동봉 오름길에 지났던 금쇄관으로 내려서고,
금쇄관을 지나 하산길을 재촉한다.
북봉과 그 아래에 있는 케이블카 승강장이 보이고,
오운봉도 지난다.
'비어령(飞鱼岭)'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급경사 돌계단길을 내려선다. 아마도 좌측으로 보이는 돌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짐작된다.
飞鱼岭(비어령)이라면 물고기가 날아다니는 고개라는 얘긴데..ㅉㅉ
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쉼터들이 내려다 보이고,
오를 때 지났던 창룡령(苍龙岭)은 우화하여 내려선다.
거대한 바위에 뿌리를 내린 한그루 여린 소나무가 애처롭기 그지없고,
화산 북봉이 확연히 시야에 들어온다.
좌측으로는 칼날처럼 잘린 화강암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도룡묘 앞 쉼터에 도착하여 잠시 시큰거리는 무릎을 쉬게 한다.
돌아본 화산 서봉 방향.
북봉 정상 방향을 두고,
북봉케이블카 탑승을 위해 지취화산길로 들어선다.
지취화산길을 따라 북봉케이블카 승강장으로 향한다.
북봉케이블카 승강장 도착.
화산을 이루고 있는 화강암 절벽 모습.
북봉케이블카 하부 승강장 도착.
국민당군으로부터 화산을 지켜낸 화산 8용사 조형물.
화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무척이나 맑아 보인다.
화산 약도.
화산 산행을 마치고 셔틀버스에 올라,
화산 탐방객 센터에 도착하여 기다리던 관광버스에 올라,
인근의 은하주점이란 곳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내일 산행 장소인 태백산으로 향하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에 실려진 트럭이 셀 수도 없이 많다. 대륙의 장난질!
어디인지 모를 휴게소에 들러,
고맥(고량주+맥주=폭탄) 제조하여..ㅉㅉ
태백산 톨게이트 지나,
태백 도가촌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를 한다.
케이블카를 이용한 화산 산행이 예상보다 쉬웠던지, 고맥으로 기억을 청소하며 내일 태백산 산행도 그럴 것이라 치부하는 우를 범한다.
그나마 3차는 조용히 토론 모드!
(3일차 태백산 산행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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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 . . . 땅덩어리 큰 중국이다보니 참 규모가 대단하네요. 한번 가보고 싶군요. 돈 안들이고 구경 잘 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