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또히루부미의 석고상에 원펀치를 먹이다 혼난 송별회
후지쓰우에서 연수가 끝나기 전날 연수원에서 송별회를 열어 준다고 했다. 그들의 관례에 따라 후지쓰우 가족이 된 것을 환영도 하면서 자기 제품을 잘 사용해 달라는 뜻의 송별회라는 것이다.
송별회는 하찌오우지 시내에 있는 전형적인 일본식당으로 입구를 들어서자 모래물결과 바위가 있는 일본 정원이 보였다. 정원을 끼고 들어가면서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긴 복도를 지나 예약된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 긴 복도 한편으로 옛 일본의 유명 사무라이들의 모조품 갑옷을 입혀 놓은 석고상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게
이름깨나 있는 집 같았다. 연수자로서는
도저히 구경도 할 수 없는 일식 집이었고 제대로 일본정식을 처음으로 먹어보는 체험적인 일이었다.
송별회는 연수원 직원과 동료들 간에 그간 있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
화기애애하게 했다, 동료직원들도 3주사이에 말문이 조금 터져 제법 손짓을 해가며 연수원 교사들과 마주앉아 허물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일본사람들은 자기잔이 비지 않으면 술을 따르지 않거나 따르더라도 첨작 정도인데
동료들이 잔을 건너니 일본사람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동료들에게 일본의 음주습관은 술잔을 건너지 않고 자기잔으로 먹으니 첨작만 하라고 주의를
줄 수밖에 없었다.
술잔도 낮으막 해서 밑바닥이 들어 날 정도였다. 좀 심한 말로 한국의 정종잔을 거꾸로 엎어서 놓은것 처럼 바닥이 들어난 작은 잔으로 홀짝홀짝하는 모습이었지만 단숨에 술잔을 비우는 동료들을 보고는 연신 ‘오사케가 스요이데수네(술이 세군요)’를 연발했다. 그들은
몇 번 첨작을 받더니 나중에는 첨작을 하려면 손등으로 잔을 막았다.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 간에 주거니 받거니 했다. 연수를 온후 처음으로
마련된 술자리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잔이 작으니 별일 없겠지 하고 그냥 두었다.
문제는 송별회가 끝나고 나오다가 발생했다.
동료직원들 끼리 술잔을 돌리며 모처럼의 기분을 푸는 것 같아 연수 마지막 날이라 그냥 모른척했던 것이 사고였다. 송별회가 끝나고 한친구가 술을 많이 먹은 듯해서 데리고 나오라고 그러고 나는 앞서 후지사람들과 나왔다.
조금 있더니 무언가 와창창 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돌아보니 함께 나오던 일행들이 얼어붙은 듯이 서있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 동료가 쫓아와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무슨
사고냐니까 동료 중 한사람이 석고상을 넘어뜨렸는데 덩치가 우람한 사람에게 잡혀갔다는 것이다. 되돌아
석고상 앞으로 가보니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석고상이 넘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웅성 되었다.
자세히 말해 보라니까 술이 좀 취한 동료가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이놈은 누구인고
하면서 이름을 한문으로 읽으면서 오다가 갑자기 도요또미 히데요시 (풍신수길)의 상을 보고는 ‘요놈 한 대 맞아봐라’ 하며 석고상의 뺨에 원펀치를 넣었는데 석고상이 넘어졌다는 것이다.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후지쓰우 사람들도 되돌아왔다. 모두들 파손된 석고상을 보고는 놀라며 어쩔줄을 몰랐다. 석고상을
일으켜 세우려니까 ‘후레나이데 구다사이(손대지말라고)’ 고 후지쓰우 직원들이 말했다. 조금 후 관리인 인 듯한 분이 ‘다레가 이또사마오 다오시다노(누가 이또전하를 넘어뜨렸느냐)’고 다시 추궁했다. 시치미를 떼고 싶었지만 함께 나오던 후지쓰우
사람들이 본 터라 그래 가지고는 해결된 사항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관리인이 재차 우리에게 추궁했다. 후지쓰우 직원은 말이 없었다. 그러자 그는 우리 일행에게 눈길을 주며 다시 물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계산을 하러 갔던 후지쓰우 리더가 돌아와서 넘어진 석고상을 보고는 얼굴이
창백 해졌다 하지만 그는 욱박 지르는 관리인을 보고 ‘‘이 사람들은 우리 손님들이다.’ 하면서 관리인을 억제했다.
그는 어떻게 된 거냐며 물었다. 동료직원이
술이 취해 나오다가 비틀거리면서 그쪽으로 휘청 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관리인이 석고상을 세워보니
넘어지면서 파손되어 제대로 서지를 못했다. 자기직원들에게 뭐라고 하더니 종업원들이 넘어진 석고상을 옮겨가고
청소를 했다.
관리인은 후지쓰우 리더를 따라오라며 자기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죄인처럼 따라갔다. 관리인과 후지쓰우 직원 두 사람 다 상사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며 전화를 했다. 조금 있더니 연수원장이 나왔다. 원장은
서로 인사를 하는 것을 보아 관리인과 안면이 있는 듯했다. 그들은 후지쓰우의 손님의 실수이니 후지쓰우가
수리를 해주겠다며 협의를 하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정신이 좀 들어 동료 직원은 어디 있느냐고 말을 거들었다. 후지쓰 직원과 함께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다다미방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스모 선수처럼 덩치가 큰 사람들이 술을 들고 있었다. 동료직원은 다다미 한쪽 구석에 꿇어앉아 몸을 떨고
있다가 우리를 보더니 살았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방에 들어서자 마자 후지쓰 직원의 얼굴은
창백 해졌다. 그들의 덩치에 놀란것 같다. 그와 나는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마고또니
모우시와케 아리마셍(誠に申しわけありません,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고 처분만 기다렸다.
상석에 앉아있는 오야붕(親分)인 듯한 분이 후지쓰 직원에게 ‘네가 책임자야’ 하고 물었으나 그는 아무 말 않고 무릎만 꿇고 앉았다. 내가 책임자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지쓰우 직원은 손상된 부분의 보상은 원장님이 관리인과 협의 중이니 동료직원을 좀
풀어 달라고 부탁했다. 오야붕은 같이 술을 마시던 분에게 이또사마가 얼마나 하냐고 물었다. 그것은 귀중한 물품이라 가격이 없다고 했다. 나는 술이 취해서 저지른
실수이니 용서를 바란다고 빌었다.
오야붕은 ‘안다모 조센진?’(너도 조선인?)이냐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했더니 일본말은 학교에서 배웠느냐고 물었다. ‘몇 년 전에 일본에서 몇 달 동안 있으며 배웠다’고 했더니 ‘일본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일본이 좋아서 기술을 배우러 지금 와 있다고 비위를 맞추었다.
그는 갑자기 ‘사아, 조센, 이이구니네, 이마와
난또 이우노(조선, 좋은 나라지, 지금은 뭐라고 부르지?)’하니까 술을 마시던 부하중의 하나가 ‘간고꾸(한국)’이라고 답했다. 순간 이 사람들이 한국을 다녀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일본사람들은 한국보다 조센(조선)이라고 부르는 게 보편화
되어있는데 한국이름을 알고 있었다.
후지쓰우 직원은 계속해서 대단히 죄송하다 후지쓰우가 배상할 터이니 손님을
좀 풀어 달라고 애원하다시피 부탁했다. 그는 후지쓰우 직원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나보고 일본의
어디가 좋으냐고 물었다. 일본은 선진국이고 모든 기술이 앞서 있어 동양의 리더라고 나도 모르게 치켜세워
답했다. ‘간고꾸노 조세이와 기레이네(한국여성은 참 예쁘지)’ 하더니 내 곁으로 다가와 돌덩이 같은 왕 주먹으로 내 등을 툭툭 쳤지만 나는 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갑자기 ‘와다시모 간고꾸오
수끼데수요(나도 한국을 좋아해요)’ '시가시 이또사마오 호쇼우
시나게레바 나라나이(그렇지만 이또전하를 보상을 해야 된다)’라고
했다. 다시 후지쓰우 리더가 지금 관리인실에서 배상에 대해서 협의중이라고 했지만 오야분은 들은 척도 않고
‘이또사마가 얼마인지 아느냐?’며 맞은편 자기 동료에게 ‘얼마나 될까’라고 묻자 ‘사아, 이또사마와 값이 없다며 부르는 게 값이라’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오야붕은 다시 ‘네게 배상할 돈은 있느냐’고 물었다.
솔직히 지금음 없지만 가능한한 배상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럼 ‘고노 모노오 미세데 싱오또오 사세루나? (꿇어앉은 이 사람을 가계에서
일이나 시키나?) , 안따 야레루?’(네가 할 것이냐)’하며 왕 주먹으로 동료 직원의 등을 두드렸다. 어떻게 될지 그의
손에 달린 듯했다. 돈은 얼마던 관리인과 원장사이에 협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초조하게 시간이 흘렀다.
그는 갑자기 크게 웃으며 ‘잇바이
논데 구레(한잔해라)’ 라며 술 한잔을 불쑥 내밀었다.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후지쓰우 직원이 눈짓을 했다.
‘도우모 이다다끼마수(どうも戴きます, 죄송하지만
받겠습니다)’ 하며 두손으로 받아서 마시니까 후지쓰 직원이 탁상 위에 있는 새 잔을 들어 그분에게 드리며
나보고 술을 따르라는 시늉을 했다. 술병을 들고 술잔을 채우는데 손이 떨렸다’ 그는 단숨에 마시며 모우 잇바이(다시 한잔) 하며 내잔에 술울 채우라고 했다. 그렇게 서너 잔을 마주했다. 갑자기 그는 명함을 한 장 주며 내 명함을 달랬다. 명함을
받아 들고는 ‘포항종합제철, 팀 리더’? 하며 한국에서 이 명함으로 술을 얼마나 마실 수 있냐고 물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앉아있으니 다시 후지쓰우에서 보상하겠다고 직원이 말했다. 그는 들은 척도 않고 나보고 자기가
한국에 가면 이또사마의 보수비만큼 술을 사라고 했다. 후지쓰우
직원이 눈짓을 해서 그러겠다고 약속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더니 자기 명함 주소를 읽어보라고 했다. 쓰여
있는 대로 한문은 읽었다. 오만고시(御萬古市)라고 읽었더니 갑자기 좌중이 큰소리로 웃었다. 그러나 왜 웃는지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한문은 알지만 잘 모르겠다고 했다. 명함
이면의 그림을 보라며 ‘무슨 그림으로 보이느냐’ 해서 ‘부부가 잠자는 모습’이라 했더니 일제히 큰소리로 웃으며 그림의 반을
가려서 보여주었다. 그냥 보면 부부가 한 이불에서 잠을 자는 것인데 반을 가린 그림은 포르노 그림이었다. 웃음이 났지만 웃을 수도 없어 참았다. 그는 후지쓰우 직원에게 명함의
주소를 가르쳐 주라며 이곳에서 어려운 일 있으면 명함을 보여주면 통할 것이라 했다. 대신 한국에서 술을
사라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손짓으로 사람을 불렀다. 한사람이
나가더니 조금 있더니 관리인과 원장이 들어왔다.
관리인이 후지쓰우가 보상하기로 했다며 보고를 드리는 것 같았다 원장은 그에게
사쬬(사장님)하며 인사를 드렸다. 오야분은 사장이었다 ‘이 사람들은 정직하다 한국에서 내게 술을 사기로 했으니
수리는 우리가 해라’며 동료직원을 데려가라 했다.
관리인이 다시 후지쓰우에서 배상하기로 했다고 하니 거의 명령조로 ‘오레가 야레(우리들이 해)' 하며 ‘후지덴기는 오랜 고객이고 이 명함을 받았으니 다음 한국에 갈 때 술값으로 대신하겠다, 연수생이 무슨 돈이 있냐?’ 했다.
원장은 ‘사쬬 혼도우니 아리가도우
고사이 마수(사장님, 정말로 고맙습니다)’ 두 분은 악수를 나누고 오야봉은 동료직원에게 술을 먹더라도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말라며 등가죽을 서너 차례
두들겼다. 그는 아픔을 참아내며 얼어붙은 듯이 ‘하이(예)’하며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겨우 그 방에서 풀려나오니 온몸에 땀이 배었다. 휴우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배상금액이 걱정이 되었다. 원장에게 배상 비용이 얼마나 되는
지 모르지만 우리가 좀 보태겠다고 했더니 사장이 말 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받은 명함을 보더니 크게 웃으셨다. 거기에 써 있는 이름과 주소는 여성의 인체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
집 사장은 하찌오우지의 야쿠샤(役者,깡패)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이마에 식은땀이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