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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인데다가 그 영화들이 너무 미국 중심의 시각으로 만들어진다는 비판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서부영화'만큼 미국적인 장르는 없다. 동부해안에 정착했던 자기네 조상들이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해갔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품고있는 서부영화. 그러나 전통적인 서부영화는 오직 백인들만이 선한 존재로 그려지므로 미국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백인중심적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서부영화에서 인디언들은 학살의 대상에 불과했고 흑인들은 노예였으며, 아시아계는 아예 안 나오거나 노예에 준하는 계약노동자 또는 세탁부와 같은 천한 직업 종사자로만 등장하고, 멕시코인들은 열차강도나 산적의 이미지로 나온다. 반면에 백인은 언제나 정의의 총잡이고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다.
서부영화의 고전중의 하나로 꼽히는 <알라모>도 그런 점에서 별로 다르지 않다. 미국 서부영화의 전설적인 영웅인 존 웨인이 감독하고 주연한 영화 <알라모>는 최우수작품상을 포함해서 7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로 올랐던 영화이며, 서부를 '개척'한 미국인들의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중의 하나로 꼽힌다. 1960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서 50대 이상의 올드팬들 중에서는 <하이눈>이나 등과 더불어 서부영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영화의 배경은 1836년 당시 멕시코 땅이었던 텍사스의 산안토니오에 있던 알라모라는 수도원(또는 전도소)이며, 영화는 "(멕시코의 장군인)산타 아나의 폭정에 시달리던 텍사스 사람들은 억압을 당하며 사느냐 아니면 저항하느냐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었다"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줄거리는 187명(영화에서는 185명으로 나온다)의 텍사스 주민들이 멕시코의 잔인한 독재자로부터 자신의 땅과 자유를 지키려고 7,000명에 이르는 멕시코군(멕시코쪽의 기록은 1,400명)과 끝까지 싸우다가 전원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서부영화라고 하면 주인공인 백인 총잡이가 악당들을 멋지게 물리치고는 말을 타고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가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주인공을 포함한 '좋은 쪽'이 모조리 죽어버렸으니 얼마나 극적인가. 알라모 이야기는 이 영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책들로도 쓰여졌는데, 한결같이 멕시코군의 잔학성과 죽어간 사람들의 영웅적인 투쟁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너무도 극적으로 보이는 이 줄거리는 알고 보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가득 차있다.
죽어간 사람들이 자유를 사랑하며 자신의 땅을 지키려던 선량한 '주민'이었다는 주장부터가 문제다. 실제로 그들 중에서 3분의 2는 미국에서 막 도착한 사람들이었고, 텍사스에 6년 이상 거주한 사람은 6명밖에 없었다. 영화 속의 세 주인공 중 한 명이고 알라모 수비대장으로 나오는 트래비스 대령은 사실은 미국에서 살인을 저지른 후 가족들을 버리고 텍사스로 도망을 온 사람이었으며, 알라모를 지키기 위해서 자원자들을 이끌고 왔다는 제임스 보위는 싸움꾼으로 유명했는데 노예 관련 일로 한 몫을 잡았고 광산 등에서 돈을 벌려고 텍사스로 왔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영웅' 존 웨인이 맡았던) 테네시의 정치인이었던 데이비 크로킷도 알라모의 사수를 위해서 왔다기보다는 선거에서 패한 후 떠돌다가 텍사스에 오게 되었고 그저 싸움 자체를 위해서 싸웠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요약하자면, 알라모 사람들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멕시코 땅인 텍사스에 불법적으로 흘러들어 온 사람들이었을 뿐, 자유를 위해서 자기의 땅을 지키려고 했던 '거주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멕시코군들은 급하게 강제로 선발된 사람들이었고 수백 마일의 사막을 행군해서 텍사스에 왔기 때문에 대부분은 병들어 있었으며 전투준비가 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특히 이들 중의 상당수는 마야인들이어서 스페인어로 말도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알라모를 지킨 백인들은 실제로 잘 훈련된 군인이었으며 무기도 멕시코군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잔인한 멕시코군이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했다는 설과는 달리 사실은 형편없는 무기의 엉성한 멕시코군이 잘 훈련되고 무장한 백인들을 무찌른 셈이 된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이 없었지만 알라모에 관한 전설 중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은 트래비스 대령이 땅 위에다 칼로 선을 그은 후 최후까지 남아서 싸울 사람들은 이 선을 넘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당연히 전원이 넘어갔고 심지어는 들것에 실린 사람도 자기를 선 너머로 옮겨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죽음을 앞둔 상황인 알라모에서 적을 저지하면 후방에 있는 휴스턴 장군이 충분한 시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아군에게 유리하다는 설명을 하면서 부하들에게 최후의 선택을 던지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비장하다. 그러나 트래비스가 실제로 선을 그었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알라모의 생존자들인 여성들과 비전투원들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이 '전설'이 퍼져서 사실로 굳어지고 난 후에야 얘기를 시작했다.
가장 엉터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전원이 장렬하게 사망했다는 부분이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한 명은 도망을 갔으며 일곱 명은 체포되었다가 나중에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특히 알라모 전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맨손으로 멕시코군을 때려눕혔다는 데이비 크로킷도 바로 그 중의 한 명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패한 전투였던 알라모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오랜 세월을 두고 선전되고 있을까? 미국은 오래 전부터 멕시코땅을 자기들의 영토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미 1767년에 벤자민 프랭클린은 쿠바와 멕시코를 미국의 다음 확장 대상으로 점찍었으며 수많은 미국인들은 불법적으로 멕시코로 넘어와서 살고 있었다. 텍사스는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스페인의 식민통치와 독립(1821년)을 위한 혼란에 휩싸인 멕시코 정부는 국경지역을 효율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1819년의 미국 불황으로 많은 백인들이 텍사스로 넘어갔는데 미국은 텍사스로 이주해간 백인들이 독립국가를 세우도록 뒤에서 사주하고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공공연하게 하고 있었다. 게다가 멕시코는 1829년에 노예제도를 불법화했는데 많은 노예를 소유하고 있던 텍사스의 백인들은 이것을 개인의 (노예를 소유할 수 있는)자유에 대한 제한이라고 여겼고 멕시코정부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안 그래도 멕시코를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하던 미국인들은 자기들의 노예가 멕시코로 도망가서 자유인이 될 가능성이 생겨서 멕시코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텍사스에 살던 백인들은 자기들보다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열등한 '멕시코 것들(greaser)'에게 지배받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멕시코 정부에 세금내기를 거부했고 밀수를 통해서 부를 축적해갔다. 멕시코 정부가 1830년에 백인이 이주해오는 것을 금지하며 법적용을 강화하려하자 백인들은 이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1831년에는 주전론자 샘 휴스턴 등이 이끄는 폭동이 일어났으며 1832년에는 멕시코군 요새를 습격하는 일도 일어났다. 한때 '비둘기파'였던 스테판 오스틴(나중에 텍사스의 주 수도 이름)도 1835년에 "전쟁만이 유일한 길이다. 다른 치료법은 없다"고 말하며 '매파'쪽으로 가담을 했다. 이것이 산타 아나가 6,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텍사스로 향했던 배경이고 알라모 전투가 발생한 배경이다. 비록 알라모에서는 패했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은 샘 휴스턴이 이끈 백인들은 4월 21일에 멕시코군을 격파하고 산타 아나를 사로잡음으로써 전쟁에서 승리를 했다. 그 결과 텍사스는 독립국가가 되었으며 샘 휴스턴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텍사스는 마치 수순이 정해졌던 것처럼 1845년에 미국에 합병이 되어서 미국의 일부가 되었다.
요약해보면, 알라모 전투를 포함하는 텍사스 전쟁의 진짜 원인은 평화롭게 살던 백인들이 멕시코의 압제에 반기를 든 것이 아니라, 불법적으로 멕시코로 넘어온 백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미국의 사주를 받아서 독립선포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알라모의 패배는 "알라모를 기억하라"는 외침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미국과 텍사스에 살던 백인들로 하여금 멕시코를 쳐부수기 위해 총을 드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패배했던 전투인 알라모는 백인들이 열등한 종자들을 물리쳐야만 하는 근거가 됨으로써 되살아났고, 지금까지도 당시의 텍사스가 미국 땅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로 이용되고 있다. 영화 <알라모>는 백인들의 그런 믿음을 확인시켜주면서 칸츄리 풍의 노래와 함께 끝나간다, "노인들이여 이야기하라, 전설이여 자라나라, 알라모가 포위 당한 13일 동안의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