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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중공업 주주 총회 기록
<개요>
* 날짜: 2010 년 6 월 23 일 (수) 10:00 ~ 11:50
* 장소: 그랜드 프린스 호텔 시나가와
* 참석: 5명의 주주가 참석하고 4명이 발언. 발언 순서대로 배열함.
니시 모토 씨는 할말이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비밀 기록"으로 적고 받았습니다.
▼ 미우라 利博 ( "지원하는 모임" 회원)
나는 앞줄에서 5째줄 정도로 가장 눈에 띄는 장소이다. 의장인 사장이 '그럼 이제 질의 토론에 들어갑니다. 질문이 있으신 분은 거수를 부탁 합니다'라고 말하자 의안 보고서를 낸다. ‘거기 흰 종이를 들고 있는 빨간 넥타이’로 내가 첫번째 발언자였다.
'나는 직원 20명 정도의 작은 골프장에서 은퇴하고 퇴직금으로 일본의 주력 세계적인 미쓰비시중공업 주식을 사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주가는 안정 되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한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국제 신용입니다. 나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의 한 사람입니다.
① 한국 조선에서 어린 소녀들을 데려오고, 미쓰비시중공업에서 일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점에서, 사장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② 어제, 한국 국회의원, 이용섭씨를 비롯한 광주시교육감, 시의회 의원, 변호사, 목사 등 25명의 대표단이 본사를 방문, 요청 행동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③ 또한, 재판 판결문에 의하면, 나고야 고등재판소에서는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강제연행’. ‘강제노역’을 했다는 확정 판결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④ 나는 미쓰비시중공업이 국제적인 신용 신뢰를 얻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합니까? 앞서 사장이 언급했지만 CSR 활동을 추진 아이디어 바로 이것 아니냐 라고 폭풍 질문을 마쳤다.
답변에 나선 야스다 상무는 "국가적인 요청에서 열린 것도 있고, 전후 보상 문제는 중간 중간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조선의 소녀가 미츠비시에서 일한 바 있습니다." "어제 한국에서 온 이용섭 국회의원을 비롯한 대표단의 요청은 저도 제대로 들었고, 사장한테도 전했습니다. 법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해결하라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도 검토하겠습니다."
... 前山(미우라) 씨, 아다치 변호사, 야마다의 질문에 대해서도 "앞서 같은 취지의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만"고 전제 하면서도 조금씩 전에 나온 모습의 답변이 계속되었습니다. 마지막 야스다 상무는 "再三再四 질문이지만, 올해는 한국 병합 100년 해이고 중요한 시기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질문의 취지는 충분히 검토 하겠습니다"라고 했고 다른 이의 제기는 없었습니다. 한국 병합 100년 문제까지 언급해 답변한 것에 대해 조금 놀랐습니다. 주주 총회 전체의 분위기는 평온 호의적이었다고 느꼈습니다.
▼足立修一(아다치 미츠비시 히로시마·원 징용공 피폭자 재판 변호사)
어제, 시나가와의 그랜드 프린스 호텔 新高輪에서 열린 주주 총회에 출석해, 질문하고 왔습니다.
오전 10시 30분경부터 질문이 시작 되어, 최초의 질문자가 나고야 미츠비시의 관계자였습니다.
어제, 본사를 한일의 국회의원을 동행해 교섭했다는 것을 근거로 해 도의적인 관점으로부터의 문제의 해결을 요구했습니다.
미츠비시의 담당 임원 야스다 상무는, 완전하게 배척한다라는 듯한 발언이 아니었습니다만, 여러가지 의견이 있으므로, 들어두는 것이란 스탠스였지만, 금년이, 한국 병합 100년이란 해라고 언급했으므로, 어떠한 해결을 모색하려고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느꼈습니다. 아다치는, 11시 지날 무렵에 지명되어 히로시마의 징용공도, 미해결인 것, 니시마츠 사건 최고재판소 판결은, 기업과 나라가 자발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 이라고 재차 지적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처음에 말했던 대로 같은 답변이었습니다.
그 후, 나고야 미츠비시의 관계자로부터도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11시 20분무렵에, 야마다씨가, 로켓 상담이, 한국에서 잘 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보상문제 미해결이라고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관계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고 하는 답변이었습니다.
이번 주주총회에서는, 이 문제로, 4명의 질문자가, 여러가지 각도에서 질문한 바, 미츠비시의 임원, 주주에게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을 인식시킨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미츠비시중공업의 99엔 문제(원 정신대원에 대한 후생연금의 탈퇴 일시금을 99엔 지불하는 것)에 관련해, 한국정부가 지원법에 근거해 지불할 때의 기준인 1엔=2000 원은 헌법위반의 혐의가 있다고 하여, 헌법재판소에서 심리하는 것이 6월 18일에 정해진 적도 있고,
http://news.searchina.ne.jp/disp.cgi?y=2010&d=0201&f=national_0201_015.shtml
지금부터, 미츠비시에 대한 공세를 강하게 해 갈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상, 간단합니다만, 보고입니다.
▼마에야마 쿠니오 ( 「지원회」스탭)
미우라씨, 히로시마의 변호사 분에 이어 3명째 지명되었습니다.
전체의 차례는 12번째나 13번째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No.1223번의 마에야마 쿠니오라고 합니다.
佃회장에게 질문하겠습니다.
佃회장은 이전「기업은 이익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업 윤리는 더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근로정신대 문제는, 인도적 견지에서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佃회장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의장 大宮(오미야 사장)>
CSR에 관한 문제이므로, 담당인 야스다에게 회답시키겠습니다.
<야스다 상무>
근로정신대에 관한 3번째의 질문입니다. 조금 전에도 회답했듯이, 사법의 장에서 대답은 나와 있습니다만, 아직 미해결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에도 검토해 가겠습니다.
<미츠비시의 회답 내용에 대한 나의 감상>
처음에는 표면적인 통행 일변도의 회답이었지만, 최후에는 꽤 미츠비시의 본심이 나온 것은 아닐까 느꼈다.
4번째 질문(히로시마 분:한국의 인공위성 수주에 실패한 것은, 한국내의 반미츠비시 운동의 영향이 아닌가)에 대해, 야스다 상무의 회답은 「영향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전후 처리의 문제는 금년이 한일 100년의 해이기도 하고, 사내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적어도, CSR 담당 야스다 상무 뿐 만이 아니라, 주주 총회 장에서 佃회장, 大宮사장도 전후처리 문제가 크게 인식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상
▼山田忠文 (야마다 히로시마·동북아시아 정보 센터)
나고야의 여러분, 지원회, 원고, 한국의 지원자
미츠비시 공격 불퇴전의 최대의 결집과 투쟁에 경의를 표합니다.
〈주주 총회에서의 보고에 대해〉
사전의 협의 없이 상황을 보면서 발언을 취해 갔다. 두번 맞지 않는다는 것에 입각해 발언요지를 생각해서 릴레이로 질문을 전개할 필요 있어. 1300명정도의 자리가 메워지고 있었다. 장관인 회장 풍경이었지만, 긴장감없는 한가한 총회였다. 뒷자리에 줄서 3명이서 앉는다. 병아리단상의 얼굴표정은 모르는 저쪽에서도 전혀 안보일 것이다.
사장이 담담하게 의안을 읽어 내려서 박수로 확인한다. 모든 제안이 끝나고 질문에 들어가지만 손을 든 사람은 몇 사람이었다. 여기서 방해나 그것 같은 총회꾼은 전혀 없는 것을 알았다. 전 질문자 10인중 4명이 지원하는 멤버였을까. 질문에 담담하게 답하므로 다그칠 수 없다. 재질문으로 한층 더 회답을 꺼낼 수 없다.
야스다 상무의 답변이 전후 보상 문제의 담당이었다. 본사 신청의 일 어제의 신청에 대해 회사로서 알아 사장에게도 보고하고 있다. 서론에 재판으로 해결완료와 한일 조약으로 소멸이라고 발언했지만,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기 위해서 검토를 하고 있는 취지 발언을 모두에 했다. 2명째 아다치 변호사가 변호사라고 자칭해 판결의 법적인 점으로부터 의견을 말했다.
모두의 회답을 반복했다. 3명째 사장, 회장의 답변을 요구했지만 야스다가 모든 답변. 전번과 같이 여기 상무회에서 이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는 일을 확인했다. 의제가 되면 전망이 열린다··그러나 밖의 투쟁은 한층 격렬하게 전개를 하는 것이 긴요. 가장 어려운 국면에 있다고 본다.
이상한 일로 나고야 문제로 답변하면 상당한 사람이 박수를 조용히 친다. 상무 답변이 일방적인 무시나 거부가 아니기 때문에 미묘하지만 해결을 헤아리는 박수라 호의적으로 파악했지만 어떠한 것일까····각본 박수이면 박수에 적의가 없다.
4명째 마지막에 야마다가 히로시마에서 왔다고 말하고 다른 재료로 질문을 한다.
예의 로켓 상담의 경위에 대해 한국에서는 미츠비시의 전쟁 책임문제가 매스컴에서 보도되어 상담이 진행되지 않는 것이 아닌지, 그 사이 러시아의 로켓을 두번이나 사용한 구체적인 경과를 질문했다. 답변은 이것으로 4명 째라며 집중해서 그러한 일은 없다고 아래와 같은 말을 꺼냈다.
그런데 야스다 상무는 묻지 않은 한일병합 100년째에 해당되는 금년이란 걸 알고있다. 여러 가지가 행해진다.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을 말했다. 이것은 도대체, 회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긴장감이 없는 총회에서 즉흥적 생각을 야스다가 공표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본심을 말했는지 향후의 움직임에 주목 필요.
여기서 나중 별건 2명의 질문으로 40 분 답변 예정대로 막을 내렸다. 조용한 퇴장 기운이 없다, 배당금의 대폭적인 감액이 영향인가. 고령자 많다. 여성 고령자도(주주 대리출석인가···) 야마다의 보고입니다. 누군가 녹음을 취하고 있습니까. 회사는 비디오를 확실히 찍고 있었습니다.
▼西本伸 (니시모토 아이치현 평화 위원회 상임 이사, 「지원회」회원)
지원회의 일원이면서, 이렇다 할 활동도 하고 있지 않는 것에 책임을 느끼면서, 주주 총회에 출석했습니다. 6월 24일에 대다수의 대기업이 총회를 집중시킨다고 하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만, 총회꾼이 횡행하고 있었던 시대처럼 그 대책상 주주의 발언을 극단적으로 제한하거나 하는 것은 없고, 형식상은 민주적으로 운영된 총회였습니다. 오미야 사장이 의장에 취임, 담당 임원이 질문에 답하도록 하는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질문자의 톱타자에는 三浦(미우라)씨가 지명되어 지원회를 자칭해 강력한 소리로 「여자 근로정신대」의 설명도 섞고, 미츠비시 중공업의 책임을 추궁했습니다. 총회 최초의 질문이기도 해, 단상의 임원에게도 일정한 동요가 엿보여, 의장도 질문을 짧게 하도록 재삼 요구했습니다. 회의장의 주주에게 준 영향은 큰 것이라 추측됩니다. 회답은, 담당 야스다 상무가 실시해, 한일 청구 협정 등 국가간의 정치적 결착으로 해결완료라는 것이었습니다. 약간, 도의적 책임을 비추는 것 같은 발언도 있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만, 정확하게는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2~3명의 다른 질문자 뒤, 히로시마에서 변호사로서 미츠비시와 재판을 싸운 足立(아다치)씨가 미츠비시의 책임을 호되게 추궁했습니다. 회답은 역시 야스다 상무로, 바뀐 보람 없이 하급관리적인 것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회답에 박수치는 주주가 상당히 있었으므로, 재차 회장을 바라보니, 분명하게 미츠비시 중공업에서 파견된 사원 같은 인물이 많이 있었습니다.
더욱 여러 명 뒤에, 히로시마의 미츠비시 재판을 싸운 경험을 가지고 계시는 야마다씨가 지명되고 한국에 판로 확장 중인 위생 발사의 상담이, 근로정신대 운동의 영향으로 늦는 것은 아닌가 추궁했습니다만, 그러한 사실은 없다는 야스다 상무의 회답이었습니다.
종반에 가깝게 되어 前山(마에야마)씨가 지명되어 佃회장이 평소 윤리관을 존중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을 파악해 할머니들에게의 사죄와 보상에 대한 의견을 요구했습니다만, 佃회장은 답변하지 않고, 이것도 야스다 상무가 회답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금년이 2010년인 것을 인식해, 깊게 받아 들이고 있다고 하는 발언을 한 것은, 지금까지의 회사의 자세에서 한발 내디딘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수를 계속 했습니다만 유감스럽게 지명되지 않고, 마감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수십명의 질문자중 4명이 근로정신대 문제를 추궁해, 주주총회의 대세를 리드했다는 감이 있었습니다.
회사측의 회답은, 표면적으로는 우리가 한일 양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운동에 대해서 냉정함을 가장해, 중시하고 있지 않는 태도로 시종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번 한국의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하는 대 대표단의 신청이나 수십만의 서명은, 분명하게 바디블로우(흉.복부타격)와 같은 효력을 발휘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나가와 역 앞에서의 보고 집회에 참가하고, 中野重治(나카노)의「비가 내리는 시나가와 역」을 상기했습니다. 이것은, 쇼와 천황의 즉위식을 앞에 두고, 체포되어 강제송환 된 조선의 친구(동지)들에게의 석별의 시입니다. 금요일 행동에 참가할 때마다 상기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한국의 동료와 서로 손을 잡은는 가운데 , 우리의 운동의 승리가 예감되는 시로서 가슴에 울려 퍼졌습니다. 6월 24일은, 비가 내리기는 커녕, 찬란히 해가 비쳐, 우리의 싸움의 열기로 불타는 하루였습니다.「열기에 불타는 시나가와 역」에는, 많은 김씨나 이씨, 거기에 양씨에 박씨, 정씨에 서씨, 고씨에 정씨, 최씨에 임씨가 있어서, 이별의 말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연대와 단결의 악수를 해, 승리의 날이 가까운 것을 확인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시나가와 역」 中野重治
신(辛)이여 잘 가거라
김(金)이여 잘 가거라
자네들은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에서 승차한다
이(李)여 잘 가거라
또 한 사람의 이(李)여 잘 가거라
자네들은 자네들의 부모의 나라로 돌아간다
자네들 나라의 강은 추운 겨울에 언다
자네들의 반역하는 마음은 작별의 순간에 언다
(중략)
오오
조선의 남자이며 여자인 자네들
바닥의 바닥까지 뻔뻔스러운 동료
가서 저 굳은 두꺼운 미끄러운 얼음을 때려 부숴라
오래 막혔던 물로 하여금 솟구치게 하여라
(중략)
그리고 다시
해협을 춤추고 넘어 무희 되어
고베 나고야를 거쳐 도쿄로 파고 들어가
(중략)
보복의 환희 안에 울고 웃어라
(※현재 시집에 실려 있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전쟁 전에 복글자였던 것을 참고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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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상세한 기록으로 주주총회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원회 회원들의 활약상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연대를 뛰어 넘어 우리는 이미 하나인 동지입니다.
동지적 무한 애정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