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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44
출애굽기 20장 12절
십계명의 네 번째 명령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은 그 날을 다른 날과 구별하여 지키라는 것입니다. 다른 날과 구별하여 지키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엿새 동안 힘써 해 오던 세상의 일, 육체의 일을 일곱째 날에는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너만이 아니라 네 아들과 딸, 네 남종과 여종, 네 가축이나 문 안에 머무는 객이라 할지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하나님은 출애굽기 20장에서 창조의 역사를 통해 보여준 본을 말씀하시고, 신명기 5장에서는 출애굽 역사를 통한 구원의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한 마디로 나 홀로 창조했고 나 홀로 구원했으니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내가 행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4계명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인가 할 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첫째로 복음의 사역과 기독교 교육이 유지되는 것과, 또한 특히 안식의 날인 주일에 내가 부지런히 하나님의 교회의 출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성례에 참여하며, 공적으로 주님을 부르며, 그리스도인의 구제를 행할 것을 원하신다고 설명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경건의 의무와 자비의 의무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경건의 의무, 자비의 의무는 주일에만 행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일이 아닌 다른 날에도 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면서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할 때(롬12:1) 주일 한 날만이 아니라 모든 삶을 그렇게 드리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이 일이 주일에 요구되는 것은 나태한 우리의 심령을 더욱 일깨우기 위함입니다. 엿새 동안 힘써 네 일을 하라고 할 때 경건의 의무와 자비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나태해지기 쉽기에 하나님께서는 한 날을 나머지 날로부터 구별해 두셨던 겁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제4계명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인가 할 때 둘째는 나의 평생에 악한 일을 행하지 않고, 주께서 그의 성령으로 내 속에 일하시게 하며,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영원한 안식이 시작되게 하기를 원하신다고 설명합니다. 즉 경건의 의무를 통해 목적하는 바는 악한 일에서 멀어지는 것이요 더욱 더 거룩해 지는 것인데, 이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셔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에 너희도 거룩하라는 명령을 듣지만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거룩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레위기 20장 7절과 8절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그런데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 무엇을 명하셨는가? 안식일을 명하셨습니다. 그 날을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게 만드시는 표징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3절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앞서도 말했지만 창조든, 구원이든 우리가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홀로 다 행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더욱 깊이 생각하도록 한 날이 안식일, 즉 주일입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후 안식하셨다는 것은 완성의 의미가 있습니다. 구원에 있어서도 하나님 홀로 완성하신 후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안식일은 바로 그러한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영원한 안식의 모형이요 그림자입니다. 안식일을 통해 우리의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여기까지가 십계명의 첫 번째 돌판 부분입니다. 이제 십계명의 두 번째 돌판 부분으로 이어지는데, 첫 번째 돌판 부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요약된다면 두 번째 부분의 요약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말할 때 ‘둘째도 그와 같으니’라고 말하는데(마22:39), 우르시누스는 이 말의 의미를 몇 가지로 말하는데, 그 중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분리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이웃 사랑은 하나님 사랑 없이는 참되게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이웃 사랑은 하나님 사랑에 기초해서 나올 때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두 번째 돌판 부분에 대한 순종 요구는 이 순종을 통해 하나님 자신이 예배를 받으시고, 또한 그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이웃을 향하여 나타내는 사랑을 통해서 드러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 이웃을 향하여 갖는 사랑으로 통해 드러나게 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의 찬양과 영광을 위하여 지으시고 이루신 인간 사회가 보존되게 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율법의 두 번째 돌판 부분인 다섯 번째 계명을 살피겠는데, 출애굽기 20장 12절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이 나머지 모든 계명의 최종적인 원인으로 있다고 말한 바가 있는데, 두 번째 돌판 부분의 첫 번째 계명인 제5계명은 두 번째 돌판의 나머지 계명의 기초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계명 자체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부모의 명칭을 통치자나 선지자 등에게 돌리기 때문에(창45:8, 삿5:7, 왕하2:12, 13:14) 단지 육체의 부모만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적용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제5계명에 대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해석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나눠 설명합니다. 제64문. 제5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제5계명은 윗사람들(엡5:21), 아랫사람들(벧전2:17), 동료들로서(롬12:10) 그들의 여러 자리들과 관계들 안에서 각자에게 속한 명예를 보존하며 의무를 실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제65문. 제5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제5계명은 그들의 여러 자리들과 관계들 안에서 각자에게 속한 명예와 의무를 경시하거나 대적하는 것을 금합니다(마15:4-6, 겔34:2-4, 롬13:8).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역시 다르지 않지만 소요리문답이 윗사람, 아랫사람만이 아니라 동료까지 나눠 각자 명예를 보존하고 자신에게 속한 의무를 실행하도록 한다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대한 의무를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104문입니다.
104문. 제5계명에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답. 나의 부모와 내 위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모든 공경과 사랑과 충성을 보이며, 그들의 선한 교훈과 징계에 스스로 굴복하여 합당하게 복종하는 것과(출21:17, 잠1:8, 4:1, 롬12:1-2, 엡5:21-22, 6:1-9, 골3:18-4:1), 또한 그들의 약점과 부족함을 인내로 견디기를 요구하시니(잠20:20, 23:22, 벧전2:18),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을 통하여 우리를 다스리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마22:21, 롬13:1-8, 엡6:1-9, 골3:18-21).
분명한 것은 제5계명의 의도와 목적이 하나님께서 권위에 있어 아랫사람뿐 아니라 윗사람까지 상호 의무들로 지정하신 질서를 보존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윗사람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고 보호하는 일을 위하여 그들 위에 세우신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반면 아랫사람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 아래에 두셔서 그들에게서 다르심을 받고 보호받도록 하신 자들입니다. 여기서 가장 기본이 되는 부모는 말 그대로 부모와 자녀라고 할 때 육신의 부모입니다. 그 외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질서와 권위에 있어 부모는 어떤 자들이 포함되는가? 혼인 관계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있다고 할 때 남편은 아내에 대하여 윗사람입니다. 사회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인이 있다고 할 때 고용주가 피고용인에 대하여 윗사람입니다. 또한 국가에서 정부의 위정자들은 국민들에 대하여 윗사람입니다. 교회에서도 적용되는데, 직분자가 다른 모든 성도들에 대하여 윗사람입니다. 이것 외에 학교에서 선생과 학생의 관계를 통해서도 생각할 수 있고, 나이와 관련해 윗사람과 아랫사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윗사람, 즉 부모에 대하여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공경하라는 것은 단순히 순종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중요하게 여기고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5계명만이 아니라 첫 번째 돌판 부분인 하나님 사랑까지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를 윗사람으로 있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첫 번째 돌판과 두 번째 돌판이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이런 점에서 5계명은 부모 공경에 앞서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공경을 우선하는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라는 이름의 윗사람을 세우신 이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이 세우신 자를 공경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윗사람의 모습이 우리로 하여금 만족할만한 수준에 있지 못하다 할지라도 로마서 13장 1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자세로 윗사람을 공경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완벽해야지만 윗사람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못할지라도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문답은 윗사람에게 공경과 사랑과 충성을 보이며, 그들의 선한 교훈과 징계에 스스로 굴복하여 합당하게 복종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약점과 부족함을 인내로 견디기를 요구한다는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할 때 아랫사람은 아랫사람으로서의 마땅한 덕목이 있다면 윗사람은 윗사람으로서의 마땅한 덕목이 있습니다. 그런 덕목을 나타내지 않으면서도 공경 받기를 바란다는 그것도 바람직한 모습은 결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윗사람에게 합당한 덕목이란 무엇이고, 아랫사람에게 합당한 덕목이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여러 구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대표적으로 말할 수 있는 구절 한두 가지만 언급하자면, 먼저 부부에 대해서는 에베소서 5장 22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5:22-28) 물론 부부는 두 사람이 합하여 하나가 되는 신비로운 연합으로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하나 됨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머리요 교회는 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가 되었지만 그 안에서도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질서를 설명할 때 디모데전서 2장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딤전2:13-14).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한다고 할 때 아내는 자신을 비하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아내가 더 뛰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질서에 따라, 주의 명령에 따라 복종하는 것이 아내의 덕목이요, 남편은 아내만을 사랑하는 것이 그 덕목으로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에 대해서는 에베소서 6장으로 넘어갑니다. 1절부터 보면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1-4) 다른 것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 안에서’입니다. 부모에 대한 공경이 주 안에서, 주의 뜻과 일치되는 점에서 공경하는 것이어야 하지, 주의 뜻을 버리면서까지 순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복종한다고 할 때 중요한 원리는 사도행전 5장 29절의 정신을 따르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으로서 윗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이어야 하지, 윗사람에게 복종한다는 것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나서는 안 됩니다.
우르시누스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부모에게 맡겨진 덕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첫째, 자녀를 양육하고 길러야 합니다(마7:9). 둘째 자녀들을 상해로부터 보호해야 합니다(딤전5:8). 셋째, 자녀를 훈육해야 하며, 혹은 자녀들이 훈육 받고 적절히 교육받을 수 있도록 다른 이들에게 맡겨야 합니다(엡6:4, 신4:9). 넷째, 가정적인 규율에 속하는 징계로 자녀들을 다스려야 합니다(잠13:1, 19:18). 그러면서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는 초등 교사나 양육자에게도 동일한 임무가 맡겨져 있다고도 설명합니다.
반면 이와 반대되는 부모의 과오나 죄들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첫째, 자녀들에게 필수적인 지원과 양육을 행하지 않는 것이나 그들을 사치와 낭비로 기르는 것. 둘째, 자녀들을 상해로부터 보호하지 않거나 스스로 견디게 만드는 것. 혹은 자녀들이 작은 상해를 입었거나 전혀 상해를 입지 않았는데도 사려 깊지 못하게 감정과 화를 드러내는 것. 셋째, 자녀들을 교육하지 않는 것, 혹은 부모들 자신의 능력이나 자녀들의 능력에 맞도록 그들을 교육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 혹은 부모 자신의 악한 모범이나 나쁜 훈육을 통해서 그들을 더럽게 만드는 것. 넷째, 게으름과 방종 가운데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 혹은 교정이 필요할 때에 교정하지 않는 것, 혹은 과실의 본질에 비해서나 의무상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서 지나치게 그들을 징계하여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대우를 통해서 자녀들을 소외시키는 것. 에베소서 6장 4절에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이런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사회로 넘어가 고용주와 피고용인에 대해서는 당시 주인과 종의 관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데, 에베소서 6장 5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엡6:5-9) 이와 동일한 말씀이 골로새서 3장과 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골3:22-4:1) 특히 4장 1절에서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라고 할 때 고용주가 적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것도 의와 공평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반면 베드로전서 2장에서는 특별히 피고용인과 관련해 다음의 말씀을 하십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2:18-20)
우르시누스는 상전, 다시 말해 고용주에게 맡겨진 덕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첫째, 종들에게 정의롭고 가능한 일들을 명령하는 것, 혹은 어울리고 정당한 일들을 명령하며, 부당하고 불가능하며 강압적이며 불필요한 일들은 명령하지 않는 것. 둘째, 종들에게 적절한 양식을 공급하며 그들의 노고에 대해 적절히 보상하는 것. 셋째, 종들의 경우에 적합한 규율로써 그들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
반면 상전들의 과오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첫째, 종들을 게으르고 태만하고 방종에 빠지게 만드는 것. 둘째, 정의롭지 못한 일들을 명령하고, 그들을 지나친 엄격함으로 압박하는 것. 셋째, 적절한 양식과 삯을 공급하지 않는 것. 넷째, 지나치게 가혹하게 대함으로써 종들의 가족들을 노엽게 하는 것.
국가의 위정자와 국민들에 대해서는 로마서 13장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13:1-7) 디모데전서 2장에서는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2:1-2)는 말씀도 하십니다.
우르시누스는 통치자에게 맡겨진 임무로 하급자에게 복종을 요구하고, 십계명의 두 돌판에 의거하여 외형적인 질서를 세우는 것. 십계명의 명령들에 복종하는 자들을 보호하고 또한 불복종하는 자들을 벌함으로써, 십계명의 명령들을 강력히 시행하게 하는 것 등을 말하는데, 오늘 우리 시대로 볼 때 첫 번째 돌판 부분과 관련해서는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십계명은 도덕법입니다. 도덕법이기에 모든 시대, 모든 장소, 모든 사람에게 구속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 통치자가 특정한 종교를, 그리고 그 종교의 가르침을 주장할 수 있는 그런 시대는 아닙니다.
참고로 사무엘 루더포드의 기독교 개요 요리문답으로 권세자들과 백성의 의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 나라의 권세자들은 종교(신17:19, 출18:21, 사49:23, 겔7:27), 평화(딤전2:2), 공의(민35:31,33, 왕상20:42, 욥29:12,13)를 유지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반면 백성들은 왕과 관원들을 위해 기도하고(딤전2:1), 형벌을 행하거나 형벌의 괴로움을 인내함으로써 주 안에서 그들을 사랑하고 순종하고(엡6:5-7, 벧전2:13,14), 그들에게 자신들의 세금을 지불하고(마15:4,5; 롬13), 선동을 일으키지 않고(잠24:21)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교회 안에서의 직분자와 성도에 대한 것인데, 베드로전서 5장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1-5)
이 외 여러 구절들이 있지만, 사무엘 루더포드의 문답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우선 목사는 하나님의 양떼를 먹여야 합니다(벧전5:2). 성경을 읽는 것에 착념해야 하며(딤전4:13), 가르치기를 잘 해야 합니다(딛1:9). 또한 경건에 힘써야 합니다(딤전4:7). 반면 양떼는 목사에 대하여 순종하고 사랑하고 존중하며(히13:17, 살전5:13),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엡6:19). 그리고 그로 그들의 모든 선한 것들의 참여자가 되게 해야 합니다(갈6:6).
이외에 러더포드는 몇 가지 부분을 더 말하는데, 젊은이들와 노인들의 의무,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해서도 소개합니다. 먼저 젊은이들은 그들의 젊은 날에 창조자를 기억하며(전12:1), 젊은이의 정욕을 피하며(딛2:6, 딤후2:22), 노인들을 존경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고(레19:32, 욥32:6,7; 막10:17, 창28:8, 왕상2:19, 벧전 5:5), 노인들은 의의 길을 걸으며(잠16:31), 믿음과 사랑과 인내에 있어 온전해지는 것으로 설명합니다(딛2:2). 다음으로 부자는 자선과 실천과 모든 선행에 있어서 부요해지며(딤전6:18), 높은 마음을 품지 않거나 불확실한 재물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딤전6:17), 그리고 만일 그가 낮아지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의 재물의 헛됨을 그로 하여금 보도록 하신 것을 기뻐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약1:10). 반면 가난한 자는 부족함에 처하는 것을 배우며(빌4:12),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마6:33).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만 있지 않고 그 명령에 대한 약속도 더하십니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도 말합니다(엡6:2). 물론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에서도 약속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에 대하여 우르시누스는 제2계명이 일반적인 약속이라면 제5계명은 특별한 약속으로 구분합니다. 다시 말해 2계명은 축복과 저주에 대한 일반적인 약속이라면 제5계명은 장수라는 특별한 약속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해석보다 좀 더 나은 해석이 없을까란 생각을 하고 있지만, 어쨌든 2계명이 명령과 약속으로 되어 있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장수의 복에 대하여 약속하십니다.
그럼 왜 장수의 복을 약속하고 있는가? 첫째, 우리에게 그렇게도 큰 은덕을 상급으로 제시하심으로써 이 계명에 순종할 마음을 촉발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그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을 얼마나 높이시며 또한 공경하지 않는 자들에게 얼마나 극심하게 벌하실지를 선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이 계명에 대한 순종이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앞서도 말했지만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야 말로 다음에 이어지는 나머지 모든 계명들에 대해 순종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하나의 준비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이 장수의 복에 대하여 설명할 때 무조건적으로 성취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질문해 봅시다. 부모를 공경하면 무조건 장수하는가? 반대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무조건 단명(短命)하는가? 여기에 대하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된 것인가? 그럴 수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제66문. 제5계명에 덧붙여 사려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답. 제5계명에 덧붙여 사려할 것은 본 계명을 지키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그들 자신의 선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 한) 장수와 번영을 약속한 것입니다(신5:16, 엡6:2-3).
토마스 카트라이트라는 개혁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악한 자들은 오래 살고, 어떤 선한 자들은 취해 가시되, 심지어 그들의 젊은 날에 취해 가시는 것을 볼 때, 어떻게 이 약속이 정확하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가? 경건한 자들은 오래 수를 누림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그들 자신의 선에 이바지하게 된다. 하지만, 악한 자들은 그들 자신에 대해서 더 깊은 정죄에 이르게 된다(시65:20). 그리고 이런 경우에서도 하나님은 조금도 그 분의 약속을 어기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이 인간에게 은을 약속하시고, 그 인간에게 무게와 질에서 더 뛰어난 금으로 그에게 갚으셨다면, 그 분은 그에게 어떤 손상도 주지 않으신 것이다. 그리고 악한 자들은 그들의 긴 삶에 의해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며, (그 삶으로 인하여) 지옥에서 더 큰 심판을 받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땅에서의 장수를 은으로 비유한다면 장수가 아니라 죽음으로 인하여 천국에 가는 것을 금으로 비유하고 있는 겁니다. 장수의 약속을 하셨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단명(短命)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신 것이지, 결코 약속하신 바를 어긴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수의 약속을 하신 것은 앞서 말한 목적 세 가지 때문입니다. 순종할 마음을 촉발시키시기 위해서,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을 높이시며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벌을 내리신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이 계명에 대한 순종이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말씀에 따라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윗사람을 공경해야 합니다. 윗사람은 그런 공경을 받을만한 사람이 되도록 자신을 살펴야 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약점이 있고 부족함이 있더라도 인내로 견디면서 공경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요리문답이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