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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한국문인협회부천지부 원문보기 글쓴이: 박영봉
2012 동아일보신춘문예 시 ․ 시조 당선작
나의 고아원 외 1편
안미옥
신발을 놓고 가는 곳. 맡겨진 날로부터 나는 계속 멀어진다.
쭈뼛거리는 게 병이라는 걸 알았다. 해가 바뀌어도 겨울은 지나가지 않고.
집마다 형제가 늘어났다. 손잡이를 돌릴 때 창문은 무섭게도 밖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벽을 밀면 골목이 좁아진다. 그렇게 모든 집을 합쳐서 길을 막으면.
푹푹, 빠지는 도랑을 가지고 싶었다. 빠지지 않는 발이 되고 싶었다.
마른 나무로 동굴을 만들고 손뼉으로 만든 붉은 얼굴들 여러 개의 발을 가진 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 이상했다. 집을 나간 개가 너무 많고
그 할머니 집 벽에서는 축축한 냄새가 나. 상자가 많아서
상자 속에서 자고 있으면, 더 많은 상자를 쌓아 올렸다. 쏟아져 내릴 듯이 거울 앞에서
새파란 싹이 나는 감자를 도려냈다. 어깨가 아팠다.
2012 동아일보신춘문예 시 ․ 시조 당선작
나의 고아원 외 1편
안미옥
신발을 놓고 가는 곳. 맡겨진 날로부터 나는 계속 멀어진다.
쭈뼛거리는 게 병이라는 걸 알았다. 해가 바뀌어도 겨울은 지나가지 않고.
집마다 형제가 늘어났다. 손잡이를 돌릴 때 창문은 무섭게도 밖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벽을 밀면 골목이 좁아진다. 그렇게 모든 집을 합쳐서 길을 막으면.
푹푹, 빠지는 도랑을 가지고 싶었다. 빠지지 않는 발이 되고 싶었다.
마른 나무로 동굴을 만들고 손뼉으로 만든 붉은 얼굴들 여러 개의 발을 가진 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 이상했다. 집을 나간 개가 너무 많고
그 할머니 집 벽에서는 축축한 냄새가 나. 상자가 많아서
상자 속에서 자고 있으면, 더 많은 상자를 쌓아 올렸다. 쏟아져 내릴 듯이 거울 앞에서
새파란 싹이 나는 감자를 도려냈다. 어깨가 아팠다.
식탁에서
내게는 얼마간의 압정이 필요하다. 벽지는 항상 흘러내리고 싶어 하고
점성이 다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어 한다.
냉장고를 믿어서는 안 된다. 문을 닫는 손으로.열리는 문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옆집은 멀어질 수 없어서 옆집이 되었다. 벽을 밀고 들어가는 소란. 나누어 가질 수 없다는 게다리가 네 개여서 쉽게 흔들리는 식탁 위에서. 팔꿈치를 들고 밥을 먹는 얼굴들. 툭. 툭. 바둑을 놓듯
눈뜨는 화석 천마총에서
황외순
소나무에 등 기댄 채 몸 풀 날 기다리는
천마총 저린 발목에 수지침을 꽂는 봄비
맥 짚어 가던 바람이 불현듯 멈춰선다
벗어 둔 금빛 욕망 순하게 엎드리고
허기 쪼던 저 청설모 숨을 죽인 한 순간에
낡삭은 풍경을 열고 돋아나는 연둣빛 혀
고여 있는 시간이라도 물꼬 틀면 다시 흐르나
몇 겁 생을 건너와 말을 거는 화석 앞에
누긋한 갈기 일으켜 귀잠 걷는 말간 햇살
2012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시 ․ 시조 ․ 동시 ․ 수필
물푸레 동면기
이여원(李如苑)
물푸레나무 찰랑거리듯 비스듬히 서 있다
양손에 실타래를 감고 다시 물소리로 풀고 있다
얼음 언 물에 들어 겨울을 나는 물푸레
생각에 잠긴 척
바위 밑 씨앗들이 졸졸 여물어가는 소리를 듣고 있다
얼룩무늬 수피가 물에 닿으면 물은 파랗게 불을 켰었다 바람은 지나가는 분량이어서 몸 안에 들인 적 없고 팔목을 좌우로 흔들어 멀리 쫓아 보냈었다
손마디가 뭉툭한 나무는 실을 푸느라 팔이 아프다
나무의 생채기에 서표(書標)를 꽂아두고
녹아 흐르는 물소리를 꽂아두고 말린다
푸른 잎들은 물속 돌 밑에 들어 있고
겨울 동안 잎맥이 생길 것이다
추위가 가득 엉켜 있는 물가, 작은 샛길이 마을 쪽으로 얼어 미끄럽다
빈 몸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들
모두 봄이 오는 방향 쪽으로 비스듬 마중을 나가 있다
날짜를 세는 가지는 문맹(文盲)이다
개울이 키우고 있는 것이 물푸레인지 물푸레가 키우고 있는 것이 개울인지 알 수 없지만
나뭇잎 하나 얼음 위로 소금쟁이처럼 떠 있다
비브라토
김석이
호수 위에 떠 있는 백조의 발밑으로
수없이 저어대는 물갈퀴의 움직임
점선이 모여서 긋는 밑줄이 떠받치는 힘
차선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들
꿈틀거리는 지면을 가속으로 쫙쫙 펴는
평평한 길 아래 있는 주름들의 안간힘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의 손가락들
소리의 맹점 찾아 이리저리 누를 때
닫혔던 물꼬를 틀며 길을 여는 강물소리
부딪쳐야 파문으로 밀려오는 그림자
짓눌려야 짓물러야 풀어지는 소리 가닥
발끝에 온힘을 모아 중심을 잡고 있다
아버지의 지게
권우상
아버지가 날마다 지시던
손때 가득 묻은 지게가
마당 한쪽 구석에
그림처럼 놓여 있습니다
자나 깨나 논두렁 밭두렁
분주히 오가며
삶을 퍼 담아 나르시던
아버지의 지게
지금은 먼 나라로 가신
아버지의 모습과 고단함이
지게에 담겨 있습니다
휘청거리는 두 다리를
작대기 하나에 기대시고
안개 자욱한 새벽길 나서시며
흙과 함께 살아오신 아버지
억척스럽게 산더미 같은
소먹이는 풀도 베어오시고
마늘과 풋고추, 생강도 담아
우리들을 길러내시던
아버지의 땀방울 맺힌 지게
고향의 따스한 정을 받으며
지난날들의 뒤에 서서
아버지의 지게는
오늘도 나를 반깁니다.
화투
임병숙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햇살이 여과 없이 스며들었다. 두텁게 내려앉은 침묵 사이로 각질 같은 먼지가 빛살에 실려 부유물처럼 떠다니고 있다. 보호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는 바람이 지나간 듯 휑뎅그렁하다. 방 안에는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간간이 어머니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한숨 소리와 화투가 조심스럽게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중환자 대기실에 처음 들어가던 날 어머니는 몹시 낯설어했다. TV 소리와 한숨 섞인 낮은 말소리, 이따금 들리는 낮은 울음소리와 호흡을 힘겹게 하는 크레졸 냄새. 눈앞에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둔 환자들 때문인지 방안을 흐르는 공기마저 무거웠다. 전등과 TV를 끈 밤이면 심해의 침묵 같은 어둠이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어머니는 이방인처럼 그 속에 섞이지 못하고, 모든 촉수(觸手)를 동물의 그것보다 예민하게 맞은편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향했다.
병원을 옮기거나 환자들이 먼 곳으로 떠나면서 보호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벽지에 밴 크레졸 냄새가 익숙해진 대기실 안에 어머니와 단둘이 남았다. 북적댈 때는 제대로 쉴 수가 없어서 힘들었는데 갑자기 방안이 넓어졌다. 왠지 허전하면서 옷을 헐렁하게 입었는데 가슴이 답답했다.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어느 한 곳에 고정했다. 화면에는 이른 시간에 화사하게 화장을 한 주부들이 소리 내어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녀들의 얼굴은 화장만큼 그늘이 없이 밝았다.
아침도 거르고 누워 있던 어머니가 살며시 눈을 떴다. “딸, 혹시 화투 칠 줄 알아?” 풀기 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어머니의 눈빛이 무언가를 잡고 싶어하는 듯했다. 조금 할 줄 안다고 하자 화투 좀 사오라고 했다. 겨울이면 일거리가 없는 친정 동네 할머니들은 화투로 길고 지루한 하루를 저 끝으로 보내곤 했다. 평소 외출도 잘 하지 않는 어머니는 그 틈에 끼지를 않아서 의아했지만, 두말없이 병원 뒤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사왔다. 어머니가 휑한 눈으로 부스스 일어났다.
보푸라기와 머리카락이 뒤엉켜 있는 군청색 담요를 깔았다. 그 위에 화투를 펼치니 그림이 선명하게 보였다. 꽃, 동물, 나무, 풀 등이 그려져 있다. 대부분 복과 건강을 상징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려한 색상으로 표현했다. 어머니가 화투는 그냥 치면 재미없다며 허리춤에서 동전을 꺼내 나눠 줬다. 조금 전까지 초점이 흐려져 있던 눈에는 생기가 흐르고, 어린아이처럼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빈 둥지 같은 친정에 어머니가 오신 것은 칠순이 넘어서였다. 그 연세에 재혼이란 쉽지 않았으리라. 자식들이 반대를 하거나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오셨을 때는 무언가 다른 삶을 바라지 않았을까. 안타까울 정도로 욕심이 없던 만큼 화투처럼 화려한 생활도 바라지 않고 지나간 시간을 묻을 수 있는 보금자리만 바랐다. 남들처럼 서류상으로든가 그 어떤 구차한 조건도 달지 않고, 친정 담 밑에 핀 나팔꽃처럼 소박한 바람뿐이었다.
아버지는 그 바람마저 저버렸다. 늘 술을 달고 살면서 다정한 눈빛과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다. 어머니는 당신의 삶이 갑작스레 안락하게 변하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그런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그 또한 당신이 받아들여야 한다며 내색 없이 견딘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힘겹게 잡고 있던 유일한 희망의 끈이었다. 그 끈이 굵고 튼튼하지 않아도 데면데면한 자식들보다는 나았을 텐데 아버지가 갑작스레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신체 기능은 제 역할을 하고 있어도 한 번 감은 눈을 더는 뜨지 않았다. 의사도 희망이 담긴 얘기보다 절망적인 얘기로 어머니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하루에 세 번, 정해진 면회 시간에 아버지를 뵈면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변화가 없는 표정에서 생의 마지막 경계선에 닿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혈압과 심장 박동도 영하로 내려가는 온도계의 눈금처럼 점점 내려갔다. 어머니의 표정도 아버지처럼 굳어져 갔다. 말수도 줄어들고 단단하게 조였던 나사가 헐거워지듯 당신을 지탱해 주던 모든 관절이 느슨해졌다. 병원 밖에는 나갈 엄두도 못 내고 침묵처럼 눈을 감고 한 자리에 가만히 있는 시간이 많았다. 단단하게 잡고 있던 것을 놓아야 하는 불안감과 그다음에 다가올 시간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당신을 놓아주지 않는 것들을 떨쳐버리고 싶은 것일까. 화투를 내리치는 팔에는 팽팽하게 조인 활시위처럼 긴장감과 탄력이 있었다. 언젠가 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상대의 눈을 속여 돈을 빼앗기 위한 도박꾼들의 팔은 짧고 굵게 허공에서 주춤거림도 없었다. 먹이를 향해 쏜살같이 내리꽂는 매의 동작처럼 날렵했다. 어머니의 팔 동작은 그들만큼 빠르지는 않았지만 잠깐 허공을 가르더니 아래로 내리꽂혔다. 그러나 왠지 울림이 달랐다.
그들의 울림이 상대를 속이기 위한 짤막한 울림이었다면 어머니의 울림은 왠지 길게 울렸다. 팔순을 바라보는 연세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났을까 싶었지만 그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게 들렸다.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몹시 불안해하는 어머니 주위를 뱅뱅 돌고 있었다.
복도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절제하기 어려운 고통을 극도로 절제하며 무언가를 따라 복도 끝으로 가고 있었다. “난, 이제 어떻게 살아.” 한숨 같은 그 말을 오랫동안 참았는지 가느다란 한숨에 섞여 힘겹게 나왔다. 작고 동그랗게 허물어진 어깨선이 조금씩 움직이더니 흐느낌에 따라 들썩였다. 나무토막처럼 거칠고 딱딱한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아버지는 의식도 없이 열흘째 누워 있지만, 뇌세포마저 잠든 것은 아닌 듯했다. 혼자 남겨질 어머니 걱정에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는 게 아닐는지. 아버지를 뵐 때마다 당신이 살아 계실 때와 다름없이 어머니를 대하겠다고 주문처럼 약속했다. 그 말 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크게 위안이 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 말을 듣더니 수축됐던 근육이 이완돼 보였다. 그러나 어디다 정신을 놓았는지 화투의 짝을 제대로 못 맞췄다. 일일이 짝을 맞추고 계산을 해 드리면 마지못해 웃었다.
그 웃음마저 점점 희미해지더니 한마디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화투의 부딪치는 소리도 어딘가로 깊숙이 숨어들고 방안에는 간간이 한숨 소리만 들렸다. 그 사이 아버지는 점점 더 멀리 가고 있었다. 그 길은 막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길이다. 세월의 물살에, 신의 손길에, 운명의 손길에 떠밀려가는 길이다. 아무리 힘차게 팔을 휘두르며 화투를 내리쳐도 그 불안은 떨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팔은 모든 조임새가 풀려버렸다.
느린 화면처럼 손에 든 화투를 바닥에 있는 화투 위에 간신히 얹었다. 어머니의 손에서 힘없이 빠진 화투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늦가을, 들판에 내린 하얀 서리 같은 어머니의 머리카락은, 진이 다 빠진 듯 이리저리 쓰러졌다. 얼굴은 가벼운 발자국에도 힘없이 부서지는 낙엽보다 더 푸석해서 주름만 도드라졌다. 출입문이 벌컥 열리더니 낯선 공기가 재빠르게 밀려왔다. 화면이 정지되었다.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빨리 중환자실로 오라고 했다. 조금 다급했지만 차분하게 그 한마디만 남기고 임무를 다 했다는 듯 획 나가버렸다. 화투를 떨어뜨린 어머니의 입에서 ‘아이구’ 하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구부정한 뒷모습이 중환자실로 뛰어갔다. 두어 시간 전에 뵈었을 때 검붉던 아버지의 얼굴이 백열등 불빛보다 하얗게 변했다.
퉁퉁 부은 아버지의 손을 잡은 어머니의 손이 몹시 떨렸다. 아버지는 매미처럼 껍데기만 남기고 이탈 중이었다. 병실에는 어두침침한 동굴의 천장에서 한 방울씩 힘겹게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렸다. 아직 삶의 경계선을 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기계음이었다. ‘뚝, 뚝, 뚜 - 드’ 물방울이 아주 느리게 떨어졌다. 잠시 후, 건전지의 수명이 다한 것처럼 짧고 조용하게 ‘삑’ 소리를 내며 멈췄다. 물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짝을 보내지 않으려는 짐승의 울음이, 손수건으로 가린 어머니의 입술 사이로 삐져나왔다. 어머니의 하얀 머리카락보다 더 하얀 시트가 아버지의 얼굴을 덮었다.
갑자기 스쳐 가는 바람처럼 울음을 뿌리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담요 위에는 화투가 아무렇게나 누워 있다. 그토록 불안의 늪에서 헤맸건만 끝내 떨쳐 버리지 못한 어머니를 비웃는 것 같다. 화투와 어머니의 하얀 머리카락이 서로 다른 세상처럼 대조적이다. 삶이란 화투처럼 화려하고 행복할 때도 있고, 어머니의 머리카락처럼 소박하거나 아주 단조로울 때도 있다.
어머니의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보면 화투처럼 화려하게 삶의 포만감을 느껴보지 못한 모습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긴긴 삶의 뾰족한 모퉁이에서 이런저런 상처만 받았으리라. 어머니의 하얀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부서질 것만 같다. 결국, 화투는 인간의 행복과 삶의 의미를 담은 것과는 다르게, 아무런 구실도 못 하는 심심풀이 도구였다. 화투를 쓸어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불안의 늪에 정박해 있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2012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작
철이네 우편함 (동시)
김영두
철이네 우편함은 강 이 편에 있습니다.
집배원 아저씨가 강 건너 오시는 게 미안해
이 편 강가 숲 속 소나무에 우편함을
달아 놓았답니다.
며칠에 한번씩 배를 타고 건너와
편지를 찾아가는 철이 아빠.
우편함 속에 할미새 부부가
보금자리를 만들기 시작하더니
알록달록 귀여운 새알을
낳았답니다.
철이 아빠는
옆 소나무에 바구니를 하나 달아놓고
글을 써 붙였습니다.
"집배원 아저씨, 편지는 여기에 넣어주셔요."
"우편함에는 산새가 새끼를 치고 있어요."
호기심에 살금 살금 다가가
우편함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솜털 보송한 새끼들이 어미가 온 줄 알고
노란 입을 짝짝 벌립니다.
나는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얼른 뒷걸음쳐 도망쳤습니다.
어린 것들이 다 자라 날개가 돋치면
철이 아빠의 고마움을 부리에 물고
저 파란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습니다.
외계인을 기다리며 (시조)
양해열
끽해야 20광년 저기 저, 천칭자리
한 방울 글썽이며 저 별이 나를 보네
공평한 저울에 앉은
글리제 581g*!
낮에 본 영화처럼 비행접시 잡아타고
마땅한 저곳으로 나는 꼭 날아가리
숨 쉬는 별빛에 홀려
길을 잃고 헤매리
녹색 피 심장이 부푼 꿈속의 ET 만나
새큼한 나무 그늘에서 달큼한 잠을 자고
정의의 아스트라에아,
손을 잡고 깨어나리
비정규직 딱지 떼고 휘파람 불어보리
낮꿈의 전송속도로 밧줄 늘어뜨리고
떠돌이
지구별 사람들
하나둘씩 부르리
*생명체가 존재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또 다른지구’가 골디락스존 (GoldilocksZone)에서 최근에 발견되었다.
조련사K (시)
한명원
그는 입안에 송곳니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두 발로 걷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어 혼자 있을 때 네 발로 걸어도 보았다. 야생은 그의 직업이 되었고 조련은 가늘고 긴 권력이 되었다.
모든 권력은 손으로 옮겨갈 때 가벼워진다. 눈치를 보는 것들의 눈빛은 언제나 심장을 겨냥하는 법. 다만 두려운 것은 손에 들려 있는 권력일 뿐이니까.
조련사 k. 그는 아침마다 동물원을 한 바퀴씩 도는 순방이 있다. 금빛 은행잎이 k의 머리 위로 왕관처럼 씌워진다. 철조망에 갇힌 초원이 펼쳐져 있다. k는 손을 흔들거나 휘파람을 분다. 잠자던 맹수가 눈을 뜨더니 달려온다. 무릎을 꿇는다.
k는 맹수의 꼬리를 목에 두르고 맹수코트를 걸치고 곤봉을 휘두르는 자신을 상상하곤 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k의 얼굴에 구레나룻이 생기고 몸에 털이 자라고 손톱은 길어졌다. 모든 모의謀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다. 말 안 듣는 맹수에게 먹이를 주지 않고 채찍을 휘두르며 맹수보다 더 맹수처럼 사나워져갔다.
얼마 전 야생의 모의謀議가 철조망을 빠져나갔다. 그 후 k의 통장으로 감봉된 월급이 들어왔다. k는 자기 목을 조르는 조련사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몸에 털이 빠지고 손톱이 빠졌다.
조련으로 청춘을 보낸 k는 결국, 야생을 놓치고 말았다.
새로운 조련사들이 들어오고 그들은 맹수들과 더 빨리 친해졌다. 동경하던 야생은 저 쪽에서 어슬렁거렸다. 이빨 빠진 맹수 한 마리가 다른 맹수 눈치를 보며 어슬렁거렸고 금빛 왕관은 가을 저 쪽으로 다 날아가 버렸다. 얼마간 퇴직금의 조련을 받는 힘없는 맹수가 되어 있었다.
불교신문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암자에 홀로 앉아
박 상 주
날 좀 때려주오
천년고찰 범종 치듯
안으로
다져놓은
전탑(塼塔)언어 청태(靑苔)눈물
빈 골짜
다 쏟아 붓고
나비 되어 가련다
■ 시조 당선소감
못다 한 말, 심장 속에 한 장 벽돌로 구워냈다아침에 비둘기 떼가 한바탕 원무(圓舞)를 추며 하늘을 쓸더니, 오후에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암자에 홀로 앉아’라는 작품이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기쁘나 슬프나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던 앞산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떡인다. 이미 처녀시집까지 펴낸 아내가 큰 눈을 반짝이며 축하의 손을 내민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찌 할 소리 다하고 흘릴 눈물 세상에 다 보일 수 있겠는가. 사람은 저마다 밤이 되면 못다한 말 덩이 덩이를 한숨으로 이겨서 뜨거운 심장 불 속에 넣어 한 장의 벽돌로 구워낸다.
그리고 그 벽돌을 차곡차곡 마음 한 기슭에 쌓아올려 전탑(塼塔)을 세우고 그 전탑 위로 혼자 흘린 눈물은 이끼로 피어나고 그 위로 날아든 풍경(風磬)소리는 푸름을 더해간다. 하루가 저물어 갈 때 들려오는 산사(山寺)의 범종(梵鐘)소리는 숙연한 기분을 자아낸다.
둥! 종이 울리고 한 동안 그 파동은 지속되다가 웅! 웅! 맥놀이를 거듭하다 서서히 종소리는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종소리가 울려온다. 마치 중생들이 생로병사(生老病死) 속에 억겁 생(億劫 生)을 거듭하며 쌓아온 모든 번뇌덩이를 모아 빈 골짝으로 쏟아버리듯. 곡마단 천막 안에서 무대가 보이지 않아 발뒤꿈치를 치켜들던 키 작은 소년같이, 아직 낮은 등고선에 머물고 있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법화경> ‘화성유품’의 ‘변화성(變化城)’으로 잠시 자리를 마련해 주신 그 배려와 믿음이 헛되지 않도록 정상(頂上)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백양산 선암사 저녁종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누가 날 때려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머리를 쳐본다. 어릴 적 심어둔 별 하나가 동지 밤을 치른 겨울 하늘에 돋고 있다.
영남일보 영일문학상 시 당선작
목련꽃
조영민
꽃이 문을 꽝 닫고 떠나 버린 나무 그늘 아래서
이제 보지 못할 풍경이, 빠금히 닫힌다
보고도 보지 못할 한 시절이 또 오는 것일까
닫히면서 열리는 게 너무 많을 때
몸의 쪽문을 다 열어 놓는다
바람이 몰려와 모서리마다 그늘의 알을 낳는다
온통 혈관이고 살인 축축한 짚벼늘이 느껴져
아주 오랫동안 지나간 것들의 무늬가 잡힐 듯한데…
꽃 진 그늘에는 누가 내 이름을 목쉬게 부르다가
지나간 것 같아
꿈이나 사경을 헤맬 때 정확히 들었을 법한 그 소리가
왜 전생처럼 떠오르는 것일까
그늘은 폐가다 그것은 새집이나 마찬가지
나는 폐가의 건축자재로 이뤄졌다
태양이 구슬처럼 구르는 정오. 꽃그늘에 앉으면
뒤돌아서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부르다 부르지 못하면 냄새로 바뀐다는데
뒤돌아서 자꾸만 누가 부르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나무를 꼭 껴안아 보는데
나무에선 언젠가 맡았던 냄새가 난다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저무는, 집
여성민
지붕의 새가 휘파람을 불고, 집이 저무네 저무는, 집에는
풍차를 기다리는 바람이 있고 집의 세 면을 기다리는 한 면
이 있고 저물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 저무는 것들이
저무네 저물기를 기다리는 시간엔 저물기를 기다리는 말이
있고 저물기를 기다리지 않는 말이 있고 저무는 것이 있고
저물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저물지 못하네 저물기를 기다
리는 말이 저무는 집에 관하여 적네 적는 사이, 집이 저무
네 저무는 말이 소리로 저물고 저물지 못하는 말이 문장으
로 저무네 새는 저무는 지붕에 앉아 휘파람을 부네 휘파람
이 어두워지네 이제 집 안에는 저무는 것들과 저무는 말이
있네 저물지 못하는 것들과 어두워진 휘파람이 있네 새는
저물지 않네 새는 저무는 것이 저물도록 휘파람을 불고 저
무는 것과 저물지 않는 것 사이로 날아가네 달과 나무 사이
로 날아가네 새는 항상 사이를 나네 달과 나무 사이 저무는
것과 저물지 않는 것의 사이 그 사이에 긴장이 있네 새는
단단한 부리로 그 사이를 찌르며 가네 나무가 달을 찌르며
서 있네 저무는 것들은 찌르지 못해 저무네 달은 나무에 찔
려 저물고 꽃은 꿀벌에 찔려 저물고 노을은 산머리에 찔려
저무네 저무는, 집은 저무는 것들을 가두고 있어서 저무네
저물도록, 노래를 기다리던 후렴이 노래를 후려치고 저무
는, 집에는 아직 당도한 문장과 이미 당도하지 않은 문장이
있네 다, 저무네
[당선소감] 난 詩 소비자, 더 읽겠습니다
포레스트 검프처럼 그는 걷습니다. 산호 미용실을 지나 파리바게뜨를 지나 물왕리 저수지를 지나 아스널 FC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지나 메텔의 슬픈 눈이 떠도는 은하철도999를 지나 플라이 투 더 문을 지나…. 저무는 것들이 저무는 사이로 걷습니다. 저무는 것들 사이에서 여러 번 저물며 걷습니다.
어느 저물녘엔 전화를 받습니다. 그 밤에 첫눈이 푹푹 내립니다. 조금씩 눈 속에 묻혀 가는 집과 산과 논과 창문을 봅니다. 집이, 산이, 논이, 창문이 하나씩 저물고 있다는 느낌. 어머니의 둥근 무릎처럼 그 속에서 불빛들이 견디고 있다는 느낌. 그 밤에 그는 저물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짓던 시를 마저 짓습니다…. 견딥니다….
배고플 때 밥 사주던 금호초등학교 동창들이 생각납니다. 부족한 글 뽑아 주신 서울신문과 심사위원님들을 생각합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노트북 앞에 앉으면 페이지처럼 많은 밤들이 지나갑니다. 시를 읽으며 흐려지던 밤, 은혁이와 민혁이를 낳던 밤, 첫사랑이 있는 골목을 지나며 버스 안에서 아프던 밤, 창조주의 밤이 스르르 지나갑니다. 모든, 혼자였던 밤들. 그리고 나. 나는 아직도 소비하는 사람. 더 많이 소비하고 싶은 사람. 시를, 더 많이 읽겠습니다.
■ 약력
1967년 충남 서천 출생. 안양대 신학과, 총신대 신학대학원 졸업. 2010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소설).
[심사평] 詩 자체가 하나의 사건을 이뤄
함성호(시인), 송찬호(시인)
물리학에서는 수학적 사건이 있고, 생물학에서는 생명의 사건이 있고, 시에서는 말의 사건이 있다.
하나의 단어가 일일이 거론할 수 없는 전체를,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일한 사건으로 만들 때 그것은 시에 의해서고, 그것은 시인의 일이다. 말이 사건이 되지 못하는 시는 시가 아니다. 시에 있어서 말의 풍경은 하나의 사건이고, 그대로 지평이다. 예심을 거쳐 최종심에서 받은 스물세 분의 시는 오랜만에 우리 시의 지형 깊은 계곡으로 우리를 놀게 하고, 높은 산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하며 드넓은 바다에서 서 있게도 하는 행복한 경험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그 울렁거리는 느낌을 타고 세 분의 시를 골랐다. 일일이 짧은 감상을 달고 토론을 거쳐 힘들게 또는 아쉽게 손에서 터는 작업을 거쳐 남은 세 편의 작품을 두고, 우리는 잠시 부러 딴 이야기를 해야 할 정도였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딴 얘기를 하는 둥 마는 둥 다시 토론에 들어가 최호빈의 ‘고민의 탄생’, 김미영의 ‘상자’, 여성민의 ‘저무는 집’을 골랐다.
최호빈의 시는 시상을 치밀히 전개해 나가며 이미지를 구상화시키는 솜씨가 일단 돋보였다. 단어 하나의 선택에서 다년간 습작을 한 흔적이 분명히 드러났다. 김미영의 시는 우리 삶의 비루한 것들을 보듬어 소중한 꽃을 피워 내는, 애정이라고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따뜻함이 편편에서 맡아졌다.
아무리 시가 자기를 위한 자기에 의한 자기의 시라 할지라도 자기의 바깥을 보는 이런 시선은 이 즈음에는 꽤나 귀하게 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 향기는 더 짙었다.
그러나 최호빈의 시는 숲이 울창한 만큼 베어 낼 나무들이 꽤 있었다는 점에서, 김미영의 시는 아직 피상적이라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여성민의 시는 반복되는 말과 말로 공간을 이루고 거기에 막연과 아연의 풍경들을 자리하게 해, 시 자체가 하나의 사건을 이루고 있었다. 좋았다. 축하한다.
2012년 <경향 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그늘들의 초상
최호빈
외팔이 악사가 기타를 연주하는 하얀 레코드판 위로 한 아이가 돌면
걸음마다 붉은 장미가 피어난다 오선지에 적힌 외팔이의 과거를
한 페이지씩 뒤로 넘기면 검게 변해버리는 장미, 같은 자리를
다시 지날 때 멈추는 음악, 검은 장미의 정원 줄이 끊어진 듯 문은 닫히고
검은 레코드판 위로 한 줌의 꿈을 꾸었다고 고백하는 잿빛 음악이
무책임한 허공을 읽는다
*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십시오.
안내 방송이 끝나기 전 먼저 도착한 바람에 몸이 흔들린다
*
태어나자마자 걸친 인간의 가죽이 낯설어서 울면,
목에서 흘러나오는 짐승의 잡음을 따라 다른 영아들도 울었다
우는 자에게 위안은 더 우는 자를 보는 것 전생과 후생 사이를
감지하는 나의 두개골은 밀봉되기를 거부했고 뒤늦게 나타난 간호사가
기껏 흘린 피를 지워주었다 차지해야 할 자리를 잡지 못한
오감의 무중력 속 나는 갈라진 틈의 눈으로 울다가 낯선 요람에서
잠을 깨기도 했다
*
울음마저 피곤하게 느낄 때 내게 열리는 것
보일 듯 말 듯 소중해지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움직인다
기묘하게 균형을 유지하려는,
책상과 옷장과 침대가 말없이 싸운다
젖은 옷을 입은 채 나를 말리기 위해
회의적인 귀를 바닥에 대면
잠든 나에게 속삭이는 누가 있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소식들이
무언가에 부딪혀 움푹해진 순간으로 흘러든다
예전의 마른 상태로 돌아가는 소매
팔보다 긴 그림자를 흔드는 소매
나조차 없는 느낌의 눈 속엔 아무도 없는데
속삭임이 멈추지 않는다
지금 내 귓속엔 하루를 순환하는 입이 살고 있다
[당선소감] “멋진 병, 현기증이 나에 대한 믿음 되살려”
한 인간이 있었다. 그는 세상을 전부 이해하기 위해 한 인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든 인간이 되길 바랐다. 한때 내 몸은 그의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에 반항하기 위해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영혼이 아니라 그의 죽은 몸을 닮고 있었다. 스무 살의 겨울, 몽마르트 언덕에서 길을 헤매던 중 한 묘지로 들어갔고 처음 본 공동묘지에 그를 내려놓았다. 파리의 지붕들을 뛰어다니던 그에겐 밟고 다닐 무덤들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빈자리가 말을 건넨다. “나는 침묵과 밤에 대해 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에 유의했다. 나는 현기증을 응시했다.”
얼마 전 흑백의, 내 머릿속 사진을 보았다.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커다랗고 외로운 눈(目)이었다. 그 눈은 대답을 무한히 지연시키는 질문만을 내게 건네는 듯했다. 아무 문제 없다고 의사는 말했지만 그 이후로 나는 눕거나 일어날 때 어지럼증을 느낀다. 그것은 마치 내 안에 살았던 기억과 감정들이 깨어나면서 나에 대한 불신들 사이에 나를 믿게 만들 씨앗을 흩날리는 것 같았다. 살아있다. “멋진 병”에 걸렸다. 다행이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고마움과 건강히 오래 지켜봐주길 바라는 아들의 마음을 전한다. 시 쓰는 길을 열어주시고 큰 관심을 가져주신 최동호 선생님과 ‘곧’이라는 말로 격려해주신 선후배님께 감사드린다. 시 속에 숨어 있으려는 나를 밖으로 꺼내주신 멘토 권혁웅, 조연호 그리고 금요일의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크고 달콤한 힘에 감사한다. 다른 내일을 열어주신 도종환, 박주택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 1979년 서울 출생 ■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석사과정 재학
[심사평] “개성과 진실은 시를 계량하는 중요한 잣대”
도종환, 박주택
신춘문예는 말 그대로 ‘새 봄의 문학’이다. ‘새 봄의 문학’은 혹한과 얼음을 이긴 ‘새싹의 문학’이자 ‘꽃핌의 문학’이다. 이는 오랜 탁마와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순간을 견디며, 개성적인 세계를 창조하려는 노력 끝에 찾아오는 문학이다. 이 점에서, 시를 구성하는 미적 형식과 내용을 직조하는 시선, 제재를 가공하는 세공술, 그리고 이를 각고로 새겨 돋우는 치열한 정신은 ‘새 봄의 문학’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예술적 덕목들이다.
예심에서 올라온 시편 중에서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끈 것은 시가 지니고 있는 본령을 견지하면서도 개성적 시각으로 삶의 진실을 드러낸 것들이었다. ‘개성’과 ‘진실’은 시를 계량하는 중요한 잣대로 ‘지금까지, 어떻게 썼는가’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포함하고 있어 미래적이다.
당선작 ‘그늘들의 초상’은 대상과 세계를 해석하는 강한 추동력과 낮은 자의 고통을 존재의 장소에서 불러내는 동일자의 윤리를 보여준다. 함께 투고한 시편도 고르게 완성도가 높아 높은 점수를 받았다. 후보작 ‘곰탕’은 조곤조곤한 어조로 “뼛속까지 곰삭은 그리움을 푹 고아내고 나면 눈꽃처럼 퍼지는 풍경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와 같이 세계를 긍정한다. 그러나 산문적 사변(思辨)이 골격을 이루고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로켓맨’은 시적 형상화라는 측면에서 튼튼한 신뢰를 얻고 있지만 대상과의 간격이 지나치게 좁은 것이 흠이었다. ‘그 자작나무 숲으로’는 참신하기는 하나 주제를 드러내는 데 인색했다. 모두에게 “날씨가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안다”는 말과 같이 ‘견인’과 ‘겸양’을 함께 권한다.
201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역을 놓치다
이해원
실꾸리처럼 풀려버린 퇴근 길
오늘도 졸다가 역을 놓친 아빠는
목동역에서 얼마나 멀리 지나가며
헐거운 하루를 꾸벅꾸벅 박음질하고 있을까
된장찌개 두부가 한껏 부풀었다가
주저앉은 시간
텔레비전은 뉴스로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핸드폰을 걸고 문자를 보내도
매듭 같은 지하철역 어느 난청지역을 통과하고 있는지
연락이 안 된다
하루의 긴장이 빠져나간 자리에
졸음이 한 올 한 올 비집고 들어가 실타래처럼 엉켰나
헝클어진 하루를 북에 감으며 하품을 한다
밤의 적막이 골목에서 귀를 세울 때
내 선잠 속으로
한 땀 한 땀 계단을 감고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
현관문 앞에서 뚝 끊긴다
안 잤나
졸다가 김포공항까지 갔다 왔다
늘어진 아빠의 목소리가
오늘은 유난히 힘이 없다
[심사평] 따듯하고 애달픈 시… 서민가정의 풍경 잘 묘사
유종호(문학평론가), 신경림(시인)
지난해보다 작품 수준이 높다는 것이 심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지만, 개성이 강한 작품이 많지 않다는 지적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행을 타는 것인지 응모작들이 서로 비슷비슷한 점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창작교실 등의 영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예선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 중에서 특히 정수박이, 설수인, 이해원의 작품들은 당선작으로 일단 손색이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정수박이의 ‘능선을 바라보며’는 무리 없이 읽히는 장점을 지녔으며 호소력도 상당하다. 한데 내용이 너무 평범해서 어디서 한 번 들은 것같이 귀에 익다. ‘민달팽이’는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껍데기조차 지니지 못하고 대학을 나온 아들의 취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오늘의 아버지 모습이 잘 나타나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기에 충분한 내용이다. 그런데도 당선작으로는 무언가 1퍼센트 모자란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어느 한 구석 맺힌 데가 없어서일 것이다. 설수인의 시 가운데서는 ‘투석실의 하루’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직접적인 체험 없이는 쉽게 얻을 수 없는 표현이라는 점이 우선 호소력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 고통을 통해 도달하는 깨달음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한데 조금 장황하고, 내용 탓인지 읽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대목이 없지 않다. ‘줄 끊긴 바이올린’이나 ‘앉은뱅이 저울’에 대해서도 같은 소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해원의 ‘역을 놓치다’는 참 따듯하고 애달픈 시다. 여러 면에서 오늘의 정서를 잘 대변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가난하지만 평화스럽고 행복한 서민의 가정 풍경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새롭고 예리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흠을 가졌다. ‘육교 밑 고고학자’나 ‘냉장고는 태교중’은 비유가 안이하고 서툴다. 이상의 후보작들을 놓고 숙의한 끝에 시의 완성도에 무게를 두기로 하면서 ‘역을 놓치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소감] 지친 나에게 새로운 불꽃이 일어
이런 기쁜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두 번의 수술로 몸과 마음이 지쳐 올해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귀를 의심했습니다.
너무 떨려서 전화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늦게 시작한 분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젊은 문학도의 길을 가로막은 건 아닌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늦게 출발해 시의 발아점까지 달리기엔 숨이 찼습니다. 햇빛도 보기 전에 멈춰버린 날들이 폐지처럼 수북이 쌓였습니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며 잠시 시를 놓고 있다가 느닷없는 당선 소식으로 마음에 불꽃이 일었습니다. 이 소중한 불꽃, 시를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태우겠습니다.
옛날 호롱불 밑에서 밤늦도록 책을 보시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 저의 가슴에 시의 씨앗 하나 묻어놓으신 분들, 기뻐하실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납니다.
주저앉은 제 손을 잡아주신 유종호, 신경림 심사위원님과 세계일보사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다.
시의 길로 이끌어 주신 박주택 선생님, 항상 용기를 주시던 이문재 선생님께 큰절 올립니다.
힘들 때 힘이 되어 주시던 마경덕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시사랑 화요팀 선생님들과 문우들 고맙습니다.
묵묵히 지켜보는 남편과 딸 미라, 아들 명훈이와 창훈이, 친지들, 친구들, 저를 아는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본명 이숙자
▲1948년 경북 봉화 출생
▲1999년 ‘수필춘추’ 신인상 수상
첫댓글 샘 이글들 퍼갑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쓰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