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코스 : 안성 서운면사무소- > 평택 군문교 삼거리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예전에는 아 이 마을에서 저 마을을 오고 갈 때는 전국의 70%가 산지인 관계로 산과 산, 산과 봉을 연결해 주는 산의 안부에 해당하는 고개를 넘어 마을을 오고 가곤 하여야 했다.
고개는 도의 경계가 될 때는 그 높이가 1,000m가 넘는 고산준령이 되기도 하고 마을과 마을의 통로가 될 때는 몇 십m 밖에 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마을과 마을이 연결되는 하나뿐인 길이 되어서인지 높은 고개나 낮은 고개 든 지 예외 없이 여러 가지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반상의 차별이 엄격한 시대에 천민의 신분을 원망하며 넘어갔다는 하늘재, 으슥하고 험준한 고갯길이 되어 도둑을 방어하고자 장정 60명이 모여야 넘어갔다는 육십령 등 그 고장의 재에는 선조들의 겪었던 애환이 서려 있는 것이다.
전국의 70%가 신지로 이루어진 산악국가에서 재는 교통수단의 주요한 길목이었지만 고개가 없는 평야 지대에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고자 할 때는 그 번잡한 길을 무엇을 기준으로 걸어갔을까?
평화스러운 농촌의 들녘에 누렇게 익어 살랑이는 바람에 고개를 떨군 벼를 바라보면 넉넉한 마음이 물결치며 추수가 끝난 텅 빈 벌판에서 한가로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터전으로 장식하고 꾸며주는 물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렇다면 물줄기를 따라 걸어가는 길 또한 새색시가 꽃가마 타고 시집가던 길이며, 이 동네 저 동네 사람들의 마실길이며 장사꾼들이 봇짐을 매고 오가던 길이며 도둑이 목을 지키고 있는 곳이며 나그네들이 아픈 발목을 쉬던 길이다.
경기 둘레길 43코스, 안성시 서운면에서 평택시 군문동까지 걸어가는 길이 바로 물길 따라 걸어가는 길이다. 거리 20.7km, 소요시간 7시간이 예상된다. 서운면사무소 앞에 설치된 경기 둘레길 함을 열어 경기 둘레길 걷기 인증 도장을 찍고 시내 도로를 따라 평택시 군문동으로 향했다.
농협과 복지회관을 지나 다리를 건너 실개천 물길을 따라 걸어간다. 오늘은 짙은 안개가 자욱하여 100m 앞이 보이지 않는다. 동촌마을 회관을 지나며 길은 일직선으로 뻗어있는데 좌, 우 들녘의 풍경을 볼 수가 없다.
지난번 42코스를 걸으며 탕흉대에 올라 안성의 들판을 바라보고 호연의 기상을 일깨웠지만 그 날의 전율을 정작 들녘에 와서 느낄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맑은 날씨보다 흐린 날씨가 더 많아 산천을 조망할 수없음은 당연함이 아니라 자연이 선사하는 행운의 당첨권이 되었다.
안개에 싸여있는 저 광활한 들판은 분명 고려말 나옹화상께서 청룡사를 중건하면서 청룡이 서운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 그 상서로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을 것인데 그 기운생동의 들녘의 정취를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금북정맥의 서운산마저도 안개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정비가 되지 않은 실개천 물길을 따라 청룡천에 이르러 둘레길은 좌측으로 방향을 전환하여야 하는데 곧바로 진행하다 되돌아 왔다.
상서로운 기운을 뜻하는 瑞雲과 상서로운 기운을 일으킨 청룡이 안성시 서운면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그리하여 산은 서운산이요 사찰은 청룡사가 되었으니 개울물은 당연히 청룡천이 되지 않았을까!.
청룡천은 서운산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으로 흐르면서 신흥리와 송산리를 거쳐 고지리에서 보체천을 합해 신촌리에서 안성천과 합류한다. 발원지인 청룡리의 동리 이름을 따서 청룡천이라 하였다.
청룡천 둑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때로는 천을 좌측에 두고 걸어가다가 다리를 건너 천을 우측에 두고 걸어갈 때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안성의 들녘을 조금이라도 바라보며 걸을 수 있었다.
논, 밭이 있고 천이 흐르고 있는 천혜의 낙토로 느껴지는 곳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잊혀진 농촌 들녘의 풍요로움이 되살아나며 순박한 마음을 지닌 인심 좋은 고장으로 느껴지며 정지용 선생의 ‘향수’란 시를 떠올리게 하였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절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짓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향수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지 2교를 지나 진촌리에 이르렀다. 커다란 돌비석에 ‘忠孝, 禮 마을 진촌리’라고 새겨 놓았다. 忠, 孝, 禮를 실현할 수가 있다면 東方禮儀之國이란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명성이 되살아날 텐데…….
평화스러운 마을,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둑길이 계속된다. 쉬지 않고 걸어와 발목도 아프다. 쉬어 갈만한 곳도 마땅하지 않아 부지런히 걸어가지만,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다. 하지만 노래가 절로 나오는 길이다.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서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옷을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접혔나 보다“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청룡천이 마침내 안성천에 합류하였다. “안성천은 안성시 고삼면, 보개면 일대에서 발원하여 평택시를 지나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중요한 지류로는 진위천, 입장천, 한천, 청룡천, 오산천, 도대천, 황구지천이며 본류와 지류가 합쳐지는 곳에 넓은 충적 평야가 발달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안개도 걷히어 안성평야를 바라보며 걸어가 경부고속도로 안성천 육교를 지나간다. 고속도로에는 많은 차량들이 달려가고 있다. 고향땅 대전시에 내려갈 때 고속버스 창가에서 이 넓은 안성평야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한 곳을 오늘은 두 발로 걸으며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다리를 건너 안성 땅에서 평택시로 진입하였다. 줄지어 나란히 서 있는 고층 아파트가 생동감 넘치게 발전하는 평택시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 안성천을 좌측에 두고 걸어갈 때 유천이 안성천으로 합류하고 있다.
유천의 용정교를 건너니 철새도래지였다. 청둥오리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간다. 시냇물이 흐르는 드넓은 고장에 철새까지 등장한다면 휴식공간인 시민 공원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경기 둘레길이면서 또한 자전거길로 조성되어 자전거 애호가들이 신나게 페달을 밟고 있었다. 천변에 세워진 정자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걸어가니 새로운 힘이 솟는다.
멀게만 느껴졌던 경기 둘레길 43코스도 어느덧 안성교가 눈에 띠며 종착지가 가까워졌다. 매번 걷기 시작할 때 즐겁고 중간에 다소 지쳤다가 종착지가 임박하면 벌써 다 왔나 하고 아쉬워하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좀 더 걸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 경기 옛길의 하나인 삼남길의 마지막 구간인 소사원길의 종착지임을 알린다. 삼남길 경기도 구간은 서울 남태령에서 시작하여 안성천교 제방에서 끝을 맺는데 그 끝머리에 소사벌이 있다.
소사벌의 너른 들판을 바라본다. 광활한 소사벌은 가을걷이가 끝이 나면 수천 마리의 고니, 오리, 기러기 등 가을 철새들이 모여 장관을 이루어 청화 산인은 素沙落雁이라 하여 평택 8경중 7경으로 꼽히는 아름다운 경관을 지녔지만, 땅에 베인 역사의 상처는 가슴을 아프게 한다.
소사벌은 임진왜란 때에는 명군과 왜군의 대회전으로 왜군이 屍山血海를 이루면서 참패를 한 곳이다. 당시 명나라 장수 양호 휘하의 해생, 나귀, 양등산등은 기병 4,000명을 인솔하고 말 탄 원숭이 부대를 소사천 다리 밑에 매복시켰다가 직산까지 북상한 왜군의 선봉 부대를 기습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세월은 흘러 1894년(고종 31년) 이곳은 또다시 청일 양군의 격전지가 되었다. 廣濟蒼生,輔國安民의 동학 혁명군을 다른 민족에게 진압을 요청하는 행위가 일본군을 끌어들여 양국 간의 전쟁을 야기하는 발단이 되고 결국에는 국망의 첩경이 됨을 당시의 위정자들은 진정으로 몰랐을까 ?
자주권을 상실한 가슴 아픈 역사가 베여있는 소사벌을 바라보며 안성천교에 이르렀다. 안성천교를 건너면 충남 천안시 성환 땅이다. 천안은 아내를 맞이한 고장이며 20대 초반 첫 직장 생활을 한 곳이 되어서인지 고향땅으로 느껴지는 곳이다.
삼남길 걷기를 마치면서 안성천교에 서서 삼남길 경기도 구간만을 걷고 마무리하는 아쉬움을 안고 서울로 발길을 돌렸는데 오늘도 고향으로 연결되는 삼남길을 바라보면서 손을 흔들며 안성천 변을 걸어간다.
안성천 둑에 세워진 망건 다리가 눈에 띈다. 섶 길을 걸을 때 이곳에서 서운산, 위례산, 성거산, 태조산으로 힘차게 뻗어간 금북정맥의 산줄기를 조망하면서 가슴 뛰며 지나갔는데 오늘은 구름에 가린 흐린 날씨로 힘찬 산세를 바라볼 수 없었다.
천변은 갈대가 숲을 이루고 있어 흐르는 안성천의 물을 볼 수 없다. 보행자와 자전거 겸용도로가 되어 자전 거인들이 쏜살같이 달려간다. 딱딱한 시멘트 도로를 20여km를 걸어오니 다리도 아프지만, 목적지가 눈앞에 있는 탓인지 발걸음은 가볍다.
종착지가 임박한 탓인지, 둘레길과 나란히 진행하는 경부선 철로를 달리는 전동열차의 소리도 다정하게 들리는 설레임속에 청일 전쟁 때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던 군문교에 이르렀다.
● 알 사 : 2023년 12월 10일 일요일 짙은 안개
● 동 행 : 김헌영 총무
● 동 선
- 09시40분 : 서운면사무소(안성)
- 10시50분 : 보촌교
- 11시35분 : 청룡천 안성천 합류지점
- 12시00분 : 경부 고속 도로 육교(평택시)
- 12시20분 ; 철새 도래지
- 13시20분 : 삼남길 10길 소사원길 종점
- 14시10분 : 군문교
● 도상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21.1km
◆ 총시간 : 4시간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