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 교회에 새신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런 연관도 인연도 없는, 건너 건너 아는
사람조차 한 명 없는 곳이었습니다. 헌금을 내고 예배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찬양대에도 들어갔습니다. 성가 연습 시간에는 언제나 제일 먼저 도착해 의자를 정리하고 다소곳이 가장 뒷좌석에 앉았습니다. 차례차례 들어오는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찬양대원들에게,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아는 척을 했습니다. 연습이 시작되면 앞사람의 뒷머리에 시선을 모으고 무심한 눈빛으로 그저 바라만 보다가, 슬그머니 오선지 위에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다른 파트의 화음은 낯선 언어의 알 수 없는 소리일 뿐이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입술로만 온종일 노래를 했습니다. 연습 후엔 바쁜 일이라도 있는 양 삼삼오오 모이는 찬양대원 틈들을 비껴지나, 훨씬 가벼워진 몸짓과 표정으로 교회를 나섰습니다. 내 삶의 기쁨도 슬픔도 잊어버렸습니다. 소망도 걱정도 묻어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도 소리는 나에게 들어와 말이 되지 못하고 아득한 곳으로 가뭇없이
사라졌습니다. 찬양대의 노랫소리는 나에게 들어와 뜻이 되지 못하고 파도처럼 끝없이 부서졌습니다. 새신자의 머릿속은 늘 쌀뜨물을 풀어 놓은 듯 뿌옇게 흐려져만 갔습니다. 영빨의 클래스가 다르다는 이유 때문일까요? 때론 투명 인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과묵함으로 무시했습니다. 초짜의 순수함으로 얼버무려 가며 버텼습니다. 그러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슬그머니 본래의 생각 없는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영성의 문지방 위를 기웃거리며 늘 우물쭈물 뒤따라만 갔습니다. 일주일에 딱 한 번 마주치는 교인들과 어색한 표정으로 눈인사를 나눴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어느 것도 묻지 않았듯이, 나도 묻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점심으로 주는 비빔밥을 말없이 씩씩하게 비벼 먹었습니다. 찬양 연습을 마친 일요일 오후의 내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충만해졌습니다.
남반구의 대륙에 비가 내립니다. 고국의 장맛비보다 더 길게, 그칠 듯 멈추지 않고 또 내립니다. 내리는 빗속의 세상에서는 살았던 곳도, 사는 곳도, 살아갈 곳도 구분되지 않습니다. 호주도 한국도 하나가 됩니다. 살아보지 못한 다른 곳은, 고국에 대한 향수였습니다.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이곳에 대한 회한이었습니다. 어떤 모양으로 살든지 희망과 좌절, 기쁨과 설움이 되풀이되는 다른 모습의 같은 삶일 뿐이었습니다. 어느 곳에서 살든지 땀과 눈물로 얼룩진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곳들입니다. 오늘도 난 책임질 것도 꼭 해야 할 것도 없는 현실에서, 은퇴하지 못하고 은퇴한 듯 삽니다.
나이 들어 은퇴하고 일의 노동에서 자유로워진다 함은 뜻으로 그럴듯합니다. 경제적으로 준비되어 여유롭게 살아가는 은퇴 후의 삶은 말로써 더욱 아름답습니다. 현실은 막연하기만 한데, 말과 뜻은 아름답고 그럴듯합니다. 앞으로 잘될 거라는 기대는, 내일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걱정 앞에서 늘 속수무책일 것이 분명합니다. 기대는 점점 줄어들 테고, 걱정은 부풀어 올라 커질 것이 또한 확실합니다. 고국에서의 은퇴는 국물 우려낸 며루치와 다름 아니라는 말이 길게 아파 왔습니다. 쉼 없이 무언가를 해야 했던 지난 삶에서 멀리 떠나왔다고 믿었습니다. 절반의 은퇴를 했고, 평화롭고 행복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민을 온 한참 후, 은퇴한 듯 살아가는 어느 일요일 오후입니다.
안동환 /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 2010년 문학사랑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