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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새로운 경제학을 위한 5가지 원칙 하나우어는 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다음 5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마커스 보그의 진단: 병든 사회를 만드는 개인주의와 예외주의
마커스 보그는 어쩌면 미국의 ‘아모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커스 보그는 미국의 현실을 보면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을 소득불평등 심화를 듭니다. 그는 신학자로서 그 원인을 두 가지로 듭니다. 하나는 지독한 개인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미국 예외주의입니다. 보그가 우려하는 미국의 개인주의 문화는 개인의 역량과 노력이 개인차를 만들었으며 개인들의 현재 위상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공동체를 생태계로 보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에게 의존하는 관계임을 망각한 것입니다. 위의 부자 닉 하나우어의 주장과 같습니다.
그런데 마커스 보그는 미국의 개인주의가 미국의 기독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나타낸다고 진단합니다. 그것은 미국의 복음주의적인 기독교인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정신이 구현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보다는 개인의 영역에 해당하는 문제에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정의로운 사법과 정치, 경제의 민주화나 최저임금의 보장 같은 공적인 영역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대신에 동성결혼이나 낙태, 또는 창조론 같은 문제에서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사회를 통합하기보다는 도리어 분열을 조장하는 원인이 됩니다.
마커스 보그가 지적하는 미국의 두 번째 문제는 미국 예외주의입니다. 그것은 마가(MAGA)로 대표되는 미국 우선주의와 유사합니다. 미국은 특별하며 신의 선택을 받은 나라라는 미국 우월주의입니다. 그것은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다른 나라에 대한 불법적인 개입과 폭력의 정당화를 낳았습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개입하여 상황을 더 악화시킨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베트남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이라크 전쟁 같은 경우 외에도 많습니다. 미국이 현재 이스라엘의 가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많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이것은 힘을 가진 나라가 우월의식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보그는 비판합니다.
경제는 정글이 아니라 정원이다: 공존을 위한 선택
함께 연대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협력하는 것은 개인의 영역에 해당하는 도덕이며 국제문제에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경제 영역에서 낙수효과가 거짓된 신화인 것과 같습니다. 닉 하나우어의 주장처럼 경제는 정글이 아니라 정원이며 포용이 성장을 만들고, 기업의 목적은 주주 이익 극대화만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경제 시스템을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은 경제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국제질서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제질서를 냉혹한 정글의 법칙이 작동되는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인간이 상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 협력하면 함께 더 잘 살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런 미래를 상상하면서 더 나은 선택을 한다면 국가나 국제관계 모두 번영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정부가 보여주는 정책적 선택과 방향은 고무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모스가 고발하는 시대의 어둠: 탐욕과 종교적 위선
그러면 예언자 아모스는 이스라엘에서 어떤 불의를 보았길래 이스라엘에 심판이 임한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가 발견한 이스라엘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것은 2,800년 전의 이스라엘 생활상입니다.
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7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8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아모스 2:6~8
은을 받고 의인을 판다는 말은 돈으로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판다는 말은 말 그대로 부자의 갑질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힘 없는 자를 티끌처럼 여기고 사람들을 속여 이익을 얻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도 타락하여 성적으로 문란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부자들의 일탈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처럼 부자가 된 것을 자신의 공로로만 여기고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으며 도리어 정보가 빈약한 사람들을 속여 이익을 취하고 약자를 차별하는 모습이 예언자 아모스의 눈에는 심판의 전조로 보였을 것입니다.
아모스가 바라본 이스라엘의 다른 모습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4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5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4:4~5
이것은 이스라엘이 종교적인 활동을 하면서도 악을 행하는 모습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삶과 무관한 것이라고 여기는 이스라엘의 이중적인 행태를 비판하는 말씀입니다.
무관심한 번영에 대한 경고: 쇠스랑과 정의의 강
아모스는 계속하여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어떤 심판이 있을지를 소개하면서 간간히 현재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악행을 묘사합니다. 다음의 말씀도 그것을 보여줍니다:
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아모스 6:4~6
상아로 만든 침상에서 기지개를 켜면서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서 다윗처럼 악기를 만들어 노래를 지절거리면서도 동포인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 무신경한 모습은 병든 자본주의와 이기주의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한 나라가 멸망하기 전에 어떤 모습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사실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나라들에서는 권력자들과 부유층들의 사치스러운 삶이 두드러집니다. 그들은 국민 전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모스는 그런 나라가 다른 나라에 짓밟히게 되며 그들은 사로잡혀 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닉 하나우어는 부자들이 자기 배만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그 부자들이 곧 곡괭이를 들고 오는 성난 사람들을 만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오늘날에 우리는 성난 군중이 프랑스 왕정을 끝장냈으며 지금도 프랑스인들의 분노가 다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백성을 볼 때 이렇게 살라고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것은 아님을 그는 깨달았을 것입니다. 특히 그 나라에는 두 곳이나 성소가 있어서 그 백성들이 종교적인 활동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종교적 열심이 결코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며 하나님은 그들의 종교적 활동을 역겨워하신다고 그는 확신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종교적인 예외주의 또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런 종교적 열심이 아니라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아니하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는 것입니다(암 5:24).
사실 아모스가 예언을 하는 대상은 권력을 가진 자들과 부자들입니다. 그는 그들에게 이런 강력한 경고를 보냅니다. 어쩌면 그는 사회의 악과 불법에 대해서 더 많이 가진 자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메시지는 제사장과 왕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으며 그 때문에 그는 그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아모스가 그의 시대를 변화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아모스의 예언이 옳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혁명이 아닌 회복으로: 서로에게 의존하는 생명의 공동체
저는 오늘 예언자 아모스를 소개한 마커스 보그의 글을 묵상하면서 우리 시대의 문제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 미국의 한 부자가 자기 백성들과 동료 부자들에게 공동체를 생각하자며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자고 권면하는 것을 소개했습니다. 비록 아모스의 예언이 더 많이 가진 자들에게 주는 경고인 것은 맞지만 우리 공동체 전체가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 모두가 정글이 아닌 정원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이며, 구약의 예언자들이 노래한 번영하는 세상이 아닐까요?
공산주의 혁명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런 혁명은 부자들이 공동체 전체가 파국으로 떨어지고 있는데도 깨닫지 못할 때 나타나는 비극입니다. 그런 혁명으로는 세상이 새롭게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회를 전복시킬 뿐입니다. 공산혁명이 성공했다면 소련이 왜 무너지고 북한은 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겠습니까?
사회는 그런 혁명으로 새롭게 되거나 번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에게 의존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으므로 서로에게 감사하고 서로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공동체가 하나라는 마음과 신화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을 어떤 사람들은 공동체의식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역사의식이나 애국심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처럼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이야기를 성경은 들려줍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한 가족이라고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모든 사람이 하나가 아닐까요? 그뿐 아니라 하늘을 우러르며 한 하늘 아래서 살아가는 사람, 또는 모든 생물이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말도 진리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런 진리를 알아가고 확신하며 그 속에서 번영하는 세상을 꿈꿉시다.
이런 이유로 저는 우리 생명의바다교회의 표어를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세상과 함께 진리를 찾고 복음으로 그 진리의 완성을 증언하는 공동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