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십자가 죽음 이후 벌어진 일들—풍랑 위를 걸으심, 아리마대 요셉의 시신 청구, 빈 무덤과 천사, 사도행전의 기적적인 탈출 기사들—을 읽다 보면 “왜 성경은 굳이 이런 특이한 모티프와 연출을 사용했을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데니스 맥도널드 교수는 그 답을 고대 헬라 세계의 절대적 교과서였던 호메로스의《일리아스》제24권에서 찾습니다. 《일리아스》 24권은 프리아모스 왕이 목숨을 걸고 아킬레우스에게 찾아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구출해 장례를 치르는 고대 최고의 ‘비극적 장례 서사’입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 저자들은 이 24권의 서사 구조, 특이 어휘, 구도를 가져와 문자그대로의평면적묘사를입체적신학서사로변모시켰습니다. 《일리아스》와 직접 인용 대조하며 그 깊은 의미를 살펴봅니다.
1. 밤바다를걸어오신예수와헤르메스신의비행
제자들이 밤중에 풍랑으로 괴로워할 때 예수가 물 위를 걸어오신 사건(마가복음 6장)은 헤르메스 신이 밤중에 바다와 땅을 날아 프리아모스를 찾아가는 장면의 패러디입니다.
일리아스 24권 340-351행: “헤르메스는 아름답고 황금빛인 신발을 발에 묶었다. 그것은 그를 바다 위와 넓은 땅 위로 바람처럼 빠르게 데려다주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땅에 내렸다.”
마가복음 6장 48절: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하시매(wanted to pass by them)...”
전령을 유령으로 오해한 공포와, 두려움을 달래는 인사말도 놀라울 정도로 일치합니다.
일리아스 24권 353-371행: “(전령이 헤르메스를 보고) ‘사람이다! 우리가 망하게 되었다, 도망치자!’... 프리아모스는 두려워 털끝이 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헤르메스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용기를내라(Take heart), 두려워하지말라(do not be afraid).’“
마가복음 6장 49-50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하여소리지르니...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더불어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Take heart) 내니두려워하지말라(do not be afraid)’ 하시고...”
💡맥도널드교수의입장과해석
마가복음 6:48의 ”지나가려고 하시매(pass by)”라는 난해한 구절은 오랫동안 해석학적 수수께끼였습니다. 맥도널드 교수는 이것이 구약의 신현(Theophany)뿐만 아니라, 헤르메스 신이 밤중에 수레 옆을 지나치며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고 안심시켰던 ‘헬라적신현(Epiphany) 모티프’를의도적으로인용한것이라 설명합니다. 마가는 예수님을 단순한 인간 스승이 아니라, 제우스가 보낸 헤르메스 신의 권능조차 뛰어넘어 자연을 통제하는 참된 신적 구원자로 입체화한 것입니다.
2. 아리마대요셉의시신요청과프리아모스왕의용기
예수의 시신을 거두는 아리마대 요셉의 행동은 프리아모스 왕이 적진에 들어가 헥토르의 시신을 요구하던 비장함의 재현입니다.
일리아스 24권 478-561행: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의 무릎을 잡고, 자기 많은 아들들을 죽인 그 무서운 손에 키스했다...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가 감히 적진에 들어온 용기에 놀랐다. ... 아킬레우스는 시신을 내어주기로 결정했다.”
마가복음 15장 43-45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dared to go) 빌라도에게 들어가지 예수의 시신을 달라 하니...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여겨(amazed)... 시사를 요셉에게 주는지라.”
시신을 세마포로 싸서 무덤에 모시고, 세 여인이 이를 지켜보며 통곡하는 서사적 순서도 정확히 대응됩니다.
일리아스: 안드로마케 ➔ 헤카베 ➔ 헬렌 (트로이의 세 여인의 통곡)
마가복음: 막달라 마리아 ➔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 살로메 (십자가와 무덤을 지킨 세 여인)
💡맥도널드교수의입장과해석
요셉이라는 인물이 마가복음에서 갑자기 나타나 시신을 거두는 장면은 호메로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아리마대(Arimathea)라는 지명 자체도 헬라어로 ‘최상의 제자도(Best Discipleship)’를 뜻하는 언어유희(Aristo + Matheia)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지만, 마가는 호메로스의 프리아모스 왕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빌라도)에 들어가 시신을 거둔 요셉을 통해 ‘참된제자도’의이상형을 입체적으로 묘사해 냈습니다.
3. 무덤을지키는경비병과열린무덤 (마태복음 27-28장)
마태복음이 추가한 ‘무덤을 지키는 경비병’과 ‘천사의 내림’은 헤르메스가 적진의 문지기들을 잠재우고 빗장을 열어준 사건의 인용입니다.
일리아스 24권 443-446행: “그들이 배를 지키는 탑과 도랑에 이르렀을 때, 전령 헤르메스는 경비병들(guards)에게 잠을 쏟아붓고, 적시적에문을열어빗장을지워버렸다.”
마가/마태복음 28장 2-4절: “주의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파수꾼들이그를무서워하여떨며죽은사람과같이되었더라... 천사가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맥도널드교수의입장과해석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의 빈 무덤 기사에 호메로스의 ‘파수꾼 통제’ 모티프를 보강했습니다. 헬라 관객들에게 “어떻게 삼엄한 경비 속에서 시신이 사라질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해, 호메로스 신화 속 헤르메스가 파수꾼을 잠재우고 문을 열었듯 천상적존재(Angel)가제국로마의파수꾼들을무력화하고무덤을열었음을 보여주는 표준적인 고전 문학 기법으로 변증한 것입니다.
4. 사도행전의패러디: 광야의빌립과감옥을탈출한베드로 (사도행전 8장, 12장)
사도행전에서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의 수레에 타서 성경을 풀어주고 사라진 사건, 그리고 베드로가 감옥을 탈출해 마리아의 집 문을 두드린 사건 역시 《일리아스》 24권의 완벽한 문학적 패러디입니다.
빌립과내시 (행 8장): 헤르메스가 프리아모스의 수레에 올라타고 가며 헥토르의 죽음에 대해 대화했듯, 빌립은 내시의 수레에 올라타 이사야서에 적힌 ‘예수의 비극적 죽음’을 해설해 줍니다. 그리고 사역이 끝나자 신처럼 기적적으로 사라집니다(행 8:39).
베드로의탈출과하녀로데 (행 12장): 베드로가 삼엄한 감옥 파수꾼들을 지나 쇠문이 저절로 열려 탈출한 뒤 마리아의 집 문을 두드렸을 때, 하녀 ‘로데(Ῥόδη, Rhoda)’가 목소리만 듣고 기뻐하며 문도 안 열어주고 들어가 외치자 사람들이 “미쳤다”고 합니다. 이는 프리아모스 왕의 귀환을 가장 먼저 보고 성중에 알렸으나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던 ‘카산드라’ 모티프의 정확한 재현입니다.
💡맥도널드교수의입장과해석
누가는 사도행전을 쓰면서 헬라 독자들에게 익숙한 《일리아스》 24권의 서사 구조를 유쾌하게 패러디(Parody)했습니다. 특히 ‘로다’라는 이름은 장미를 뜻하며 카산드라의 상징과 연결됩니다. 누가는 초기 교회의 기적적 역사와 사도들의 수난을 단순한 사실적 드라이함에 두지 않고, 고대고전문학의정수를자유자재로변주하여복음의기쁨과승리를극적으로각인시키는 고도의 문학적 천재성을 발휘했습니다.
[결론] 비극적장례식을바꾼우주적부활의승리
《일리아스》 24권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 처연한 책입니다. 자식을 잃은 늙은 왕이 아들의 시신을 거두어 통곡 속에 화장하고 무덤을 만드는 ‘죽음과 파멸의 완결’로 서사시가 끝납니다.
그러나 복음서 저자들과 누가는 이 위대한 비극의 서사 구조를 그대로 빌려오되, 완전히 다른 결말을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은 시신이 안치되는 슬픔의 장소가 아니라 비어있는승리의현장이 되었고, 적진의 문지기들은 잠든 것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 앞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맥도널드 교수가 밝혀낸 이 입체적 겹침은 우리에게 소중한 통찰을 줍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단순히 신화나 문학을 표절한 것이 아니라, 당대문화가다다를수있었던가장깊은슬픔과비극(호메로스)의언어를끌어올려, 그것을뛰어넘는복음의우주적희망과부활의승리를선언했던 것입니다.